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 대탈출’ 뒤엔 배곯은 이주노동 있다
  •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 호수 656
  • 승인 2020.04.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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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3월 초만 해도 WHO가 인정한 방역 모범 국가였다. 하지만 록다운 실시 뒤 생계가 막막해진 이주노동자들이 고향으로 가겠다며 도시를 탈출했다. 자칫 커다란 재앙으로 번질 수도 있다.
ⓒAP Photo3월28일 인도 정부의 봉쇄령으로 생계가 곤란해진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뉴델리 외곽에서 정부가 마련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인도 출신의 전염병 학자인 라마난 락시미나랴 안은 인도가 코로나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7월 말까지 3억~5억명의 인도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고, 이 가운데 약 650만~9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한다. 이 끔찍한 전망은 한국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인도 의학연구위원회(ICMR)에도 전달됐다.

인도는 3월 초만 해도 세계보건기구(WHO)가 모범 사례로 들 만큼 코로나19 방역에 성과를 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가장 먼저 국경을 닫았고 선제적으로 전세기를 띄워 해외 자국민들을 데려와 격리했다. 여기에 신체 접촉을 금하는 특유의 인사법, 철저한 손 씻기와 목욕 문화, 날음식을 금하는 종교적 전통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행동양식과 일치했다는 점도 초기 방어에 도움을 줬다.

인도 브루킹스연구소의 책임연구원 샤미카 러비는 뉴스 채널 〈인디아 투데이〉에 출연해 “인도에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초기에는 3일 간격으로 2배씩 증가했다. 그 추세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면 3월29일 확진자 2200명이 발생했겠지만 이후 확진자는 5일마다 2배씩 증가해 3월29일 현재 확진자는 1024명뿐이다”라고 말했다. 인도의 방역이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일부 외신은 진단검사가 허술해서 인도가 방역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인도는 1월18일부터 중국 우한에서 들어오는 모든 여행객을 대상으로 발열검사를 실시하는 등 각 항구와 공항에서 정밀 스크리닝을 했다. 2월5일에는 중국인에게 발급된 비자를 취소했다. WHO 집계에 따르면 ‘실시간 유전자증폭 검사(Real Time RT-PCR)’ 수는 4월1일 현재 4만7951건이고, 확진자는 1637명이다. 한때 같은 나라였던 파키스탄이 1만4748건을 검사해 확진자 1625명이 발생했음을 고려하면 검사 규모에 비해 인도의 확진자가 적은 건 분명해 보인다. 3월15일부터 독감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 대한 무작위 샘플 테스트도 실시했고, 3월18일부터 모든 폐렴 환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했다.

인도는 코로나19 진단키트 국산화에 성공한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 기업 마이랩 디스커버리(Mylab Discovery)는 최근 진단키트 테스트에서 한국의 씨젠 제품과 함께 검진율과 오차율에서 모두 100점을 받았다. 인도 키트는 한국에 비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씨젠 키트의 4분의 1 가격인 1200루피(약 2만원)에 샘플 100개를 테스트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다. 주당 10만 키트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인도는 전 세계의 제약공장이다.

인도의 코로나19 방역 기초는 도시다. 인도는 인구 절반 이상이 여전히 농촌에 살지만, 의료시설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도시가 방역에 실패해 의료시설이 부족한 시골로 확산되면 막을 수 없다. 확진자가 657명이었던 3월25일 인도 정부가 3주간 록다운(도시 봉쇄)을 실시하는 무리수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전체를 폐쇄해서라도 도시에서 이 사태를 끝내고 싶어 했다.

그랬던 인도가 3월 말 들어 혼돈으로 빠져들어 갔다. 정부의 국가 봉쇄 조치에도 뉴델리 도시 노동자 수십만 명이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통에 아수라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뉴델리 대탈출’ 사태를 이해하려면 인도의 노동구조를 알아야 한다.

4억명을 헤아리는 인도 노동자의 80%가량은 이른바 ‘비공식 노동자’다. 이는 비정규직과는 다른 말이다. 비공식 노동자는 노동을 하고 임금도 받지만, 노동계약이 없는 일종의 법외 노동자다. 인도 정부는 ‘공공유통(Public Distribution)’이라는 복지 시스템을 통해 이들 비공식 노동자를 비롯한 빈민층에게 식량을 공급해왔다.

정부와 앙숙인 야당 주 총리가 상황 방치

록다운을 실시한 뒤 인도 정부는 공공유통 시스템으로 비공식 노동자의 생계를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한 계층을 놓쳤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시골에 주소지를 둔 채 농업에 종사하다가 농한기가 되면 도시에서 몇 달간 막노동을 하다, 시골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중국 ‘농민공’과 비슷하다. 공공유통 시스템은 주소지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번 록다운 상황에서 이들 이주노동자는 일이 끊긴 데다 정부의 긴급구호도 받지 못했다. 이들은 고용주가 제공하는 허름한 움막에서 일하는 기간 잠자는 게 전부다. 록다운으로 인해 이들은 일자리와 잠자리를 모두 잃었다.

뉴델리의 이주노동자 대탈출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미 이틀쯤 배를 곯은 이주노동자들이 살림살이를 들고 걸어서라도 고향으로 가겠다며 나섰고 경찰과 대치가 시작됐다. 중앙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던 야당 소속 주 총리는 이 상황을 방치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의 확진자라도 나오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보다 못한 우타르프라데시(UP)주에서 UP 출신 이주노동자를 위한 차량을 대절하겠다고 선언했다. 뉴델리 버스 정류장의 대혼란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후 뭄바이, 벵갈루루 같은 대도시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인도의 이주노동자는 전국적으로 8000만~1억2000만명을 헤아린다.

중앙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대탈출에 경악했다. 이렇게까지 사태가 번지리라고 예측하지 못한 듯하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텔레비전에 나와 “수많은 사람들을 어려움으로 모는 인간이 무슨 총리인가. 이 일로 고통을 겪은 모든 지역주민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라며 사죄했다.

다수의 외신은 델리 대탈출을 계기로 인도의 코로나19 대유행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인도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도와 같은 제3세계에서 코로나19는 해외 출입이 가능한 부유층의 질환이다. 실제로 인도의 확진자 대다수는 외국 여행을 하던 중 해외에서 감염됐다. 카스트 제도가 엄존하는 인도에서 이들 상류층과 사회 최하층인 이주노동자가 접촉할 가능성은 낮다.

물론 비관적인 징후도 있다. 델리를 탈출한 대다수 이주노동자들의 고향은 동부의 UP 주다. UP 주는 한반도의 1.1배 크기로, 인도에서 가장 많은 인구 2억2000만명이 산다. 1인당 GDP가 980달러에 불과하다. 뉴델리의 1인당 GDP는 5400달러다. 이 가난한 주 전체에 코로나19 검사를 할 수 있는 장소는 국립병원 단 한 곳뿐이다. 이주노동자 가운데 단 한 명의 확진자라도 있다면, UP 주 전체에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올 수도 있다.

게다가 최근 뉴델리에서 대탈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3월9~10일 뉴델리의 무슬림 밀집구역에서 수천 명이 참석한 종교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 참석자 가운데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도판 신천지’ 사건이라 할 만한데, 4월1일 300명이 감염 증세를 보이고 있고 10명이 사망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지금 인도 전국으로 흩어진 상태다. 인도는 한국처럼 전국적인 CCTV망이 없어서 이들의 추적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각 주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집회 참석자를 찾아내 격리 중이지만 현지에서도 코로나19의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인도의 최대 마이너리티 집단이 사고를 치며 광범위한 무슬림 혐오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크다. 인도는 국경을 폐쇄하는 무리수까지 두며 시간을 버는 데 성공했지만, 그간의 성공이 흔들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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