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시험까지 딱 60일 남았다. 쉬는 시간에도 첸니엔(저우둥위)은 쉬지 않는다. 이어폰을 꽂고 영어 공부를 한다. 갑자기 부산해진 교실. 이어폰을 빼는 첸니엔. 멀리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창가에 붙어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꺼내든 휴대전화.

아이들이 찍고 있는 화면 속으로 첸니엔이 걸어 들어간다. 겉옷을 벗어 덮어준다. 조금 전까지 함께 급식 우유를 나른 친구였다, 겉옷 아래 누워 있는 사람은. 조금 전까지 그가 가져온 우유를 마신 반 친구들이다, 그 모습을 열심히 찍고 있는 아이들은.

다음 날. 깨끗하게 지워진 핏자국. 멀쩡하게 돌아가는 학교. 웃고 떠드는 아이들 틈에서 첸니엔 혼자 웃지 못하고 서성인다. 같은 반 친구 몇 명이 웃으며 다가온다. 타깃 교체. 죽어버린 아이를 대신할 새로운 장난감으로 선택받은 첸니엔. 그렇게 지옥이 시작된다.

영화 〈소년 시절의 너〉는 학교폭력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누구는 가해자로, 누구는 피해자로, 또 누구는 방관자로 지나온 ‘소년 시절’을 ‘그리운 추억’으로 미화하지 않고 ‘가혹한 현실’로 그려낸다. 소재의 쓴맛을 단맛의 장르로 달래기로 한다. 청춘 로맨스. 포스터 속 첸니엔이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베이(이양첸시)의 허리를 감싸 안은 이유다.

양아치 소년, 모범생 소녀를 만나다. ‘그 시절, 우리가 괴롭혔던 소녀’를 지켜주다. 알고 보면 여린 심성을 지녔지만 알고 보려는 사람이 오직 한 사람뿐이라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바치는, 잘생기고 싸움 잘하는 수호천사의 등 뒤에서 비로소 첸니엔은 마음껏 울고 또 힘껏 웃는다.

“어른이 되면 좋은 게, 잘 잊는 거래”

자, 여기까지 읽고 ‘뭐야, 뻔한 통속극이네’ 고개를 돌려버린 성급한 사람은 올여름 가장 애틋한 영화 한 편을 방금 놓친 것이다. 통속은, 힘이 세다. 잘 만든 통속은 섣부른 예술보다 감정을, 질문을,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더 깊이 관객의 심장에 찔러 넣는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연출한 쩡궈샹(증국상) 감독은, 또 한 번 세련된 통속의 힘으로 나의 지지부진한 하루를 뒤흔들어놓았다.

“어른 되면 좋은 게, 뭐든 잘 잊는 거래.” 어서 어른이 되어 지금의 고통이 잊히기만 바라는 첸니엔의 쓸쓸한 표정을 반환점 삼아, 판타지를 향해 달려가던 관객이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내가 당할 때 너는 왜 보고만 있었니?” 뛰어내리기 전 친구가 던진 마지막 질문이 우리 앞의 결승선이 된다. 〈소년 시절의 너〉가 끝난 곳에서 ‘소년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게 된다.

끝으로 하나 더. ‘어른 되면 뭐든 잘 잊는다’고 하더니, 첸니엔의 모든 표정은 단 하나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다시 아이가 된 게 아니라면, 지금 가장 반짝이는 배우 저우둥위의 연기가 그만큼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꼭 챙겨 보시라는 말씀.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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