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 PHOTO1월6일 트럼프 지지 시위대 수천 명이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있다. 이 중 수백 명이 의사당에 난입했다.

“이것이 ‘폭풍 전 고요(the calm before the storm)’일 수 있다.”

2017년 10월5일,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군 수뇌부와 회동한 뒤 느닷없이 모호한 말을 던졌다. 질문이 이어지자 트럼프는 히죽대며 “알게 될 거야(You’ll find out)”라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 발언은 즉각 논란을 일으켰다. 북한이나 이란에 대한 군사적 조치를 뜻한다는 해석도 있었지만, 〈뉴욕타임스〉처럼 ‘트럼프의 연극적인 과장’이라고 조롱하는 언론도 많았다. 만약 비밀작전이 계획되어 있다면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힌트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런데 트럼프의 ‘폭풍 전 고요’ 발언을 대단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집단이 있었다.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모여 있는 익명 게시판 ‘포챈(4 Chan)’이었다.

이들은 서브 보드(pol)에서 트럼프가 말한 ‘폭풍’의 의미를 정교화하는 작업을 전개했다. 그들에 따르면 ‘폭풍’은 ‘국가의 적’을 한꺼번에 처단하는 조치다. 국가의 적은 미국 민주당이다. 그리고 포챈은 미국 민주당을 ‘아동 성매매를 하는 사탄’으로 규정해버린다.

3주 뒤인 그해(2017년) 10월28일, 포챈 게시판에 처음으로 ‘큐(Q)’라는 알파벳을 아이디로 쓴 사람이 등장했다. ‘큐 클리어런스 패트리엇(Q Clearance Patriot, 미국 정부 일급비밀 접근 보안 등급을 가진 애국자라는 뜻)’이라는 사용자는 게시판에 “힐러리 클린턴이 이틀 뒤인 10월30일 월요일 오전 7시45분에서 오전 8시30분 사이에 체포된다”라며 이른바 첫 번째 ‘계시’를 남겼다.

지난 수년간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음모론 집단이자 음모론 이론을 뜻하는 큐어논(QAnon)은 이렇게 탄생했다. 큐어논은 알파벳 Q(최고 보안등급)와 익명(Anonymous)의 합성어로 ‘익명의 Q’를 의미한다. 큐(Q)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큐 클리어런스 패트리엇’의 첫 계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은 체포되지 않았다. 그러나 큐 클리어런스 패트리엇은 ‘큐’라는 명칭으로 진화하면서, 온라인 기반 역시 ‘포챈’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한 보안구조를 가진 에이트챈(8 Chan)과 에이트쿤(8 Kun)으로 이동시켜 나간다. 이 과정에서 ‘큐’의 정체성 역시 여러 번 바뀌고 다양화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는 큐가 누구인지 몇 명인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이 큐들은 다양한 음모 이론을 만들어내면서 ‘민주주의의 적인 딥스테이트(Deep State, 민주주의 제도와 법률 밖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비밀 권력집단)’를 무너뜨리기 위해 트럼프와 소통 중이라고 주장한다.

큐가 올리는 게시물들은 ‘큐드롭(Q- drop)’이라 불린다. 큐드롭은 모호하고 암호화된 메시지 형태로 게시된다. 예컨대 2018년 9월에 나온 한 큐드롭을 보자.

“[LL] talking = TRUTH revel HUSSEUN instructions re:HRC EMAIL CASE? - Q”

큐어논 추종자들에 따르면, 여기서 ‘LL’은 오바마 정부의 법무장관 로레타 린치, ‘HUSSEUN’은 오바마, HRC는 힐러리 클린턴을 뜻한다. 대충 “로레타 린치가 말하기를, 진실은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사건에 대한 오바마의 지침으로 드러난다”로 해석된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이처럼 수수께끼 같은 게시물을 트럼프의 연설·트윗·뉴스 등과 연관시켜 분석하면서 어떻게든 다음과 같은 내러티브를 이끌어낸다. ‘트럼프가 악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다!’

2020년 말까지 큐드롭 약 5000개가 나왔다. 추종자들은 ‘○○일자 큐드롭 해설’ 혹은 ‘○○○번 큐드롭 해설’ 따위의 형식으로 큐드롭을 해석하며 트위터·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로 세를 확장해왔다. 큐드롭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 음모론을 더 큰 플랫폼으로 밀어붙이고 더 많은 큐어논 추종자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성공의 열쇠였다.

ⓒEPA1월20일 바이든 부부가 백악관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바이든 당선 이후 큐어논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비밀 권력집단’에 맞서 세계를 구할 트럼프

큐어논은 고전적인 음모론인 ‘딥스테이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비밀 권력집단’인 딥스테이트에 맞서 세계를 구할 메시아로 트럼프를 설정했다. 이들은 민주당 유력 인사들과 일부 할리우드 스타들이 딥스테이트의 하수인이며, 살아 있는 어린아이로부터 이른바 ‘아드레노크롬(회춘 성분)’을 수혈받기 위해 인신매매와 아동 성매매를 범하는 사탄 숭배자라고 믿는다.

‘아드레노크롬 음모론’은 1930년대부터 일어난 아동 납치·착취 공포를 계승하며 코로나19 기간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전역을 휩쓴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큐어논 추종자들은 ‘아이 생명도 소중하다(Child Lives Matter)’ 시위로 맞받아쳤다. 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피곤해 보이는 유명인들을 골라내 ‘아동으로부터 아드레노크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드레노크롬 음모론은 힐러리 클린턴이 워싱턴 D.C.의 한 피자가게 지하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다는 이른바 ‘피자게이트 음모론’에 바탕을 둔다. 큐어논은 소아성애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오프라 윈프리, 톰 행크스, 프란치스코 교황, 달라이 라마 등은 모두 아드레노크롬 소아성애자다. 큐어논이 소아성애에 초점을 맞춘 이유에 대해 음모론 전문가들은 누군가의 명성을 증거 없이 손상하기에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큐어논이 익명 게시판을 넘어 미국 정치권과 시민들의 일상에 침투한 ‘주류 담론’으로 부상했다. 트럼프가 크게 기여했다.

첫 번째 큐가 나온 지 한 달여 뒤인 2017년 11월25일, 트럼프는 @MAGAPILL 계정을 리트윗하며 마가필닷컴(Magapill.com)을 공유한다. 큐어논과 소아성애 관련 내용들이 넘치는 사이트다. 트럼프의 수백만 팔로어들이 마가필닷컴에 접속했다. 트럼프는 이 사이트를 공유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와우! 가짜뉴스(CNN)가 이걸 보도하기 바랍니다.” 음지의 인물이었던 큐는 트럼프의 이 리트윗 덕분에 세계무대로 데뷔했다. 트럼프와 큐어논의 교감은 이때부터 본격화됐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31회에 걸쳐 큐어논을 홍보하며 심지어 이들을 ‘애국자’라 불렀다.

2020년 들어 큐어논은 코로나19,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대통령선거 등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하며 정치 개입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3월, 트럼프는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를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큐는 말라리아 예방 약물이 코로나19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암시하며 “민주당원이 그것을 숨기고 있다면?”이라는 큐드롭을 만든다. 큐는 민주당 주지사가 코로나19 환자를 양로원으로 강제 투입해 유행병을 확산시켰다는 음모론도 생산했다. 2020년 1월에서 4월까지, 트럼프의 코로나19 관련 가짜뉴스와 결합된 큐드롭이 265개 나왔다. 이들은 딥스테이트가 백신을 맞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대선을 앞둔 2020년 5월 이후의 큐드롭은 ‘민주당의 유권자 사기’라는 음모론을 유포했다. 조 바이든 당시 후보가 트럼프의 상대로 떠오르자 ‘바이든은 딥스테이트와 안티파(Antifa, 무정부주의 좌파)’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2020년 8월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큐어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음모론은 거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나를 아주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둔 2020년 10월, ‘큐’와 큐어논 추종자들은 더욱 바빠졌다. 그해 10월 두 번째 큐드롭의 주제는 “이 나라의 통제권을 되찾을 준비가 되었는가?”였다. ‘딥스테이트와의 큰 전쟁을 각오하자’는 비장한 메시지를 담았다.

지난해 9월, 공화당원의 무려 56%가 큐어논을 믿는 것으로 조사된 가운데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이 큐어논에 가담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공화당 하원의원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큐어논을 홍보하는 30분 길이의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려 민주당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았다. 그 밖에도 조시 배넷(애리조나), 조이슨 벤틀리(네바다) 등 공화당 정치인 24명이 #WeAreQ 등 큐어논 해시태그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지난해 11월 대선 직후 소셜미디어들이 큐어논 계정을 단속하면서 큐드롭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조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 나온 큐드롭은 2020년 12월8일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큐드롭이 멈추었다고 해서 큐어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큐’의 즉각적 메시지가 없더라도 온라인에서 ‘해시태그’ 깃발 아래 결집하고 세력을 확산한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Qampm. #Q. #Qpatriot, #TheGreatAwakening 등 2019년 트윗에서만 총 2223만2285개, 하루 평균 약 6만910개에 달하는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같은 해 인기 태그인 #MeToo (523만1928트윗)보다 4배가량 앞서는 수치다.

한국에도 큰 영향을 준 큐어논 음모론 중 대표적인 것은 노스캐롤라이나 연방검사 출신으로 큐어논 신봉자인 시드니 파월의 ‘크라켄 작전(Kraken project)’일 터이다. 크라켄은 바다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 적들을 단숨에 집어삼키는 거대한 바다 괴물로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등장한다. 파월은 지난해 11월의 미국 대선을 ‘딥스테이트와 중국이 부정선거로 미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이 음모를 드러내 ‘적’들을 발본색원하는 계책을 ‘크라켄 작전’이라고 부른 것이다. 지난 1월6일, ‘크라켄을 풀어라(Release the Kraken)’라는 메시지가 SNS 등에 등장했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이 메시지에 따라 미국 의회로 쳐들어갔다. 한국에도 시드니 파월을 맹신하는 보수 유튜버들이 있다.

ⓒAFP PHOTO미국 국회의사당 주변에 배치된 주방위군.

‘위대한 각성’을 설파하며 재림 꿈꾼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 직후, AR-15로 무장한 피자게이트 신봉자가 ‘지하실에 있는 소아성애자’를 죽이겠다며 워싱턴 D.C.의 피자가게를 공격한 바 있다. 불행히도(?) 이 피자가게엔 지하실이 없었다. 2019년에는 한 평범한 청년이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피아 부두목 프랑크 칼리를 그의 자택 앞에서 총기로 살해했다. 이 청년은 큐어논 열혈 추종자로 칼리를 딥스테이트의 핵심 구성원이라 믿었다. 그는 트럼프를 위해 칼리를 죽였다고 고백했다. 이런 큐어논 추종자의 폭력 행사가 절정을 이룬 사건이 바로 지난 1월6일의 미국 의회 침입 난동 사태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1월20일 큐어논 추종자들의 강력한 믿음 하나가 깨졌다. 그들에게 1월20일은 ‘폭풍’, 즉 ‘트럼프가 모든 적을 체포하여 관타나모로 보낸다’고 계시된 날이었다. 폭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추종자들 중 일부는 크게 실망했지만 다른 이들은 꿋꿋하게 버텼다. 텔레그램 메신저에 “계획을 신뢰하라(Trust the plan)”라고 공유하기도 했다. 그들은 트럼프가 곧 다시 취임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점점 더 기괴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그중 어떤 이들은 틱톡 소셜미디어에 ‘#march4th’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었다. ‘트럼프가 2021년 3월4일에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는 내용이었다. 건국 이후 한동안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은 3월4일에 거행되어왔다. 1933년 수정헌법 제20조가 비준된 이후에는 대통령 취임일이 1월20일로 변경됐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어느 시점부터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기업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대통령은 진정한 대통령이 아니’라고 믿는다. 또한 트럼프가 1869년 3월4일에 취임한 제18대 율리시스 그랜트를 이은 ‘19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3월4일, 워싱턴 D.C. 미국 의회 주변에 M4 소총으로 무장한 방위군이 배치된 이유다. 그러나 이날도 큐어논이 염원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3월4일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자 트럼프 취임일을 3월17일로 슬그머니 바꿨다.

큐어논 추종자들은 바이든 당선 이후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이성적인 사람들은 떠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 극단적으로 변한다. ‘트럼프 이탈증후군(Trump Withdrawal Syndrome)’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탈자들은 한때 가장 격렬한 큐어논 서식처 중 하나였던 ‘레딧(Reddit)’에서 치유의 소통을 시도 중이다. 레딧에는 여러 개의 큐어논 치유 스레드가 있다. 이 중 “큐어논 음모 이론에 휩싸인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곳에서 치유의 방법을 찾으십시오”라고 슬로건을 내건 ‘r/QAnonCasualties’에는 회원 15만명이 가입되어 있다. 큐어논 추종 10대들의 자살 문제, 큐어논 우울증 등을 호소하는 게시글로 가득하다.

큐어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남아 있는 자들은 말을 아끼며 ‘신념의 강자’로 큐어논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21~22일, 미국 18세 이상 성인 1115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미국 공영방송 NPR과 리서치 업체 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큐어논이 부활할 기름진 토양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 미국인 중 40%는 여전히 중국의 한 실험실에서 코로나19가 생성된 것이라고 믿는다. 39%는 트럼프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딥스테이트가 실존한다는 데 동의한다.

큐어논이 사라지기 어려운 이유는 복음주의 개혁운동에서 영감을 받았고 개별적인 음모론을 모두 연결해서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큐어논은 ‘위대한 각성(The Great Awakening)’을 설파하며 재림을 꿈꾼다. 그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기자명 양수연 (해외 언론인·<뉴스엠>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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