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어느 날, 네팔 집에서 한국 방송을 보고 있는 미노드 목탄, 한국 이름 ‘미누’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노래방 책에서 김범수의 ‘보고 싶다’를 고르는 일상이 차례차례 카메라에 담긴다. 아니 왜? 이 나라가 뭐가 이쁘다고?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미누 씨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1992년 2월22일 처음 이 땅에 왔다.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 때 경기도 의정부 한 식당에서 일했다. 타지에서 고생하는 청년을 ‘식당 아주머니들’이 챙겨주었다. “먹을 것도 주시고, 옷도 갖다주시고. 특히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셨어요. ‘아프면 나한테 얘기해’ 하시고. 그 얘기가 너무 따뜻했어요.”

서울 종로구 창신동 봉제공장에서도 일했다. “형 같은 사장님”은 외환위기 때도 그를 내치지 않았다. 따뜻한 사람들과 부대끼는 살가운 시간들이 쌓여갔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자신이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맞고 다치고 그러다 쫓겨나는 동료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혼자 운이 좋았던 게 미안해서 같이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2009년 10월23일, 삶의 절반을 보낸 이 나라에서 추방되었다. 그 뒤로 매일, 한국을 그리워하며 산다.

“엄마가 자식에게, 꼴도 보기 싫어! 나가! 하면, 첨엔 그러겠죠. 그래! 나간다! 안 돌아올 거야! 근데 조금 지나면 또 엄마 생각이 나고, 집 생각이 나고. 그러잖아요. 한국을 향한 내 마음도 비슷한 거 같아요. 저는 제가 한국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그런 착각으로 살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미누 앞에서 감독은, 다큐멘터리는, 그리고 나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입이 무거워진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그가 먼저 웃는다. 미안해하는 우리에게 그가 먼저 미안해하면서.

한국 사람 미누, 네팔 사람 미노드 목탄

‘네팔 출신 문화활동가 미누의 강제추방에 반대하여 탄원서를 쓰는 한국인들’ 이야기가 여러 매체에 소개된 2009년, 나도 미누라는 사람의 존재를 기사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개봉 소식을 듣고 ‘내가 아는 사람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안녕, 미누〉를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를 몰랐다. 모르면서 안다는 착각으로 살았다. 우리는, 그리고 이 나라는 ‘다문화’를 이야기하면서 ‘타 문화’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닫았다.

‘한국에서 쫓겨난 사람’이 아니라 ‘한국을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했던, 참 지고지순한 짝사랑의 러브스토리. 한국에서 지겹도록 낀 빨간 목장갑 한 켤레를 액자에 넣어, 소중한 보물처럼 거실에 걸어둔 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처음 만난 사람인데 다시 만난 사람처럼 친근한 네팔 사람 미노드 목탄. 만난 적도 없으면서 오래 사귀다 헤어진 연인처럼 그리운 한국 사람 미누. 이미 떠나보낸 사람이지만 아직 떠나보내기 싫은 사람이라서, 그의 아름다운 일생을 나는 며칠째 마음속으로 복습하고 있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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