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다. 덥다. 그럼에도, 본격이라는 느낌은 아직 좀 덜하다. 늦은 밤이 되면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연약한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 그래, 맞다. 이런 밤에는 자고로 발라드가 최고다. 최근에 반복해 들었던 발라드를 몇 곡 소개한다. 진짜 더워지기 전에 어서 빨리 플레이 리스트에 집어 넣고 감상해보길 바란다. 아, 참고로 발라드는 장르가 아니다. 템포가 느리든 빠르든 보통이든, ‘통속적인 사랑 노래’를 일컬어 발라드라 부른다.

이주영 ‘나도’ (2019)

이주영은 신인 아닌 신인이다. 1994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2019년에야 데뷔작을 냈기 때문이다. 홍대 신에서 꾸준히 라이브를 하기 시작한 건 2005년 즈음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1집 〈이주영〉으로 올해 초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 ‘최우수 포크 앨범’ ‘최우수 포크 노래’, 이렇게 총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글쎄. 포크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긴 했지만 이주영은 그냥 탁월한 싱어송라이터다. 여리고, 섬세하게 시작하다가도 힘을 줘야 되는 포인트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바로 이 곡, ‘나도’를 들어보라. 이보다 아름다운 발라드 만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데 당신도 동의할 것이다. 더불어 ‘최우수 포크 노래’ 후보에 올랐던 ‘오후에’도 강추한다.

앨릭 벤저민 ‘매치 인 더 레인 (Match in the Rain·2020)’

빗속에서 한판 뜨자는 게 아니다. 빗속에서 성냥불을 켠다는 거다. 여기에서 비는 이별을 상징한다. 그렇다. 이미 이 관계가 종말에 다다랐음을 주인공은 직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다.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이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것임을 또한 알고 있다. 한데 이걸 어쩌나. 그는 도저히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심정을 빗속에서 성냥불 켜는 행위에 비유한 것이다. 실패하여 몰락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자의 비극이랄까.

이 곡, 여러 차례 방송에서 소개했다. 모두가 놀랐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앨릭 벤저민은 남자다. 그러나 모르고 들으면 열이면 열 ‘여자 아니냐’고 되물었다. 요즘 시대에 남녀 따지는 게 우습기는 하지만 목소리의 보편적 인상이 그렇다는 의미다.

개빈 제임스 ‘박시즈 (Boxes·2020)’

빌보드나 영국 차트에서 날아다닌 적은 없지만 적어도 아일랜드에서는 최고 인기 뮤지션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그래미라 불리는 초이스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다. 대표곡으로는 ‘Nervous’가 꼽히는데 먼저 이 곡을 감상하길 권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매력적인 포크 발라드 소품이다.

‘Boxes’는 개빈 제임스가 최근 내놓은 싱글이다. ‘Boxes’는 기성세대가 강요하는 어떤 한계를 뜻한다. 개빈 제임스는 이 곡을 통해 갇힌 상자를 뚫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노래한다. 그리하여 삶의 매 순간을 사랑하라고 격려를 보낸다.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 우리 인생을 향한 찬가도 충분히 발라드가 될 수 있다. 이 곡이 증명한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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