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월20일 연방의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1월20일 취임사에서 유독 ‘국민 통합’을 강조하며 협치를 내걸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반부터 암초를 만났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경기부양책과 이민개혁안 등 취임 초반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던 국정 과제들이 상원 공화당 의원들의 비협조적 태도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일찌감치 협치를 포기하고 민주당 중심으로 국정을 끌고 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바이든이 내건 협치의 1차 시금석은 1조9000억 달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에 대한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협조 여부다. 미국은 1월 하순 현재 2500만명 이상의 확진자와 42만명을 웃도는 사망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하다. 그 여파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실업률이 지난해 12월 현재 6.7%로 급등한 상태다. 이에 따라 바이든은 취임 일주일 전인 1월14일 코로나19 재확산 대처와 경기회복을 위해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제안하고, 이를 최우선 국정 추진 과제로 내걸었다. 부양책은 백신 보급 확대와 향후 100일 내 학교 등교 재개를 위한 4000억 달러, 주정부에 대한 3500억 달러, 성인 1인당 1400달러 지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올리고 실업수당을 인상하는 방안 등도 포함돼 있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은 경기부양안 통과에 적극적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상원이다. 정원 100명인 상원은 지난 1월 조지아주 상원 보궐선거에서 기존의 48석이던 민주당이 2석을 추가했다. 민주·공화 양당의 의석이 각각 50석으로 동일하다. 다만 50대 50 표결 시에는 상원 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민주당에 합세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원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소수당에게 허용된 유일한 ‘무기’가 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권)다. 또한 공화당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에 들어가는 경우, 상원에서 60명이 동의해야 무제한 토론을 끝낼 수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현재 50대 50인 상원 의석 구조상 10명의 공화당 의원이 민주당에 합세해야 바이든 경기부양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

상원 공화당 의원 가운데 상당수가 바이든의 경기부양책에 부정적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공화·민주 상원의원들이 합의해 9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로부터 한 달도 안 되어 또다시 나온 1조9000억 달러 규모의 부양책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논리다. 공화당에서는 온건파로 분류되는 수전 콜린스 의원은 “9000억 달러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킨 게 엊그제인데 또다시 막대한 규모의 부양책이 지금 왜 필요한가?”라고 반문했다. 종종 소속 공화당을 이탈해 민주당에 합세해 표결해온 콜린스 의원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대다수 강성 공화당 의원들의 견해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공화당 의원들은 경기부양안 가운데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주정부에 대한 3500억 달러 지원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EPA척 슈머 상원 원내총무(가운데)가 1월25일 자신의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필리버스터 폐지는 민감한 이슈

공화당 상원 의원들의 반대로 경기부양책이 좌초될 것이 확실하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상원 과반수만으로 법안 통과가 가능한 옵션을 채택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필리버스터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다. 현재 상원에서 필리버스터 종료에 60명의 동의가 필요하게 되어 있는 규정을 단순 과반수로 바꾸면 된다.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총무는 민주당 상원 사령탑인 척 슈머 원내총무에게 최근 “필리버스터를 폐지하면 협치는 없다”라며 초강경 자세를 보였다.

또 다른 옵션으로는 정부의 신속한 위기 대처를 위한 ‘특별예산절차’, 일명 조정장치(reconciliation)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절차에 들어가면 단순 과반수 동의로 상원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이미 민주당과 백악관에선 경기부양책이 공화당 반대로 상원 통과가 힘든 상황에서 조정안을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이 팽배하다. 비록 편법이긴 하지만 필리버스터 폐기보다는 훨씬 부작용이 적은 데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이를 적극 활용한 선례가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는 MSNBS 방송에 “공화당 동료들과 함께하길 바라지만 이들의 협조 없이도 반드시 통과시킬 것이다”라며 조정안을 통한 강행 처리를 예고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경기부양책 통과를 위해 조정안을 채택할지 여부는 공화당과의 협상 결과에 좌우될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반면 공화당 중진 로버트 포트먼 상원의원은 “민주당이 강행 처리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협치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제는 경기부양책 같은 예산 관련 사안은 조정안을 통해 처리한다 해도, 바이든 대통령이 다른 핵심 국정 과제로 제시한 이민정책, 인종갈등, 환경 및 기후변화 등 ‘비예산 법안’ 통과엔 반드시 상원 공화당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한 액션플랜을 가동해도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협조 없이는 실현이 불투명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이를테면 이민정책의 핵심인 미국 내 1100만 불법체류자들의 합법화 문제는 공화당이 반대하면 좌초가 불가피하다. 환경 및 기후변화 문제도 근본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의 기본 정강 기조와 맞물려 있어 차이점을 극복하기 쉽지 않다. 〈워싱턴포스트〉는 “아슬아슬한 상원 구도를 감안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 의원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공화당 상원의원 가운데는 바이든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은 의원이 8명이나 된다.

바이든, 트럼프를 어찌할 것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유세 시절인 지난해 7월 “공화당이 과도하게 국정을 방해하면 필리버스터를 폐지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의 우려대로 공화당 상원이 사사건건 자신의 국정 추진을 방해할 경우 바이든도 협치를 포기하고 필리버스터를 폐기하려는 민주당에 동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친민주당 압력단체들은 필리버스터 폐지에 소극적인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겨냥해 로비 활동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조 맨신 의원을 포함해 여러 명이 필리버스터 존치에 여전히 찬성 의견이라 당장 폐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필리버스터 폐지는 민주당 내분을 불러올 수도 있는 폭발적 이슈다.

바이든 대통령 처지에서 보면 당장 협치의 대상은 정치권, 즉 공화당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대선 당시 트럼프를 찍은 7400만명에 달하는 친트럼프 유권자들을 어떻게 통합, 포용할 수 있을지도 만만치 않은 과제다. 바이든이 손을 내밀어도 이들이 거부하면 ‘국민 통합’ 선언도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 ‘트럼프 흔적 지우기’ 작업이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로이터 통신이 1월6일 의회 난동 사건이 터진 뒤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에게 투표한 친공화 유권자의 70%가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공화당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리면 자신들도 공화당에 등을 돌리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친공화당 유권자 57%는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가 추구하던 길을 그대로 따라줄 것을 바란다고 답했다. 70%는 바이든이 지난 대선에서 합법적으로 당선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의 근본을 짓밟은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추종자들의 의사당 난동 사건에도 불구하고 친공화당 유권자들 대다수는 여전히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는 셈이다. 공화당의 베테랑 선거전략가인 맷 매코위악은 로이터 통신에 “공화당은 트럼프 지지 기반 없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라면서도 “문제는 트럼프 없이 트럼프 지지 기반을 어떻게 지탱할 수 있느냐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불참한 채 자기 소유의 골프장이 있는 플로리다주로 떠나기 앞서 지지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보란 듯이 선언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실제 그는 퇴임을 전후로 ‘애국당’이란 이름의 제3당을 창당하는 방안을 고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퇴임 후에도 현실 정치에 남아 공화당 의원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국민 통합 노력도 그만큼 차질이 불가피하다.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가 2024년 대선 출마에 대비해 만든 정치 후원조직을 통해 7000만 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가지 변수는 트럼프에 대한 탄핵 여부다. 의회 난동을 부추긴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된 트럼프는 향후 상원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상원 공화당 의원 대다수가 그의 탄핵을 반대하므로 실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경우 트럼프는 정치후원금을 무기로 의회 중간선거에 나서는 공화당 후보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혹은 2024년 차기를 노리거나 공화당 대선 주자의 ‘킹메이커’ 역할을 하며 장외 정치를 계속할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트럼프는 오랫동안 눈엣가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일성으로 국민 통합을 내세웠지만, 트럼프가 지금처럼 몽니를 계속 부린다면 공화당 상원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이 내건 통합과 협치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게 확실하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