지난해 9월, 위험의 외주화 실태를 고발한 전기철도 일용직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쓰는 작업 도구와 안전 장비. ⓒ연합뉴스

지난 2월22일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산재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청문회에는 9개 기업의 대표가 참석했다. 포스코, 포스코건설, 현대중공업, LG디스플레이, GS건설, 현대건설, CJ대한통운, 롯데글로벌로지스,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이들 회사에서 지난 5년간 발생한 산재 사망자가 103명이다. 이 중 하청업체 노동자는 85명.

산재 사망 노동자 10명 중 8명이 하청 노동자다. 사고성 산재의 대부분은 추락, 끼임, 부딪힘 등 이른바 ‘재래형 산재’라 불리는 사고이다. 고도의 기술과 비용을 투자해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피하기 어려운 종류의 산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재래형 산재의 경우 기본적인 안전조치와 안전 펜스, 안전망 같은 간단한 장치를 통해 사고의 대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외주화’로 복잡한 고용구조를 거치면 이 간단한 조치는 매우 복잡한 과정으로 변한다.

4월22일 경기 평택항 부두에서 작업하던 중 사망한 이선호씨는 ‘우리인력’ 소속의 일용직 노동자다. 사망 당일까지 5개월간 평택항에서 일했다. 일하는 내내 우리인력은 소속 노동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작업 지시는 우리인력과 ‘인력공급(용역)계약’을 맺은 ㈜동방으로부터 내려졌다. ㈜동방 직원은 단체 카톡방을 통해 우리인력 노동자들이 다음 날 처리해야 할 작업 내용이 담긴 작업 리스트를 보내고, 해당 작업에 필요한 인원을 통보하는 식이었다. 우리인력 노동자들은 ㈜동방 직원으로부터 지시받은 작업 리스트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고, 작업 진행 및 완료 사항을 ㈜동방 담당 직원에게 그때그때 빠짐없이 보고했다. 작업은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매일 반복되었다.

원청의 작업 지시를 위해 활용되는 ‘단체 카톡방’에서는 작업상의 위험 사항을 점검하기 위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카톡방에 초대된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자유롭게 글을 올리지 않았다. 실시간 상호 대화가 가능한 카톡방이 원·하청 고용구조에서는 일방적인 업무 지시가 아래로 내려가고 이에 따랐다는 업무보고만 위로 올라가는 위계적 명령 장치로 변화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끼임’으로 사망한 김용균 노동자가 포함된 단체 카톡방은 원청인 발전사 관리자의 지시와 하청 노동자들의 지시 보고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의 업무 수행이 어렵다는 하청 노동자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카톡방만이 아니다. 하청 노동자들이 시시때때로 올리는 설비 개선 요청은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로부터 적절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한 하청노동자는 말했다. “도대체 설비 개선 요청이 어디에서 막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하청업체에서 안 올리는 것인지, 원청에서 묵살하는 것인지…. 우리가 아무리 위험한 설비들에 대해 의견을 올려도 응답이 없으니 나중에는 아예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거죠.”

김용균이 사고를 당한 컨베이어벨트 구간은 하청 노동자들이 설비 개선을 해달라고 요청 공문을 보낸 곳이었지만 원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비 개선은 그가 사망한 뒤에야 반영될 수 있었다.

위험의 외주화란 단지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것은 위험한 일을 ‘지시하는 자’와 ‘직접 감당하는 자’ 사이를 단절시킨다. 이에 따라 ‘위험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가 실종되어버린다. 원청과 하청은 도급계약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라는 ‘고용상의 구별’을 초래한다. 그리고 원청 노동자가 하던 일을 하청 노동자가 맡게 되면 ‘일’의 범주는 동일하지만 ‘위험’의 양상은 사뭇 달라진다.

2019년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가 공개한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의 ‘단체 카톡방’ 업무 지시 내용.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

밥값 같아졌다고 차별 사라졌을까?

위험은 기계장치나 화학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기계장치나 화학물질은 위험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구조에 따라, 때로는 예방 가능한 위험에 불과하지만 때로는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등장한다. 원·하청 구조에서, 나아가 작업장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은 모든 현장에서는 ‘위험한 일이니 위험 요소를 먼저 해결해주기 전에는 작업할 수 없다’는 현장 노동자의 말이 단절되고 위계화된 고용구조를 넘지 못한 상태로 유폐된다.

원청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하청 노동자 역시 안전화와 안전모, 작업복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원청 노동자가 10만원짜리 안전화를 신고 일할 때, 하청 노동자는 8만원짜리 안전화를 신는다. 1차 하청보다 2차 하청 노동자들은 더 값싼 안전화를 신게 된다. 원·하청 간에 맺는 도급계약은 경쟁입찰로 이루어지므로 안전관리비가 입찰가만큼 깎이게 되기 때문이다. 또 원청 노동자가 법적으로 보장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원청 기업과 안전문제를 협의할 때, 하청 노동자는 ‘시설에 대한 권한이 없다’고 말하는 하청기업과 ‘당신은 우리 직원이 아니’라는 원청 사이를 오가다 진이 빠져 포기하게 된다.

몇 년 전까지 태안 발전소는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의 구내식당 밥값이 달랐다. 하청 노동자는 ‘외부인’으로 간주되어 더 비싼 가격을 감당했다. 정규직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해 이를 바로잡았다. 이제 발전소 식당은 원·하청 노동자가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차별이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 탄가루를 뒤집어쓰는 일은 하청 노동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석탄가루를 얼굴과 작업복에 묻힌 채 식당에 갈 수 없어 작업장 한 귀퉁이나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밥을 먹기 위해 샤워하고 작업복을 갈아입는 데에 점심시간(1시간)은 빠듯하다. 식당은 하청 노동자의 작업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간 식당을 사용하는 데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은 사라졌다. 하지만 원청 노동자에 비해 식당에서 밥을 먹는 조건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하청 노동자의 작업환경과 노동조건은 사라지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차별이 없는 대신 작업환경과 노동조건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다만 이는 ‘석탄 나르는 일’의 특성에 딸려온 상황으로 보이므로 차별이라고 인식하기 어렵다.

차별은 애초에 ‘석탄 치우는 일’을 비핵심 업무라고 간주하며 외주화한 것에서 출발한다. 이로부터 밥을 먹는 장소뿐 아니라 휴게공간, 화장실도 격차가 벌어진다. 원인은 동일하다. 휴게공간이나 화장실 역시 원청 소유이기 때문에 원청의 허가 없이는 마음대로 손을 댈 수가 없다. 하청업체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핑계로 고장난 에어컨조차 수리하지 않고 방치한다.  

하청 노동자가 겪는 차별은 체계적이고 촘촘하다 못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구조에서 위험은 아래로 고이고 고인 만큼 곪는다. ‘재래형 사고’의 반복이 아니라, 차별이 생산하는 ‘새로운 위험’이다. 차별은 위험한 기계장치를 더 위험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위험한 기계장치를 사용하는 노동자에게 위험을 감내하도록 만든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은 위험의 원인이 외주화를 통한 차별적 고용형태에 있다는 점을 직접적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겨우 마련한 각종 ‘안전대책’에는 기계적이고 표면적인 대책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직접고용’은 차별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차별에 기반한 위험을 해결할 가장 직접적인 해결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흔히들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해서는 위험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국회 역사상 최초로 산재 청문회를 열 만큼 산재 문제에 관심을 갖는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이번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그만큼의 열의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명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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