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2020년 1월1일 강원도 동해시 한중대학교. 2018년 2월28일 폐교되었다.

올해 경남의 한 대학교 4학년이 된 윤찬혁씨(22)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졸업반인 윤씨와 달리 후배들을 둘러싼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당장 윤씨 학교 후배들은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한다. 윤씨가 다니는 학교가 교육부로부터 정부 재정지원제한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1·2학년은 자비로 등록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윤씨의 전공이 보건계열이라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았다. 윤씨네 학교에는 신입생이 정원 미달인 학과가 적지 않다. 윤씨는 “다행히 나는 올해만 버티면 졸업하지만 후배들은 학교가 언제 없어질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매년 3월이면 전국 대학이 신입생들로 활기를 띠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대다수 대학이 2월 졸업식과 3월 입학식을 비대면으로 치르는 바람에 캠퍼스 풍경이 방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캠퍼스의 봄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다. 들어와야 할 신입생이 모자란다. 이번 2021학년도 대입전형에서 많은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특히 수도권과 멀리 떨어진 남부 지역 대학들의 상황은 더 나쁘다. 윤씨가 다니는 학교도 경상남도의 한 중소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대규모 미충원 사태가 예상되었다. 대학들의 ‘추가모집’ 인원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월22일 전국 162개 4년제 대학이 총 2만6129명을 추가로 모집했다. 2019학년도 7437명, 2020학년도 9830명이었던 추가모집 인원이 1년 사이에 2.6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예외’라는 말을 붙이기 민망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추가모집은 수시는 물론 정시 합격자까지 최종 등록을 마친 뒤 남은 정원을 채우기 위한 예외적인 전형이다.

이렇게 문호를 열어도 응시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다. 이른바 ‘n차 모집’이라 불리는 반복적인 추가모집이 잇따랐다. 국립목포대는 6차 모집까지 추진했다. 그만큼 신입생 충원이 어려웠다는 뜻이다. 각 대학의 최종 등록률(신입생 충원율) 통계는 올해 8월에 공표된다. 일부 학교는 최종 충원 규모를 공개하지 않아서 전국 대학의 미달 상황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 다만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몇몇 징후는 수도권 이외 대학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수도권 이외 지역의 국립대부터 미달 소식이 들려왔다. 광주·전남 거점 국립대인 전남대학교는 올해 4207명을 모집했지만 최종 등록 인원은 4067명에 그쳤다. 전통적으로 인기가 높았던 사범대 일부 학과도 정원 미달 사태가 일어나 지역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다. 대구에 위치한 경북대학교도 모집 인원이 4624명이지만 4555명이 등록했다. 전남대와 경북대의 최종 등록률은 각각 96.6%, 98.5%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이다. 진짜 문제는 수도권 이외 지역의 사립대들에서 발생했다.

ⓒ연합뉴스2월22일 서울 한 대학교에서 줌 온라인 영상을 통해 신입생 입학식이 열리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수험생 10만명 부족 현상’

지난해 신입생 최종 등록률이 99%를 넘겼던 대구대학교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구대는 올해 4070명을 모집하기로 했지만 수시·정시에서 866명이 미달되었다. 대구대는 세 차례 추가모집을 진행했지만 원하는 만큼 충원하지 못했다. 마지막 3차 추가모집(2월27일) 당시에는 730명을 모집했지만, 실제 응시한 인원은 11명에 불과했다. 단 1년 만에 신입생 최종 등록률이 80%대로 급감했다.

수도권 이외 지역 대학들의 신입생 모집난은 지난해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문제다. 수능 응시 인원은 49만여 명이지만 대학 전체 입학정원은 55만여 명이다. 정시모집 경쟁률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올해 수도권 이외 대학들의 정시모집 경쟁률은 평균 2.7대 1로 지난해 3.9대 1을 크게 밑돌았다. 정시모집에서 수험생 한 명당 대학교 세 곳에 지원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신입생 정원 미달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대학이 ‘신입생 기근’에 시달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핵심 원인으로 학령인구와 입학가능자원 감소가 꼽힌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발표에 따르면 만 18세 기준 학령인구는 2019년 59만4278명, 2020년 51만1707명, 2021년 47만6259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교육부는 학령인구를 기준으로 고등교육기관 입학 후보군인 ‘입학가능자원’을 추리는데, 이 수치 역시 2019년 52만6267명, 2020년 47만9376명, 2021년 42만893명으로 급감한다. 대입 정원(55만여 명)이 수험생 규모를 추월하는 ‘역전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당장 내년부터 ‘수험생 10만여 명 부족 현상’이 나타날 지경이다.

지난해는 ‘마의 5년’이 시작되는 해였다. 학령인구 감소는 2024년까지 예정되어 있다. 2025학년도 대입에서 대학에 진학하려는 입학가능자원은 37만3470명 수준일 것으로 추계된다. 2020학년도 대비 30%나 줄어든 수치다.

일부 규모 있는 수도권 이외 대학교는 국내 입학정원 외에 외국인 유학생으로 빈틈을 메웠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외국인 유학생 모집에서도 애를 먹고 있다. 유학생 감소는 지방도시 차원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지난해 4월, 한 지방 중소도시 기초자치단체장은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인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지자체가 포용해야 한다. 이들이 없다면 우리 도시의 사립대는 문을 닫아야 하고, 그러면 도시가 회복될 동력(젊은 인구)이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 규모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다. 지난해 8월 공개된 ‘2020년 교육기본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유학생은 2019년 16만여 명까지 증가하다 2020년 15만3000여 명으로 감소했다. 특히 어학연수와 같은 비학위과정 유학생이 줄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단기 연수 행렬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에 전 세계 고등교육의 환경이 바뀐 것도 우려스러운 변화다. 전 세계 대학이 동시에 비대면 교육과정을 늘리는 가운데, 굳이 한국 지방대학에 등록해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이유가 점점 사라진다. 국경이 닫히면서 적극적으로 학교를 알릴 기회도 매우 줄었다.

신입생 충원율(최종 등록률) 감소는 정부의 대학 평가에서도 중요한 잣대가 된다. 교육부는 대학 평가를 두 갈래로 나누어 추진하고 있다. 우선 일종의 자격시험 격인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지정을 1년에 한 차례 실시한다. ‘한계 대학’을 골라내는 일이다. 앞서 윤씨가 다니는 학교도 2년간 재정지원제한 대학으로 선정된 탓에 1·2학년에게 피해가 가중되었다. 2020년 평가 당시에는 전국에서 총 13곳(4년제 7개교, 전문대 6개교)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재정지원제한 대학은 7가지 평가 지표 가운데 3개 이상 탈락(미충족) 시 지정된다. 특히 가장 중요한 지표 두 가지가 학생 충원율이다. 신입생 충원율 97% 이상, 재학생 충원율 86% 이상이 기준선이다. 최소한 학생을 문제없이 모집하고, 입학한 학생이 중도 이탈하지 않고 계속 다녀야 정부가 학교를 믿고 재정지원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올해 같은 학령인구 쇼크가 연이어 발생할 경우 재정지원제한 대학이 속출할 가능성이 커진다.

교육부가 학령인구 감소를 ‘나몰라라’한 것은 아니었다. 교육부 정책의 핵심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방식이다. 교육부는 정부 재정지원제한 대학 지정 외에도 ‘대학 기본역량 진단’을 3년에 한 번 실시하는데, 이때 핵심 요구사항이 바로 ‘정원 축소’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수(분자)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니 입학정원(분모)을 대학이 알아서 줄이라는 의미다. 이 밖에 전임교원 확보율, 졸업생 취업률 등이 평가 요소가 되어 각종 재정지원의 자격을 부여하는 게 ‘대학 기본역량 진단’의 골자다.

ⓒ시사IN 조남진2020년 2월25일 중국인 유학생들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수도권 대학, 정원 줄여도 입학 인원 느는 이유

당연히 수도권 이외 대학들의 반발이 크다. 충원율 항목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평가를 실시하기 때문에 해당 권역 내에서 평가점수가 우수할 경우 불이익이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입시 구조 특성상 인구 충격은 수도권 외 대학에 쏠린다. 이 대학들로서는 ‘서울·수도권 대학들이 정원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지방대는 아무리 정원을 줄여도 충원율을 높이는 게 쉽지 않다’고 항변할 수밖에 없다.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줄이고는 있으나 실제 입학 인원은 점점 늘어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다. 농어촌 학생·특성화고 졸업자·재외국민·기초생활수급자 전형처럼 고등교육 기회 균등을 위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선발할 수 있는 ‘정원 외’ 입학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의 전체 입학정원은 7만2108명이지만 실제 모집한 전체 학생 수는 8만5261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모집 인원의 31.4%인 1만2926명이 ‘정원 외’ 전형으로 입학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아무리 ‘수도권 대학도 정원을 줄여라’ 강요한들 뽑는 인원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셈이다. 당시 국감에서는 2012년 수치도 공개되었는데, 입학정원은 7만3166명, 정원 외 입학자는 1만566명이었다. 8년 동안 정원은 1058명을 줄였지만, 정원 외 모집 인원은 2360명이 는 것이다. 경기도 소재 대학들도 실제 모집 인원의 11.6%가 ‘정원 외’ 전형이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전국 대학은 8년간 평균 8.1% 정원을 감축했지만, 서울은 1.4% 감소에 그쳤을뿐더러 오히려 ‘정원 외’ 전형을 통해 우수한 학생을 더 끌어당기고 있다. 수도권 외 대학들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학령인구 감소라는 당면한 미래 때문에 각 수도권 이외 대학들의 고육지책도 계속되고 있다. 일부 남부 지역 소재 학교의 경우 캠퍼스를 아예 옮기는 방안도 언급된다. 동국대학교는 지난달 이사회에서 경주캠퍼스를 이전하는 문제가 논의에 올랐다. 수도권과 떨어진 대학일수록 입학생 미달이 속출하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경남 김해나 수도권 등으로 이전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경주시 시민사회는 크게 반발했다. 주낙영 경주시장도 공개적으로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지 캠퍼스 이전은 뜬금없다”라며 이전 논의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갈등이 봉합되기는 했으나 대학 스스로 ‘수도권 이전’을 답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지방대의 고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도시는 영속을 위해 청년을 원하고, 청년을 붙잡기 위해 대학에 목맨다. 그러나 대학이 도시와 함께 쇠락하면서 지방도시와 지방대학의 관계에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앞으로 5년간 우리가 계속 목도하게 될 지방의 현실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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