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24일 베이징 외교부에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 Photo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타이완해협 관련 언급에 대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타이완 문제는 순수한 중국의 내정’이라며 “외부 세력의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타이완 관계를 ‘하나의 중국’으로 표현한 지는 오래됐으나 ‘중국의 내정’이라는 표현은 최근에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관련 자료들에 따르면, 중국 관료나 관변 학자들이 요즘 즐겨 쓰는 이 표현은 서로 다른 층위의 세 지역을 포함한다. 첫째는 신장웨이우얼, 티베트처럼 중국이 실효 지배하는 지역이다. 둘째는 홍콩, 마카오, 인도 국경처럼 타국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곳이다. 셋째는 실효적으로 지배하지는 않으나 중국이 자국의 영토로 주장하는 지역이다. 타이완, 남중국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타이완은 주요 정당 대다수가 독립된 주권국가라고 선언한 바 있는데도 중국이 ‘자국의 영토’라며 ‘중국의 내정’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다.

이런 논리를 남북관계에 적용하면 북한도 한국의 내정이 된다. 대한민국이 북한을 실효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헌법의 관련 조항에 따르면 북한 역시 한국 영토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몇 년간 중국이 북한의 뒷배 노릇을 하며 무력시위를 부추겨 한국의 안보 이익을 침해한 것이야말로 심각한 내정간섭이 아닐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 중국이 방어 본능에 따라 북한의 대남·대미 접근을 방해한 행위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부터 본격화된 북한의 무력시위에는 한반도를 타이완 해협에 대한 제2전선으로 삼고자 하는 중국의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의심할 만하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곧 부메랑을 맞게 된다.

한국 시각 5월22일 새벽 한·미 정상의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기쁜 마음으로 알린다”라고 했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문 대통령이 저런 표현을 썼다는 것은 그만큼 절실했다는 뜻일 터이다. 대통령 당선 이후 미사일 개발의 족쇄를 풀기 위해 두 차례(2017년 11월 사정거리 800㎞에 탄도 중량 무제한, 2020년 7월 민간 우주발사체 고체연료 제한 폐지)나 개정을 이끌어낸 당사자로서 감개무량함도 있었겠지만, 지난해 이래의 불안한 안보 상황에 따른 마음 졸임도 느껴진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안보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의 무력시위 뒤에 중국이 있다는 사실은 정부도 예의 주시해왔다. 한·중 간에 시시때때로 거론되는 시진핑 주석 방한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겉으로는 ‘환영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오려면 오고 말려면 마라’는 식의 냉랭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복잡한 속내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사드 보복이나 문 대통령 방중 당시의 홀대, 김치나 한복까지 넘보는 중국 관변 매체들의 부적절한 행태 외에도 북한을 둘러싼 중국의 ‘사실상의 내정간섭’(중국 외교부 대변인 표현)이 도를 넘었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이 타이완해협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 결정은 사실 한국 정부가 주도한 것은 아니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 등 한국 정부 측은 이를 간절히 희망해왔고 ‘언젠가 성취될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러나 ‘그날’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사일 지침 종료가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다뤄진다는 사실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회담 전날이었다. 한·미 당국이 사전에 논의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미국 측에서 막판에 내놨을 수도 있다. 정상회담 문안의 관련 부분도 막판에 추가됐다고 한다.

 

5월22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AP Photo

인도·태평양 지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는 중국이 대함미사일인 둥펑(DF)-21D를 실전 배치한 2010년경부터 미국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동안은 구소련과 맺은 INF(중거리핵전력) 조약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했다. 미국 측은 해공군력 강화로 중국에 맞서는 공해전(AirSea Battle) 전략을 추진하려 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판정이 내려진 상태다. 따라서 트럼프 정권기인 2019년 8월2일 INF 조약을 폐기한 것은 러시아의 조약 위반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사실은 중국의 막강한 미사일 전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바이든 정부 역시 중거리 미사일의 생산과 배치에는 이견이 없다. 오히려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3월5일자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보도는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미·일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을 연거푸 가진 이유를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주일 미군기지가 있는 오키나와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제1열도선에 대중국 미사일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이를 위해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2022 회계연도(2021.10~2022.9)부터 6년간 273억 달러(약 30조9000억원)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이달 초 의회에 예산요청서를 제출했다”. 요청서에는 “대중 억제를 위한 군사능력 확충에 자원을 집중할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선제공격은 타격이 크고 실패한다는 판단이 들도록 하겠다”라는 목표가 담겨 있다고 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현재 둥펑-21D와 둥펑-26 등 미국 함대 공격용 미사일을 1250기 정도 지상에 배치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를 통해 제1열도선(오키나와∼타이완∼남중국해)에 대한 미군의 접근을 저지하고 제2열도선(사이판∼괌∼인도네시아)에서도 미국을 압박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미사일 전력에 맞서 미국 역시 ‘제1열도선을 따라 정밀공격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는 곧 “재래식 미사일(미국은 현재까지 핵탄두 탑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로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 보도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군이 대중 미사일망을 구축하려고 하는 지역으로 ‘오키나와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제1열도선’을 특정한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 후보지로 한국·일본·필리핀 등이 거론됐는데 일단 한국이 빠졌다. ‘오키나와에서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제1열도선’ 지역이라면 일본 쪽에서는 미야코해협(일본 오키나와현의 미야코섬과 오키나와섬 사이의 해협) 일대다. 일본 서남부에서 타이완과 가장 가까운 지역인 것이다. 따라서 미군이 이 지역에 미사일망을 구축하려는 목적은 유사시 타이완 방어를 위한 것이다. 미군의 중거리 미사일망의 주 전선은 1차적으로 타이완해협인 것이다.

미야코해협 일대는 미국이 대중국 미사일망을 구축하려는 지역이다.

이 점을 전제로 놓고 지난 4월16일 미·일 정상회담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4월19일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애초에 일본 측에 제시한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안에는 “타이완에 대한 무기 제공을 내용으로 하는 미국의 타이완 관계법”이 거론되어 있었다. 즉 미국 측이 타이완 문제에 대한 역사적 경위를 처음부터 설명하며 타이완 관계법을 언급하는 장문의 공동성명안을 일본에 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타이완과 단교 후 타이완의 현상 유지를 위해 1979년 4월10일 미국 의회에서 통과시킨 ‘타이완 관계법’은 타이완에 대한 무기 제공뿐 아니라 유사시 타이완 안전을 위한 미국의 대응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일 공동성명에 타이완 관계법을 담는다는 것은, 미국이 타이완에 대한 무기 제공뿐 아니라 타이완 방어를 위한 군사행동에도 일본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망을 오키나와와 미야코해협 일대에 구축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자극을 우려한 일본의 요청으로 문안을 온건하게 수정하긴 했지만 중국을 미·일 양국이 공동 대응할 인도·태평양의 위협 세력으로 사실상 규정했고 미·일이 공동 대응할 범주에 ‘타이완해협 사태’가 들어간다는 점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한 것은 변함이 없다.

미국의 대중국 미사일망 구축 계획에서 보자면 한·미 정상회담은 그 후속작업에 해당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주 전선은 타이완해협이고 미국과 일본이 담당한다. 범위를 넓히자면 남중국해·동중국해를 포함하는 동남아가 미·일과 중국 간 군사 대치의 주 전선이 된다.

그렇다면 남북한이 포함된 동북아는 무엇인가? 바로 제2전선이다. 즉 중국이 주 전선에 군사력 집중을 못하도록 뒷목을 잡는 역할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이미 중국이 북한을 통해 ‘중국식의 제2전선화’를 진행해왔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국이 북한 군부를 끌어들여 진행한 일련의 무력시위를 중국이 그린 큰 그림에서 보자면 그렇다. 미군이 타이완해협이나 남중국해에 군사력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중국이 과거에도 즐겨 사용해온 수법이다.

북한이 남한을 만나야 하는 이유

이렇게 제2전선이 만들어져 있었으므로 미국 처지에서는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중국이 북한 뒤에서 벌이는 ‘불장난(한·미 정상회담에서 타이완해협을 거론한 것에 대한 5월24일자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발언)’을 뻔히 보면서도 발이 묶여 속을 끓이던 한국의 족쇄를 풀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가 바로 그것이다.

미야코해협 일대는 미국이 대중국 미사일망을 구축하려는 지역이다. ⓒEPA

한국은 1979년부터 시작된 한·미 미사일 지침의 사거리와 탄두 중량 제한 속에서도 이미 미사일 기술에서 세계 4위라 일컬을 정도의 군사 강국이다. 순항미사일의 정밀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800㎞의 사거리 제한 속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벙커버스터용 현무-4 미사일을 개발한 저력을 갖고 있다. 사정거리 10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한국이 갖게 되면 주변국 누구라도 함부로 하기 어렵게 된다. 굳이 미국의 미사일을 가져다 놓느라 시끄럽게 할 필요도 없이 중국이 조성한 판에 편승해 호랑이를 우리에서 풀어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에 가벼운 한 수(a light attack)를 뒀다”라는 말이 돈다고 한다.

미사일 지침 해제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더 이상 소모적인 쿼드 가입 논쟁을 벌일 필요가 없게 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보수 매체들은 한국이 미·일 중심의 쿼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쿼드를 중심으로 공유될 백신이나 신흥 첨단기술 동맹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쿼드에는 군사안보적 측면과 경제기술적 측면이 존재한다.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쿼드의 주 전선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동남아 지역이다. 한국이 담당할 지역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주장한 대로 신남방정책에 따른 한국산 무기 판매로 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의 전력 증강을 도움으로써 충분히 동맹국 역할을 해낼 수 있다. 이번 한·미 공동성명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을 연계하기 위해 협력한다’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군사안보적으로는 한국이 중장거리 미사일을 자체 개발해 동북아에서 억지력을 끌어올림으로써 중국을 묶어두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쿼드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쿼드 가입 못지않은 모양새로 백신과 반도체 배터리 관련 국제협력의 틀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이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미 대화, 남북 대화와 관련한 문제가 있다. 그동안 북한의 행보에는 중국의 영향이 컸다. 북한이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자력갱생 노선을 선언하고 그 이후에도 남북관계, 북·미 관계 없이 4년을 버틸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미국에 맞서 강하게 버텨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일 정상회담에서 타이완 문제라는 변수가 등장하자 중국이 움찔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미국은 앞으로도 타이완 문제와 관련한 많은 선택지를 갖고 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질 것이다. 즉 중국의 대북 지원이나 뒷배 노릇에 제동이 걸릴 공산이 커졌다. 중국이 있으니 문을 닫아걸어도 버틸 수 있다는 북한의 속내는 실현되기 어렵게 되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을 대화로 이끌기 위한 전향적인 메시지가 많이 제시되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5월22일 JTBC 인터뷰에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아무 부대 표현 없이 ‘남북 간의 대화·협력·관여를 지지한다’는 문장이 하나 들어갔는데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이 남쪽을 만나야 할 이유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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