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왼쪽), AP Photo

올해의 한·미 연합 군사훈련(3월8~18일)에는 이름이 없다. 2018년까지만 해도 매년 3~4월에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에는 키리졸브나 독수리, 8월에 열리는 훈련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명칭이 존재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회담(싱가포르에서 열린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 규모가 축소된 2019년의 한·미 연합훈련 역시 ‘동맹’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그런데 올해는 “연합훈련 명칭에 대해 공개하는 것이 현재까지는 제한된다”라는 국방부 대변인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 한·미 양국은 훈련 이름을 붙이는 것마저도 매우 조심스럽게 대응했다. 훈련 규모 역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수준으로 축소했다. 야외 실기동(實機動) 훈련 없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치렀다.

올해 한·미 연합훈련이 이렇게 축소된 규모로 치러진 것은 대체로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초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필두로 정부·여당이 미국 측에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하자고 요구한 것은 맞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미국 측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지난 2월2일 미국 국방부 측은 이인영 장관의 훈련 축소 요구에 대한 반응을 묻는 한국 언론의 질의에 “군사적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은 국방부의 최우선 순위 과제”라며 부정적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드러난 결과는 한국 정부 입장이 대폭 반영된 것처럼 됐다.

어떻게 된 일일까? ‘동맹을 중시하겠다’는 바이든 정부다운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일까? 물론 한국 정부의 의견도 중요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 훈련 축소가 바이든 정부 외교안보팀의 능동적인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다. 워싱턴 정가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최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훈련을 축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이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그 배경으로 중순 바이든 측이 북측에 여러 루트로 회동을 제의한 사실을 들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측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최근 외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3월13일자(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바이든 측이 뉴욕(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부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들이 지난 2월 중순에 시작됐다. 현재까지 평양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받지 못했다”라고 전한 바 있다. 따라서 미국 측의 한·미 연합훈련 축소 결정은 2월 중순 북측에 접촉을 시도하기 전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의 표시 차원에서 이뤄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북한 김정은 당시 국무위원장(지난 1월 이후부터는 조선노동당 총비서)은 “남조선 당국은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시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은 ‘꽃 피는 봄날’로 돌아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한·미 ‘합동 군사연습’ 중지를 콕 집어 요구한 것이다.

김정은 당시 국무위원장의 이 같은 요구에 바이든 행정부는 연합훈련을 중지하지는 않았으나 큰 양보를 했다. 연합훈련의 규모를 축소했을 뿐 아니라 그 명칭도 밝히지 않았을 정도다. 이에 그치지 않고 ‘만나자’고 북측에 먼저 손을 내밀기까지 한 것이다.

ⓒ연합뉴스3월8~18일 실시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규모가 축소됐다. 사진은 훈련이 시작된 3월8일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 전경.

물론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일각에서는 ‘명분 쌓기용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또한 북측이 최근 여러 루트로 바이든 행정부 초기를 겨냥한 무력행동 가능성을 시사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한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은 대통령은 물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까지 북한 체제와 그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총비서에게 부정적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왔다. 지난해 대선 기간 두 사람 모두 김 총비서에 대해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트럼프가 북한의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는 식의 발언으로, 바이든이 당선되면 적어도 미국이 북한에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현재 미국 행정부가 진행 중인 ‘대북정책 재검토’ 역시 최소한 오는 6월까지는 갈 것으로 보였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격적으로 대북 접근을 시도하고 한·미 연합훈련을 능동적으로 축소했다면, 이는 의외의 상황 전개다. 놀랍기까지 하다. 이 같은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3월15~17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3월17~18일에는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미·중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 그동안 워싱턴 내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앞서 언급한 외교 소식통은 지난 2월 초까지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인식이나 정책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바이든이나 블링컨이나 오바마 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 정책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기 경험의 틀 속에서 북한을 바라보리라고 내다보았다. 따라서 ‘싱가포르 회담을 새로운 북·미 관계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이 미국 행정부에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약 한 달 반 만에 이뤄진 최근의 통화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바이든 정부 내에서 대북정책 재검토가 진행됨에 따라 워싱턴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관점에서 가장 크게 바뀐 것은 ‘트럼프 정부가 북·미 관계에 남긴 유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였다고 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의 트럼프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부정 일변도였다면 최근엔 ‘부정적인 것은 지양하되 긍정적인 것은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즉,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 다리(bridge)를 놓은 점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다리가 아직 서로 왕래할 만큼 완성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는 다리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남긴 흔적을 무조건 지우기보다는 그것을 변형해 발전시키는 방향이다.

물론 바이든 외교안보팀은 여전히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강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초점이 바뀌었다. ‘동맹을 무시한 미국 일방주의’ ‘목표와 매뉴얼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춘 제스처로 대처한 듯한 대북관계’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는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평가가 달라진다. 적어도 트럼프 정부의 대북한 정책이나 대중국 정책의 큰 틀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사진공동취재단3월17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만난 정의용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트럼프가 놓은 다리 완성한다

과거 미국의 역대 정부를 보면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도 모두 바뀌곤 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바이든 후보가 구사한 발언들을 보면, 자신이 집권하면 트럼프 시절의 북·미 관계를 폐기한 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당시에도 바이든 측의 언행을 유심히 살펴보면, 트럼프 대북정책을 180°도 바꾸지는 않을 듯한 조짐이 있었다. 미국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3일 CNN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당선자 측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 오간 친서에 대한 접근권이 확보되는 대로 검토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당시 CNN과 인터뷰한 바이든 캠프의 소식통은 “친서를 통해 김정은의 심리를 좀 더 심도 있게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어떻게 접근했는지는 알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바이든 당선자 역시 “트럼프 시기에 일어났던 북한·일본·한국·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방위계획과 군사훈련 태세 등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이 이해하려 한다. 대북정책은 그 이후 구체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이 기사는 지적했다.

지난 1월의 경우, 바이든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대북정책을 검토 중’이라는 신중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선입견에만 의존하기보다 뭔가 새로운 내용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1월19일 블링컨 장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을 향한 전반적인 접근법과 정책을 다시 살펴봐야 하고 그런 의향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시 살펴보겠다’는 블링컨의 언급은 1월22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에서 ‘새로운 전략’이라는 용어로 구체화됐다. 그는 새로운 전략 수립을 위해 “한국과 일본, 다른 동맹들과 긴밀한 협의, 그리고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한 철저한 정책 검토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초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 훈련 축소를 결정한 데 이어 북측에 회동을 제안한 움직임은 이런 검토 과정이 대체로 마무리된 데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의 외교 소식통은 “북·미 간 오간 친서 등을 토대로 트럼프 시기 북·미 관계 현황을 파악한 데 이어 대북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단계별 프로세스를 밟아가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첫 번째 단계가 대화를 통한 의중 파악이다. 북한과 접촉해서 비핵화의 대가로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북·미 관계에 대한 북측의 의중은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북측은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와 ‘대북 제재 해제’를 미국에 요구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구체적 요구와 입장, 조건 등을 직접 듣고 싶을 만하다.

ⓒ사진공동취재단3월17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오른쪽)과 서욱 국방부 장관이 국방부에서 의장대를 사열했다.

동맹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는 동맹국에 대해 협의보다는 ‘나를 따르라’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예전부터 동맹국의 의견을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 의견을 존중해왔다. 클린턴 정부 시절 ‘페리 프로세스’가 그랬고, 오바마 정부 시절에는 비록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지만 이명박 정부의 대북 방침을 존중했다.

3월15~18일 일본을 거쳐 한국과 국무·국방장관 회담을 하는 것에 대해 바이든 정부가 부여하는 의미 또한 비슷하다. 즉,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에서 1월 말까지 김정은 친서 등의 자료를 통해 북·미 관계 현황을 파악하고 2월 중순엔 북한과 접촉해 북의 의중을 알아내려고 했다. 그다음 단계가 바로 한국과 일본 방문을 통해 동맹국들의 의견까지 취합해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구체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북한의 태도가 변수다. 북한은 블링컨 국무장관과 오스틴 국방장관의 한국·일본 순방 기간에 두 차례 반응을 보였다. 3월15일자 김여정 부부장 담화와 3월17일자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다. 김여정 담화는 주로 한·미 훈련과 남북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북한이 요구한 것은 한·미 “합동 군사연습 자체의 중단”이지 “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라며 한국 정부를 몰아붙였다. 이와 함께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 대남 대화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를 정리하는 문제”와 “우리를 적으로 대하는 남조선 당국과는 앞으로 그 어떤 협력이나 교류도 필요 없으므로 금강산국제관광국을 비롯한 관련 기구들도 없애버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조선 당국이) 더더욱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북남 군사분야 합의서도 시원스럽게 파기해버리는 특단의 대책까지 예견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군사합의서 파기라면 모를까 조평통과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대남기구를 정리하는 것은 이미 지난 1월의 8차 당대회에서 남북관계를 앞으로 별개의 국가관계로 가기로 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는 북측의 괜한 생트집이라 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에 대해서는 3월17일자 최선희 담화에서 다뤘다. 최 부상은 이 담화에서 미국이 최근 여러 경로로 접촉을 요청해왔으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미국의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조야에서 나온 대북관계 발언들을 열거하며 “한사코 우리를 헐뜯고 걸고드는 버릇 또한 고치지 못한 것 같다”라고 힐난했다. 블링컨 장관이 방한하는 3월17일 최선희 담화가 나왔기 때문에 당일 그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 내놓은 북한 인권 관련 발언은 다뤄지지 않았다. 블링컨은 “북한의 권위주의 정권이 자국민에 대해 계속해서 체계적이며 광범위한 학대를 자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 역시 최선희가 언젠가 미국에 욕설을 퍼부을 때 써먹기 위해 축적하는 ‘언행록’에 올라갔을 것이다.

최선희 부상은 담화에서 “조·미 접촉을 시간벌이용 여론몰이용으로 써먹는 얄팍한 눅거리 수는 스스로 접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계속 추구하는 속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것인지”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AP Photo2018년 4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왕이 외교부장(오른쪽)과 양제츠 정치국원.

미사일 쏘면 북·미 외교는 실종

그렇지 않아도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한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열심히 추적 중이다. 3월17일자 미국 CNN 방송은 ‘익명을 요구한 미국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무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고 미국 정보기관들이 평가했다”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북한이 무엇을 시험하느냐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CNN과 인터뷰한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선보인 ‘괴물’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시험한다면 매우 도발적이기 때문에 외교가 3~6개월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밖에 북한의 탄도미사일 사거리와 실제 이동거리가 일본 영토를 넘어가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응 수위가 정해질 것이라고 한다. 〈시사IN〉 제703호(‘오수용 재등장은 무력도발 전조인가’)에서 지적한 시나리오대로 북한이 3000t급 잠수함 진수식→일본 열도를 넘어가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발사→괌 주변 공해상을 목표로 한 ICBM 포물선 발사를 연거푸 감행하면 바이든 정부 첫해의 북미 외교는 ‘중단’을 넘어 아예 ‘실종’될지도 모른다.

최근 북한 내 분위기는 한껏 기세가 올라 있다고 한다. 미국이 굴복하면 모르겠지만, 다르게 반응하면 미국이 어떻게 나오든 자기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믿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다.

따라서 북한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3월18~19일 미국 알래스카의 주도 앵커리지에서 열리는 미·중 고위급회담 결과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이 회담에는 미국 측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중국 측에서는 양제츠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참석한다. 3월17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 회담에서 중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이 중국에 가한 각종 제재와 규제를 철회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최대 반도체업체 SMIC(중신궈지) 등에 대한 판매 규제, 중국공산당 당원과 유학생, 관영매체 기자들에 대한 비자 제한,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 문제 등이 중국의 요구사항에 포함돼 있다. 반면 미국은 이번 회담을 홍콩 내 자유 억압,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해군 팽창, 미국 동맹들에 대한 경제적 압박, 지적재산권 절취 및 사이버 안보 공격 등 중국의 행위에 대한 불만 제기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양국 간에 정면충돌이 예상된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지난해 3월16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한반도로 밀려오게 되어 있다. 북한이 중국을 뒷배로 미국에 큰소리치듯 중국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믿고 대미 요구 수위를 한껏 끌어올린 형국이다. 북한의 도발은 중국에게 대미 협상력을 제고시키는 수단이자, 한반도를 분쟁지대화함으로써 홍콩이나 타이완, 신장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시선을 돌릴 수 있고, 북한 스스로 북·미 관계에서 자해행위를 하게 만들어 중국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다.

북한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중국으로부터 반짝 지원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대가는 가늠하기 힘들다. 2009년 오바마 정부 역시 대외적인 발언은 몰라도, 북한에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북한이 보인 모습은 지금과 똑같았다.  클링너 연구원은 앞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에 새 정부가 등장하면 ‘전략적 도발’을 감행하곤 하는 이유에 대해 “한·미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개처럼 훈련시키자’는 게 북한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결과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의 양보는커녕 북한만 쫄쫄 굶게 된 전력이 있다. 지금 정세는 당시 상황의 데자뷔와 다르지 않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그때 북한 정권이 범한 오류를 이야기해줄 사람들이 김정은 총비서 주변엔 남아 있지 않단 말인가.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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