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1일 트럼프 그룹 최고재무책임자 앨런 와이셀버그(가운데)가 뉴욕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EPA

지난 1월 퇴임 후 한동안 뉴스에서 사라졌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요즘 워싱턴 정가에서 또다시 화제다. 그가 실소유주인 트럼프 그룹과 그 최고재무책임자 앨런 와이셀버그가 탈세 등의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2년째 수사 중인 뉴욕 맨해튼 지검은, 트럼프 그룹은 10개, 와이셀버그는 15개의 탈세 혐의로 7월1일 기소한 뒤 “수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종착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는 이야기다. 검찰은 와이셀버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룹의 자금 흐름은 물론 회계 전반에 정통한 만큼 그의 비리를 캐다 보면 결국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연계된 고리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2024년 대선에서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는 트럼프로선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기소에 따르면, 와이셀버그는 2005년 이후 뉴욕의 고급 아파트, 벤츠 자동차, 두 손녀의 대학 학비 등 명목으로 트럼프 그룹에서 모두 176만 달러 상당의 부가급여를 받았지만 이를 세무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세금 90만 달러를 탈루했다. 13만6000달러를 불법으로 환급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그에게 지급된 수표 대부분의 서명자가 트럼프 그룹의 전 회장, 즉 트럼프 전 대통령임을 공소장에 명시했다. 세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검찰이 공식적인 월급 외에 부가급여까지 조사해 기소하는 예는 드물다.

트럼프 그룹은 성명에서 “맨해튼 지검의 사이러스 밴스 검사장이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며 검찰권을 남용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검찰은 트럼프 그룹과 와이셀버그가 지난 15년 동안 회계 부정을 통해 조직적으로 탈세했다며 기소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와이셀버그(73)는 트럼프 전 대통령(75)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그의 두 아들도 트럼프 그룹 산하 회사에 재직 중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그룹 중역 출신인 존 버크의 말을 인용해 “와이셀버그는 트럼프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주는 트럼프의 사병(soldier) 노릇을 해왔다”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선 유세 참모였던 코리 르완도스키는 “와이셀버그는 트럼프 그룹에서 빠지는 1센트까지도 자금 흐름을 꿰뚫고 있다”라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1923년 창설된 트럼프 그룹은 산하에 건설, 부동산, 연예, 온라인쇼핑, 투자업 등 다방면에 걸쳐 500여 개 사업체를 거느린 대규모 기업집단이다. 직원이 2만2000명 이상이고, 총수익도 2017년 현재 6억5500만 달러에 달한다. 트럼프는 1971년 이후 이 그룹의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일하다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자신의 직책을 두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이번 기소로 트럼프 그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받을 타격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3억3000달러의 채무를 안고 있는 트럼프 그룹은 유죄 확정 시 엄청난 벌금으로 회사가 휘청거릴 수 있다. 기소된 것만으로도 금융권이 트럼프 그룹의 대출 연장은 물론 신규 대출도 꺼릴 수밖에 없어서 향후 사업 확장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업보다는 2024년 대선에서 다시 승리하는 데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측면에서 와이셀버그가 검찰 회유와 압력에 굴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업 비리 가담 여부를 진술할 경우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존 코피 컬럼비아 대학 법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검찰이 트럼프 관련 증언을 끌어내기 위해 와이셀버그를 압박하고 있으리라 진단했다. “검찰이 향후 트럼프를 기소하려면 와이셀버그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에 따라 와이셀버그를 추가로 기소해 겁박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와이셀버그에 대한 강력한 압박의 시작에 불과하다.”

7월3일 플로리다주 새러소타에서 열린 ‘미국을 살리자’ 집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Reuter

트럼트 나서면 공화당 대선주자들 꿈 접을 듯

미국 주요 언론들은 고령인 트럼프가 감옥행이 불가피할 경우 이를 모면하기 위해 검찰에 이른바 ‘플리바기닝(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거나 증언하면 검찰이 형량을 낮춰주는 협상)’ 방식으로 관련 내용을 진술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일단 자신의 심복인 와이셀버그에 대한 기소를 ‘정치적 마녀사냥’으로 규정하고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그는 이 기소에 대해 “국가 차원의 끔찍한 짓으로 국민들이 매우 분개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나를 찍어준 7500만 이상의 시민들이 급진 좌파 검사들의 횡포를 어떻게 생각할까”라고 말했다. 와이셀버그에 대해서는 “아주 훌륭한 분인데 혹독한 대우를 받았다”라며 이번 기소를 ‘정치적 박해’로 규정했다.

대다수 정치 분석가들은 트럼프의 이 같은 반응이 예상됐던 것이라며 별로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기소를 ‘정치적 마녀사냥’이라는 프레임으로 몰아붙이고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을 겨냥해 본격적인 정치 행보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트럼프 탄핵 당시 그의 변호를 맡았던 데이비드 쇼언은 〈워싱턴포스트〉에 “지난 1월 자신의 지지자들이 의회에서 난동을 부렸을 때 트럼프가 주장한 것처럼 앞으로도 자신이 정치적 피해자라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향후 검찰이 트럼프를 기소할 경우 이를 트럼프 재선을 막기 위한 정치적 행위로 간주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폭스뉴스에 출연해 2024년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미 결정을 내렸다”라면서도 구체적 내용은 함구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현재 공화당 내 세력 구조상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대선이 열리는 2024년 11월까지 아직 3년 반이나 남았지만 공화당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은 물론 상하원 의원들까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지난 4월 ABC 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 가운데 44%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당내 최고다.

최근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로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대사,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등이 떠오르고 있다. 특히 디샌티스 주지사는 지난 6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서부지역 보수대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한 즉석 여론조사에서 74.1%를 얻어 71.4%를 득표한 트럼프를 누르고 ‘2024 대선’의 공화당 대선 후보로 지지받은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2024년 대선 도전을 선언하는 순간 디샌티스 주지사를 포함해 현재 거론되는 대선주자들은 후보의 꿈을 접을 것이라고 대다수 공화당 정치 분석가들은 점친다. 실제 퀴니피액 대학이 지난 5월 전국의 공화당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들의 3분의 2가 여전히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퇴임 후에도 공화당의 사실상 지도자는 여전히 트럼프인 셈이다. 다만 정치 분석가들 대부분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트럼프 그룹과 와이셀버그 최고재무책임자의 최종 수사 결과, 나아가 여론 추이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미래가 영향을 받으리라고 본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