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그 주에는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 기사를 쓰기로 되어 있었다. 2021년 10월 미국 제약사 머크에서 개발 중인 치료제의 효능이 썩 괜찮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불러 모았다. 화이자가 개발한 또 다른 ‘코로나19 경구용 치료제’의 임상 3상 시험 결과도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그 주 목요일이었던 2021년 10월28일 다른 아이템으로 기사를 틀었다.
이날 오후 2시 헌법재판소는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각하’였다. 각하란 피청구인(임성근)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심판을 끝내는 것이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2021년 2월4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뒤 같은 달 28일 법복을 벗었다. 헌재는 그가 이미 퇴임해 법관 신분이 아니기에 파면할 수 없으며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2019년 연재했던 ‘사법농단 연루 의혹 현직 판사 열전’에 네 번째로 등장한 인물이다. 그가 한 일은 상당히 노골적인 구석이 있었다(〈시사IN〉 제625호 “‘대통령 심기를 경호하라’ 판결 선고 구술본 첨삭한 검은손” 기사 참조).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에서 ‘각하’ 결정을 한 10월28일 한국 사회는 재판 개입으로 보이는 그의 행위가 헌법에 어긋나는지 확인하고, 만약 그렇다면 합당한 책임을 물을 기회를 잃었다.
회사에서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만들 때 소개 문구에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라고 적었다. 고백하자면 반어법에 가깝다. 그 힘을 의심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법조계 인사가 뜻밖의 얘기를 했다. 사법농단에 관여했던 판사들이 하나둘 업무에 복귀하고, 변호사로 개업하고, 다시 고위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사법농단 열전’이라는 형태로 남긴 기록이 있어서 그들의 과거가 사라지거나 잊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그 얘기를 이렇게 돌려드리고 싶다. 기록 자체는 힘이 없다. 누군가 그 기록을 읽어줄 때에만 힘을 갖는다. 〈시사IN〉 독자들이 그런 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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