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교사들은 다른 시군으로 이동하여 학교를 옮길 때마다 비경합지로 간다. 해당 지역에서 경쟁하지 않고 외부에서 전입하는 교사들이 채우는 학교로 가는 것이다. 대부분 직장인처럼 교사들 역시 학교 선택의 우선순위는 거주지와의 근접성, 교통의 편의성이다. 그에 더하여 ‘학구’도 학교 선택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학구란 취학구역 혹은 교육행정상 구분되는 구역을 설정하여 운영하는 제도를 가리키지만 보통은 해당 지역의 사회경제적 지위로 인식한다.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의 계층이 머무는 지역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소득이 높은 지역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다. 보충학습 형태의 학원은 물론 다양한 예체능 교육을 어릴 적부터 장기간 경험한다. 무슨 의미인가? 학생의 학업성취는 물론 기본 생활습관 형성에 교사가 기울여야 할 노력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좋은 학구는 교사가 기울이는 노력 대비 결과가 좋다.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명문학교는 대개 이 흐름을 따른다. 소득이 높은 지역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든, 교사의 노력 대비 학생의 성취가 높은 학교인 것이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학구는 반대다. 부모의 소득이 낮다. 따라서 노동시간이 길다. 노동시간이 긴 만큼 퇴근 후 부모가 느끼는 신체적 피로감이 높다. 미성숙한 자녀가 스스로 학습에 전념하도록 체벌 대신 대화로 이끌 여유가 적다. 가정학습은커녕 안내장 한 장 읽을 여유가 없다. 예체능 교육은 언감생심이고 별도의 보충학습을 위해 학원 보내는 일도 버겁다. 학원을 보내도 효과가 낮다. 학원은 보육의 다른 개념이니까. 학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숙제는 무엇인지 챙길 만큼의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없으니까. 아이 역시 자신에게 소홀한 부모를 원망할 수 없다. 부모가 어찌 사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가정학습이 안 되어도 교사는 학생을 보충지도할 수 없다. 보충지도를 강제할 권한이 없는 데다 대다수 학부모가 보충지도를 ‘낙인’이라 여긴다. 학습부진이라는 낙인은 학부모에게 내 아이가 또래집단에서 분리될 원인이 된다는 두려움을 갖게 만든다. 따라서 교사가 지도하는 보충지도 대신 학원을 선택한다. 보충지도를 강제할 권한은 주지 않고 ‘기초학력책임제’라는 이름으로 책임만 묻는 사회에서 교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탈출구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지역으로 학교를 옮기는 것뿐이다.

잘못이나 실수에만 주목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

해가 갈수록 소득에 따라 거주지가 나뉜다. 나뉜 거주지에 따라 자신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란 친구를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양육 스트레스는 커진다. 높은 양육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가정이 한 지역에 점점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높은 양육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가정은 자녀에게 체벌 혹은 방임을 가할 가능성이 높고, 체벌이나 방임을 당하는 아이들은 점점 과격해지거나 무기력해진다.

학교는 이를 부채질한다. 아이들은 학교폭력 예방교육 때 “나를 때린 친구가 있나요?”라는 질문은 들어도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친구가 있나요?”라는 질문은 듣지 못한다. 질문은 사고의 방향을 결정한다.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에만 주목하느라 장점이나 노력을 보지 못한다. 남의 장점이나 노력에 대한 관심은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양육 스트레스로 인해 아이의 잘못이나 실수에만 주목하는 부모와 주로 상호작용하는 아이들은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통해 이를 강화한다. 타인의 잘못이나 실수에만 주목하는 행위를.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려는 태도를 갖게 하는 것이 교육이며, 가까이 두고 오래 사귄 벗을 만나는 곳이 학교여야 하지 않을까? 어려운 학생들이 잘 배우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애쓰는 교사들의 노력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가 만드는 교사상은 진정 무엇일까?

기자명 천경호 (성남서초등학교 교사·실천교육교사모임 부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