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WHO 조사팀이 중국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위)를 방문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EPA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에서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로 바뀐 뒤에도 여전하다. 이번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지목된 코로나19의 진원지를 놓고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중앙정보국(CIA)을 포함한 18개 연방 정보기관에 향후 90일 안에 코로나19 진원지를 ‘확실히’ 색출하라고 지시한 뒤부터 관심의 초점이 중국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의 유출 가능성 여부에 쏠려 있다. 중국이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에 거세게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한 가운데 가뜩이나 심각한 미·중 갈등이 코로나19 진원지 조사 문제로 더욱 심화될 조짐이다.

코로나19의 최초 발원지와 관련해 미국 내에선 그간 두 갈래 주장이 널리 통용돼왔다. 하나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 같은 1차 동물에서 중간 동물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자연적으로 전파됐다는 ‘자연전파설’이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월 코로나19 환자가 처음 발생한 중국과 공동으로 진행해 내놓은 보고서에서도 박쥐에서 동물 숙주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즉 자연전파설에 무게를 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과 공화당 인사들을 중심으로 최초 환자가 발생한 지역인 중국 우한시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실수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아예 ‘중국 바이러스’로 단정해 중국 정부의 거센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도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실험실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진원지라는 건 처음부터 명백했다. 그런데도 나는 심하게 비난받았다”라고 주장했다.

ⓒAP Photo2020년 3월16일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태스크포스 언론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는 트럼프.
ⓒThe Washington Post‘코로나’가 ‘중국’으로 수정된 트럼프의 회견문.

트럼프뿐이 아니다. 공화당 중진 톰 코튼 상원의원은 처음부터 우한 연구소가 코로나19의 진원지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도 올해 1월 퇴임 직전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일부 직원들이 2019년 가을 코로나19와 일치하는 증상으로 앓았다”라고 주장해 사실상 중국을 코로나19 진원지로 지목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 말기 국무부 관리들이 코로나19 진원지를 분석한 결과 자연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대신 우한 연구소 실험실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5월23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자체 확보한 미국 정보 당국 보고서를 인용하며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연구원 3명이 코로나19 첫 발병 보고 직전인 2019년 11월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아팠다”라고 보도해 국제적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확실한 증거 없이 우한 연구소를 코로나19의 진원지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를 고수해왔다. 지난 1월 우한을 방문한 WHO 조사팀도 3월 최종 보고서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 실험실에서 직원 감염을 통해 유출됐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extremely unlikely)’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313쪽에 달하는 보고서 중 실험실 유출 가능성을 언급한 곳은 고작 4쪽이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도 해당 내용을 뒷받침할 실질 자료 부족을 이유로 ‘극히 희박’ 쪽으로 기울었다.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직원의 코로나19 유사 증상과 해당 연구소의 코로나19 진원지 관련성을 제기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보도가 나간 다음 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관련 보도 내용의 확인을 거부한 채 “미국은 WHO가 코로나19 진원지와 관련해 좀 더 투명한 조사에 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며 미국 정부가 논란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이 같은 기류는 불과 사흘 뒤 바이든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정보기관들에 코로나19 진원지 색출을 직접 지시하면서 확 바뀌었다. 지난 3월 바이든 대통령은 이와 비슷한 명령을 정보기관에 내렸고, 평가가 엇갈린 내용을 최근 보고받고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이 일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정보기관 두 곳은 자연전파설에 무게를 둔 반면 한 곳은 우한 연구소를 지목했다. 하지만 3곳 모두 정보 신뢰수준이 ‘중간 이하’로 나타났다.

2월9일 중국 우한에서 기자회견을 연 WHO 코로나19 기원 조사팀의 피터 벤 엠바렉 박사. ⓒAP Photo

과학 문제인가, 정치 문제인가

문제는 코로나19 진원지가 대다수 과학자들 주장대로 자연전파설이라면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정보 당국의 이견까지 밝히며 추가 진상조사를 지시할 리 없다는 점이다. 〈뉴스위크〉 최근호는 “바이든 대통령과 관리들은 중국이 코로나19 진원지와 관련한 정보를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라고 전했다. 특히 행정부 고위 관리는 〈뉴스위크〉에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지만 중국 정부는 ‘진원지 정보’를 세계 각국과 공유하지 않았다”라고 밝혀 정보 당국에 대한 바이든의 지시가 바이러스 진원지에 관한 중국 정부의 ‘은폐’ 노력과 무관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미국 정보 당국이 자연전파설이 아닌 우한 실험실 유출에 비중을 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전현직 정보기관 관리들은 두 가지 점에서 실험실 유출설에 더 무게를 둔다. 우선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일부 직원들이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으로 아팠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군이 모종의 생물화학무기 프로그램에 관여해왔는데 이게 바로 우한 연구소와 관계되어 있으리라는 관측이다. 중국 정부가 연구소 실험실에 대한 현장 방문과 관련 자료의 외부 열람을 거부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바이러스 학자인 이언 리프키 교수(컬럼비아 대학 공중보건대학원)의 생각은 다르다. 지난해 3월 공개서한에서 ‘우한 바이러스연구소 유출 가능성’을 부인한 리프키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해당 바이러스가 당시 무기화됐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 그러한 소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도 우한 연구소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유출설을 극구 부인해왔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정보 당국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시를 두고 “과학적 사실과 진실을 도외시한 채 희생양을 찾기 위해 정치적 조작을 추구하고 있다”라며 맹비난했다. 특히 자오리젠 대변인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생물화학 실험실을 보유 중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주미 중국 대사관도 “과학 문제인 코로나19 진원지 조사를 정치화하면 진원지를 찾기는커녕 오히려 이 문제가 ‘정치적 바이러스’로 변질돼 국제사회의 코로나19 협력을 심각히 저해할 것이다”라고 반발했다. 중국은 WHO 조사로 우한 실험실 유출 문제가 사실무근으로 일단락된 만큼 추가 조사를 거부한 채 이제는 미국과 유럽이 조사받을 차례라며 역공을 펼쳤다.

미국 정부가 우한 연구소의 바이러스 유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8개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진원지 색출에 들어갔지만 향후 3개월 내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보 당국이 3개월 안에 어떤 결론을 낼지 주목된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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