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10일 금요일 오전 8시였다. 감염병 분야 전문가 20여 명이 서울시 중구의 한 콘퍼런스 룸에 모였다. 2019년 12월 말부터 중국 우한에서 보고되기 시작한 집단 폐렴의 원인이 막 밝혀지던 시점이었다.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에 질병관리본부(질본)는 긴급히 감염병 위기관리대책 전문위원회를 소집했다.

감염병 관련 전공 의사와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초점은 두 가지로 모아졌다. 국내 유입 가능성이 있나? 유입 시 국내에 끼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전문위원들은 모두 유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은 까다로웠다. 그때까지 중국 정부는 이 신종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사망자도 보고되기 전이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이혁민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질본의 이상원 과장(감염병분석센터 감염병진단관리과)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지금 같은 대유행까지 예상한 건 아니지만 진단 역량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서로 했어요.”

그 후 3개월이 흘렀다. 원인 불명의 폐렴은 ‘코로나19’라는 이름을 얻고, 말 그대로 전 세계를 마비시키고 있다. 의료 인프라가 우수한 선진국마저도 속수무책이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미국의 사망자 수는 중국을 넘어섰고, 전 세계 확진자 가운데 20%는 미국에서 발생했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낮출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방역이다.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한국은 ‘방역 모범국’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환자를 조기 발견하고, 접촉자를 신속하게 격리하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세계보건기구(WHO)가 구상하는 모든 요소와 전략을 이미 잘 구현하고 있다(마이크 라이언 WHO 긴급대응팀장).”

그 중심에 진단검사가 있다. 1월10일 회의가 열리고 사흘 뒤인 1월13일, 질본은 코로나19 검사법 개발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2월 초부터 국내 시약업체가 개발한 진단키트가 하나둘 긴급사용 승인을 받고, 민간 검사기관이 110개까지 늘어나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코로나19 진단검사 능력을 갖추게 됐다. 4월1일 기준 코로나19 누적 검사량은 약 43만 건, 일일 가능한 검사량은 최대 3만 건이다.

이혁민 교수는 국내 감염병 진단 분야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질본 산하 감염병 위기관리대책 전문위원회 전문위원과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코로나19 TF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식 검사체계를 구축하는 데 질본과 진단 분야 의료기관 사이 민관의 가교 구실을 해왔다. 한국보다 먼저 진단키트를 개발한 나라는 많다. 1월17일 독일이 코로나19 진단법을 WHO에 보고한 이후 홍콩·중국·일본·미국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한국만큼 신속하게 대규모 검사를 해낸 나라는 없다. 비결이 무엇일까? 이 교수는 새벽 2시 혹은 5시까지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판독하는 빠듯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틈나는 시간을 모아 3월25일부터 세 번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사IN 조남진이혁민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새벽에도 검사를 하나?

우리 검사실(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는 코로나19 검사를 하루 여섯 번 돌리고 있다. 결과를 신속하게 내줘야 그다음 조치도 빨라진다. 밤 10시에 들어가는 검체들은 새벽 1시쯤에 결과가 나오고, 새벽 2시 검사는 새벽 5시께 결과가 나온다. 사람들은 검사라고 하면 단순하게 생각한다. ‘기계에 넣으면 숫자 나오는 거 아니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검사에는 그레이존이 있다. 양성과 음성 사이에 명확하지 않은 값이 나올 때가 있다. 코로나19처럼 중요한 검사는 진단검사 전문의가 판독을 해야 한다.

1월10일 코로나19 관련 감염병 위기관리대책 전문위원회가 열렸다. 국내 첫 확진자는 1월20일에 확인됐는데 그보다 열흘 빨랐다.

그런 부분에서 질본이 잘하고 있다. 유입 가능성이 있는 감염병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리를 한다. 전문위원들에게 해외 트렌드를 정리해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준다. 2017년 질본에 감염병 진단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감염병분석센터가 생기면서 ‘긴급사용 승인제도’도 도입됐다. 2015년 메르스 때 질본에서는 메르스 진단법을 미리 개발해 국내 유입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폭증하는 검사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 이후 긴급사용 승인제도를 마련했고 이번에 제 역할을 했다(‘긴급사용 승인’은 감염병 대유행으로 진단시약이 긴급히 필요할 경우 민간업체가 개발한 진단키트를 빠르게 평가해 허가하는 제도다).

준비가 실력을 만들었나?

코로나19 이전에도 해외에서 유행하는 감염병에 대비해 긴급사용 승인을 한 적이 있다. 지카바이러스가 남미에서 확산되자 이 제도를 이용해 진단키트 개발 공고를 냈고, 관심 있는 업체들이 지원했다. 만약 에볼라가 들어오면 긴급사용 승인을 거칠 시간도 없다고 생각해서 사전승인 절차도 마련해두었다. 질본에서 테스트하고 대한진단검사의학회에서 전문가 평가를 한다. 국내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서 실제 사용되지 않았지만 국내 시약업체가 진단키트 성능을 높이는 데 일종의 연습이 됐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감염병 전문가들에게는 뼈저린 경험이었던 것 같다.

맞다. ‘어떻게 이렇게 못할 수가 있지. 말도 안 돼’ 이랬다(웃음). 초기 대응에 문제가 많았다. 집단감염이 발생할 때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로 팀을 꾸려서 다각도로 사태를 바라봐야 한다. 그런데 메르스 당시 초기대응팀은 한 분야 전공으로 꾸려져 있었다. 이 학계의 인사가 전면에 나서 모든 걸 지휘하고 질병관리본부장은 저 뒤에 물러나 있었다. 외국의 대응 방안을 보더라도 무조건 행정가(administrator)가 리더가 되도록 돼 있다. 지금 정은경 본부장 하듯이 질병관리본부장이 책임지고 의사결정하는 위치에 있어야 했다.

그 반대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감염병이나 의료는 전문가 영역이므로 정부가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자기 전문 영역 빼놓고는 사실 잘 모른다. 나도 그렇고, 공부만 해온 사람들이다. 방역은 아주 많은 걸 고려해야 한다. 해외 입국금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글쎄. 겁이 나면 본인부터 한 달 동안 집에서 안 나오면 된다. 그런데 나와서 일도 하고 학회도 이끌어야 하지 않나. 국가라고 그런 일이 없을까. 만약에 모든 국가가 셧다운을 한다면 나도 동의할 수 있다. 코로나19 없앨 수 있다. 그게 가능한가? 그리고 언제까지 할 건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사람 가운데 90%가 우리 국민이다. 방역은 국가정책이고,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최종 결정을 하는 게 맞다. 전문가는 그 사람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선에 머물러야 한다.

ⓒ시사IN 조남진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검사실에서 임상병리사들이 코로나19 검체에서 핵산을 추출하고 있다.

대한진단검사의학회에서 코로나19 검사 결과를 계속 취합하고 있다. 전체 데이터를 보면 어떤 추세가 읽히나?

검사는 크게 공공과 민간 의료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은 질본 감염병분석센터와 각 시도 17개 보건환경연구원이다. 하루에 2000건 정도를 검사한다. 민간은 병원들과 검체검사 수탁기관인데 2만~2만5000건을 시행한다. 학회에서 살펴볼 수 있는 건 민간 쪽 검사 결과이다. 이 데이터를 보면 신규 확진자 가운데 40%가 대구·경북, 30%가 공항 검역, 25%가 서울·경기, 5%가 나머지 지역이다(3월28일 기준). 서울·경기 확진자 가운데 많은 경우가 해외 유입 관련이니 대구·경북 이외에 순수하게 지역에서 발생하는 수는 더 적다. 해외 유입을 아예 막는 건 어렵지만 자가격리 수칙 등을 어길 때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일일 3만 건을 시행할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19 진단검사 체계가 갖춰졌지만, 갈림길에 놓였던 순간도 있을 것 같다.

1월27일 서울역 간담회가 중요했다. 질본 감염병분석센터와 대한진단검사의학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시약업체를 불러 모아 진단키트 개발을 독려했다. 질본이 개발한 진단시약 프로토콜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긴급사용 승인 준비를 해나갔다. 이 방향을 정하기까지 조금 이견이 있었다. 민간업체가 진단키트를 만들도록 풀어줄 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질본에서 자체 키트를 개발해 배포할지. 전 세계적으로 검사 수요가 늘어날 텐데 개별 회사가 원자재를 조달하기는 어렵겠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알아봤더니 그런 상황은 아니어서, 회사들이 진단키트를 대량생산하게 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또 하나, 2월 중순부터 진단이 엄청나게 큰 시장이 됐다. 그러면서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진단시약을 로비를 통해 밀고 들어오려는 업체들이 생겼다. 10분 만에 가능한 신속 진단키트를 개발했다는 기사가 많이 나오는데 대부분 항원·항체법을 이용한 검사들이다. 항원·항체법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분자진단법(유전자증폭 검사·리얼타임 PCR)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50~70% 수준이다. 독감처럼 틀려도 큰 문제없는 검사라면 쓸 수 있다. 간편한 신속 진단키트가 필요한 상황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방역 목적을 생각할 때 지금 우리나라는 아니다. 얼마 전에 마크 그린 미국 하원의원이 ‘한국 진단키트는 비상용으로도 쓰기 어렵다’고 해서 시끄러웠는데, 그때 그 의원이 ‘한국 진단키트’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게 바로 항원·항체법으로 개발된 신속 진단키트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이런 일에 대응하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다.

‘이거 큰일 났다’ 했던 순간도 있나?

대구에서 신천지 집단감염이 터졌을 때다. 당시 검사를 하루 1만 건 정도 하면 8000건은 24시간 이내에 결과가 나오고, 2000건 정도는 하루 지나서 결과가 나왔다. 우리(민간 의료기관들)가 결과를 빨리 내줘야 할 텐데 그런 부분에서 조금 걱정이 됐다. 그 이후 검체검사 수탁기관들이 검사 역량을 더 확장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병원에서 첫 양성 결과가 나왔을 때 긴장했다. 이런 위중한 검사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 검사실에서는 두 업체의 진단키트를 쓰는데, 두 개로 다 검사해보고 검체를 질본에 보내서 같이 교차검증을 했다.

ⓒ시사IN 조남진3월31일 영국에서 입국한 외국인들이 인천국제공항 외부에 설치된 개방형 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검사 신뢰도에 대한 의혹이 계속 나온다.

우리가 지금까지 80만 건의 검사를 했다(3월28일 기준). 질본 집계는 40만 건 정도로 나오는데 검사자 수 기준이라서 그렇다. 두 번 검사하는 경우도 있고, 확진받은 환자를 추적 목적으로 또 검사하기 때문에 전체 누적 검사량은 더 많다. 검사 정확도가 99.9%라고 해도 위양성(가짜 양성), 위음성(가짜 음성)이 800건은 나온다는 뜻이다. 그것마저도 내지 않으려고 진단검사 전문의들이 교차검증하고 재검사하고 방법을 찾는다. 그래도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몇 건 때문에 환자를 안 찾을 수는 없지 않나.

지나치게 검사를 많이 한다는 얘기도 있다.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확진자를 너무 빠르게 찾아내니까 의료 인프라가 수용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생활치료센터가 굉장히 좋은 모범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감염병이 유행할 때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검사를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진단을 해야 그다음 프로세스가 돌아간다. 감염자·비감염자를 구분하고, 격리하고, 치료하고, 감염력이 없어졌는지 다시 확인하고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다. 그리고 진단을 해서 결과가 나와야 우리가 택한 방역 방식이 효과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팬데믹에서 제일 먼저 확보해야 하는 수단이 진단검사다.

진단이 방역의 기본이라면 왜 다른 나라는 코로나19에 맞서 대규모 검사능력을 갖추지 못했는지 의문이 든다. 특히 서유럽은 의료 인프라나 공공성 측면에서 한국과 비교되거나 좀 더 낫다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나도 그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유럽 CDC(질병예방통제센터)라고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같은 곳이 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심각해지니까 2월 초에 이미 국가별로 검사능력을 점검했다. 그런데 이후에 검사 역량을 확장하지 않았다. 잘못 판단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주 개인적인 추측인데, 일본 데이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본이 검사를 안 하면서 잘 막고 있다고 발표했고, 실제로 집계되는 환자와 사망자 수도 적었다.

잘 구분해야 하는데 지금 감염자가 많이 보고되는 국가는 다 선진국이다. 기본적으로 검사 역량이 있으니 검사를 빠르게 늘리면서 환자를 찾아내고 있다. 저개발 국가들은 환자가 없는 게 아니라 검사를 못한다고 보는 게 맞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리얼타임 PCR(유전자증폭 검사) 장비를 돌릴 수 있는 검사실이 단 두 곳이었다. 그래서 WHO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WHO 레퍼런스 랩(WHO 인증 검사실)으로 검체를 보내라고 했다. 저개발 국가들이 새로운 온상지가 될 위험이 높다. 이런 나라에 대한 지원과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코로나19 대응은 한 나라만 잘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연합뉴스인천공항에서 나토 수송기가 방호복과 진단키트를 싣고 루마니아로 출발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어떤 부분을 지원해야 하나?

치료제가 제일 좋지만 코로나19는 현재 개발된 치료제가 없다. 그러면 중요한 건 진단인데, 그쪽 지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하기 위해 지금 리얼타임 PCR을 세팅한다? 글쎄. 전기가 들어오다 말다 하는 나라도 있을 텐데 그러면 일단 장비를 돌릴 수가 없다. 신속 진단키트는 이런 곳에 필요하다. 그래서 ‘야매’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제대로 된 신속 진단키트를 만들어야 한다. 신속 진단키트가 분자진단법을 따라올 수는 없지만 부정확하더라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동시에 그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로 리소스(low resource) 세팅에서 방역 대책은 또 달라진다. 직접 가서 상황을 파악하고 그 나라에 맞는 방역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전문가 자문이 필요하다.

일반 국민 처지에서 진단검사의학과는 꽤 생소한 분야다.

환자를 직접 보는 임상의가 아니어서 일반인은 잘 모를 거다. 인력도 다른 과와 비교하면 적다. 우리나라 진단검사 전문의가 다 합쳐야 1000명이 좀 넘는다. 그런데 검사만 전문으로 하는 스페셜리스트 집단을 이 정도로 두고 있는 나라가 사실 많지 않다. 미국은 랩(검사실)에서 의사가 아니라 연구자들이 감염 관련 검사를 한다.

코로나19 유행이 얼마나 갈 거라고 보나?

2월부터 3월 초까지 6주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는데 주요 선진국들이 이 시기를 놓쳤다. 정점을 찍고 6월, 7월 정도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저개발 국가이다. 여기 막았는데 저쪽으로 들어가서 돌고 돌고 이렇게 돼버리면 정말 곤란하다.

1월부터 코로나19 대응 모드인데 힘이 부칠 때도 있을 것 같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버텨봐야지. 우리 병원 선생님들도 있고, 학회 코로나19 TF에서 같이 일하는 선후배들도 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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