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5일 새벽 4시, 여당 의원들만 남은 국회 법사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8월30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민주당의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2009년 개정(중재신청 대상을 포털까지 늘림) 이후 12년 만에 언론중재법은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이 변화는 퇴보인가, 진보인가? 법 개정에 찬성하는 측은 언론으로부터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열람차단 청구권(언론 피해자가 해당 기사의 온라인 열람을 차단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 정정보도 확대 규정,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도입은 ‘언론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다. 반면 국내 언론 현업 단체(전국언론노조·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방송기자연합회 등)는 물론이고 국경없는 기자회(RSF)·세계신문협회(WAN-IFRA) 등 해외 주요 언론단체들은 일제히 이번 개정안에 반발하고 있다. 피해자 보호라는 명목하에 언론의 자유와 기능을 제약한다는 이유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최종 결과물보다 그 ‘과정’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이 실제로 진보인지 퇴보인지를 판단하려면 법안 논의 과정에서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욕망이 얼마나 걸러졌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2020년 6월9일 정청래 의원 대표발의안부터 2021년 6월23일 김용민 의원 대표발의안까지 총 16개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꼼꼼히 살펴보면 시기별로 서로 다른 특징이 나타난다. 제21대 국회 개원 초반(2020년)에 발의된 법안에는 ‘정정보도를 제대로 하라’는 요구가 많았다. 기존 언론중재법은 정정보도를 해야 하는 장소(같은 채널·지면)만 정할 뿐, 그 형식이나 크기·길이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통상 대다수 언론사는 그동안 사고(社告)를 통해 정정 내용을 알렸다.
그러나 정청래의원안(2020년 7월10일), 박광온의원안(2020년 8월20일), 김영호의원안(2020년 11월19일) 등은 ‘정정 대상 보도와 같은 시간·분량·크기’를 규정하며 정정보도 규범을 강화하려 했다. 가령 5분짜리 텔레비전 뉴스가 언론중재위를 거쳐 정정보도를 내보내기로 결정되었다면, 지금까지는 뉴스 프로그램 초반부에 ‘이렇게 잘못 보도했다’라고 잠깐 알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앞으로는 원 보도와 동일하게 5분 동안, 같은 시간대에, 같은 순서로 정정 내용을 보도하라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일부 법안(김영호의원안·박광온의원안)은 ‘이를 위반할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는 규정도 추가했다.
‘열람차단 청구권(신현영의원안, 2020년 7월31일)’도 국회 개원 초기에 제기된 아이디어다. 열람차단 청구권은 인터넷에서 기사가 노출되거나 검색되지 않게 하는 조처로, 사실상 보도를 사후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신현영 의원의 초안에는 열람차단 청구 대상을 ‘진실하지 않은 보도’ ‘사생활 침해’ ‘인격권 침해’라고 제한하고 있는데, 이 기준은 법사위를 통과한 최종안에도 반영되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21년부터다. 법 개정의 핵심 사안인 ‘징벌적 손해배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원래 징벌적 손해배상은 2020년 6월9일 정청래 의원이 가장 먼저 발의했다. ‘악의적으로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손해액의 3배 이하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실시하라는 내용이다. 2021년 들어 이 사안과 관련된 추가 발의가 잇따르면서, 그 범주와 배상액도 점점 더 커졌다. 최강욱의원안(2021년 2월4일)은 ‘언론사가 이 보도로 얻은 이익’을 언론사의 1일 평균 매출액에 기사 게재 기간(일수)을 곱해 산출하고, 그 액수보다 큰 금액을 배상하도록 만들자고 주장했다.
개정안이 점점 과감해진 이유
박정의원안(2021년 6월9일)과 윤영찬의원안(2021년 6월22일)은 ‘피해자 손해액의 3배 이하’를, 김용민의원안(2021년 6월23일)은 ‘피해자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를 주장했다. 결국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에서는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손해액의 5배 이하’를 규정으로 삼았다. 최종 조율 과정에서는 빠졌지만, 여당 내에서 막판까지 징벌적 손해배상금의 최소치까지 정하려 한 점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발의된 법안 중에는 언론중재위원회의 본질적인 기능과 지위를 제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앞서 설명한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의 법안에는 독립 민간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정부기관인 ‘언론위원회’로 변경하는 안이 포함되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그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받기 위해 정부와는 동떨어진 독립 민간기구로 운영해왔다. 운영예산 역시 방송통신발전기금을 통해 해결한다.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다. 최강욱 의원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심판 기능, 시정명령 기능을 강화하려면 정부기구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면 정부가 시정명령에 대한 이행강제금을 언론에 직접 부과할 수 있다. 공무원인 조사관을 통해 언론 보도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상 정부 내에 언론 규제기관을 신설하자는 의견에 가깝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도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현행 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소위 심사자료)”라고 우려할 정도였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점점 더 과감해진 것은 여당 내 정치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은 이낙연 대표 체제였던 2020년 10월부터 2021년 2월까지 당내 ‘미디어·언론 상생TF(위원장 노웅래)’를 가동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비롯한 언론 관련 입법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1년 3월 이낙연 대표 사퇴, 4월 재보궐 선거 참패, 5월 신임 당 지도부 선출을 겪으며 소강상태를 겪다가 5월31일 당내 비상설 특별위원회인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미디어특위)’가 출범하면서 당내 강경파의 목소리가 반영되기 시작했다. 김용민 최고위원이 특위 위원장을 맡았고, ‘미디어·언론 상생TF’의 안이 원점부터 재검토되었다.
미디어특위가 가동된 약 3개월 동안 여당 내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이 최우선 입법 과제로 꼽혔다. 특히 당내 강성 지지층의 여론이 입법을 재촉했다. 지난 6월에 발생한 한 사건이 언론에 대한 당내 부정적 여론이라는 불씨에 기름을 끼얹으며 입법 요구가 더 거세졌다. 6월21일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성매매 사건 기사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일러스트를 삽입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6월23일 자사 홈페이지에 담당 기자의 실수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하지만 여당 강성 지지층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7월6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이런 사례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법안이 정제되는 과정에서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사진·삽화·영상 등을 말한다)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조건으로 포함되었다(제30조의 2).
정치·경제 권력이 쥔 새 무기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과정이 충분한 숙의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한다. 법의 시행 시점도 법률 공포 6개월 뒤이기 때문에 대선을 노린 것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주장과는 달리, 막상 법사위를 통과한 법 자체에도 빈틈이 많다는 점은 ‘법안 처리 강행’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있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의 핵심 목적이 ‘가짜뉴스’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은 전체 미디어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1인 미디어나 유튜브, 각종 소셜미디어 채널 등은 대상에서 빠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짜뉴스의 주된 통로가 유튜브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의아한 대목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언론사로 등록해 운영 중인 회사들만 대상으로 하는 ‘제약적인 미디어 규제’인 셈이다. 문화체육위원회 소속인 한 여당 의원 관계자도 “만약 국민의힘이 정권을 쥐고 있고, 그쪽에서 이 법을 발의했다고 가정하면 민주당 의원들도 당장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개정안에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라고 말했다.
정정보도의 형식을 강제한다는 점도 이번 법 개정이 ‘레거시 미디어(TV·신문 같은 오래된 미디어)’를 겨냥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법사위를 통과한 안에는 “정정의 대상인 언론보도 등과 같은 시간·분량 및 크기로 보도하여”라는 대목이 들어가는데, 이는 신문 지면 편집, TV 보도 방송 포맷에만 들어맞는 규정이다. 언론사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에 대한 정정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언론사로 등록하지 않은 채 사실상 언론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은 어떤 형식으로 정정보도를 해야 하는지 등은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 이 같은 규정은 탐사보도에서 자주 쓰이는 ‘롱폼 저널리즘(긴 분량 저널리즘)’ 시도도 주저하게 만든다. 각 언론사들 처지에서는 혹시 모를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기사를 더욱 쪼개거나 축소하게 될 것이고, 권력 고발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법사위를 통과한 최종안에 고위공직자나 대기업 및 그 주요주주·임원은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이 법안이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퇴임한 공직자나 중소·중견 기업은 얼마든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은 당초 목적이 어떻든 결국 언론보도 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는 정직한 기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언론의 보도가 늘 진실하다고 믿기도 어렵다. 그러나 언론을 상대하는 정치·경제 권력에 새로운 무기를 쥐여주는 것을 과연 민주주의의 ‘진보’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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