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3월10일 대구 동성로 거리가코로나19 여파로 한산하다.

OECD는 지난 3월26일 낸 보고서를 통해 “상당수 국가가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다음 문장이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경기침체의 정도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를 훌쩍 뛰어넘는다.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한 봉쇄)’의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충격(initial direct impact)’으로 인해 주요 선진국의 국내소득(GDP)이 20~25%까지 줄어들 수 있다(봉쇄가 연간 지속되는 경우). 소비지출 역시 3분의 1 정도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마저도 ‘부가적이고 간접적인 충격(additional indirect impacts)’은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아래 〈그림 1〉 참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대미문의 재정·통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는 이유다.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에 대항해서 가계와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시티 오브 런던(영국 런던의 금융 중심지 행정기관)’ 이코노미스트로 〈장기불황〉의 저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각국 정부들이 내놓은 재정정책의 규모를 계산해봤다. 그가 지난 3월 말 내놓은 논문(〈전시경제? (A war economy?)〉에 따르면, 각국이 코로나19 대응으로 제시한 정부지출 계획은 GDP의 4%에 달한다. 정부가 민간에 사실상 지급하는 돈으로 ‘가계나 자영업자에 대한 현금지급’ ‘고용유지를 위한 임금 보조금’ ‘감세(세입 중 일부를 받지 않으므로 일종의 정부지출이다)’ 등의 항목을 가리킨다. 이 밖에도 대출 프로그램이 있는데 GDP의 5%에 이른다. 마이클 로버츠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각국 정부가 제공한 구제금융(fiscal bailouts)은 글로벌 GDP의 2%에 불과했다. 이번 위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책을 잇달아 발표해왔다. 지난 3월24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에서 발표된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는 일종의 거대한 ‘대출 계획’이다. 천재지변으로 수익을 상실한 크고 작은 업체에 돈을 빌려줘서 일단 경영위기를 넘기게 하자는 것이다. 계획된 대출 규모는 100조원(+α) 정도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겐 결국 ‘빚’

100조원 중 58조3000억원은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나아가 대기업에게 빌려줄 돈으로 보면 된다.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등 국책금융기관들이 직접 초저금리로 빌려주거나 혹은 일반은행들의 대출에 보증을 서주는 방식이다. 나머지 41조8000억원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자금이다(〈그림 2〉 참조).

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한편으로는, 기업어음(단기)이나 회사채(중장기) 같은 증서(언제까지 얼마를 주겠다고 기입되어 있다)를 판다(빌린다). 투자자가 ‘1년 뒤에 1000만원을 준다’는 증서를 900만원에 샀다면, 해당 기업에 900만원을 빌려주고 1년 이자로 100만원을 받기로 했다는 뜻이다. 다른 방법은 주식을 발행해서 매각하는 것이다. 기업이 순조롭게 자금을 조달하려면 주식과 채권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되어야 한다. 그 영역을 금융시장이라고 부른다. 팬데믹이 본격화되면서 주식과 채권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사려는 사람(매입자)이 없어서 시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책 금융기관과 민간 금융사들의 출자로 채권시장안정펀드(20조원)와 주식시장안정펀드(10조7000억원)를 조성했다. 이 펀드들은 채권과 주식을 매입하는 역할을 맡는다. 인위적으로 ‘매입자’를 만들어 가격 폭락을 저지(시장 안정화)하는 방법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을 촉진하려는 시도다.

이처럼 ‘민생·금융안정 패키지’는 영업자(작은 식당에서 대기업에 이르는)들을 위한 코로나 대응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견·대기업과 금융기관을 제외한 다른 수많은 영업자들은 적시 적절한 혜택을 누리기 힘들다. 대출의 경우 차입자의 신용을 평가하는 ‘선별 절차’가 불가피하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신용등급이 높기 힘들 뿐 아니라 그 수가 엄청나게 많다. 줄까지 서가며 힘들게 대출 신청을 마쳐도 돈을 빌릴 수 없거나 오래 기다려야 한다. 급전을 빌리는 데 성공했다고 치더라도 그 또한 빚이다.

한편 사업자 이외의 계층들(노동자 등)은 이 패키지의 직접적 수혜 대상이 아니다. 이에 따라 시행되는 보완 조치로는 ‘고용유지지원금 확대’ ‘긴급재난지원금’ 등이 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위기에 처한 기업이 문을 닫거나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대신 휴업이나 휴직을 선택할 때 제공된다. 휴업이나 휴직으로 일손을 놓은 노동자들은 평소 월급의 70%를 소속 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다. 단, 국가가 그중 4분의 3을 고용유지지원금으로 해당 업체에 지급한다. 월급이 200만원인 노동자는 70%인 140만원을 휴업수당으로 받는데, 140만원의 4분의 3(지원 비율)인 105만원이 고용유지지원금인 셈이다. 해당 기업은 그 차액인 35만원만 내면 된다. 일부 업종에만 적용되어온 제도다.

3월25일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고용유지를 하도록” 3개월(4~6월) 동안 고용유지지원금을 모든 업종으로 확대하면서 지원 비율 역시 9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앞선 노동자의 경우라면 휴업수당(140만원) 중 90%인 126만원을 정부가 지급한다. 해당 기업의 부담은 35만원에서 14만원으로 낮아진다. 부담을 줄여주니 고용을 계속 유지하라는 의미다. 고용노동부는 이로 인한 예산이 종전의 1000억~2000억원에서 50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나리라 예상하고 있다. 4월 내로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5월부터 지급할 예정이다. 다만 이 제도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긴급재난지원금은 3월30일 비상경제회의 직후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부총리)의 발표로 그 윤곽이 드러났다. 그는 “100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당초 예상보다 사태가 장기화되고 우리 경제의 정상화 시기에 대한 예측도 더 어려워져” 긴급재난지원금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난지원금은 국민 가운데 ‘소득하위 70%(1400만 가구)’에게 지급된다. 1인 가구는 40만원, 2인 가구는 60만원, 3인 가구는 80만원, 4인 가구 이상은 100만원이다. 필요한 재원은 모두 9조1000억원인데, 실제로 ‘추가경정(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본예산과 별도로 추가적 자금 집행이 필요해서 편성하는 예산)’할 규모는 7조1000억원 정도다. 다만 7조1000억원 전액을 새로 빌릴(적자국채를 발행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기존 국가사업의 예산을 재난지원금 쪽으로 돌릴(기존 세출사업의 구조조정) 계획이기 때문이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난지원금이 시민들에게 “최대한 신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지급 시기는 5월 중순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추가경정안을 총선에서 4월 말 사이쯤에나 국회에 제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금보다 지역상품권이나 전자화폐 등으로 지원될 전망이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3월24일 코로나19 2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재난지원금은 그 도입 가능성이 예상되던 시기부터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국가가 국민 중 상당수를 대상으로 개인의 통장에 직접 ‘현금을 꽂아준다’는 것 자체가 한국인으로선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윤곽이 드러난 지금은 그만한 화젯거리로 부상할 가치가 있었는지 자체가 의문스럽다.

일단 지원 규모가 너무 적다. 1인 단위로 환산해보면 25만원에서 40만원 정도다. 당장 고용유지지원금만 봐도 평소 월 200만원 소득자의 경우, 휴업수당 140만원 중 126만원을 국가가 부담한다. 통장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1인당 25만~40만원이 단지 ‘경기부양’을 위한 자금이라면 개인에게 꽤 유익한 쌈짓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재지변으로 소득을 상실한 가구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규모는 아니다. 더욱이 현재로서는 한 번만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재난지원’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 것일까?

“기준도 없는 지원금 도입 황당하다”

미국의 4인 가족은 한국의 4배를 받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대응 예산인 2조2000억 달러 중 현금 지급 프로그램으로 2900억 달러를 잡았다. 미국 GDP (2019년)의 1.4% 정도다. 한국의 재난지원금에 추가경정될 예산은 GDP의 0.4% 정도. 미국은 연소득 7만5000달러(부부의 경우는 15만 달러) 이하의 성인에게 1200달러를 지급한다. 17세 이하의 자녀들에겐 500달러다. 소득이 7만5000달러에서 100달러씩 높아질 때마다, 1200달러의 현금 지급액은 5달러씩 줄어든다. 연소득 9만9000달러에 이르면 지급액이 0달러가 된다. 그러므로 연소득 7만4999달러면 1200달러를 수령하고 7만5001달러면 한 푼도 못 받는 일은 없다. 연소득 7만5000달러인 부부에 자녀가 둘 있는 4인 가족의 경우, 미국인은 모두 3400달러(부부가 각각 1200달러, 자녀들이 각각 500달러)를 받는다. 한국 돈으로 약 417만원이다.

독일 언론 〈더로컬(The Local)〉에 따르면, 독일의 소자영업자(1인 업체 등), 음악가나 사진가 같은 프리랜서, 피고용인 5인 이하의 작은 업체 등은 9000유로(약 1207만원)를 현금으로 받는다. 피고용인 6~10인의 소기업은 1만5000유로(약 2011만원)를 수령할 수 있다.

한국의 재난지원금은 수혜자를 ‘소득하위 70%’로 잡았는데 그 ‘선별’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 시민들은 본인의 소득이 전체에서 어느 정도의 순서인지 모른다. 재산은 많지만 소득이 작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하위 70%’를 골라낸다면, 지금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데이터 역시 다양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어떤 데이터로 시민들의 소득을 추정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갈릴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에 따르면,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로 일단 ‘종합소득신고’가 있다. 모든 납세자의 소득 정보가 들어가 있으니 비교적 정확한 선별이 가능하다. 그러나 2019년 소득 부분의 신고가 마감되는 시기는 오는 5월이다. 국세청이 소득신고를 받으면 점검 작업을 해야 하는데 다시 한두 달이 걸린다. 6~7월이 되어야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준비가 갖춰진다는 뜻이다. 더욱이 2019년의 소득으로 올 들어 확산된 코로나19의 피해자를 추정하긴 힘들다.

다른 데이터로는 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건강보험료가 있다. 직장인의 경우 매달의 소득 변화가 거의 실시간으로 잡히므로 재난지원금 대상을 산정하기엔 아주 이상적인 자료다. 자영업자 등 지역 가입자의 경우에는 소득과 재산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험료를 매기므로 직장인들과 비교해서 소득 순위를 매기기가 어렵다. 특히 오건호 위원장은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급 기준도 정해놓지 않고 재난지원금 도입 방안을 발표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어떻게 소득 계산 방식은 물론이고 재산을 소득에 반영할지 여부도 결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불쑥 재난지원금을 도입하겠다고 했는지 황당할 뿐이다.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켰다. 오죽하면 기획재정부가 사보타주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겠나.” 홍 장관은 조만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방식이든 불공정 논란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기준선을 소득신고서의 ‘수정 총소득(adjusted gross income:납세자의 신고액 가운데 소득세를 부과하기 위해 조정한 금액)’으로 정해놓았기에 혼선이 없다. 소득신고서에 수록된 은행 계좌로 현금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시민들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소득이 너무 낮아 신고할 필요가 없었던 미국인들 역시 대충의 소득 규모와 피부양자 수, 은행 계좌만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현금을 받을 수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조 달러 법안 통과(3월26일)로부터 3주 내에 시민들의 은행 계좌 정보를 받고 싶다고 했다. 미국의 현금 지급은 4월 중하순에는 이뤄질 전망이다.

따지고 보면 재난지원금은, 경제적 비상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능력을 가르는 시험대였다. 수천만 가구 중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크게 타격받은 부분’을 골라내어 적절한 금액을 적시에 투입해야 하는 작업이다. 시장이 일시적으로 기능을 상실한 상황에서 정부에게 ‘자원을 적절히 적시에 배분하라’는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AP Photo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27일 2조2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 법안에 서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재난지원금 관련 행정에는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다.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난지원금이 무엇을 위한 자원인지부터 헷갈리고 있다. 그는 관련 기자회견에서 재난지원금의 목적으로 “취약계층 소득 지원” “소비 진작” “국민들에 대한 위로의 표현” 등을 제시했다. 상충되는 목적이다. 이미 지난 2월부터 수익이 끊기다시피 한 소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돈이라면 타격받은 집단을 콕 집어내 ‘충분한’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 지급 대상을 ‘하위소득 70%’로 느슨하게 잡았을 뿐 아니라 이마저도 기준선을 명확히 긋지 못해 늦게 지급될 뿐 아니라 사회적 시빗거리까지 만들어놓았다. 지원 대상을 선별하느라고 늦게 주기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주고 고소득자들로부터는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것이 지원금의 취지에 맞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비 진작’은 재난지원금을 “현금보다는 소비쿠폰 또는 전자화폐, 지역화폐, 지역상품권으로 지급”하겠다는 홍 장관의 발상과 연관되어 있다. 지역상품권 등에 사용기한을 정해놓으면 일정한 기간 소비가 늘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의 취지에 어긋난다. 자영업자들의 가장 큰 고통이 임차료, 대출이자 등 고정비용 지출 때문이라는 것도 무시한다. 지역화폐로는 고정비용을 낼 수 없다.

더욱이 홍 장관은 재난지원금 7조1000억원에 대한 재원을 “일단은 기존의 금년도 세출예산 구조조정을 통해서 대부분을 충당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이는 소비 진작의 ‘대의’와 상충된다. 어차피 민간 부문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던 자금을 용도(재난지원금)만 바꿔 내보내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조삼모사’요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다. 돈의 규모나 지급시기 등을 보면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홍 장관이 언급한 ‘재난위로금’이 가장 적절한 명칭으로 보인다.

경제 사령탑에도 대전환 있어야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피한 경기침체와 이후의 경제 운영에서 ‘국가(정부)의 역할’이 크게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팬데믹이 언제 끝날지 모호한 상황에서 각국 정부의 지출 계획은 주로 올해 상반기에 맞춰져 있다. 셧다운이 그 이후로 연장된다면 지금까지의 재정·통화 정책들과 질적으로 다른 정부 주도의 대담한 방안들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후의 경제재건 시기에도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이 경제를 이끌어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 민간기업들은 이윤이 보장되어야 투자와 고용을 개시하는데 ‘팬데믹 이후’는 수익 전망이 매우 불투명한 시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 싱크탱크인 ‘루스벨트 인스티튜트’는 지난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전시경제 체제’를 다룬 보고서 〈경제전환기 공공부문의 역할(The Public Role in Economic Transformation)〉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는 기업 측에 다양한 대출 프로그램과 감세 혜택을 제공했다. 전시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업들은 수익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투자와 생산능력 확대를 꺼렸다. 투자 위험을 꺼린 것이다. 이에 반해 국가는 투자 위험을 기꺼이 부담할 수 있는 존재(risk-bearer·위험 부담자)다. 결국 정부의 공공투자가 전시의 미국 경제를 주도하게 된다. 이 보고서는 1942~1945년의 연방정부 지출이 미국 GDP의 무려 40%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한다. 팬데믹 시기와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생산능력을 크게 팽창시켜야 하는 시기엔 정부가 경제에 평소보다 훨씬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코로나19로 인한 공공보건의 위기 시기엔 많은 병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장)가격이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에게 새로운 병상을 만들라고 지시해주진 않는다.” 보고서는 팬데믹 대응뿐 아니라 미래 녹색경제로의 전환, 새로운 기술과 노동방식으로의 적응 등 경제 시스템의 대전환기에 위험 부담자로서 공공 부문의 역할이 다시 한번 결정적으로 중요하게 되었다고 결론짓는다.

한국의 경제 사령탑인 기획재정부는 수조원 규모의 자원배분 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정확한 목표나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정부지출을 사실상 금기시하는 태도까지 보인다. 오죽하면 ‘의도적 사보타주’라는 말까지 나돌까. 지금이 경제 시스템의 대전환기라면, 한국 경제가 전례 없이 어려운 난관을 헤치고 나가려면, 경제 사령탑에도 대전환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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