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컨트리 가수였다. 예쁘장한 10대 소녀가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에 (백인) 대중이 반응했고, 2006년 데뷔작을 발표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다. 2008년의 2집 역시 기조는 비슷했다. 다만 전반적인 곡 퀄리티가 훌쩍 상승했고, 구성도 좋았다. ‘백인 소녀’가 ‘컨트리 팝’을 부르는데 곡도 빼어나니 보수적인 그래미 위원회가 선호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바로 이 음반, 〈피얼러스(Fearless)〉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

그것은 영광의 시작인 동시에 비극의 전조였다. 상업적으로는 정상으로 치솟아 올랐지만 그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렸다. 무엇보다 카녜이 웨스트 난입 사건이 결정타였다. 카녜이 웨스트가 누군가. 2000년대 힙합을 논하는 데 빼놓아서는 안 될 천재다. 흑인임에도 트럼프 대통령 열성 지지자라는 점이 그를 ‘기묘캐(기묘한 캐릭터)’로 만들었지만 음악적으로는 깔 게 없다.

때는 2009년, 장소는 MTV 비디오 뮤직어워드였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유 빌롱 위드 미(You belong with me)’로 ‘올해의 비디오’상을 거머쥐며 감격하고 있던 차에 카녜이 웨스트가 무대에 난입했다. 그러고는 마이크를 빼앗아 “이 상은 비욘세에게 갔어야 한다”라고 외쳤다. 황당한 표정을 지은 건 관객과 테일러 스위프트만이 아니었다. 지목당한 비욘세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후 카녜이 웨스트는 ‘페이머스(Famous)’라는 곡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를 저격하면서 악연을 이어나갔다.

자, 여기까지 읽고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다큐멘터리를 추천하고 싶다. 제목은 〈미스 아메리카나〉.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 인생을 담아낸 동시에 그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결정타는 언론과 대중의 악의로 가득 찬 언어였다. 만약 사람의 심장을 꿰뚫고 피 흘리게 하는 언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다큐멘터리의 중반부를 보면 된다.

아니다. 그런 언어, 이미 소셜 미디어에 넘쳐난다. 상대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를 퍼부어대는 언어.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가 그를 싫어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서슴없이 혐오를 내뱉는 언어. 결국 테일러 스위프트는 미디어의 시야에서 잠시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그러고는 커리어 사상 최고작이라 불릴 만한 앨범 〈레퓨테이션(Reputation)〉 (2017)과 함께 복귀한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각성을 거쳐 성장하다

음반의 절정이라 할 수록곡 ‘룩 왓 유 메이드 미 두(Look what you made me do)’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렇게 노래한다. “올드 테일러는 죽었고, 이제 전화 못 받는다.” 그러나 곡 중간에도 나오듯이 그는 “더 똑똑하고 강해진 정신으로 (무장한 채) 무덤에서 다시 일어설 것”이다.

이제, 당신이 알던 ‘미스 아메리카나’는 여기에 없다. 10대 시절 미소 지으며 무대에 오르던 착한 소녀는 더더욱 없다. 차라리 그는 악역을 자처할 것이다. 〈미스 아메리카나〉는 근 몇 년 새 만난 최고의 음악 다큐멘터리 중 하나다. 한 인간이 인생의 전환점에서 각성을 거쳐 얼마나 근사하게 변하는지 목격하고 싶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보시라. 강력하게 추천한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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