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I3월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백악관에서 재닛 옐런 재무장관(오른쪽 두 번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왼쪽 두 번째) 등과 재정에 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1조9000억 달러(약 215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다. 과연 이 추가 재정 투입이 미국 경제의 회복을 가져올 만큼 충분한지, 아니면 경기과열과 물가 불안을 야기할 정도로 과도한지를 둘러싸고 과거의 동지들이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 사이의 논쟁이 그것이다. 이 부양책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회 의장과 폴 크루그먼 교수가 나섰다. 이에 맞선 새로운 ‘인플레이션 매파(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경기부양 정책을 자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쪽에는 오바마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와 함께 거장 올리비에 블랑샤르가 이름을 올렸다.

사실 서머스와 블랑샤르는 최근까지 줄곧 적극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옹호해왔다. 이들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이번 1조9000억 달러의 부양책 규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자칫 그동안 배의 닻처럼 묶여 있던 민간의 ‘기대인플레이션(향후 물가가 몇 퍼센트나 오를지에 대한 예상)’이 더 이상 고정되지 않고 풀려버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시 인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다.

이런 우려의 배경은 최근 급등한 장기국채의 금리(수익률)다(편집자주:국채금리의 급등은 투자자들의 국채 수요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또한 국채 수요 감소는 투자자들이 국채 가치의 하락을 예상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채 가치 하락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상이다. 즉, 국채금리 급등은, 시장이 앞으로의 물가상승을 예상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쯤에서 적어도 두 가지의 논쟁점을 제기할 수 있다. 첫 번째, 최근 장기금리 급등은 기대인플레이션의 상승 때문인가? 두 번째, 바이든 정부의 부양책 규모는 정말 과도한가?

오바마 정부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왼쪽)와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

실질금리 상승의 원인  

국채는 대개 미리 정해놓은 액면가와 이자를 지급한다. 물가가 올라 화폐가치가 떨어지면, 미리 정해진 금액만 받을 수 있는 투자자로서는 손해가 불가피하다. 국채 투자자들이 장차 물가가 오를 만큼을 예상해 추가 수익률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물가의 3% 상승이 예상되면 국채 투자자는 금리를 3%만큼 더 받고자 한다. 이렇게 기대인플레이션은 국채금리의 한 부분이 된다. 그런데 위험을 회피하려는 국채 투자자로서는 인플레이션의 가능성 자체가 싫다. 그래서 국채금리에는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한 보상도 더해진다. 요컨대 국채금리는 ‘실질금리’에 ‘기대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을 합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모든 국채가 그런 건 아니다. ‘TIPS’라는 국채는 물가가 변동하면 원금과 이자가 이에 연동해 변한다. 따라서 TIPS의 수익률, 즉 TIPS 금리에는 기대인플레이션이나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이 따로 없다. 반면 TIPS는 시중에서 잘 거래되지 않으므로 투자자들은 TIPS를 매입할 때 별도의 보상을 프리미엄으로 요구한다. 국채금리는 TIPS 금리와 자주 비교된다. 국채금리에서 기대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을 빼고 여기에 TIPS 프리미엄을 더하면 TIPS 금리가 된다. 국채금리에서 TIPS 금리를 뺀 것을 ‘BEI’ 지표라고 한다. 그렇다면 BEI는 기대인플레이션과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 그리고 TIPS 프리미엄을 더한 크기가 된다. 이상 논의를 다음 두 공식으로 정리한다.

(1) 국채금리 = TIPS 금리 + BEI 지표

(2) 국채금리 = 실질금리 + 기대인플레이션 +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

최근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가 가장 낮았던 때는 지난해 8월4일의 0.52%였다. 지난 3월5일의 국채금리는 1.56%였다. 지난해 8월 초부터 6개월여 동안 무려 1.04%포인트나 오른 것이다. 이 1.04%포인트는 공식(1)로 분석하면 TIPS 0.39%포인트 상승과 BEI 0.65%포인트 상승의 합이다. BEI가 기대인플레이션을 제대로 반영한다면, 높은 BEI는 매파의 주장처럼 인플레이션이 코앞에 닥친 증거일 수도 있다. 하지만 BEI는 기대인플레이션 외에 다른 요소(인플레이션 위험 보상과 TIPS 프리미엄)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식(2)로 국채금리 변동을 설명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분석해봤더니, 지난해 8월 초부터 올해 2월 말까지 국채금리 상승분 0.92%포인트는 실질금리 0.62%포인트 상승, 기대인플레이션 0.11%포인트 상승,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 0.19%포인트 상승의 합으로 파악되었다.

이 분석 결과는 중요한 사실을 드러낸다. 장기금리 상승의 더 큰 원인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실질금리라는 것이다. 최근 금리 상승이 경제회복의 긍정적 신호로 해석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장기 실질금리가 오르는 현상은 흔히 경기호전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올해 들어 나타난 인플레이션 위험 보상의 상승을 보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시장의 경계감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이나 그 중요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금리 상승의 원인을 경기가 호전되리란 기대만으로 설명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고용 상황 개선의 증거가 뚜렷하지 않아서다. 2월 들어 미국의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감소하긴 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27주 이상 실직 상태인 장기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26주까지만 지원하는 실업수당에 대한 신청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옐런 장관이나 파월 의장은 지금 공식 실업률은 6%이지만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실제 실업률은 10%라고 증언한다. 실제의 미국 경제 상황이 매파 경제학자들의 시각만큼 좋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유통시장(채권 등이 최초 발행되는 시장이 아니라 이미 발행된 채권 등이 거래되는 시장)의 수급 여건이 국채금리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일단 국채 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는 주택저당채권(MBS)부터 고려해보자. MBS는 민간이 주택 구입을 위해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모은 다음 그것을 다시 담보로 삼아 발행하는 채권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대출을 받은 사람이 희망하면 원금을 일찍 갚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금리가 오르면 다른 대출로 갈아타는 방법으로 기존 주택담보대출의 원금을 일찍 갚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이 경우 MBS 투자자로서는 주택담보대출로부터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를 두고 MBS의 ‘듀레이션’이 길어진다고 표현한다.

이제 어떤 펀드매니저가 MBS와 국채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여러 금융자산을 모은 것)’를 운용한다고 가정하자. 금융 이론에 따르면, 의도치 않게 듀레이션이 길어지거나 짧아지면 자칫 손해를 보기 쉽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포트폴리오 전체의 듀레이션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성향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금리가 오를 때 펀드매니저들은 어떻게 행위할까? 금리가 오르면, MBS의 듀레이션이 길어진다. 이런 경우, 펀드매니저가 포트폴리오에서 만기가 긴 장기국채를 줄이면 포트폴리오 전체의 듀레이션을 다시 짧게 조정할 수 있다. 이처럼 금리가 오를 때 장기국채를 매도해 포트폴리오 전체의 듀레이션을 유지하는 전략이 2월 들어 실제로 실행에 옮겨졌다. 그 결과, 장기국채를 팔려는 매물이 쏟아져 나왔다. 매물이 쏟아져 나오니 장기국채의 가격은 하락하면서 장기금리가 오르게 되었다. 금리상승의 폭이 유통시장의 수급 교란으로 더욱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바이든 정부의 경기부양책 규모가 정말로 과도한지 살펴보자. 새롭게 매파로 떠오른 블랑샤르는 지난 2월18일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를 통해 이번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이 미국 경제의 마이너스 ‘산출갭’을 메우고도 넘칠 정도로 크다고 주장했다.

산출갭이란, 국내총생산(GDP)이 노동시장의 완전고용을 가져올 만큼의 GDP인 ‘잠재 GDP’를 몇 퍼센트나 초과하는지 나타내는 개념이다. 경기가 정점(피크) 근방에서 활황일 때 산출갭은 ‘플러스’가 되며 이 시기의 GDP는 완전고용에 가깝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정도의 고용을 가져온다. 반면 산출갭이 ‘마이너스’라면 실업률이 높은 상태다.

ⓒAP Photo지난해 3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원스톱 커리어 센터’에 실업수당을 청구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경제위기를 과소평가해온 결과

블랑샤르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2019년 4분기 미국 경제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완전고용을 수반하는 잠재 GDP의 전년 대비 증가율은 약 1.7%였다. 그런데 2020년 4분기의 GDP는 1년 전 같은 시기인 2019년 4분기보다 2.5%만큼 작았다. 만약 2020년 4분기에도 미국 경제가 완전고용을 유지했다면 GDP가 2019년 4분기보다 1.7% 더 커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19년 4분기보다 2.5%나 작았다. 즉, 2020년 4분기 GDP는 잠재 GDP보다 4.2%(1.7% +2.5%) 부족했다. 이는 산출갭이 마이너스 4.2%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다시 완전고용을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 규모의 부양책이 적절할까? 2019년 미국의 GDP는 21조4300억 달러였다. 이 21조4300억 달러에 4.2% 산출갭을 곱하면 9000억 달러다. 블랑샤르의 계산에 따르면, 9000억 달러를 넘는 부양책은 과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블랑샤르의 계산 결과는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잠재 GDP 추정값에 대한 신뢰를 전제한 것이다. 이론적으로 잠재 GDP의 근거는 노동시장의 완전고용을 가져온다는 ‘물가안정실업률(NAIRU)’ 개념이다. NAIRU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물가상승률이 더 올라가지 않게 하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준의 실업률이다. 실업률이 NAIRU 수준일 때, GDP는 잠재 GDP와 일치하게 된다. 현대 거시경제학의 다수설에 따르면, NAIRU는 생산성 같은 거시경제의 공급(생산) 측 요인이 결정한다. 그래서 NAIRU는 변동성이 크지 않으며 중기적으로 안정적인 값을 갖는다고 한다. 실업률은 NAIRU로부터 일시적으로 괴리될 수 있지만 결국 NAIRU 수준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미국 의회예산국의 잠재 GDP 추정값을 완전히 신뢰해도 되는지 의문이다. 추정된 잠재 GDP가 지속적으로 큰 폭의 하향 수정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2010년 8월, 2021년 2월에 나온 미국 의회예산국의 잠재 GDP 추정 결과를 비교해보면 된다. 일단 2000년의 잠재 GDP를 100으로 놓는다. 2006년 8월의 의회예산국 추정에 따르면 미국의 2016년도 잠재 GDP는 160 정도다. 그런데 2010년 8월과 2021년 2월에 추정된 2016년도 잠재 GDP는 각각 150과 140이다(아래 〈그림〉 참조).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중요한 수치들이 이런 식으로 수정되어온 것이다.

그동안 이런 하향 조정이 반복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위기의 부정적 영향을 크기나 지속성 측면에서 초기에 과소평가하다가 나중에야 실상을 파악한 탓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는 과연 다를까? 혹시 이번에도 위기의 부정적 영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공식 실업률이 노동시장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어쩌면 실제 산출갭은 블랑샤르의 계산보다 훨씬 더 마이너스 방향으로 크게 열려 있는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들어가 근본적으로 이론적 의심을 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실업률이 결국 NAIRU라는 이름의 기준값으로 수렴한다는 가설 자체는 틀렸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제가 ‘임금 주도적’인 특성을 갖고 있어서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에 분배되는 몫, 즉 노동소득분배율이 떨어질 때 경제성장이 지체된다고 하자. 그런 경제에서 실업률이 올라 노동소득분배율이 하락한다면 이는 경기침체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실업률이 더 오를 수 있다. 한번 올라간 실업률이 어떤 기준값으로 돌아오기는커녕 이후 더 올라 기준값과의 괴리가 더 벌어지는 셈이다. NAIRU 개념 자체가 이렇게 흔들린다면 블랑샤르의 기계적인 산출갭 계산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기자명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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