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왜 민주당 지지로 ‘전향’했나?
  • 천관율 기자
  • 호수 659
  • 승인 2020.05.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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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사 결과 과거 미래통합당 지지자 가운데 15%가 민주당 지지로 넘어갔다. 이번 총선에서 이들은 93%가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단지 보수에 실망하거나 응징을 원해서가 아니라, 이념 성향 자체가 민주당 고정 지지층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 관계자들이 4월12일 서울 종로구 거리유세에서 큰절을 하고 있다.

〈시사IN〉의 2020년 총선 분석,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정당과 유권자의 결속관계(‘정렬’)가 왜 보기보다 단단하고 오래가는지, 그 결속관계가 흔들리는 일(‘재정렬’)이 왜 매우 드물면서 역사적인 사건인지 살펴보았습니다(〈시사IN〉 제658호 ‘드디어 진보는 다수파가 되었나’ 기사 참조). 그리고 한국 정치가 그런 드문 시기에 들어왔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시사IN〉은 총선 전부터 한국 정치의 재정렬 징후에 주목하고, 이를 검증할 설문조사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와 함께 준비했습니다. 조사를 총괄한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정치학 박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순한 결과 해설을 넘어 정치 지형의 재정렬 징후까지 잡아내려면 대단히 많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15개 문항 내외 전화면접조사로는 불가능하고, 대안은 질문 수를 백 단위로 쓸 수 있는 대면면접조사와 웹조사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의 유행 등 대면면접조사 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서, 한국정치학회나 정당학회에서도 선거 사후조사로 웹조사를 쓰는 추세입니다.” 이 웹조사는 182개 문항을 사용했습니다. 총선 이틀 뒤인 4월17일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조사했고, 모두 1100명이 응답했습니다.

웹조사에도 약점은 있습니다. 패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정치 고관심층이 더 많이 조사에 잡힙니다. 2020년 총선에서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는 33.8%이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8.7%만 잡힙니다. 또한 선거 후 조사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승자 편승 현상’으로, 진 쪽에 투표했다는 응답이 실제보다 적게 나옵니다. 미래통합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득표율은 평균 41.5%이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29.2%만 잡힙니다.

이런 약점이 있는데도 왜 선거 후 웹조사를 할까요? 정한울 전문위원의 설명입니다. “사후조사의 목적은 선거 결과를 그대로 재연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선거 결과를 가른 ‘결정적인 투표 블록’을 찾아내고, 그들이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하는 게 목적입니다. 선거를 결정한 지형 자체를 그대로 재연하는 게 아니라, 그 지형이 그렇게 형성된 이유를 탐구하는 게 목적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조사 결과를 분석하다 보면 분명해집니다.

〈그림〉은 이번 이야기의 뼈대를 보여주는 개념도입니다. 우리는 응답자들에게 현재의 지지 정당을 묻고, 또 ‘최순실 사태 이전의 지지 정당’을 물었습니다. 이것으로 현재 지지 정당과 2016년 이전 과거 지지 정당 정보를 얻습니다. 둘을 비교하면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기존 지지층이 얼마나 유지되고 얼마나 떨어져 나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향’ 그룹은 민주당에 강한 충성도 보여

과거 민주당 지지자 중 현재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79%입니다. 과거 민주당 지지자 중 현재는 지지자가 아닌 비율은 21%입니다. 과거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 지지자 중 현재도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는 비율은 59%입니다. 과거 미래통합당 지지자 중 현재는 지지자가 아닌 비율은 41%입니다. 이 네 그룹이 분석의 축이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민주당 지지에서 이탈한 그룹을 ‘탈민주’, 미래통합당 지지에서 이탈한 그룹을 ‘탈미통’으로 부를 겁니다. 또, 민주당 지지를 유지한 그룹을 ‘민주단심’, 미래통합당 지지를 유지한 그룹을 ‘미통단심’으로 부를 겁니다.

‘탈미통’ 중에서도 특별히, 민주당 지지자로까지 넘어간 그룹이 있습니다. 과거 미래통합당 지지자 중 15%가 여기에 속합니다. 선거 때마다 보수당과 진보당을 넘나드는 무당파는 적지 않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오가는 것처럼, 큰 틀의 진영 내에서 지지 정당을 바꾸는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하지만 아예 진영을 넘나드는 변심은 꽤 보기 드문 일입니다. 이 15%를 우리는 ‘전향’ 그룹으로 부를 겁니다. 2016년 총선부터 2020년 총선까지, 한국 정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지형 변화는 보수 투표연합의 위축입니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이것입니다. ‘탈미통’은 누구이며, 왜 이탈했는가. 그중에서도 누가 왜 ‘탈미통’을 넘어 ‘전향’에까지 이르는가.

이제 분석 도구들이 갖춰졌습니다. 〈표 1〉은 대선이 있던 2017년 5월부터 ‘민주단심’과 ‘미통단심’ 그룹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줍니다. ‘미통단심’ 그룹은 와해 단계까지 갔다가 복원 중이지만 여전히 미흡합니다. ‘민주단심’ 그룹은 악재에 흔들리기는 하지만 강한 결집력을 유지합니다. 이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현실정치의 궤적을 꽤 잘 설명합니다. 탄핵 충격파가 가라앉은 후에도 보수 투표연합의 위축이 여전히 나타납니다.

이들은 총선에서 어느 당 후보에게 투표했을까요? 〈표 2〉입니다. ‘민주단심’과 ‘미통단심’은 정당 충성도가 강합니다. 자신의 지지 정당에 투표한 비율이 둘 다 94%입니다. ‘탈민주’와 ‘탈미통’은, 떨어져 나온 본진이 다른데도 나란히 민주당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탈민주’는 40% 대 29%, ‘탈미통’은 48% 대 31%로 민주당 투표자가 좀 더 많습니다. 이것은 흥미로운 차이입니다. ‘탈민주’는 미래통합당으로 넘어가기 어려워하는 반면, ‘탈미통’은 민주당으로 더 많이 넘어갑니다.

이 차이를 만든 건 ‘탈미통’ 안의 ‘전향’ 그룹입니다. 이들은 93%가 민주당 후보를 찍어서, 충성도가 ‘민주단심’과 같은 수준입니다. 기존 보수 지지 연합의 15%가 이 정도로 강한 민주당 충성도를 보여준 것은 이번 선거에서 단연 주목해야 할 사건입니다. 반면 진보에서 보수로 넘어가는 ‘전향’은 3%에 그칩니다. 만약 기존 정치 지형이 50(보수) 대 50(진보)이었다고 한다면, 이 전향 효과만으로 지형이 44(보수) 대 56(진보)으로 재편됩니다. 박빙 대결이 12%포인트 차로 바뀌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경고를 주고 싶어도, 대안이 더 나쁘다면 유권자들은 야당을 찍지 않습니다. “민주당이 승리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었습니다. 〈표 3〉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잘해서’보다 ‘미래통합당이 잘못해서’ 쪽이 대부분 높습니다. ‘미통단심’은 말할 것도 없고, ‘탈민주’와 ‘탈미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민주단심’조차도 반반에 가깝게 나옵니다. 이번 선거는 야당이 못해서 진 선거라고 평가한다는 얘깁니다.

보수는 자부심을 잃었습니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국정운영 역량을 점수로 매겨달라고 물었습니다(10점 만점). ‘민주단심’이 평가한 민주당 점수는 7.4점입니다. 반면 ‘미통단심’이 평가한 미래통합당 점수는 5.0점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자랑스럽냐는 질문(〈표 4〉)에, ‘민주단심’은 56%가 자랑스럽다고 답했습니다. ‘미통단심’은 17%입니다. 이 사람들은 연성 지지층이 아니라, 보수가 쪼그라드는 와중에도 지지를 유지한 핵심 지지층입니다. 그런데 그들조차 미래통합당의 역량을 높이 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대 말고는 지지할 이유를 주지 않는 정당이라는 얘깁니다.

한동안 정치인들과 정치 분석가들은 “야당 심판 투표라는 건 없다”라는 말을 경구처럼 여겼습니다. 힘도 없는 야당을 심판할 목적으로 투표장에 나오는 유권자는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한울 전문위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당이 ‘야당을 심판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는 건 물론 안 먹히겠죠. 야당을 심판할 목적으로 투표하는 사람은 없더라도, 대안이 두 개뿐인데 야당이 더 나빠 보인다면, 그런 사람들은 도리 없이 여당을 찍게 됩니다. 그러면 결과는 야당 심판 투표가 되는 거죠.” 이번 총선은 야당 심판 투표가 있다는 걸 보여준 최초의 사례로 훗날 거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정희와 노무현, 모두에게 호감

핵심 지지층조차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정당이 연성 지지층을 잡아둘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대규모 ‘탈미통’이 ‘미통단심’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들 ‘탈미통’은 ‘미통단심’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일까요. ‘탈미통’의 크기는 기존 보수 지지층의 41%입니다. 남자(35%)보다 여자(47%)가 더 많이 빠졌습니다. 지역으로는 수도권 이탈(43%)이 큽니다. 세대로는 30대(51%)와 40대(58%)에서 더 크게 빠졌습니다. 요약하면, 보수는 원래 취약한 성별·지역·세대에서 더 취약해졌습니다. 기존 강세 영역을 복원하는 데는 일부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보수 열세 지형을 뒤집기 어렵습니다.

보수는 정치적 상징이 결정적으로 훼손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보수의 적통을 뒤흔드는 사건이었는데, 탄핵에 대한 태도는 ‘미통단심’과 ‘탈미통’을 가로지르는 뚜렷한 경계선입니다. 탄핵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미통단심’에서는 28%에 그칩니다. 하지만 ‘탈미통’에서는 70%나 됩니다(〈표 5〉). 이 주제에서 ‘탈미통’의 태도는 보수 핵심 지지층보다 민주당 지지층에 훨씬 가깝습니다.

‘탈미통’이 탄핵을 흘러간 옛날 일로 생각한다면 미래통합당은 이 문제를 얼버무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시도가 있었습니다. 분열된 보수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통합 작업을 벌일 때 나온 통합 원칙 중의 하나가 “탄핵의 강을 건너자”였습니다. 통합을 위해 평가 자체를 하지 말자는 취지였지요. 하지만 ‘탈미통’은 이 대목에서도 냉정합니다. “미래통합당이 탄핵의 책임을 충분히 치렀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탈미통’은 75%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탄핵 이후에 미래통합당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총선까지 세 번이나 참패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탈미통’은 미래통합당이 탄핵 책임을 치르지 않았다고 보는 겁니다.

ⓒ연합뉴스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7년 3월21일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 호에서 확인했듯, 보수 투표연합이 해체되기 시작한 건 탄핵 이후가 아니라 탄핵 이전인 2016년 4월 총선부터입니다. 탄핵은 ‘탈미통’을 극적으로 가속시켰지만, 탄핵 이전에도 ‘탈미통’의 징후는 있었습니다. 당시 집권세력이던 보수는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신뢰를 갈수록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탈미통’ 그룹은 민주당의 국정운영 역량을 4.9점으로, 미래통합당의 역량을 3.1점으로 평가했습니다. 원래 지지하던 정당에 대한 평가가 더 박합니다. 특히 경제 운영 분야에 대한 평가가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미래통합당은 경제 운영을 잘할 세력이다”라는 문장에, ‘탈미통’은 17%만 동의했습니다.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는 이미지는 이제 기존 지지층에서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러니 선거 캠페인에서 문재인 정부가 경제 운영을 실패했다고 퍼부어도 잘 먹히질 않습니다.

‘탈미통’은 흥미로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진보파를 대표하는 상징은 노무현 전 대통령, 보수파를 대표하는 상징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경쟁 붙이지 않고 각자의 호감도를 따로 물어보면 꽤 많은 응답자가 둘 모두에게 호감이 있다고 답합니다. 〈표 6〉을 보면, 특히 ‘탈미통’ 그룹이 그렇습니다. 나머지 세 그룹은 한쪽으로 호감도 쏠림이 나타나는 반면, ‘탈미통’은 두 상징에 대한 호감도가 모두 높습니다(박정희 73%, 노무현 69%).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인간적 호감 덕분에 이들이 ‘탈미통’이나 더 나아가 ‘전향’(노무현 호감도 86%)을 더 수월하게 선택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탈미통’을 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을 더 좋아하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탈미통’과 ‘전향’ 그룹에는 노무현 효과가 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탈민주’ 그룹에 박정희 효과가 크지 않은 것(박정희 호감도 36%)과 대조됩니다.

보수는 선거운동의 주전선도 완전히 엉뚱하게 잡았습니다. 〈표 7〉을 보면, ‘탈미통’과 ‘탈민주’는 둘 다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은 방역 실패론을 선거 내내 밀어붙였습니다. 통념과 다르게, ‘탈미통’과 ‘탈민주’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잘했다는 응답이 둘 다 49%입니다. 미래통합당은 최저임금 인상이 잘못된 경제정책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게 의외로 ‘탈미통’ ‘탈민주’ 그룹에 설득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이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파동, 부동산 정책, 대북 정책이었습니다. 이것들은 선거 이슈로 사실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보수는 자부심을 주지 못하고, 능력을 의심받고, 탄핵 책임론도 벗어나지 못했고, 상징 싸움에서도 밀리고, 심지어 선거운동도 잘못 했습니다. 보수 투표연합의 위축은 이 모든 실패의 귀결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면 보수는 예전의 지지 기반을 복원하게 될까요? 그러니까,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니 이제부터 잘하면 해결이 되는 걸까요? 그조차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징후가 있습니다.

“한국은 복지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라는 문장을 주고 찬반을 물었습니다(〈표 8〉). ‘민주단심’이 복지 친화적(동의 70%)이고 ‘미통단심’이 시큰둥(동의 19%)한 건 예상 가능한 결과입니다. 흥미로운 건, ‘탈미통’과 ‘탈민주’가 둘 다 복지 친화적으로 좀 더 기울어 있다는 겁니다. 복지와 성장의 관계를 묻는 다른 문항들에서도 이 미묘한 쏠림이 일관되게 확인됩니다. 이들이 진보로 기운다는 의미일까요? 〈표 9〉는 역시 미묘하지만 반대의 경향을 보여줍니다. “북한에게는 부드러운 대응보다 강경한 대응이 효과적이다”라는 문장의 찬반을 묻자, ‘탈미통’과 ‘탈민주’는 둘 다 강경 대응 쪽으로 기웁니다. 역시 북한 관련 다른 질문들에서도 일관되게 이런 태도가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두 정당 고정 지지층이 아닌 유권자들이 갖는 태도는, 경제 문제에서는 복지 쪽으로 한 걸음 이동하고, 안보 문제에서는 강경파로 한 걸음 이동하는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두 축에서, 이들은 경제 노선은 진보 쪽에 한 발을, 안보 노선에서는 보수 쪽에 한 발을 걸쳤습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12년 대선 시절 외쳤던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일부는 이념적 재편의 징후까지

2016년 4월 총선 이전에는, 이런 성향의 유권자들이 주로 보수 투표연합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의 국정 역량에 대한 평가가 낮아졌고, 노선상 이질성이 높은 이런 유권자들이 가장 먼저 흔들렸습니다. 이들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으로 대거 이동했습니다. 이것이 보수 다수파 구조가 흔들리는 중대한 계기였습니다.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이 숨 가쁘게 이어지면서, 이들은 국민의당이 소멸되는데도 보수 투표연합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의 일부는 더 멀리, 민주당을 지지하는 ‘전향’까지 나아갔습니다. ‘탈미통’ 블록의 일부는 이념적 재편의 징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표 10〉은 우리가 다뤄온 다섯 개 그룹이 스스로의 이념 점수를 매긴 결과입니다. 5점이 중도, 0점이 가장 진보, 10점이 가장 보수입니다. ‘민주단심’은 3.3점이고 ‘미통단심’은 6.8점입니다. 사실상 대칭입니다. ‘탈미통’과 ‘탈민주’는 중도인 5점 주위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전향’의 위치는 이들보다 더 왼쪽입니다. ‘전향’은 3.8점으로 ‘민주단심’과 멀지 않습니다. 보수 투표연합에서 떨어져 나온 15%가 민주당 투표연합에 합류하면서, 이들은 단지 보수에 실망하거나 응징을 원해서만 움직인 게 아닙니다. 그보다 이념 성향 자체가 민주당 고정 지지층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보수 다수파 구조를 종식시킨 주역이 누구인지 입체적인 상을 얻었습니다. ‘탈미통’을 사람으로 압축한다면, 그는 수도권에 사는 30~40대 여성입니다. 한때 보수당에 투표했지만 보수의 국정 역량에 실망했고, 특히 경제는 보수가 잘한다는 이미지가 박살이 났습니다. 안보는 여전히 강경 성향을 선호하지만, 경제에서는 성장과 복지를 둘 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낍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 완전히 호의적인 건 아닙니다. 조국 사태나 부동산 정책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은 야당이 된 후에도 대안세력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탄핵 책임조차 제대로 지지 않아서 도저히 대안으로 삼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이 구조적이고 지속적으로 보수 투표연합에서 이탈한다면, 정당과 유권자 사이의 정렬 구조가 깨지는 재정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걸 판정하려면 한참 이르지만, 징후는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재정렬은 여러 층위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탈’은 정당과 유권자 정렬관계가 끊어지는 겁니다. 이탈해 나온 유권자들이 아예 반대 진영 정당 지지자로 단단하게 바뀌면 ‘전향’이 일어난 겁니다. 그리고 정당·유권자 정렬에 잡히지 않던 유권자 블록이 어떤 정당과 새롭게 결속관계를 맺고 투표에 참여하게 되면 ‘동원’이 일어난 겁니다. ‘이탈’이 가장 얕은 변화이고 ‘전향’과 ‘동원’은 더 깊은 변화로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4월16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관련 입장 표명을 하기에 앞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2020년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이탈’의 징후가 비교적 뚜렷한 가운데, ‘전향’이 얼마나 단단한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른 상태로 보입니다. 이를 검토하려면 보수 투표연합의 반대쪽, 그러니까 진보 다수파 시대를 향해 가는 민주당 투표연합의 모습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당 다수파 연합’이 등장하고 있을까요? 180석을 점유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다수파 연합을 다지려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면 안 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다음 작업은 이런 질문들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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