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20년 10월5일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상생TF’ 발족 기자회견이 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언론개혁’ 입법에 시동을 걸었다. 대상은 온라인상의 가짜뉴스다. 이낙연 대표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가짜뉴스는 사회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사회적 범죄(2월3일)”이며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영역이 아니다(2월10일)”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언론중재법 개정안, 형법 개정안 등 모두 6개 법안이 논의선상에 올랐다. 언론과 SNS상의 거짓·불법 정보를 규제하고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에 대해 ‘무엇을 가짜뉴스로 볼 것인가’ ‘비판 보도를 봉쇄하는 데 악용될 소지는 없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게 아닌가’ 같은 의문들이 팽팽히 맞선다.

언론개혁 6대 법안으로 불리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주요 대상은 온라인상의 표현물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정정보도 시 최초 보도 2분의 1 이상의 시간·분량으로 의무화하고(김영호 의원안), 허위사실 혹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기사에 대해 ‘열람차단 청구권’을 도입하며(신현영 의원안), 언론중재위원 정원을 90명에서 120명으로 확대하는 안(김영주 의원안)을 포함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거짓·불법 정보를 유통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손해배상액의 3배까지 결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윤영찬 의원안)와 댓글로 중대한 심리적 침해를 받은 경우 게시판 운영 중단을 요청할 권리(양기대 의원안)가 담겼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가중처벌을 방송에도 적용하는 형법 개정안(이원욱 의원안)도 있다. 민주당은 2~3월 임시국회 때 조속히 처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 차단은 어쩌다 민주당 언론개혁의 주요 의제가 되었을까. 언론개혁은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공약이다. 당시 공약집을 살펴보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언론 공공성 확보 방안이 중점적으로 담겨 있다. 허위 정보 피해 구제책은 없다. 더불어민주당 미디어언론상생TF 단장인 노웅래 의원은 2월24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미디어 관련 법이 이제껏 말만 무성했지 통과된 적이 없다. 인터넷으로 정보가 삽시간에 퍼지기 때문에 가짜·왜곡·허위 정보의 피해가 엄청나다. 언론의 눈높이가 아니라 국민의 피해를 줄이자는 관점에서 정쟁이 덜 되고 신속한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는 법안부터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언론개혁법을 두고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언론 재갈 물리기”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여론을 조작하겠다는 심산”이라며 법안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언론단체도 우려를 표한다. “언론개혁을 주문했더니 언론검열로 답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언론노조).”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있어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함에도 여론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 없이 민주당이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6개 법안 중 논란이 되는 것은 언론과 포털, SNS 게시물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윤영찬 의원안과 게시판 운영 제한조치를 의무화하는 양기대 의원안,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을 담은 신현영 의원안이다. 실질적인 피해 구제라는 법안 취지와 다르게 남용될 우려가 있어서다. ‘고의에 의한 거짓·불법 정보’(윤영찬 의원안), ‘댓글로 인한 심리적으로 중대한 침해’(양기대 의원안),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신현영 의원안)라는 요건을 실제로 판단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만약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자신을 향한 비판 보도나 의혹 제기, 불리한 정보를 차단하기 위해 이 법을 악용할 소지는 없을까?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은 “실제 언론보도로 피해를 입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라면 공인이나 공적 사안에 대한 표현물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포함되었어야 한다. 민주당 언론개혁 법안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영미권에서만 적용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에 대해 민주당은 ‘과도한 우려’라고 본다. 양기대 의원실 관계자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댓글게시판 차단 청구권)에 대해 “피해자가 악플을 신고한다고 해서 무조건 게시판을 닫자는 게 아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소명하면 포털 사업자가 남용인지 아닌지 충분히 필터링할 수 있는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포털사이트들이 연예 뉴스 댓글난을 없앤 것처럼 악성 댓글로부터 당사자를 신속하게 보호하는 취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법인 오픈넷 손지원 변호사는 공인과 기업이 악용할 우려가 크다고 본다. 허위사실, 가짜뉴스, 악성댓글의 대상이 일반 시민이기보다는 주로 공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악성 댓글로 인한 연예인의 자살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면서 이미 30일간 온라인 게시글을 삭제하는 임시조치 제도(정보통신망법)가 도입되었으나 지금은 소비자 불만 글, 종교 피해 호소 글이 차단되는 현실이다.”

민주당은 ‘언론 민생법안’이라고 설명하지만 명예훼손 피해를 구제하는 현행 법규는 이미 촘촘하게 짜여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해 과잉 입법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형법상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사이버 명예훼손죄 같은 법률로 구제받거나, 언론중재위원회 등을 통해 심의나 조정 절차를 거칠 수도 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정보 삭제 요청(임시조치)이 가능하고 공직선거법상 선거 기간에 후보자에 대한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도 처벌받는다. 손지원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보통 명예훼손죄 등을 형법으로 처벌하지 않고 민사소송으로 규율하는 영미권에서 적용되는 법이다. 형사처벌을 하는 한국에서는 이중 처벌이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언론 관련 소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매체별 민사소송 건수는 334건,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사건은 3544건으로 둘 다 10년간 3배가량 늘었다. 그러나 소송은 늘었지만 손해배상액은 감소하는 추세다. 최근 5년간 손해배상 인용액은 400만~500만원 정도다. 양재규 변호사(언론중재위원회)는 “3배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에 도입된다 하더라도 현실적인 징벌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위자료 등 피해 구제액 현실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소송 남발로 언론의 자유가 위축된다는 주장은 따져봐야 한다. 양 변호사는 “공인에 대한 비판 보도에 대해서는 오보이거나 사생활 침해가 있더라도 상당한 근거가 있거나 악의적이지 않다면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2010년대 이후 2건 중 1건 이상의 소송에서 언론사가 승소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인격권 보호냐, 언론의 자유냐 하는 단순 이분법으로는 풀기 어렵다. 한국외대 김민정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의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 대 기성 언론의 몸부림’의 갈등 구조를 넘어 찬찬히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언론개혁의 우선순위가 왜 개인의 명예훼손 문제를 향했는지도 질문이 남는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민주당이 표현물 규제로 ‘누구’를 보호하고자 하는지 모호한 것이 논란의 원인이라고 짚는다. 이를테면 성폭력 범죄나 아동학대 사건에서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표현 규제가 더 시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민주당의 언론개혁 법안에는 보호 범위가 구체적이지 않다.” 온라인상의 표현물을 규제하는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은 반헌법적인 프로파간다, 인종혐오, 나치 찬양 등 22개 불법 내용물을 정해놓고 삭제 조치한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의 경우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가짜뉴스임에도 국내에서는 현행법상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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