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3일 판문점 내 연락사무소에서 남한 연락관이 남북 직통전화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한과 북한이 413일간 끊어졌던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선언하기 하루 전인 7월26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중국 톈진에서 온갖 수모를 겪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최고위 인사의 방중이었지만 중국의 문턱을 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의전부터 중국 측의 홀대를 겪어야 했다. 미국 측이 웬디 셔먼 부장관의 파트너로 원했던 인물은 중국 외교부 서열 2위인 러위청 수석 부부장이었다. 그러나 중국은 그보다 급이 한참 낮은 서열 5위 셰펑 부부장을 파트너로 내세웠다. 중국이 셰펑 부부장을 고집한 것은 그가 미국 담당이라는 이유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7월18일부터 일주일 예정으로 일본·한국·몽골·중국을 방문하고자 했던 셔먼의 동아시아 방문 일정은 이처럼 출발 단계부터 삐거덕거렸다. 중국 측이 회담 상대는 셰펑으로 하되 왕이 외교부장이 만나주겠다(회견)는 수정 제의를 했고 미국이 이를 ‘왕이 외교부장 등을 만나기로 했다’는 식으로 두리뭉실하게 발표함으로써 첫 순방지인 일본에서 겨우 중국 방문 일정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중국 측이 회담 장소로 잡아놓은 곳은 베이징이 아니라 톈진이었다. 지난 3월18일 미·중 고위급 회담 당시 미국 측이 알래스카를 회담 장소로 잡았던 데 대한 되갚음이었다. 조선시대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 고위급 사신은 베이징으로 가고 급이 낮은 사신은 톈진에 머물게 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미국 국무부 2인자가 졸지에 급 낮은 사신 취급을 당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7월26일 저녁 기자들에게 배포한 회담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셔먼 부장관의 발언은 없고 셰펑 부부장의 일방적인 훈계조 발언만 공개됐다. 셰펑 부부장은 미·중 관계가 악화된 원인을 “미국 일부 인사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한 뒤 “중국의 발전이 저지되면 미국 내외의 문제가 해결되고 패권을 다시 장악할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악마화해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불만인 셈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2018년 9월20일 삼지연초대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함께 산책하고 있다.

셰펑 부부장은 기자들을 만나 “미국이 기후변화와 이란 핵문제, 한반도 핵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과 지지를 요청했다. 미국은 중국에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협조를 요청하고 자신들이 우세한 분야에선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 중단, 봉쇄, 제재, 충돌도 불사한다”라고 말했다. “못된 짓만 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셰펑 부부장의 발언에서 ‘미국이 기후변화와 이란 핵문제, 한반도 핵문제에서 중국의 협력과 지지를 요청했다’는 대목은 중요하다. 셔먼 부장관이 외교관으로서 수모를 견디며 중국을 방문한 이유다.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자료에는 “홍콩과 신장 지역, 억류된 미국인과 캐나다인 문제, 기후위기 등과 더불어 이란·아프간·미얀마 등 여러 역내 사안과 함께 북한 문제도 다뤘다”라고 되어 있다. 미국 측이 양국이 논의했다고 나열한 여러 문제 중에서 중국은 세 가지를 콕 짚은 것이다.

기후변화나 이란 핵문제, 한반도 핵문제 등 세 가지 문제도 최우선 순위를 기준으로 다시 압축할 수 있다. 기후변화야 중국도 이론이 없을 터이고 이란 핵문제는 중국보다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핵문제만은 중국의 협력이 대체 불가능하다. 셔먼 부장관이 이 시기에 중국을 꼭 찾아야 했던 이유를 굳이 한 가지만 들라면 ‘한반도 핵문제’가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셰펑 부부장이 ‘중국에 원하는 게 있을 때만 협조를 요청한다’며 큰소리친 배경이라 할 것이다.

7월26일 중국 톈진을 방문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왼쪽)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고 있다. ⓒXinhua

시진핑 머리 위에서 노는 김정은 총비서

중국이 ‘한반도 핵문제’를 얼마나 소중한 카드로 생각하는지는 지난 7월22일 서울에서 열린 니어재단 주최 4국 전문가 세미나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자칭궈 베이징 대학 교수는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을 악마화한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접근법을 물려받았다”라며 “북한 비핵화 이슈 등에서 미국을 도와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라고 중국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 비핵화 등’에서 대미 협조를 하느냐 마느냐가 미국의 대중 압박에 맞서는 중국의 유력한 카드인 셈이다.

중국 외교부의 자오리젠 대변인이 7월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밝힌 내용도 흥미롭다. 그는 셔먼 부장관과의 회담에서 ‘미국이 이행해야 하는 16가지 개선 사항’과 ‘중국이 중점적으로 관심을 갖는 10가지 사안’을 담은 리스트 두 개를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중국이 제시한 개선 사항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중국공산당 당원과 가족, 유학생에 대한 비자 제한 철폐 △중국 관리와 지도자, 기관에 대한 제재 해제 △공자학원과 중국 기업에 대한 탄압 중단 △중국 매체를 외국 사절단으로 등록하는 결정 취소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미국 송환 요구 중단 등이다.

모두 자칭궈 교수가 앞에서 언급한 트럼프 정부 시절 중국을 악마화하면서 취한 조처들이다. 중국은 셔먼 부장관에게 이 같은 리스트를 제시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 문제(한반도 핵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원한다면 트럼프 정부 시절에 취한 이 같은 ‘중국 악마화 조처’를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한 셈이다.

셔먼 부장관의 ‘수모 방중’ 목적이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었다는 점과 중국이 협조의 대가로 무엇을 원했는지가 명확해졌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반도 핵문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나. 이번 미·중 고위급 회담은 지난 3월18일의 알래스카 미·중 고위급 회담과 여러모로 겹친다. 당시에도 서둘러서 회담이 마련된 데에는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첫 미·중 고위급 상견례란 측면도 있었지만 북한의 무력도발 움직임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미·중 고위급 상견례를 한 3월18일은 3월8일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날이었다. 한·미 연합훈련 직후부터 4월15일 북한의 태양절 사이에 북한이 일련의 도발을 감행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미국이 중국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북한 문제는 어느 정도 일치된 이해관계를 가진 분야 중 하나’(7월22일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라는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측에 북한의 무력도발을 막는 데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이번 회담 역시 마찬가지다. 시진핑 정부는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를 쉽게 봐왔다. 그러나 지내놓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트럼프 정부보다 단수가 높다. 한편으로는 어르고 다른 편으로는 치고 들어오니 중국 내부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세게 맞붙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처한 국제적 상황은 더욱 어려워졌다.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키를 쥐고 있는 게 북한뿐이다. 북한이 세게 무력도발을 해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면 중국이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3~4월과 같은 패턴의 일이 그동안 전개돼왔다. 즉 3월의 한·미 연합훈련 직후 북한의 무력도발 그리고 중국의 식량지원이라는 패턴의 재현이다. 중국은 지난 5월 말 북한에 대한 10만t 식량지원을 결정해 이를 북한에 통보하고 7월부터 일부 식량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최근 북한이 연일 8월의 한·미 연합훈련을 성토하며 한·미 연합훈련 후 무력도발의 명분을 쌓기 시작했다. 중국 처지에서는 미국을 흔들 강력한 카드를 손에 쥔 기분이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미국 측이 만나자고 ‘입질’을 해왔고 중국은 알래스카 회담에서 당했던 설움을 쏟아내며 마치 ‘복수혈전’을 벌이는 듯했다.

셔먼 부장관이 어렵사리 중국의 관문에 들어서기 하루 전날인 7월24일 김정은 북한 총비서는 시진핑 주석에게 허난성 일대의 홍수 피해를 위로하는 친서를 보내 중국 측을 고무시키기도 했다. 친서의 내용은 “큰물 피해 후과를 하루빨리 가시고 수재민들을 안착시키기 위한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과 인민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라는 것이었지만 중국 외교부는 ‘셔먼을 맞는 중국 외교부의 투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라고 받아들였을 법하다. 중국이 셔먼 부장관에게 그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리스트 두 개를 전달한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무마할 수 있는 것은 본인들뿐이라는 자신감의 발로였던 셈이다. 그러니 북한이 중국과 아무 상의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 그만둘래’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바로 전날까지 셔먼을 만나 큰소리친 것은 뭐가 되며 미국에 전달한 두 개의 요구사항 리스트는 또 뭐란 말인가. 중국 외교의 대참사가 아닐 수 없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게 7월24일의 친서다. 물론 7월27일 오전 10시 남북의 통신연락선 복원 동시 발표는 그 전날에야 물밑에서 합의가 이뤄졌다고 한다.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김 총비서가 순수한 마음에서 홍수 피해 어려움을 겪는 시 주석을 위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 총비서가 시진핑 주석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은 북한을 자신들이 직접 하기 어려운 악역을 담당하는 ‘똘마니’ 정도로 취급해왔다. 문제는 북한이 너무 똑똑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18년 4월3일 경북 포항에서 열린 한·미 연합상륙훈련에서 해병대원이 상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북한이 선택한 남·북·미 대화

남북의 최고 지도자가 친서 왕래를 하게 된 경위를 살펴보면 남북 모두 각각의 처지에서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남쪽은 5월의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분명한 수요가 있었다. 지난 3월17일 한국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남북 채널을 가동해줄 것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를 통상적인 일정보다 앞당기며 2월 중순께부터 북한 측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이 일절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3월 방한 때 남북 채널로 북한을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요구가 없다 해도 응당 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로서는 5월의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숙제가 생긴 셈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인 4월27일을 친서 교환의 적절한 시점으로 선택했다.

북한은 왜 응했을까. 북한은 4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1월의 당대회 기조를 유지했다. 1월 당대회를 전후한 북한 분위기는 한마디로 ‘자력갱생, 중국 의존, 한국 무시, 미국 봉쇄’로 요약된다. 즉 바이든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 주역들이고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의 대북 발언을 놓고 볼 때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여차하면 바이든 정부 4년은 없는 셈치고 가기 위해 내부 단속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 4년은 중국에 의탁할 수밖에 없다. 당 국제부장, 경제부장, 주중 대사가 모두 이런 목표에 따라 새로 임명됐다.

중국에 의탁한다는 것은 중국의 용역을 수행하고 그 대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4월15일 태양절은 한반도가 새로운 신냉전의 파고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지 말지를 판가름하는 분기점이었다. 태양절을 전후해 북한이 3000t급 잠수함 진수 및 SLBM을 발사하고 중국이 그 대가로 식량과 생필품·의약품을 실은 단둥발 평양행 특급열차를 보내는 맞교환이 일어나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 대한 식량 공급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중국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결국 북한의 미사일이 되어 날아온다는 사실을 꿰뚫어봤다. 따라서 식량을 주더라도 미국이 주겠다며 중국의 지원을 차단했다. 북한은 시 주석이 보여온 과격한 언행 등으로 볼 때 능히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리라 여겼으나 의외로 시 주석이 새가슴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중국의 지원 물품이 도달하면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북한으로서는 큰 낭패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 대남·대미 관련 악역을 동생인 김여정에게 맡기고 김정은 총비서는 ‘플랜 B’를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이뤄진 배경이라 할 것이다. 당대회 이후 4월 중순까지 유지했던 중국 의존 경로 외 대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문 대통령의 친서가 날아들었다.

남북의 친서 교환이 최근까지 10여 차례 있었다고 한다. 북한으로서는 그래도 중국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제일 좋기로는 중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의 대북 지원을 막고 나섰고, 중국은 또 북한이 먼저 미사일을 쏘면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확실한 지원 약속 없이 미사일을 쐈다가는 북한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시 주석의 지원 약속을 친서 형태로 공개하도록 하기도 했으나 그조차도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최근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5월 말 중국이 다시 식량 10만t을 지원하겠다고 해놓고는 6월 한 달간 감감무소식이었다. 7월 들어 선박편으로 찔끔찔끔 들어오는데 겨우 수만t에 그쳤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의 지방은 식량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8월 이후에는 어려움이 본격화할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데 중국은 북한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챙길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더 이상 중국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2018년의 교훈이 있다. 남북의 문제를 더 이상 낭만적 감상주의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북한이 처한 현실이 너무나 팍팍하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사라진 지 오래다. 오직 자신들의 정권과 체제 유지만이 관심사라는 점을 남쪽도 이해해야 한다. 2018년 4·27 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의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는 한마디는 남쪽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명언이었다. 그러나 그 멀지 않은 곳을 그가 찾게 한 동력은 ‘우리 민족끼리’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같은 거대 담론이 아니었다. 2017년 11월에 시행된 중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그 계기였다. 그에 대한 돌파구의 필요성 때문에 남쪽을 찾은 것이다. 당시 중국의 제재는 트럼프 정부의 압력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은 압박을 가하면 북측이 12월쯤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면 슬그머니 다른 쪽을 풀어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의 예상을 깨고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미 대화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버렸다. 중국 외교의 ‘악몽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둘러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하고 선물을 안기고 난리를 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왜 연초의 당대회를 통해 과거 동독의 ‘두 개의 독일’을 염두에 두는 듯한 일련의 움직임을 보였나. 체제 경쟁력이 형편없이 떨어진 북한이 취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맹목적 반북도 문제지만 대책 없는 낭만주의도 문제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목표를 분명히 하되 상황 인식은 냉정해야 하고 대책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7월16일 조선중앙TV는 폭염으로 인한 농작물 생산 차질을 우려하는 보도를 했다. ⓒ조선중앙TV

농업 협력 명분의 식량·비료·농자재 지원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청와대의 발표문대로 ‘남북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다시 진전’시켜 나가자는 것인데 문제는 북한이 생각하는 ‘신뢰 회복과 관계의 진전’이 남쪽이 생각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8월부터 10월 사이 식량 20만t을 마련해야 하는 김정은 총비서에게 신뢰 회복과 관계의 진전은 모두 이 문제로 귀결할 것이다. 2018년처럼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침에 놀란 중국이 당장 식량지원을 늘리겠다고 하면 또다시 돌아설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또다시 중요한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북한을 중국과의 유착에서 떼어내 2018년 같은 남·북·미의 틀에 다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일단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이 버티고 있고 북한이 자존심 때문에 남한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다. 북한에 필요한 식량 20만t 지원은 우리 경제력이나 국내에 남아도는 재고미 등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지원을 할 건가는 섬세한 기획이 필요하다. 지원 주체와 관련해 한국 정부 단독이 아닌 한·미가 주체가 되는 국제공조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경기를 일으키는 식량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이라는 말을 피하고 중국이 주로 하는 방식인 농업 협력을 앞세워 식량 20만t에 비료 10만t(7~8월 곡물이 열매를 맺고 줄기를 튼튼하게 하는 복합비료, 인비료, 칼리비료), 그리고 농업용 비닐하우스 등의 농자재 지원을 묶어서 하되 북측으로부터도 상응하는 대가를 받음으로써 서로의 체면과 명분을 세우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6·25 전쟁 당시의 국군 유해 송환이나 납북자·국군포로 중 귀환 희망자의 송환, 서해 공동어로의 실현, 버섯 같은 임산물과의 물물교환 등, 북한이 위험을 무릅쓰고 원치 않는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보다 체면도 지키고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제시해야 할 것이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2018년의 경험을 거울 삼아 북쪽에서 다시 찾아올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