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2020년 12월11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의사당을 떠받치는 커다란 기둥 사이에 작은 텐트가 세워졌다. 연면적 2만5000평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 평조차 차지하지 못하는 크기다. 2020년 12월11일 단식에 들어간 김미숙씨는 텐트 안에서도 두꺼운 패딩 점퍼를 벗지 못했다. 패딩에 달린 모자에 털모자까지 겹쳐 써도 냉기가 파고들었다.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 6~8℃를 오르내리는 날이 이어졌다. “항상 제일 추울 때 싸우게 되네요.” 목도리에 마스크를 쓴 그가 눈으로 웃음을 전했다.

아들 김용균씨의 기일은 12월10일이다. 엄마 김미숙씨가 늘 한겨울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용균씨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2018년 12월10일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졌다. 한국서부발전소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이었다. 1년 동안 일하면 하청업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으로 들어간 첫 직장이었다. 입사 3개월 만에 사고를 당한 아들은 끝내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김미숙씨는 올해 아들의 2주기 추모제에 가지 못했다. 대신 국회의사당 안에서 밤을 새워 농성했다. 2020년 12월9일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였다. “국회는 공수처법으로 난리가 나서 우리가 크게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힘에서 밀려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고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리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때로는 크게 소리 질렀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작게 읍소도 많이 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기리는 자리에 갈 수 없었던 엄마는 추모제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중대법은 2020년 9월22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서 10만명 동의를 받아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안건으로 올라갔다. 당시 해당 청원 글을 올린 사람도 김미숙씨였다. 하지만 두 달 뒤인 11월26일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원회(법안소위)에서 중대법이 논의된 시간은 단 15분에 그쳤다. 법사위 공청회에서는 1시간36분간 다뤄졌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중대법은 법사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정기국회는 끝내 막을 내렸다. “국회의원들은 많이 봤는데 다들 중대법 제정하겠다고 말만 하지 먼저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어요.” 김미숙씨가 말했다.

한 여당 관계자는 중대법 통과가 미뤄진 이유에 대해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미숙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용균이가 사고를 당한 뒤에 산안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현장에서 사람 죽는 건 못 막고 있잖아요.”

2018년 12월 사고가 났을 당시 김미숙씨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지도 못한 채 국회로 달려갔다. 임시국회가 문을 닫기 전 산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은 돌아올 수 없어도 여전히 위험한 곳에서 일하는 용균이의 동료들은 살려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결국 28년 만에 산안법이 개정됐다.

ⓒ시사IN 이명익김미숙씨는 50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법 적용 대상에서 빠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

이들에게 중대법은 하나의 소명

사내하청 업체에 대해 원청이 안전조치를 취하도록 한 산안법 개정안은 2020년 1월16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2020년 상반기에만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1101명에 달한다. 매일 6명이 일터에서 숨진 셈이다. 낙담한 김미숙씨에게 중대법은 또 하나의 소명이 됐다. 강연이나 연설 요청이 들어오면 항상 중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애초에 쉽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하루아침에 쉽게 움직이는 게 아니잖아요. 이게 사회 곳곳에 스며들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거죠.” 밤샘 농성이 끝나고 국회의사당 건물 밖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할 때는 남편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애 아빠한테는 일부러 말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TV에서 제 소식을 들었나 봐요. 짐 챙기러 집으로 들어간 날 이실직고했죠.” 아내가 추운 겨울날 야외에서 단식에 들어간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말없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이틀 후 남편은 “몰래 뭐라도 먹어라”고 전화했다. 아내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단식에 들어간 건 김미숙씨만이 아니다. 산재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에서 같이 활동하는 고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도 함께 단식 중이다. 이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나 국회의사당으로 들어서는 의원들을 대상으로 피켓 시위를 펼친 뒤 국회의사당 주위를 한 바퀴 돈다.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김미숙씨는 3개월 전에 무릎 수술을 받았고, 이용관씨는 2016년 아들을 잃은 뒤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산재 피해자 유가족이 단식에 들어가자 압박을 느낀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12월17일 의원총회를 열었다. 임시국회 내에 중대법을 통과시키기로 어렵사리 의견을 모았다. 의총이 끝난 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대법 제정의 취지와 당위성에 대해선 모든 의원들이 공감했다.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정책위와 상임위의 논의를 존중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사업주의 안전 보호 의무가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 등(32~34쪽 기사 참조)에 대해 좀 더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김미숙씨에게 중대법은 법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이른바 ‘안전사고’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조의 잘못이라는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동안 산재가 일어날 때마다 개인의 잘못 때문으로 몰고 갔지만, 절대 그게 아니에요. 안전조치 없이 일하게 한 회사, 관리감독에 소홀한 국가 등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기업들에게 노동자를 안전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주고 싶어요.” ‘산재가 노동자 개인 탓’이라는 말은 김미숙씨도 들었던 말이다.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 새벽에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그에게, 회사 관계자는 “용균이는 착했는데 고집이 강해서 하지 말라는 일을 했고, 가지 말라는 곳을 갔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용균씨의 동료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김미숙씨는 그때 처음 보는 아들의 사진과 마주했다. 사진 속 아들은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목숨을 잃은 게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아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면, 구조를 바꿔야 하고, 바꾸려면 싸워야 한다는 것도 차례차례 깨달았다. 정기국회 때 주목받지 못하고 폐기될 뻔한 중대법의 불씨를 단식을 통해 다시 되살려낸 것도 결국 그였다.

단식농성장 천막 옆에 세워져 있는 피켓 그림에는 전태일이 사진 속 용균씨처럼 종이를 들고 있다. 종이에는 ‘중대법을 제정하라’고 적혀 있다. 김미숙씨는 그 피켓 옆에 앉아 국회의사당을 오가는 국회의원들을 바라봤다. “이 법은 기업들이 기업하지 말라는 법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기업을 운영하라는 법이에요. 이건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기업들이 안전하게 운영하면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없어요.”

이번 임시국회는 2021년 1월8일까지다. 법안 내용이 법사위에서 다듬어지고 본회의에 올라가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김미숙씨는 그 과정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법 적용 대상에서 빠질까 봐 걱정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제일 많이 일어나요.” 실제로 2019년 산재 사망사고 가운데 77.2%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2020년 12월22일 단식 12일 차 아침에도 김미숙씨와 이용관씨,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는 의원들을 향해 피켓을 들었다. 따뜻한 물만 마시며 버티고 있는 김미숙씨는 “하루하루 속이 쪼그라들고 가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신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아들이 느껴지다가도 느껴지지 않는 기분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 용균이가 자신을 보면 속상할까 봐 걱정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마스크에서 하얀 김이 새어나왔다.

“엄마가 지금 하는 일이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살아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하는 거니까⋯. 그 마음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용균이한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니까.”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