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조선중앙통신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7월10일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7월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 부부장이 발표한 담화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설왕설래하던 북·미 제3차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제재 완화 문제로는 더 이상 미국과 마주 앉지 않겠다는 으름장까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 수뇌부 내 생각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의외의 발언도 있었다. 대미 무력 도발에 대한 부분이다. 담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여정은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위원장 동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라고 확언을 하다시피 했다. 탈북단체의 전단 살포를 규탄한 6월4일자 본인의 첫 담화로부터 시작해 개성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 폭파까지 감행하며 긴장을 고조시키던 서슬 푸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미국이 자신들을 압박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단 발언이긴 하다. 그러나 남북 간 긴장 고조를 발판으로 함경남도 신포에서 준비 중인 3200t급 잠수함의 위용을 과시하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로 판을 키워갈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언급을 한 셈이다.

김여정 담화문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측이 지난해 연말 공언했던 크리스마스 선물 아닐까’라며, 짐짓 트럼프의 처지를 이해해준다는 듯한 내용도 들어 있다. 7월 말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바이든 후보에게 크게 뒤지고 있다. 만약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SLBM 시험 등으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겐 악몽 같은 정치적 재앙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북한 측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불리한 처지를 활용해서 ‘대선 직전 SLBM 발사’ 여부를 대미 협상의 지렛대로 쓸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가의 명운을 건 협상에서 협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불리한 처지를 십분 활용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런 일반적인 견해에 비춰보면 김여정 담화에서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고’ ‘트럼프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부분은 얼핏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북측의 강력한 무기 하나를 내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여정 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까지 거론하며 굳이 이런 약속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여정은 담화문 여기저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전에 가능한 북측의 도발을 크게 우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반복한다. 묘사의 톤이 재미있다. 북한은 도발의 주체다. 미국 행정부는 그 도발이 정치적 재앙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 잠재적 피해자다. 그런데 담화문에는 주객이 바뀐 대목이 한 군데 등장한다.

“극도로 두려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한 친분관계가 톡톡히 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운을 뗀 뒤 다시 강조한다.

“이런 때에 미국이 불안 초조한 나머지 제풀에 서뿔리(섣불리) 우리의 중대한 반응을 유발시킬 위험한 행동에 나선다면 잠자는 범을 건드리는 격이 될 것이다.”

ⓒ평양 조선중앙통신7월18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주재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열렸다.

미국이 ‘제풀에 섣불리’ 공격할 가능성

이 대목 전까지 김여정 담화에서 북한은 미국 대선이라는 유리한 정세 속에서 도발의 칼자루를 쥔 존재다. 그러나 이 대목에선 분위기가 바뀐다. 북한이 칼자루를 쥔 정세 때문에 불안 초조해진 미국이 ‘제풀에 섣불리’ 공격해올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반사적으로, 그런 미국의 공격에 불안해하는 북한 지도부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일반적인 예상처럼 북측이 유리한 정세를 맞아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리한 정세가 자칫 미국으로 하여금 ‘제풀에 섣불리’ 선제공격에 나서게끔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까 봐 우려하는 모습이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미국을 안심시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미국이 불안해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다짐을 분명하게 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여정 담화를 여러 차례 읽으면서 다른 내용들보다 이 부분이 크게 다가왔다.

짚이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23일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제5차 예비회의와 관련된 수수께끼다. 6월24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6월23일) 열린 이 회의에서 북한군 총참모부가 당 중앙군사위 제7기 제5차 회의에 제기한 대남 군사행동계획을 보류시켰다.

이보다 앞선 6월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연대급 부대 전개 △남북 군사합의에 의해 철수했던 민경초소(GP) 재진출 △접경지역 군사훈련 △대남전단 살포 지원 등 남북관계를 크게 경색시킬 조치들을 발표한 바 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계획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에 제기해 비준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 노동당 중앙군사위는 6월23일 예정대로 열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본회의가 아닌 예비회의라는 전례 없는 형태로 개최되었고, 총참모부가 제기한 군사행동계획도 전면 보류해버린 것이다.

ⓒ연합뉴스1월11일 북한이 SLBM을 시험발사하는 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잠수함이 운항하고 있다.

예비회의라는 형식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기간에 처음 등장했다. 본회의를 소집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편법으로 만든 회의라는 느낌을 준다. 이 6월23일 회의를 계기로 북한의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싹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대남 규탄 분위기는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제 살리기 정면돌파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6월23일의 회의 결과가 워낙 갑작스러운 것이라 일선 현장에서 혼선도 빚어졌다. 최전방에서는 대남 확성기를 설치한 지 사흘 만에 다시 철거가 단행되었다. 〈조선의 오늘〉 같은 대외 선전매체는 6월24일 새벽에 올린 대남 비난 기사를 급히 삭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여정이 주도하는 대남 공세가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는 대미 전략 공세로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제7기 5차 회의를 곧 소집해 신포에 준비 중인 SLBM 발사를 단행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아주 이상한 예측은 아니었다. 북한이 기술적 측면에서는 SLBM 발사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5월31일 탈북자 단체의 전단 살포를 계기로 김여정이 6월4일 담화를 통해 대남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북한은 이미 SLBM 발사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전단 살포 일주일 전인 5월24일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7기 4차 회의에서 결의한 ‘전략무기의 격동상태 유지’라는 대목이 바로 SLBM에 대한 것이다.

이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7기 4차 회의는 5월 초에 실제로 감행된 SLBM 실전 배치 작업을 당 군사위 차원에서 추인한 절차였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 NK〉 5월14일 기사는 “5월5일부터 해군 4전대와 제5전대에 수중탄도로케트(SLBM)를 실전 배치하는 작업이 시작됐으며 실력 있는 수중함선(잠수함) 지휘관과 기술원, 군인들을 대상으로 이달(5월) 22일까지 간부사업과 대렬, 조동배치사업을 완료할 계획”이라며 “이번에 진수된 잠수함 두 대는 모두 3200톤급으로 수중탄도로케트를 3발씩 탑재할 수 있으며 공기불요장치체계를 탑재해 잠항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정리하자면 북측에서는, 5월 초에 3200t급 잠수함 2대에 각 3발씩 SLBM 실전 배치가 이뤄졌고, 5월24일 당 중앙군사위 제7기 4차 회의에서 이를 추인하며 격동 상태를 유지할 것이 결의되었다. 때마침 탈북자들이 전단을 살포하자 이를 빌미로 남북관계를 긴장으로 몰고 가면서 6월16일 연락사무소 폭파까지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것이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미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연락사무소 폭파 이틀 후인 6월18일 전후, 미군 측의 정찰기·전투기·전략폭격기가 총동원되었다. 미국 공군정찰기 리벳조인트(RC-135W)가 6월18일, 서울·경기와 수도권 접경지대에서 북한 동향을 탐지했다. 그 전날에는 미 해군의 에리스 정찰기(EP-3E)와 주한 미군의 가드레일(RC-12X) 정찰기가 수도권 상공을 비행했다. 미국 태평양 공군사령부는 B-52H 전략폭격기 2대가 일본 항공자위대 F-15 전투기와 동해 일대에서 연합작전을 전개했다고 밝혔다. 주한 미군의 근접 지상공격기인 A-10 전투기와 F-16 전투기도 이날 오산 공군기지를 출격해 초계비행을 시작했다.

ⓒ연합뉴스6월18일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에서 고공 정찰기 U-2S가 임무를 마치고 착륙하는 모습.

6월17일, 미국 국방 영상정보 배포 시스템은 일본 미사와 기지에 전진 배치된 제209 전자전 공격비행대 소속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전자전쟁을 치르는 비행기)와 P-8A 포세이돈 대잠초계기가 동해상에서 합동 훈련하는 사진을 내보냈다. 그라울러 전자전기는 북한 미사일을 ‘재밍(전파방해)’으로 빗나가게 해 대잠초계기(적의 잠수함을 탐지하고 공격하는 비행기)인 포세이돈을 보호한다. 한편으로는 북한의 3200t급 잠수함과 육상의 지휘통제부 간 극초단파 단문 통신이나 UHF와 VHF 등 모든 통신을 ‘재밍’해 잠수함을 고립시키기도 한다. 이때 대잠초계기 포세이돈이 잠수함을 격침하게 된다. 7월15~16일 일본 시코쿠 남방 해역에서는 미 해군 해상 초계기 한 대가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디젤잠수함을 대상으로 특별 탐지·공격을 훈련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태평양 사령부 소속 해·공군, 전략군, 주한 미군 가릴 것 없이 모든 정찰기와 폭격기, 전투기 등이 떼를 지어 한반도 상공을 누비고 다녔다. 미군은 3200t급 잠수함에 초점을 맞춰 제한 타격훈련까지 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3일 북한 외무성 리태성 미국 담당 부상은 담화를 통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대해 같은 해 12월18일 찰스 브라운 미 태평양 공군사령관은 “2017년에 우리가 했던 많은 것들의 먼지를 떨어내고 이용할 준비가 됐다”라고 응수했다. 브라운 사령관이 말한 ‘2017년에 했던 많은 일’이란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 전략을 가리킨다. 그것은 앞에서 보았듯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연합뉴스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운데)가 7월8일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만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7년에 미국이 준비한 것들

첫째는 2017년 3월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입안한 ‘새로운 억지’ 전략이다. 특정 타깃에 대한 제한적인 공격으로 북한이 반격할 수 없도록 억지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코피 전략’으로 불리기도 했다. 2018년 4월6일 시리아 화학공장에 대한 토마호크 미사일 공격이나 올해 1월3일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에 대한 무인공격기 ‘MQ-9 리퍼’ 공격이 이에 해당한다. 2018년 2월 군산의 주한 미군기지에는 이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MQ-1C 그레이 이글’이 12대나 배치됐다. 지난해 스톡홀름 회담이 결렬되고 북한이 SLBM을 발사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자 주한 미군은 10월15일부터 18일까지 성남에서 열린 서울에어쇼에 이 ‘그레이 이글’을 선보였다. 북한에 대한 경고였던 셈이다. 이로부터 석 달 뒤엔 그레이 이글보다 구세대 무인기인 리퍼로 솔레이마니를 살해했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SLBM 발사 및 3200t급 잠수함에 대한 미군의 초계 훈련은 ‘새로운 억지’ 내지는 코피 전략 개념에 따른 실전 훈련일 가능성이 높다. 예전처럼 북한이 SLBM을 발사하면 ‘쐈나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미군의 제한 공격에 북한이 반격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한국이나 일본을 대상으로 반격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엔 전면공격으로 전환해 김정은 정권을 종식시킨다는 게 최대 압박 전략의 두 번째 단계인 ‘글로벌 리치 전략’이다. 미국 태평양군, 전략군, 수송군, 특수작전군 등을 망라해 전 세계 어디에나 24시간 안에 도달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작전 개념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2017년 7월 말 작전계획이 완성돼 각 군별 훈련이 계속돼왔다. 이번처럼 북한의 무력도발 징후가 나타나면 각 군별 작전 개념에 따라 한반도 상공에 대한 신속 전개 훈련을 펼치게 되어 있다. 지난 6월 다종다양한 정찰기, 전투기, 폭격기들이 한반도 주변에서 쉴 새 없이 등장한 이유다. 지난해 12월 브라운 사령관이 언급한 ‘2017년에 미국이 준비한 것들’을 북한이 지금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그 2017년의 준비에서 빼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그해 11월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일이다. 9·11 테러 직후 제정된 ‘반테러무력사용권한법’에 따르면 “미국을 향한 테러 징후가 농후할 경우 미 대통령이 의회 동의 없이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김여정이 담화에서 언급한 ‘미국이 제풀에 섣불리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는 법적·군사전략적 준비가 이미 모두 갖춰져 있는 것이다.

북한이 SLBM 카드를 준비한 목표는 미국과의 맥락 없는 군사적 긴장 고조나 트럼프의 선거 방해가 아니다. 타이완 문제나 홍콩 사태 등으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중국을 거들어주고 그 대가로 코로나19 이후 산적한 국내 문제 해결에 경제적 도움을 받기 위함이다. 애초부터 ‘남북 긴장 후 당 중앙군사위 개최 및 전략도발 감행’이라는 스케줄은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앞으로 북한의 선택은 전적으로 미·중 관계의 추이와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톤다운’을 할 때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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