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8일 중국 단둥에 정차해 있는 화물열차.ⓒKyodo News

시작은 창대했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4월15일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정점으로 동북아 정세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 예정이었다.

4월 중순의 어느 날 북한에 지원할 식량과 생필품을 가득 실은 평양행 특급열차가 중국 랴오닝성 단둥역을 출발한다. 이것과 때를 맞춰 3월 하순부터 북한 함경북도 신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일련의 ‘불온한 움직임’의 실체가 드러난다. 3000t급 잠수함 건조가 한창인 신포조선소에서는 3월24일부터 4월 초에 걸쳐 잠수함 진수대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필요한 드라이독과 바지선이 선박 건조대를 중심으로 집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단둥발 평양행 특급열차가 당초 계획대로 식량과 생필품을 실어 날랐다면 올해의 태양절은 북측의 무력시위로 동북아 신냉전의 신호탄이 쏘아 올려진 날로 역사에 기록됐을 것이다.

이런 거창한 의미 부여가 가능할 만큼 중국이 준비한 원조 물자의 규모도 컸고 그에 화답할 북한의 무력시위 규모도 범상치 않았다. 중국이 무엇을 준비했는지부터 알아보자.

3월24일자 선양(심양)발 일본 〈아사히신문〉 기사에 관련 정보가 집약돼 있다. 복수의 북·중 무역 관계자를 인용한 이 신문은 ‘식량 부족 상황이 이어지는 북한에 보낼 원조물자를 실은 기차가 이르면 4월 중순부터 단둥에서 신의주를 거쳐 평양으로 직접 운송을 시작할 예정이다’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발발 초기인 지난해 1월부터 폐쇄되었던 북·중 국경이 원조물자를 가득 실은 중국발 평양행 특급열차 운행을 계기로 문을 열게 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중국이 준비했다는 원조물자의 규모가 엄청났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중국이 북한에 보낼 쌀·옥수수·참기름·밀가루 등 원조물자가 지린성(길림성)에서 단둥으로 운송돼 이들 원조물자와 농업용 비닐 등을 실은 1000개 정도의 컨테이너가 대기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뿐 아니다. ‘다롄시(대련)에도 중국 각지에서 운송된 물자를 적재한 수천 개의 컨테이너가 몰려 있다’라고 썼다. 북·중 간에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둔 여러 개의 통상구가 있다. 그런데도 단둥으로 원조물자를 집결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신문은 ‘북한 측이 엄격한 방역 입장을 고수해 당분간의 왕래는 단둥에서 신의주를 거쳐 평양으로 직접 들어가는 루트로 한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까?

이 보도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북·중 간에 이 같은 협의가 시작된 시점에 대해서다. ‘중국의 코로나 감염이 진정된 2월부터 북·중 간 왕래 및 무역 재개 협의가 본격화되어 무역 관계자들에게 왕래 재개를 준비하라는 통지가 갔다’는 것이다. 2월이라는 시기가 중요한 것은 북한에서 대중 관계를 담당할 고위직에 경제 및 무역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먼저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를 계기로 중국통인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이 당 국제부장으로 승격되었다. 북한에서 중국통이 당 국제부장이 된 것은 근래에는 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북측은 미국에 바이든 새 정부가 등장했음에도 ‘오직 북·중 관계만을 보고 가겠다’고 정했던 것으로 읽힌다. 이어서 2월19일 무역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리룡남 내각부총리를 신임 주중 대사로 임명하는 파격이 이루어졌다. 무역 전문가가 주중 대사가 된 것이다. 그보다 1주일 전인 2월12일에는 지난 1월 당대회에서 제2경제위원장에 임명됐던 오수용이 당 경제부장까지 꿰찼다. 오수용은 2019년 12월, 당 경제부장에서 해임된 뒤 1년간 중국 측과 막후에서 북한의 군사 활동 관련 경제지원 문제를 조율해온 인물로 주목을 받아왔다. 김성남·리룡남·오수용 등 북·중 경협에 북한의 사활을 건 인물들이 속속 요직에 등장할 즈음 북·중 양측이 4월을 겨냥한 대규모 원조계획에 합의한 것이다.

북·중 경협에 사활을 건 북한은 1월 8차 당대회에서 대중 관계를 담당할 고위직에 경제 및 무역 전문가를 대거 등장시켰다. 위 왼쪽부터 김성남 당 국제부장, 리룡남 주중 대사, 오수용 당 비서 겸 경제부장. ⓒ(왼쪽부터)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 측은 무엇을 대가로 지불할 예정이었을까. 〈시사IN〉은 지난 3월8일자 오수용의 당 경제부장 등장의 의미를 짚은 커버스토리(〈시사IN〉 제703호 ‘오수용 재등장은 무력도발 전조인가’)에서 중국의 경제원조 대가로, 북한은 먼저 함경북도 신포조선소에서 SLBM 발사가 가능한 3000t급 잠수함 진수식을 거행하고, 그다음 일본열도를 넘어 괌 인근을 목표로 SLBM을 발사하며,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중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괌 주변 공해상에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포물선으로 발사할 계획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포물선 발사 시도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북한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과 미국 본토까지 타격 가능한 사거리를 입증하기 위해서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면 새로 등장한 미국 바이든 정부와 북한 간 대화는 최소 6개월 이상, 과거 오바마 정부 경험으로 보자면 임기 내내 실종될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 내에서 ‘바이든 정권 4년은 그냥 넘어간다’는 얘기가 나왔다. 북·미 대립이 미·중 대립으로 옮아붙으면 동북아 신냉전의 서막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북한은 실제로 그렇게 움직였다. 3월21일 발사된 단거리 순항미사일과 3월25일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애피타이저’에 불과했다. 탄도미사일 발사 하루 전인 3월24일 신포조선소에서 선박 진수에 필요한 부유식 드라이독이 잠수함 진수시설 옆으로 옮겨진 게 포착됐다. 또 3월30일에는 크레인을 장착한 바지선이 신포조선소로 들어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4월6일엔 SLBM 발사 시험용 바지선이 2019년 10월부터 정박했던 보안수조에서 나와 제2건조시설 조선대(배를 만들 때 올려놓는 대)의 남쪽 면으로 옮겨졌다.

신포조선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움직임을 주시해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북한 전문 사이트 ‘분단을 넘어(Beyond Parallel)’는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SLBM 시험발사 준비 또는 북한의 첫 탄도미사일잠수함(SSB) 진수를 위한 사전작업일 가능성이 있다. SSB 진수나 SLBM 시험은 바이든 행정부에 난제를 안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2019년 7월23일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하고 있다.ⓒ평양 조선중앙통신

신포조선소에서 SLBM 시험용 바지선의 움직임이 포착된 게 4월6일이다. 이로부터 일주일 뒤면 태양절 축제 기간이다. 드라이독을 이용한 SSB 진수식이든 바지선을 이용한 SLBM 발사든, 태양절을 전후해 ‘대사변’이 일어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사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단둥에서 평양행 특급열차가 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발 특급열차가 싣고 올 원조물자야말로 유엔 대북제재와 지난해의 홍수 피해, 코로나19로 인한 봉쇄조치 등으로 식량난과 생필품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의 생명선이자 북측이 위험을 무릅쓰고 무력시위를 감행할 거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북측 역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과연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까지 원조 기차를 출발시킬지 의심스러워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난 3월22일엔 시진핑 주석의 구두 친서까지 받아뒀다. 3월2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조) 두 나라 인민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줄 용의가 있다’고 약속했다. 이 엄중한 시국에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단둥과 다롄에 쌓아놓은 원조물자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북한에 보내겠다는 것밖에 없다. 단거리 미사일로 ‘맛보기’를 하던 북한이 시진핑의 구두 친서를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다음 날 신포조선소에서 SSB 진수식용 드라이독을 노출시킨 것은 중국의 지원과 북한의 무력시위가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중국발 평양행 특급열차의 이동과 SSB·SLBM의 움직임은 서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동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정된 날짜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평양행 특급열차의 이동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와 연동됐던 북한의 무력시위 역시 수면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왜 시진핑 주석까지 나서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일까?

5월 중순에 이르는 현재까지도 북·중 국경지대는 혼란스럽다. 열차가 이 시기까지도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둘러싸고 ‘북·중 간 불협화음’ 설이 떠돈다. 일부 중국 측 관계자들은 ‘북한이 제멋대로 국경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며 불만을 터트린다. 그 밑에서는 ‘북한이 중국의 요구인 미사일 발사는 하지 않으면서 신문에서만 북·중 우호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광범위한 의제 놓고 솔직하게 대화했다”

문제의 전말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바로 바이든 정부와 중국 간의 고위층 상견례가 이뤄졌던 3월18~19일 알래스카 회담부터 짚어봐야 한다.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 중국의 양제츠 국무위원과 왕이 외교부장 등이 참석한 이 회담과 관련해서는, 첫날 언론인들 앞에서 양측이 거칠게 충돌한 광경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워낙 첫날의 인상이 강했던 탓인지 다음과 같은 미국 측 참석자들의 발언은 깊이 음미되지 못했다.

“광범위한 현안을 놓고 힘들고 직설적인 대화를 나눴으며 미국의 우선순위와 의도를 제시하고 중국 측의 방어적인 대답을 들었다. …홍콩·타이완·티베트·신장 등 갈등 사안에 대해서도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설리반 안보보좌관).”

“이란과 북한 문제를 포함해 광범위한 의제를 놓고 오랫동안 매우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블링컨 국무장관).”

당시 중국 측의 가장 큰 관심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이 주장하는 핵심 이익’을 인정하는가 여부였을 터이다. 이에 대해 블링컨 국무장관은 첫날부터 “타이완·홍콩·신장은 중국의 내정이 아니다”라며 중국 측의 요구를 한마디로 잘라버렸다. 이 또한 알래스카 회담이 충돌로 일관되었다는 인상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4월15일 태양절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평양 개선문 주변에서 춤추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양측의 대화가 그것뿐이었다면 서로 자리를 박차고 돌아섰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하룻밤을 새우며 ‘광범위한 의제를 놓고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면 뭔가 외부에 드러내기 어려운 속마음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그중에서도 특히 ‘이란과 북한 문제를 포함해’라며 두 나라를 특정했다. 그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블링컨은 오바마 정부 시절 이란 핵 협상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사람이다. 이란 핵 협상에는 중국도 참여했다. 즉 이란 핵 문제에서 중국이 미국에 협력했듯이 북한 핵 문제에서도 협력해달라는 얘기를 했을 것이다. 중국이 현재 미국의 ‘지정학적 최대의 적’이지만 기후 및 북한 문제 등에서는 협력하겠다는 게 바이든 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심지어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협력 없이 북한 문제 해결은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중국과 대립하면서 한편으로는 중국이 자신들의 전략자산으로 여기는 북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도록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점이다. 더구나 트럼프처럼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도 과연 중국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언뜻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발상으로 이런 목표를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블링컨과 설리번 팀의 구상이었던 것 같다. 복수의 외교 소식통이 전한 정보를 토대로 앵커리지의 1박2일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중국에 아무 대가 없이 북한 비핵화에 협조하라고 요구하면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발상을 바꾸어 중국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을 협상 조건으로 내걸면 어떻게 될까. 타이완·홍콩·신장·티베트 등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여기는 지역들 가운데 진짜 핵심은 무엇인가?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타이완 문제다.

바이든 정부가 타이완 문제에서 일정한 양보를 조건으로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의 협조를 요구한다면? 그것은 해볼 만한 얘기다. 시진핑 정부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 이래의 사실상 ‘두 개의 중국’ 정책, 즉 타이완 독립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가 두 개의 중국 정책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며 북핵 문제에 대한 협조를 요구하면 중국이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회담 시점에서 바이든 정부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은 바로 북한의 수상한 움직임을 저지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타이완 문제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는 조건으로 중국 측에 북한 비핵화에 협조하라는 것은 충분히 통할 만한 이야기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고 전해진다. 비핵화 협조에는 안보리 제재를 어기고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한다든지 북한의 무력시위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블링컨 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과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당근을 제시하기도 했다. 바로 6자회담을 재구성해 중국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양제츠 국무위원이나 왕이 외교부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뒤의 북·중 간 상황을 보면, 중국이 미국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알래스카 회담 종료 이틀 뒤인 3월21일 순항미사일을, 이로부터 나흘 후(3월25일)엔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했다. 중국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 주석은 3월22일 구두 친서를 통해 대북 지원을 공공연히 약속했다. 3윌24일자 〈아사히신문〉 보도를 통해 ‘4월 중 평양행 특급열차를 통한 대규모 원조 계획’까지 흘렸다. 중국은 잠수함 진수식이든 SLBM 발사든 북한의 무력시위를 공공연하게 조장한 셈이다.

3월18~19일 열린 알래스카 회담. 미국의 블링컨 국무장관·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 중국의 양제츠 국무위원·왕이 외교부장 등이 참석했다. ⓒAP Photo

동북아의 두 화약고, 타이완과 한반도

중국은 미국의 제안을 액면 그대로 받기보다 북한의 무력시위를 통해 자신이 협상 주도권을 쥐기를 원했다고 한다. 북한이 잠수함 진수식이나 SLBM 발사를 단행하면, 당황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그러면 중국이 나서서 북한의 다음 도발을 억제해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 예컨대 4자회담. 미국은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6자회담을 준비 중인 데 비해 중국은 공공연하게 남북한과 미·중의 4자회담을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 러시아와 일본을 빼자는 것이다. 미국 처지에서는 어림없는 얘기다. 미국은 러시아를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지금은 미·러 관계가 좋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러시아를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게 미국의 복안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6자회담이다. 중국으로서는 그냥 말로 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할 수 없으니 협상의 레버리지로 북한의 무력도발이 꼭 필요했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가 불의의 일격을 가했다. 바로 4월16일(현지 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1969년 닉슨·사토 회담 이래 처음으로 타이완을 화두로 삼은 것이다. 내용은 일본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타이완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중국과 타이완) 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권장한다”라는 것으로 순화됐지만, 미국이 준비한 원안은 미국의 타이완 방어 근거인 타이완관계법을 공동성명에 포함하는 것이었다. 1979년 4월10일 제정한 타이완관계법은 “타이완 방어를 위해 미국이 무기를 제공하고 타이완의 안전이 위협받는 경우엔 대항조치를 취한다”라는 내용이다. 미·일 공동성명에 이 내용을 포함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유사시 타이완에 대한 무기 지원 및 중국에 대한 대항조치에 일본을 끌어들이겠다는 뜻이다. 지금은 순화된 내용이 미·일 공동성명에 담겼지만, 이 카드는 중국이 북한에 계속 물자를 지원하고 군사행동을 방조 내지 고무하면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사실 중국은 ‘타이완 통일전쟁’을 상정해 군사력을 키워왔다. 유사시 중국 측 해안선을 따라 배치된 둥펑(東風) 미사일로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공군기지와 미국령 괌의 앤더슨 기지를 집중 포격해 불능화할 경우 미국이 타이완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워게임 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따라서 미국이 타이완관계법을 일본에 적용한다는 것은 타이완에 가까운 일본 남서부 도서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집중 배치해 중국 미사일을 견제하겠다는 군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미국이 타이완 문제를 정색하고 들고나온 것만으로도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말로는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각오한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그만큼 미국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는 사실이 이번에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4월 중순에 단둥역을 출발하려 했던 평양행 특급열차를 불러 세운 것은 바로 미·일 정상회담에서의 타이완 카드였다. 그런데 그 역도 성립한다. 미국이 타이완과 관련해서 중국에 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중국이 북·중 협력을 또다시 들고 나온다는 얘기다. 동북아의 두 화약고인 타이완과 한반도의 운명이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얽혔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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