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했던 탓이었다. 5월26일,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양승태 재판)은 여전했다. 오전 10시 법정에 들어선 재판부가 진행 발언을 한 다음부터, 한승 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의 목소리 녹음이 재생되었다. 앞서 그랬듯 그날도 검사·변호사·피고인 중 누구도 하루 종일 입을 열 일이 딱히 없었다(〈시사IN〉 제712호 ‘사법농단 재판 지연, 2차 사법농단인가’ 참조).
이날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는 대법정이다. 150석 규모의 방청석에는 4명만 자리했다. 기자와 법원기자단 소속 풀(pool) 기자 한 명, 그리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지인으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전부였다. 녹음본이 법정 스피커에서 나오자, 풀 기자도 더 이상 노트북으로 재판 내용을 받아치지 않았다. 앞으로도 증인 7명의 음성을 틀 예정이라, 올여름 내내 양승태 재판은 비슷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사법농단 사건은 여론의 관심 밖으로 점점 밀려나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보다 재판이 덜 주목받는 기존 법조 취재의 관행에, 재판 일정이 길어지고 과거 재판 내용이 반복되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다. 재판의 끝이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늘어지고 있다. 피고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대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법대로 진행한다. 과정과 결론 모두 ‘법대로’라는데, ‘신성가족’이 아닌 기자의 눈에는 허탈하기 짝이 없게 비친다.
법대로가 적용되지 않는 사례를 곧잘 목격했기 때문이다. 〈불량판결문〉을 펴낸 최정규 변호사가 고발하는 현실도 비슷하다. 법대로 재판을 청한 일반 소송 당사자에게 “인정된다 해도 적은 금액인데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가 뭐냐?” “화해하지 않으면 불리한 판결을 하겠다”라는 법관의 태도는 양승태 재판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법이란 무엇인가’를 자꾸만 되묻게 된다. 대학 시절 배운 플라톤의 〈국가〉 속 트라시마코스의 말이 요즘 종종 떠오른다. ‘법은 강자의 편익을 위한 수단’이라던데, 정말 그런가? 그래서 확인해보고 싶다. 누군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처럼 피고인의 권리를 ‘원칙대로’ 요구하면, 판사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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