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4월1일 인천광역시 남동구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실업급여를 신청하는 시민들.

조미숙씨(47·가명)는 3월31일 인천 남동구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실업급여 수급자격 인정 신청서를 썼다. 그는 실직 전 인천공항에 입점한 한 면세점의 하청업체에서 물류를 담당했다. 지난 1월부터 물량이 줄더니 2월부터 무급휴직이 본격화되었다. 3월에는 선택지가 둘이었다. 무급휴직 상태로 기약 없이 기다리거나 희망퇴직(권고사직)하거나. 그는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 “생활은 해야 하니까요.” 당분간 최저임금의 80%인 실업급여로 생활한다.

조씨의 남편은 관광통역 일을 한다. 코로나19 이후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 계약하려던 중국인 고객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 일이 잡히지 않아 몇 달째 집에서 쉬고 있다. 기자가 조씨에게 남편은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안 되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씨의 남편은 프리랜서다.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가 아니어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한집에 살면서 똑같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두 ‘일하는 시민’의 운명은 이렇게 갈린다.

코로나19로 실업급여 신청이 늘고 있다. 생계에 타격을 받으면서도 실업급여는 받지 못하는 거대한 집단이 문제로 떠올랐다. 프리랜서인 조씨의 남편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고용보험 가입자여야 한다. 2018년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49.2%로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그림 1〉 참조). 취업자이면서도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

ⓒ시사IN 최예린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 등 노동자가 아닌 이들이 686만2000명으로 취업자의 25.5%를 차지한다. 노동자이면서도 고용보험에서 제외된 공무원, 교원, 별정우체국 직원, 5인 미만 농림어업 종사자, 가사서비스업 종사자, 주 15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3개월 이상 근속자 제외), 65세 이상 노동자 등도 315만5000명(취업자의 11.7%)에 달한다.

취업자 중에서도 1000만명이 고용보험의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게다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이지만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도 취업자 중 13.5%(364만 5000명)를 점유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시장 내에서도 취약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2019년 8월 기준 고용보험 가입률은 정규직 87.2%, 비정규직 44.9%다(〈그림 2〉 참조).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더라도 모든 시민은 실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은 고용보험 외에도 실업부조라는 제도를 운영한다. 노사의 보험료 대신 조세 재정으로 고용보험에 포괄되지 않는 취약 실업자를 지원하는 제도다. 고용보험 가입 이력이 없는 청년 구직자도 이 제도가 있으면 일정 정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좁은 데다 이를 보완할 실업부조도 운영하지 않는다(최근에야 정부는 저소득 구직자에게 월 50만원씩 6개월 지원하는 ‘한국형 실업부조’를 준비하고 있다). 취업성공 패키지라는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소득보장 기능은 약하다.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사실상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공공부조밖에 남지 않는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근로 능력자의 비중은 점점 줄어 2016년 18.4%에 그친다(이병희, 〈근로빈곤 특성과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방향〉, 2018).

그 결과, 2016년 기준 전체 실업자 대비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의 비율은 37%로 OECD 다른 나라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그림 3〉 참조). 일자리를 잃은 10명 중 실업급여를 받는 인원이 4명이 안 된다. 실업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은 실업급여 지급 수준이나 기간도 문제지만,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지나치게 넓다. 특히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는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건설 일용직 등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생계 지원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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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 노동자 위한 법안, 국회에서 ‘낮잠’

고용보험의 대표적 사각지대가 바로 특수고용 노동자다. 전통적 노동관계에서는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가르는 기준이 ‘고용 여부’였다. 고용되어 있으면 종속적으로 일하고, 자영업자라면 자율적으로 일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었다. 이게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노동자’ 혹은 ‘자영업자’라고 딱 잘라 부를 수 없는 집단이 확대되어왔다. 이들은 고용되어 있지 않지만(즉 자영업자 신분이지만) 노동자와 비슷하게 타인(사업주)에게 종속되어 일한다. 일에서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전통적 노동자와도 다르다. 그래서 ‘특수고용 노동자’로 불린다.

2000년대 초반부터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보호 방안이 논의되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보험설계사, 콘크리트믹서트럭 운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 등 9개 직종에 한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했을 뿐이다. 2018년 특수고용 노동자와 예술인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으나 아직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경기도 수원에서 일하는 한 학습지 교사는 코로나19 이후 수업 과목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교사들은 회비의 일정 비율을 수입으로 가져간다. 이를 ‘승률’이라고 하는데, 수업하는 과목수가 줄어들면 승률도 떨어진다. 교사들을 관리하는 본사 정규직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유급휴직을 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인 학습지 교사들은 실업급여 등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4대 보험이 제일 희망사항이지만, 우리의 뜻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재난인데 승률이라도 낮아지지 않게 보전해주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코로나19로 고용보험 등 실업 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와 프리랜서 14만명에게 17개 광역자치단체를 통해 월 최대 50만원씩 최장 2개월간 생계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정책 대상에 포함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수고용 노동자의 전체 규모는 약 23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번 대책의 대상이 된 14만명과는 차이가 크다. 실업 여부에 대한 규정도 경직적이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콜 수가 50%(대구·경북 지역은 70%)나 줄었다. 대다수가 전업인 대리기사들은 감염 위험을 무릅쓰면서 한 콜이라도 뛰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대리기사는 5일 이상 일하지 못해야 생계비를 신청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현실과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19 이후 실업 안전망의 변화를 보면, 한국과는 보폭 차가 크다. 실업 안전망이 관대하다고 할 수 없는 미국에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경기부양법안에 따르면, 프리랜서와 우버 운전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 독립 계약자 등도 자신이 사는 주에서 지급하는 평균 실업급여의 절반을 받을 수 있다. 추가로 연방정부에서 나오는 주당 600달러(약 74만원)도 수령할 수 있다. 전통적인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들에게 실업부조의 문호를 확대한 것이다. 덴마크에서는 코로나19로 수입이 30% 이상 떨어진 1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원래 얻던 월수입의 최대 75%까지 정부 돈으로 지원한다(월 최대 2만3000크로네, 약 413만원). 대상은 2019년 한 해 동안 18만~80만 크로네(약 3233만~1억4369만원)를 벌어들인 프리랜서와 자영업자들이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세계 각국에서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자영업자 또는 ‘위장된 자영업자’를 위해 실업 안전망 폭을 넓혀왔다.

대한민국은 부실한 실업 안전망형 국가

한국 역시 2012년부터 자영업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1% 미만에 그친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등에게 고용보험을 넓혀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과, 그래도 포괄되지 못하는 이들을 실업부조로 받쳐주는 일 모두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휴·폐업에 몰린 자영업자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방법이 현재로선 마땅치 않다.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실업 확인도 쉽지 않고, 사업주 부담분까지 혼자 다 부담해야 해 과중한 면도 있다.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국가가 면제 혹은 지원하거나, 소규모 사업주와 소속 노동자의 고용보험료 등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두루누리 정책을 1인 자영업자에게도 확대할 수 없는지 검토할 시점이다.”

이승윤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는 OECD 12개국을 대상으로 실업 안전망을 비교했다(〈실업안전망 국제비교연구:실업보험, 사회부조,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의 제도조합과 유형화〉, 2018). 그 결과 한국은 이탈리아·일본·영국과 함께 ‘부실한 실업 안전망형’ 국가로 꼽혔다. 고용보험·공공부조·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모두 관대하지 않았다.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높이고 기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고용보험 가입요건 완화가 같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칫 고용보험 내부에 들어와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만 혜택을 받아 노동시장 격차가 더 확대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이미 실업과 취업의 경계가 모호한 이들이 늘어나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구직 중인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이다. 실직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실업급여의 한계가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극적으로 드러났다고 본다.” 법정 노동시간이 주 38시간인 네덜란드의 경우, 주당 10시간 일할 때 5시간 이상 노동시간이 줄어든 경우에도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당장의 현금은 절박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상황이 길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성주 전 서울시 노동협력관은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고용보험 전면 적용, 건강보험 통합 등 현재의 복지체계 기틀을 만든 것은 1997년 IMF 위기 직후였다. 그렇다면 IMF 이후 최대 경제위기라는 코로나19 이후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지금 상황을 계기로 실업급여 지급 조건을 완화하고 기간을 늘리면서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를 포괄하도록 실업 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위기일 때 시민들이 고용보험과 실업부조의 존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고용보험료, 나아가서는 세금 인상의 필요성까지도 설득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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