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요양보호사 이춘숙씨가 90세 노인의 집을 방문해 실내운동을 돕고 있다.

병원으로 출근하는 간병사들은 손이 무겁다. 달그락거리며 끌고 온 캐리어 가방 안에는 이불, 속옷, 반찬, 세면도구와 여벌옷이 들어 있다. 한 달에 적게는 열흘, 많게는 26일을 병원에서 생활하지만 짐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올해로 21년 차. 서울대병원 간병사 조경순씨(70·가명)는 그래도 병원이 이제 “친정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서울대병원의 간병사 소개소 ‘희망간병’은 노동조합을 겸하고 있어 사무실을 짐 보관소로 쓰고 있다. 조씨는 사물함 속 상자를 꺼내 ‘희망’이라 적힌 주황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상자 주변에는 짐 보따리와 캐리어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6월29일, 조씨는 방광암 수술을 마친 한 70대 환자를 돌보느라 퀭한 얼굴이었다. 방광 세척을 한 탓에 20분마다 1ℓ짜리 소변통을 비워야 했지만, 밤새 소변에서 핏물이 빠지지 않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여기서는 잠깐 눈을 붙일 때에도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해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잠을 못 자기는 간병사 이미숙씨(62·가명)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한 달 넘게 돌본 치매 환자가 오늘 퇴원한다며 기뻐했다. “한 달 동안 엉덩이에 빵꾸(욕창) 안 내려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물도 뿌리고, 선풍기로 바람 쐬어주고, 조금 빨개지려고 하면 바로 약 바르고 거즈도 두 개 끼웠거든.” 병상 옆에 딸린 보호자 침대가 간병사의 공간이다. 가래 석션, 콧줄 식사, 체위 변경 등 환자의 생명을 위해 밤낮없이 요구되는 돌봄 행위들이 이곳에서 조용히 수행되고 있었다.

“참을 ‘인’자를 쓴 거지. 돈 벌어야 사니까.” 조씨는 세 남매를 홀로 키워낸 가장이다. ‘나는 못 배웠어도 애들 공부는 시켜야 한다’는 게 젊은 시절 조씨의 신조였다. 노후를 준비할 생각은 못했다. 간병은 조씨와 같은 중고령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자리였다. 1999년 처음 받은 일당이 3만5000원이었다. 2년마다 5000원씩 올라 요즘은 24시간 간병 기준 9만~11만원을 받는다. 환자나 보호자들은 병원비보다 간병비가 더 많이 나왔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지만, 간병사 처지에서는 결코 큰 금액이 아니다. 시간당 임금을 따지면 4000원 수준에 그친다.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데다 육체노동인 탓에 병을 얻어 치료비나 수술비로 나가는 지출도 상당하다. 간병사 대다수가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후유증을 호소한다. 손가락 마디는 굽고, 어깨와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을 얻는 등 각종 직업병에 시달린다. 하지만 간병사는 개인사업자 신분이라 4대 보험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흥구서울대병원 희망간병 노조 사무실 앞 복도에 선 간병사 조경순씨.

나이가 들어 은퇴할 시기가 되더라도 일을 쉽사리 그만둘 수 없었다. 조씨는 한 달에 열흘, 총 240시간을 일하고 70만원을 번다. 17년째 간병사로 일하고 있는 문정자씨(62·가명)는 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만 일하고 같은 돈을 벌기를 희망했다. 문씨는 한때 간병사를 그만두고 사우나 카운터에서 일한 적이 있다. 남들처럼 8~9시간 근무하고 최저시급을 받았다. 하지만 “간병은 몸이 좀 힘들어도 한 달 풀로 일하면 더 벌 수 있으니 다시 문을 두드리게 된다”라며 다시 간병사로 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혼·사별·빚 등으로 구직시장에는 언제나 생계가 다급한 사람이 있고,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양질의 일자리는 없었다. 돌봄 노동은 그렇게 ‘싼값’에 유지되었다.

2019년 65세 이상 인구는 768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4.9%를 차지한다. 한국은 이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6년 안에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2019년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 대비 장기요양수급자 비율은 2018년 1.3%로 2016년(1.0%)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특정 직군, 특정 연령, 특정 성별에 쏠려 있었다. 장기요양요원(간호(조무)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포함) 중 요양보호사가 91%로 가장 많았고, 여성이 94.7%를 차지했다. 요양보호사의 평균연령은 58.9세, 평균임금은 107.6만원이다.

돌봄 노동자 대부분이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돈만 생각해서는 지속하기 어렵다. 돌봄 노동의 특징은 ‘감정과 분리되기 어려운 노동’이라는 점이다. 돌보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입 없이는 노동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간병사들 대다수가 환자를 “내 동생이다, 조카딸이다” 생각하고 보살핀다고 말했다. “본인이 움직이지를 못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머리도 감겨주고 샤워도 해주면 내가 씻은 것처럼 기분이 좋더라고(조경순씨).”

간병을 하다 보면 환자의 희로애락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여성주의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슴’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경제학자나 기업가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대체로 신, 자연, 가족, ‘슈퍼 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동으로 돌봐줄 것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다”라고 지적한다. 고령사회와 노년 돌봄 현실은 결국 중고령 여성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가슴’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간병사와 요양보호사는 주로 ‘여사님’으로 불리지만 간혹 ‘아줌마’나 ‘어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재가 요양보호사 이춘숙씨(60)는 ‘시금치를 사서 무쳐놓으라’거나 ‘아들이 마실 석류주스를 만들라’는 요구를 종종 받는다. 규정상 안 된다고 말하지만 막무가내인 경우도 있다. 거부하고 싶은 노동을 전가하더라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일이 끊기면 수입이 반토막 나니까요.”

돌봄 대상자로부터 각종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19년 장기요양 실태조사에 따르면, 돌봄 노동자 4명 중 1명(25.2%)이 수급자나 수급자의 가족으로부터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폭력 및 위협을 경험한 비율도 16%에 달했다. 성희롱 및 신체접촉 피해를 경험한 비율도 9.1% 수준이다.

ⓒ시사IN 신선영이춘숙씨는 일하던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간병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일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누군가의 돌봄 노동으로 쌓아올려졌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돌봄 노동의 여건은 오히려 악화됐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 등으로 진행된 비대면 시대는 저절로 온 것이 아니다. 요양보호사, 간병사, 사회복지사 등이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코로나19 이후 ‘돌봄 위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막상 돌봄 노동의 여건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부각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던 3~4월 요양보호사 다수가 일자리를 잃었다. 서울요양보호사협회에 따르면 요양보호사 3456명 중 20.7%가 코로나19로 인해 갑작스럽게 일자리가 중단된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37.7%는 일자리 중단 및 소득 감소에 대해 불안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가장 필수적이자 가장 보이지 않는 노동

맏딸로 태어난 이춘숙씨에게 돌봄은 ‘일생의 과업’ 같은 일이다. 10대 때부터 평화시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했고, 결혼한 후로는 세 자녀를 양육했다. 생계가 어려워지자 시장에서 유니폼과 스카프 원단을 떼어와 직접 만들며 생계를 이어갔다.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한 후 수입이 줄면서 시작한 일이 간병사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다. ‘남의 가족’을 돌보는 동시에 ‘내 가족’도 돌봐야 했다. 아픈 아버지와 오빠를 간호하며 가사 노동 역시 함께 책임져야 했다. 이씨 가족에게 돌봄은 가장 필수적인 일이자 이씨 말고는 누구도 못했던 일이지만, 가장 보이지 않는 노동이기도 했다. “시장에서 재료 사서 음식을 해드리면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알뜰하다고.” 다부진 생활력은 그가 지나온 돌봄 노동의 역사를 짐작하게 했다.

이씨는 오전과 오후 치매 어르신 두 명을 돌본다. “두 탕을 뛰어야” 150만원 남짓 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르신을 가까이서 돌보며 보람을 느낀다. 물론 감정 조절이 어려울 때도 있다. 치매의 주요 증상인 피해망상, 의심증은 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돌봄 노동자를 향하기 때문이다. 이씨 역시 도둑으로 의심받거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씨는 “어르신” 하고 살갑게 다가가 ‘친구 해드리면 안 되냐’고 능청을 부린다. 치매 전문교육을 받은 후로 꽃을 선물하거나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마음을 산다. “한번은 어르신이 누가 쫓아온다는 망상이 심해져서 경찰서까지 모시고 갔어요. 잠도 못 주무시는 게 안쓰러워서요. 경찰 말을 듣더니 그제야 후련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족도 못 하는 일을 요양보호사 이씨가 수행한다. 그 덕에 가족들도 별 탈 없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간병사는 20만명, 요양보호사는 42만명에 이른다. 중고령 여성들의 노동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돌봄 노동은 여전히 제대로 보상받거나 인정받지 못한다. 이씨는 자주 괴리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우리가 수행하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돌봄’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매겨야 할까. 우리는 과연 돌봄을 노동이라고 여기고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돌봄 위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꼭 되짚어봐야 하는 질문이다.

기자명 김영화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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