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할 수 없는 활강의 기쁨이 먼저 느껴진다. 시원한 속도감의 디스코로 달리면서도 코스가 바뀔 때마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회전하면서 변화의 포인트를 주는 솜씨가 이제는 거장급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음반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서늘하고 어두운 기운이 서려 있다. 위켄드(The Weeknd)는 갓 발매된 앨범 〈애프터 아워스(After Hours)〉에서 (과거의 곡 제목처럼) ‘스타보이’가 된 자신의 현재를 되짚어보고, 성찰한다. 피 흘리고 있는 얼굴 사진을 표지로 내건 이유다.
이전까지 나에게 2019년 말부터 현재까지 발표된 메이저 팝 앨범 중 최고를 꼽으라면 선택은 둘이었다. 해리 스타일스의 〈파인 라인(Fine Line)〉과 두아 리파의 〈퓨처 노스탤지어(Future Nostalgia)〉. 지금 분위기를 보아하니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이 두 장에 위켄드의 〈애프터 아워스〉를 넣는 건 어느새 상식 비슷한 게 되어버렸다. 상업적인 성과도 대단해 〈애프터 아워스〉는 발매 직후 미국에서만 44만 장을 돌파했고, 곧장 차트 1위로 진입했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기존 앨범 모두가 성공의 세례를 듬뿍 받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애프터 아워스〉는 다르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듯한 바이브는 한층 농도가 짙어졌고, 마이클 잭슨을 꼭 닮은 그의 팔세토는 더욱 간절한 톤으로 듣는 이에게 가서 닿는다. 그래서일까. 이것은 어쩌면 구조신호다. 피 흘리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제발 봐달라는 긴급한 시그널이다.
타이틀 곡 ‘애프터 아워스’의 뮤직비디오를 먼저 감상하기 바란다. 반드시 ‘숏 필름’ 버전으로 봐야 한다. 이 뮤직비디오는 위켄드가 출연했던 〈지미 키멜 쇼〉의 마무리부터 시작된다. 위켄드는 감사의 미소를 띠면서 무대 뒤로 퇴장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표정이 침울해지더니 거리를 무작정 쏘다니면서 울먹인다. 이 과정 속에서 위켄드는 섬뜩할 정도의 자아 분열을 겪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선글라스로 자신의 진짜 표정을 감추는 것일 뿐이다.
성공을 혐오하는 ‘현재의 위켄드’
그래, 슈퍼스타의 삶이라는 것이 늘 이런 거였지. 사람들은 쉽게 내뱉고는 한다. 그건 가질 거 다 가진 자의 사치스러운 푸념일 뿐이라고. 이런 유의 무심함, 아니 무례함에 반대한다. 그의 직계이자 팝의 왕으로 인정받았던 마이클 잭슨의 삶을 한번 돌이켜보자. 그 화려함에 감춰진 이면에 관해 음악 평론가 밥 스탠리는 이렇게 적은 바 있다. “마이클 잭슨은 끝없는 명성과 행운이 한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우리 안에 갇혀 관찰된 사회과학적 실험 대상 같았다.”
위켄드는 〈애프터 아워스〉를 작업하면서 〈조커〉 같은 블랙코미디 영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확실히 〈애프터 아워스〉의 결은 그가 기왕에 발표한 곡, 예를 들어 ‘아이 필 잇 커밍(I Feel It Coming)’이나 ‘스타보이 (Starboy)’와는 다르다. 과거의 위켄드가 자신의 성공을 찬미했다면 현재의 위켄드는 그 성공을 혐오한다. 그렇다. 〈애프터 아워스〉는 지난날의 자신을 향해 울리는 조종(弔鐘) 같은 앨범이다. ‘블라인딩 라이츠(Blinding Lights)’가 대표하듯이 ‘댄스’ 리듬을 동력 삼아 건설해낸 한 편의 아이러니한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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