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7일, 서울구치소를 찾은 당시 임성근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오른쪽).ⓒ연합뉴스

2021년 10월28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법관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내렸다. 대상은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에서 벌어진 사법농단에 관여한 행위로 탄핵심판을 받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각하’였다. ‘각하’란 피청구인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 자체를 판단하지 않고 심판을 끝내는 것이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이미 퇴임해 법관 신분이 아니기에 파면할 수 없고, 그러니 위헌 여부도 판단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견을 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지난 2월4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뒤 같은 달 28일 임기를 마쳤다. 나머지 헌법재판관 3인(유남석·이석태·김기영)은 모두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재판의 독립을 해치는 위헌적 행위를 했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견으로 기록될 뿐 헌법재판소 결정으로서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선고 직후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변호인단은 “탄핵심판 절차의 법리에 따라서 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법관을 헌법재판소 심판대에 세우는 과정은 지난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사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인 탄핵소추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제도지만 그동안 발휘된 적이 없었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으나(〈시사IN〉 제624~640호 ‘사법농단 연루 의혹 현직 판사 열전’ 참조), 당시 20대 국회에선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확보한 21대 국회에서도 2020년 12월, 이탄희 의원이 본격적으로 사법농단 법관 탄핵을 추진하면서 겨우 불씨를 붙일 수 있었다. 국회가 탄핵 소추를 미루는 사이 사법농단에 관여했던 판사 여럿이 ‘사퇴’라는 방식으로 법복을 벗었다.

2020년 12월23일, 이탄희 의원이 ‘세월호 진실규명 방해’ 법관 탄핵 촉구라는 이름으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탄핵 소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때 함께한 국회의원은 6명뿐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파문 직후로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사법기관과 국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탄희 의원은 동료 의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설득에 나섰다고 했다. “‘매일 정치적 이슈에 대응하는 것도 국회의 일이지만 입법기관으로서 헌법적인 책무를 묵묵히 이행해가는 그런 품위 있는 정치도 있어야 한다. 국민들께 헌정 질서가 원래 설계된 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고 설득했다.” 2021년 2월4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79표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이므로 법관 신분에서 탄핵해줄 것을 헌법재판소에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으로, 법관에 대해 헌법적 책임을 묻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게 됐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처럼,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법농단 관여는 당사자가 퇴임했다는 이유만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넘어가도 될 만한 사건이었을까.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사법농단에 관여했던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자리는 대법관으로 가는 코스로 통한다. 법원 내에서도 ‘엘리트 중 엘리트’만 간다는 요직이다. 그 자리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재판 3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앞선 검찰조사와 형사재판을 통해 확인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월호 7시간’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이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 사이의 ‘거래’라는 사법농단의 본질을 압축적으로 폭로한다.

2014년 8월 가토 다쓰야 〈산케이 신문〉 지국장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7시간 동안의 행적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썼다. 박근혜 청와대는 이 칼럼을 비롯해 ‘세월호 7시간’을 둘러싼 의혹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한 비망록’에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고 김영한 민정수석에게 〈산케이 신문〉을 ‘응징’ ‘추적’ ‘처단’하라고 지시한 메모가 나온다. 얼마 후 가토 다쓰야는 명예훼손죄로 재판에 넘겨지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이동근 재판장)에 배당된다. 법조계에서는 무리한 기소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그의 재판 관여, 가볍게 치부해도 될까

그 시기 김기춘 비서실장은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을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렀다. 가토 다쓰야 재판 기간에 법원행정처는 임성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에게 여러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이 지시는 재판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아직 공판이 진행 중이던 2015년 3월 이동근 재판장을 불러 가토 다쓰야가 칼럼에 기재한 소문의 내용(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이 정윤회 전 보좌관과 함께 있었다)은 허위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판결을 앞둔 2015년 11월에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이동근 재판장에게 선고기일에 읽는 구술본 초안을 받아 이를 수정했다. 검찰이 확보한 수정본을 보면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아주 꼼꼼하게 구술본을 첨삭했는데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그림〉 참조). 그는 구술본 초안에 있던 ‘대통령이 대한민국 최고의 공적 존재인 이상, 대통령을 피해자로 하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을 함부로 인정하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삭제하도록 선을 그으면서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았다. ‘대통령이 피해자라고 해서 명예훼손죄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그쪽에서 약간 또는 매우 서운해할 듯.’

〈그림〉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첨삭한 ‘가토 다쓰야 재판’ 구술본

이 과정에서 판결문 내용까지 변경됐다. 당초 재판부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판결문 초안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이동근 재판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더라도 가토 다쓰야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비방 목적이 인정되지 않아서 무죄’라는 쪽으로 구술본을 정리하라고 요구한 이후, 판결 이유 역시 ‘명예훼손은 인정되나 비방 목적이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아 무죄라는 취지’로 수정되었다.

재판 결과만 놓고 보면 이유야 어떠하든 가토 다쓰야에게 무죄를 선고하겠다는 재판부 결정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니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관여는 가볍게 치부해도 되는 일일까? 이탄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판결이유가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는다’에서 ‘인정된다’로 바뀌었다. 이 행위는 원래 유죄인데 그 신문사 기자가 언론 활동의 일환으로 했기 때문에 위법성을 조각(형식적으로는 범죄지만 실질적으로는 위법이 아니라고 볼 만한 특별한 사유를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언론인이 아니라면 유죄가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당시 사회적으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서 진상을 규명하라는 요구가 높았다. 큰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판결 내용에 따라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판결 내용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부당하게 관여한 것이 확인된 3건의 재판 가운데에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사건도 있다. 2016년 1월 유명 프로야구 선수 도박죄 사건이다. 검찰은 프로야구 선수 오승환·임창용의 원정 도박 사건을 공판 절차를 받는 정식 기소가 아니라 서류만으로 심리하는 약식기소 형태로 법원에 넘겼다.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김윤선 판사는 약식명령은 적절하지 않으니 공판절차를 거치겠다고 결정한 뒤 담당 실무관을 통해 전산에 ‘공판절차 회부서’를 등록했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같은 날 급하게 김윤선 판사를 불러 ‘주변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본 이후 처리하는 게 좋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후 절차가 번복돼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이 발령됐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리송하지만 법원 사정을 아는 법관의 눈에는 “정말 심각한 일”이라고 한 판사는 말했다. “결론이 바뀌고 말고를 떠나서 판사가 (전산에) 등록까지 한 사건을 돌렸다는 건 여기저기에 모두 개입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심판에서 탄핵 소추를 인용한 재판관 3인이 밝힌 소수의견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피청구인의 재판 개입이 이처럼 여러 사건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재판독립에 대한 침해행위가 일상적으로 행해졌다는 강한 의심을 불러와 법원의 재판이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신뢰에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였다.”

재판에서 ‘외관의 공정성’이 중요한 이유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법조계에서 ‘재판의 외관’이라고 부르는 절차적 정당성이 얼마나 핵심 가치인지에 대해 말했다. “사법 권력은 아주 강한 힘이다. 그런데 그 결정에 도달하는 판사의 심증(心證) 형성은 비공개이다. 우리가 판사의 뇌를 볼 수 없지 않나. ‘독립적으로 판단하겠지’ 하고 판사의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외관의 공정성이라는 건 재판에 대한 믿음을 담보하는 최소한의 수단인 것이다. 그게 훼손되면 국민들에게 우리의 재판을 신뢰해달라고 말할 근거가 사라진다.”

이탄희 의원(위)은 2020년 12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을 주도했다.ⓒ시사IN 조남진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줄곧 자신의 행위가 ‘선배 법관으로서 재판부에 조언을 해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해왔다. 수도권 지역의 한 판사는 딱 잘라 말했다. “형사수석은 형사부 판사들의 근무평정 초안을 작성한다. 더구나 임성근 부장은 법원 내 ‘이너서클’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의 말 한마디는 절대적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각하’ 결정으로,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한 재판 개입 행위가 헌법에 반하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헌법재판관 다수의 논리대로 피청구인의 임기가 끝났으니 각하는 어쩔 수 없었던 걸까? 한 중견 판사는 “임성근 부장에 대한 탄핵 결정은 무리라고 봤지만 그 행위가 위헌이라는 판단은 했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자신의 책무를 포기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각하하더라도 위헌 여부를 판단해서 그 내용을 결정문에 남길 수 있다. 그 판단을 할지 말지는 헌법재판소의 재량인데 임성근 부장 탄핵 소추에 소극적으로 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헌법재판관들의 소극성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한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임성근 부장의 행위가 위헌적이 아니라고 정면으로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임기가 끝날 때쯤에야 탄핵을 소추한 국회의 임무 방기가 결국 헌법재판소가 본안 판단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준 측면이 있다. 그 이면에는 판사들의 동류의식과 그 체제에 암묵적으로 순응 내지 동조해온 공동의 기억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관여 혐의로 책임을 묻는 자리에 세워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법원의 자체적인 징계 대상이 되었지만 견책에 그쳤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가 징계처분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은 2년 넘게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형사재판 1심과 2심은 각각 ‘위법적 행위’ ‘부적절한 재판 관여 행위’라고 판시하면서도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최종심만을 남겨두고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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