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3일 경기도 동두천에서 열린 한·미 연합 화생방훈련에서 미군 병사가 ‘적외선 차폐 겸용 발연체계’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주한미군의 세균 실험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조는 최근 미국 국방부 관리의 의회 제출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지난 5월4일 제니퍼 월시 미국 국방부 차관보 대행은 하원 국방위원회 산하 정보 및 특수작전소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자료에서 북한 핵과 함께 생물무기 위협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핵과 생물화학무기를 추구하는 것이 국제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라며 이런 북한의 행동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반도 내 충돌 과정에서 대량살상무기(WMD)를 활용할 위험성을 감안해 한·미 연합군은 화생방 무기에 오염된 환경에서 작전하는 비상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머시 시맨스키 특수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은 “북한이 생물무기를 보유하고 화학전 프로그램도 보유한 것 같다”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생물화학무기 방어를 명분으로 한국 각지의 주한미군 기지에서 세균 실험실을 운영해온 미국 국방부로서는 관련 실험 예산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의회에 북한의 생물화학무기 위협을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국방부가 매년 의회에 예산을 요구하는 항목인 ‘국가 생물화학무기 방어체제’에 따르면, 그 산하에 국가조기경보통합체제(ECD IEW)가 있으며 이를 위해 생물무기 감시체제가 운영된다. 감시체제의 핵심 축은 바로 주한미군기지 세균 실험실이 진행하는 주피터 프로그램(〈시사IN〉 제711호 ‘원폭만큼 치명적인 미군의 부산항 세균 실험’ 참조)이다. 이를 위해 미국 의회에서는 2015년 이후 부산항 8부두 등 주한미군 세균 실험시설 운영비로 해마다 수백만 달러의 예산을 승인해왔다.

ⓒ시사IN 조남진 미군의 맹독성 생화학물질이 반입되었던 부산항 8부두.

그러면 과연 북한은 생물무기를 얼마나 개발했으며 현존하는 세균전 위협은 어느 정도일까. 역사적으로 북한이 생물무기 개발에 관심이 있다고 외부에 알려진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당시 탈북 귀순자들로부터 북한 김일성 주석이 생물화학무기 개발을 독려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이들은 1980년 11월 노동당 중앙위 군사위원회에서 김 주석이 “독가스와 생물무기를 많이 생산하여 조국통일이라는 큰 사명에 효과적으로 사용하라”는 교시를 내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상한 물건’ 떨어뜨린 미군기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일부 탈북자의 주장을 근거로 군사평론가들 사이에 구체적인 북한 생물무기에 대한 추정이 나왔다. 북한에는 일반 실험실로 위장된 10여 곳의 생물무기 연구 및 생산시설이 있으며 이곳에서 13종의 생물무기를 1000t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따위였다. 탈북자 말고 외부인의 주장도 있었다. 옛 소련의 생물무기 실험실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캔 알리벡은 “1980년~1990년에 북한은 변종 천연두 바이러스를 소련으로부터 공급받아 생물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이를 위해 소련에서 과학자들을 다수 파견받아 교육했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런 휴민트 정보를 토대로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북한의 화생방 테러 위협을 부쩍 강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의 생물무기는 아직까지 대남 공작 과정이나 내부의 실험실 사고 등을 통해 한 번도 실체가 노출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작성한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대응’ 보고서에서도 “북한이 1960년대부터 생물무기를 연구개발해왔으며 현재에 생물무기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정도로만 평가했다. 북한의 세균전 수행능력을 둘러싼 미국 정보 당국의 분석과 평가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 스콧 베리어 국장은 지난 4월29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자료를 통해 “북한이 생물무기를 무기화했을지도 모른다. 군사적 목적을 위해 충분한 양의 생물무기 물질을 개발할 능력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보고했다.

세균을 이용한 무기는 전 세계적으로 금지 대상이다. 미국과 북한 모두 현재 생물무기금지협약(BWC) 가입국이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생물무기를 생산·보유·사용하지 않는다고 철저하게 부인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미국은 북한에 생물무기 사찰을 받으라고 여러 차례 공세를 폈다. 이에 북한은 오히려 미국이 전 세계에서 생물무기 연구를 가장 많이 해왔고,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예전(한국전쟁)에도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요구를 일축했다.

그러면 미국의 세균전 수행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반도에는 생물무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시기가 있었다. 한국전쟁 때였다. 비인도적 전쟁범죄에 관한 국제법의 기초를 닦은 1925년의 제네바 의정서에서는 질식 작용제, 독성가스, 세균학적 수단을 전쟁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 조약 비준을 거부하는 몇 안 되는 국가였다. 미군 세균전 논란의 역사는 일제가 만주에서 운영했던 악명 높은 세균전용 생체실험 ‘731부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자 연합군 측은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일당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체포령을 내렸다. 국제 전범재판에 회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미국은 731부대의 ‘실험자료’들을 손에 넣기 위해 이시이 일당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미국이 획득한 731부대의 세균 실험 전리품은 한국전쟁에서 사용되었다는 국제적인 의혹을 낳았다.

한국전쟁 전선이 교착되던 1951년 1~2월, 경기도 이천, 강원도 철원·금화 등지에서 미군기가 나뭇잎, 깃털, 면화 솜, 마분지, 콩 줄기와 꼬투리, 여러 종류의 살아 있는 곤충, 썩은 생선과 돼지고기, 개구리, 설치류 등을 채운 폭탄을 떨어뜨렸다. 미군기가 이상한 물건들을 떨어뜨리고 지나간 뒤 평균 영하 10℃였던 강추위에 갑자기 파리, 모기, 진드기, 거미 같은 곤충이 발견되었다.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의 진격을 막아보려고 미국 공군이 38°선 이남과 서울 이북 사이에 콜레라와 유행성출혈열 등 독성 병원체를 광범위하게 투하했다는 목격담이 이어졌다. 전선에서 수많은 중공군이 전염병균에 감염돼 사망했다. 중국과 북한이 투하된 곤충을 채집해 실험실에서 조사한 결과 파리에서 콜레라 양성반응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중국과 북한 지역에서는 ‘페스트 또는 이와 유사한 질병’이 퍼졌다.

가뜩이나 교착된 전선을 타개하고자 미군은 한반도에서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 살상을 벌여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한 상태였다. 여기에 가장 비인도주의적인 전쟁범죄로 지탄받아온 세균전 혐의까지 받게 되자 ‘자유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미국의 위신은 말이 아니었다. 유엔군과 미국 정부는 끝까지 세균전 의혹에 대해 휴전협정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중국과 북한의 모략극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중부전선에 퍼진 원인 모를 독성 세균의 피해가 미군과 한국 일반 주민에게까지 두고두고 부메랑이 되어 덮쳤던 것이다. 전선이 장기간에 걸쳐 38°선에서 교착된 1951년 초 중부전선의 철원·금화·연천에 주둔한 미군에게 괴질환(유행성출혈열)이 퍼졌다. 당시 미군 발표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유행성출혈열에 걸려 사망한 미군이 210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 이유를 제대로 공개할 수 없었다.

미국이 획득한 ‘731부대 세균 실험 전리품’에 대한 내용이 담긴 〈니덤 보고서〉. ⓒ시사IN 조남진

세계에서 생물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한탄강 유역의 미군 공습 지대에서 발생한 유행성출혈열은 1971년 다시 대대적으로 번져 민간인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75년 가을에도 한반도 전역에 퍼져서 9000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했으며 수천 명이 생명을 잃었다. 한국의 유행성출혈열은 이전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병원체보다 강화된 병원체에 의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유행성출혈열 자체가 원래 한반도에 없던 질병이었으며, 병원체도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1951년 초 미군이 세균폭탄을 퍼부은 곳으로 지목된 중부전선 지역에서 유래한 유행성출혈열 병원균은 잠복기가 4~5일로 매우 짧았다. 증상도 심한 각혈과 호흡장애를 동반한 혈담이 나오며 치사율이 높았다. 높은 감염률을 보이면서 많은 환자와 사망자를 낸 유행성출혈열은 훗날 한탄강 유역의 중부전선에서 유행한다 하여 ‘한탄 바이러스’로 불렸다.

미국의 생물무기 개발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1954년 아칸소주 파인버프 군수공장에 생물무기 생산 공장을 설치해 브루셀라균을 담은 파편 폭탄을 제작했다. 이듬해에는 대규모로 야토 병균을 생산했다. 1964년에는 바이러스와 리케치아 생산설비를 세우고 1969년 태평양에서 동물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세균전쟁 모의실험을 실시하기도 했다. 1960년대 말에 이르러 미국은 탄저균, 보툴리늄 독소, 야토 병균, Q열 병원균, 베네수엘라 뇌염바이러스, 브루셀라균, 포도상구균 장내독소B 등을 무기화함으로써 세계에서 생물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로서는 갈수록 드세지는 국내외 비난 여론 앞에 ‘생물무기금지협약’ 가입을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 없었다.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이 거세지면서 세균전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연구 목적을 제외한 생물학 및 독소무기에 대한 연구와 생산을 중단’하도록 하는 대통령령을 선포하고 모든 생물무기를 폐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미국 의회는 1972년에는 생물무기의 연구·생산·보유 등을 금지하는 생물무기금지협약 가입을 비준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미국은 여전히 ‘평화적 목적’ ‘방어용’ 등을 명분으로 생물무기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1980년대 초 레이건 대통령은 평화적 목적을 내세워 생물화학무기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만들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아예 ‘세균전 준비를 재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 직후 ‘평화를 위한 생물무기 연구’라는 명분 아래 슈퍼탄저균 개발을 승인했다.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생물학적 작용제와 독소를 활용하기 위한 강력하고 생산적인 과학적 모험은 국가안보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며 실행명령을 하달했다. 이 명령에 따라 한국 각지에 주한미군 세균실험실이 설치되고 주피터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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