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검찰개혁 충돌 정국의 어느 날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열렸다. 한 여당 의원이 야당을 향해 내내 호통을 쳤다. 그는 다음 날 인터넷에서 최고 스타가 되었다. 사자후를 토했느니 야당을 얼어붙게 만들었느니, 좀 민망한 찬사가 범벅된 유튜브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그 의원이 야당을 얼어붙게 만들기는 했다. 완전히 엉뚱한 얘기여서 아무도 대답할 필요를 못 느꼈으니까. 법사위는 그의 발언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그냥 가던 길을 갔다.
방송 화면에 강한 퍼포먼스형 국회의원은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유튜브 시대 이전의 국회는 대부분 정말로 회의장이었고, 단지 텔레비전 카메라가 있는 곳만 무대였다. 영상용 퍼포먼스는 이런 예외적인 무대에서만 가능했다(국회가 정말로 회의장이라는 생각을 우리가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중 대부분이 텔레비전으로 국회를 보았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이 규칙이 뒤집혔다. 유튜브 시대의 국회는 스마트폰 한 대면 거의 모든 곳이 무대다. 발 빠른 몇몇 의원들은 촬영과 이미지 연출을 전담하는 보좌진을 두었다. 이편이 ‘가성비’가 낫다. 3분짜리 짧은 영상으로 전국구 스타가 될 수 있다.
유튜브형 의원들이 민낯을 드러내는 공간이 있다. 국회 속기록이다. 특히 상임위 법안소위 속기록을 읽어보면 잘 보인다. 여기서는 영상 퍼포먼스가 통하지 않는다. 쟁점에 대한 이해도와 논리와 동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이 법안의 운명을 결정한다. 속기록을 읽으면, 논의를 주도하는 의원이 누구이고(갈수록 발언권이 그에게 몰린다) 겉도는 의원이 누구인지(말을 해도 호응은커녕 반박도 못 받는다) 꽤 생생하게 드러난다. 속기록형 의원은 유튜브형 의원보다 덜 유명할지는 몰라도, 실제 결과를 만들어낸다.
제21대 국회에는 초선 의원 151명이 들어간다. 절반이 넘는다. 이들이 유튜브형 의원을 역할 모델로 삼는다면, 우리는 SNS 스타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이들이 속기록형 의원을 역할 모델로 삼는다면, 우리는 실력 있는 입법자를 더 많이 얻게 될 것이다. 이쪽 길이 훨씬 지루하고 오래 걸리고 환호나 갈채가 없고 지지자들이 알아보기도 어렵다. 우리에게는 이런 따분한 입법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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