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 사람의 마음을 잡으려 노심초사한다. 향후 임기 4년 동안 국정을 원만하게 이끌어가려면 우군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이자 당내에서 가장 보수적 인사로 꼽히는 이 사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임기 100일을 맞아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려 4조 달러가 넘는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의회의 문턱을 넘으려면 이 사람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기에 이 사람은 상하원 535명을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의원’으로도 꼽힌다.
그의 이름은 조 맨신. 미국 동부에 있는 인구 180만여 명의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선출된 연방 상원의원이다.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와 주 국무장관을 지낸 뒤 2010년부터 상원의원으로 재직 중인 맨신 의원은 민주당 소속이지만 현안에 따라 종종 야당인 공화당에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물론 바이든 행정부에도 ‘골칫거리’로 통한다. 이를테면 그는 민주당이 그토록 반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이민 정책을 찬성했다. 보수 성향인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인준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반면 맨신은 민주당 내 급진파가 주창하는 연방 대법관 증원, 연방 최저임금 인상, 필리버스터 폐지 등에 반대한다. 맨신 의원은 민주당이 현재 집권 여당이고 바이든이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라고 해서 야당인 공화당을 배제한 채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는 소신이 확고하다. 실제로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인프라 확충을 위해 2조3000억 달러, 일자리 창출을 위해 1조8000억 달러를 의회에 요청한 것과 관련해 “너무 많다”며 공개적으로 부정 의견을 드러내 바이든 행정부가 초긴장 상태다.
‘맨신 의원 한 사람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경기부양책이 좌초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연방 상원의 구성을 보면 충분히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원 435명인 하원은 민주당이 219석, 공화당 211석이어서 언제든 단순 과반수 표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100명 정원의 상원은 공화, 민주 각각 50명으로 동수다. 이 경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상원 의장 자격으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표결 통과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 중 한 사람이라도 이탈하면 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맨신 의원의 존재감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설령 맨신 의원을 포함한 민주당 50명 전원이 동참하고, 해리스 부통령이 가세해도 공화당 의원이 필리버스터, 즉 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면 법안 통과가 한없이 늦어질 수 있다. 필리버스터를 끝내려면 60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경우 공화당 의원 10명이 동조해야 가능하다. 그 때문에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폐지하는 방안을 최근 심도 있게 검토했다. 상원 민주당 의원 50명에 해리스 부통령까지 합세하면 단순 과반수로 필리버스터를 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신 의원이 필리버스터 폐지에 적극 반대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그는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필리버스터는 우리의 민주적 정부 형태를 보호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다. 만일 이를 폐지하면 이 나라의 방향을 바꾸는 법안들이 당파적 이해에 따라 위험한 선례를 남길 것이다”라며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일침을 놓았다.
예산안 분할처리 주장하는 맨신
맨신 의원이 이처럼 ‘초당적 국정운영’을 내세우며 필리버스터 폐지에 반대하고, 공화당과의 협치를 주장하는 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거의 모든 법안에 대해 민주·공화 양당의 견해차가 심해 당론에 따른 당파적 표결이 관행처럼 굳어졌고, 특히 이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 더욱 심화됐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2조3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구축 방안과 관련해 공화당의 셸리 캐피토 상원의원은 동료 의원들을 규합해 5680억 달러 규모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맨신 의원은 캐피토 의원의 수정안을 “좋은 출발점”이라며 반겼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의 인프라 제안을 찬성하면서도 우선은 도로·다리·철도·인터넷 확충 등 ‘핵심 인프라’ 시설부터 구축하자며 해당 예산안을 몇 개로 나눠 처리하자는 방침이다.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맨신 의원의 ‘분할처리’안에 반대한다. 미국 경제가 코로나19 위기에서 벗어나 재도약하려면 4조 달러에 이르는 경기부양책을 신속히 일괄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인 딕 더빈 의원은 “할 일이 너무 많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며 맨신 의원의 분할안에 반대했다.
이처럼 반대에 부딪히자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우회하면서도 단순 과반수로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예산 조정(budget reconciliation)’ 카드를 진지하게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 신설돼 1980년 처음 활용된 이 제도는 역대 행정부에서 공화·민주 양당의 의견 대립이 심해 협치가 불가능한 경우 집권 다수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행사해왔다. 최근의 예로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직후 내놓은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꼽을 수 있다. 공화당의 반대로 교착 국면이 심해지자 상원의 민주당 지도부가 ‘예산 조정’을 이용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당초 부양책엔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고, 실업수당을 주당 400달러로 책정했지만 맨신 의원의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안을 빼고, 실업수당 역시 400달러에서 300달러로 재조정했다.
민주당 상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4조 달러 경기부양안을 공화당이 끝내 반대할 경우 결국 예산 조정이라는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상원 예결위원장인 버니 샌더스 민주당 의원은 “공화당의 좋은 의견은 듣겠지만 언제까지 처리를 미룰 순 없다. 신속히 부양안을 처리해야 한다”라며 예산 조정 활용에 찬성이다. 하지만 맨신 의원은 ‘초당적 협치’를 이유로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에 ‘예산 조정안’을 활용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예산 조정이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공화·민주 양당의 논의를 차단하는 데 악용되고 있다. 예산 조정안이 상원의 역할을 대신해선 안 되고, 민주당 상원의원들도 중요한 국가 현안에 관해 공화당 동료 의원들의 견해를 포기하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만일 맨신 의원이 예산 조정 방침에 부정적이면 부양안이 하원을 통과해 상원으로 넘어와도 그의 한 표가 부족해 처리할 수 없는 판국이다.
초당적 협치를 중시하는 소신파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부양책을 발표한 뒤 맨신 의원을 백악관으로 초대해 단독 회담을 가진 것이나 질 바이든 여사가 맨신의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주를 방문해 그를 치켜세운 것도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도 맨신 의원을 설득하지 않고는 예산 조정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요즘은 한 발짝 물러서 그의 견해를 경청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를테면 바이든 대통령은 경기부양책 재원용으로 현재 21%인 법인세를 28%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맨신 의원의 뜻을 수용해 25~28% 중간선에서 수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바이든 대통령의 전향적 자세를 감안할 때 결국 민주당 지도부는 맨신 의원의 견해를 최대한 수용·절충하면서 올여름 예산 조정안을 밀어붙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맨신 의원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나는 바이든 행정부의 걸림돌이 아니다. 최선의 정치는 훌륭한 통치”라며 공화당과의 ‘협치’를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공화당과의 협상이 끝내 결렬되면 맨신 의원도 고집을 꺾고 결국 민주당과 한 배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탄광 산업으로 이름난 웨스트버지니아주는 다리와 도로를 포함한 인프라 구조가 상당히 취약해 바이든의 경기부양책이 통과되면 많은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신파로 이름난 그가 초당적 협치를 중시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걸림돌로 남을지, 아니면 지역구 이해를 챙기며 민주당호에 동승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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