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표준음향사추다혜차지스의 정규 1집 앨범인〈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의 커버 이미지.

첫인상은 ‘사이키델릭하다’였다. 다음으로는 펑크(funk)가 흥취를 돋우더니 어떤 곡에서는 힙합 비트가 너울지면서 춤을 춘다. 이거 참, 기가 막힌 음악이다. 평안도·제주도·황해도 굿에서 쓰이는 무가(巫歌)에 서양음악을 절묘하게 섞어냈다. 기실 이런 흐름은 ‘씽씽(SsingSsing)’ 밴드의 등장 이후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형성한 바 있다. 전통음악에 서양의 비트를 융합하는 식이다. 씽씽은 이런 움직임에 허브 구실을 해준 위대한 선구자였다. 이 밴드에서 연주를 맡던 일부가 ‘이날치’를 결성해 막 1집을 내놓았고, 간판이던 이희문은 꾸준히 앨범을 공개하며 독보적 입지를 쌓고 있다. 그리고 여기, 추다혜가 있다.

정확하게는 추다혜가 결성한 추다혜차지스다. 씽씽이 휴식을 선언한 이후 어떤 행보를 취할지 궁금하던 차에 이런 환상적인 결과물을 들고 복귀했다. 장담할 수 있다. 추다혜차지스의 데뷔작 〈오늘밤 당산나무 아래서〉는 2020년 가장 탁월한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어떻게 이리 쉽게 확언할 수 있냐고 묻지 마시라. 이건 음반을 감상한 모두의 의견을 그저 수렴한 것에 불과하니까.

‘undo’에서부터 신묘함이라는 게 폭발한다. 이 곡에서 추다혜차지스는 하드록 연주와 랩에 가까운 사설을 통해 이제부터 질펀한 굿 한판이 펼쳐질 것임을 예견한다. 이 곡과 ‘비나수+’의 이어짐은 절묘하다. 록에서 덥(dub)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사이키델릭한 터치와 나른한 분위기의 비트를 자연스럽게 밀어낸다. 참고로, 덥은 레게에 뿌리를 둔 장르다. 레게의 연주 부분을 따로 떼어온 뒤 각종 효과를 더한 스타일이라고 보면 된다.

그중에서도 공간감을 강조하는 ‘딜레이’와 ‘리버브’ 이펙트가 덥이라는 장르의 핵심이다. 이런 소리의 몽환은 3번 곡 ‘오늘날에야’에서 “부정을 씻자”라는 노랫말과 함께 첫 정점을 찍는다. 간결하고 깔끔하면서도 사운드의 질감이 풍성한 곡이다. 탁월한 편곡의 힘 덕분이라고 봐야 한다.

앨범 전체의 정점은 ‘사는새’와 ‘리츄얼댄스’에 위치한다. 추다혜는 서도민요 전공자답게 콧소리와 속소리를 두루 아우르면서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고, 장르의 국경을 충돌과 융합의 과정 속에 와르르 허문다. 뭐로 보나 인위적으로 나뉜 경계 따위 의식하지 않은 음악임에 분명하다. 그의 세계 안에서 장르의 세목(細目)은 음악이라는 더 큰 존재 아래 공평한 자리를 부여받고, 끝내 무화(無化)된다. 모든 곡에서 추다혜는 강렬한 극화를 완성하는데, 거기에는 그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없다. 과연, 진짜배기 접신이란 이런 것이리라.

신명으로 접신하는 무당의 음악

음반의 기초를 닦아준 무가는 모두 작자미상이다. 굿판 현장에서 불렸으되 채보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추다혜차지스는 원전 그대로를 따르지 않고, 이를 현대에 맞게 다듬어내 더 큰 찬사를 위한 길을 스스로 닦았다. 그중 ‘비나수+’의 성취가 특별하다. “서울하고도 특별시라/ 서대문구 연희동 로그스튜디오로 (중략)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엮어/ 굿 패키지로다.”

이 샤먼의 제의와도 같은 음악이, 신명으로 접신하는 무당의 음악이 2020년이라는 타임라인에 이렇듯 근사하게 들어맞을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랍다. 주지하다시피 과거의 샤먼은 종교의식을 주관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의 샤먼은 누구일까. 그렇다. 뮤지션이다. 당신이 사람과 열광으로 들끓는 공연장에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그 현대판 샤먼들 중 가장 우뚝 선 존재가 신비의 기운을 등에 업고 지금 막 탄생했다. 추다혜차지스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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