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한국 정치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 천관율 기자
  • 호수 642
  • 승인 2020.01.0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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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위성정당 카드는 ‘우물에 독 타기’이면서 묵직한 이야기보따리다. 선거제도 해킹부터 민주주의 원리까지 풍부한 질문이 담겼다. 반격에 답하지 못하면 새 선거제도도 흔들린다.
ⓒ연합뉴스지난 12월23일 국회에서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한 수정안이 가결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이 선거법이 통과되면 저희는 곧바로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12월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다음 날인 12월24일 자유한국당 김재원 정책위 의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이렇게 말했다. 12월26일 현재 선거법 개정안은 상정 상태로 본회의 표결을 남겨두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유한국당이 ‘비례한국당’을 들고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김재원 정책위 의장의 기자회견은 이를 공식화한 첫 선언이다. 다만 비례한국당 당명이 이미 등록되어 있어 이 이름을 쓰기는 쉽지 않다.

비례한국당 전략의 논리를 알려면 선거법 개정안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여러 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정치연대)은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4+1 합의안’이라고 보통 부른다. 합의안에서 비례대표 의석은 지금과 같은 47석인데, 이 중 30석을 연동형 의석 배분에 쓴다. 연동형이란, 정당이 자기 정당 득표율만큼 의석을 받는 제도다. 민심의 비율대로 의석을 가져가자는 취지다. 4+1 합의안은 정당 득표율에 의석수를 연동시키되, 지역구 당선자만으로 채울 수 없는 배분 의석은 절반만 보정해 주기로 했다. 정당 득표 10%를 얻은 A 정당의 배분 의석은 300석 정원의 10%인 30석이다. 이 정당이 지역구에서 6석을 얻었다면, 모자란 의석은 24석이다. 그걸 다 채워주지는 않고, 절반인 12석만 비례 의석에서 배분해 준다. 총 18석 정당이 된다. 이 배분에 쓰는 ‘판돈’이 30석이다. 배분할 의석이 30석을 넘어가도 비율에 따라 조정해 30석만 배분한다.

B 정당은 지역구에서 90석을 얻고, 정당 득표로 30%를 얻었다. B 정당은 연동형 배분 의석이 300석의 30%인 90석이다. 이미 지역구 의석이 이를 초과하므로 연동형 판돈인 30석에서는 의석을 챙길 수 없다. 나머지 비례대표 의석인 17석(‘병립형’이라고 부른다)에서는 30%에 해당하는 5석 안팎을 기대할 수 있다. 그 결과 B 정당은 95석을 얻는다.

이제 B 정당은 30석 판돈이 눈에 밟힌다.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만들어서, B 정당을 찍어주는 30%의 3분의 1을 ‘비례 B당’으로 옮겨 찍게 할 수 있다고 해보자. 비례 B당은 지역구 당선자 없이 정당 득표 10%를 얻으므로, 30석 판돈에서 최대 15석까지 기대할 수 있고(30석 판돈이 배분하기에 모자랄 것이므로 이론적 최대치보다는 적게 배분받을 것이다), 17석 병립형 비례대표에서도 1석 안팎이 나온다. 최대 16석 정당이 새로 하나 생긴다. 그리고 원래의 B 정당은 지역구 90석에 비례대표 20%를 득표하므로, 17석 중 3석 안팎을 가져갈 것이다. 둘을 합치면, B 정당의 총의석은 대략 109석이 된다. 위성정당 하나를 뗐다가 붙였더니 14석이 늘어났다. B 정당이 지지자들을 비례 B당으로 더 많이 옮길 수 있다면 의석수는 더 늘어난다. 이것이 비례한국당 전략의 논리다.

ⓒ연합뉴스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2월1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일종의 ‘제도 해킹’인데, 이런 해킹이 옳은지와 별개로, 해킹이 가능한 제도는 잘못 만든 제도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 사례도 있다. 동유럽의 내각제 국가 알바니아는 2005년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자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는 거대 정당들이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어 제도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알바니아는 2009년에 이 제도를 버렸다.  

‘4+1’이 이 문제를 몰랐다가 뒤늦게 허둥댄다는 평가도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4+1 합의안의 원형은 지난해 4월 도출된 ‘4당 패스트트랙 합의안’이다. 이때도 비례대표 위성정당 문제가 검토됐다. 당시 협상 과정을 잘 아는 한 민주당 의원의 설명이다. “그때도 자유한국당이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띄우면 어떻게 되느냐는 논의가 있었다. 알바니아 사례도 나왔고. 그런데 그 합의안에는 비례대표 의석이 훨씬 많았다.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이었다. 75석을 갖고 절반 연동형 배분을 다 하고 나면, 나머지 비례 의석은 병립형으로 가져가게 되어 있었다. 이 구조에서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띄우기가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비례대표 47석으로 줄어든 여파

이런 얘기다. 지역구에서 100석 가까이 얻는 거대 정당은 어차피 연동형 배분 대상이 못 된다. 제3당 이하 정당들의 득표율을 합산해도 25% 정도로 예상되는데, 이 정도면 비례 75석의 절반만 써도 배분이 끝난다. 즉, 40석 가까운 병립형 의석이 발생하는 구조다. 거대 정당이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비례대표 의석을 가져간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비례한국당으로 모험을 걸었다가 역풍을 맞으면 연동형과 병립형 비례대표 의석을 모두 날릴 수 있으므로 섣불리 모험을 걸기 어렵다는 논리다. 물론 이 구조가 위성정당 모델을 완벽히 봉쇄하지는 못한다. 자유한국당의 모험이 크게 성공해서 비례한국당이 20%를 득표하면, 75석 비례대표에서 이 당이 가져가는 연동형 비례 의석만 30석이다(여기에 병립형 의석을 또 가져간다). 여전히 모험을 걸 유인은 있다. 다만 여론 역풍을 맞았을 때 놓칠 병립형 의석도 충분히 크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 길을 택할 수는 없다는 계산이었다.

ⓒ시사IN 이명익2019년 4월26일 선거법 개정을 놓고 각 당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대치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 협상 과정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분포 ‘225+75’가 ‘253+47’로 다시 바뀌었다. 연동형 의석에 30석 캡을 씌웠으니, 병립형 의석은 17석으로 줄어든다. 이제 비례대표 위성정당은 더 안전한 선택이 되었다. 앞서의 민주당 의원은 “우리가 막판에 연동형 캡을 30석에서 20석으로 낮추자고 주장한 이유가, 민주당이 비례 의석 많이 먹으려고 그런다고 욕을 먹었지만, 사실 이 문제였다. 병립형 의석이 충분히 많아야 자유한국당이 모험을 걸 때 더 움츠러든다. 다른 당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이 문제가 등장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설명은 어느 정도 민주당 입장에 치우쳐 있기는 하다. 연동형 원리가 일단 도입되면, 병립형이라는 안전판이 얼마나 두껍든 간에, 위성정당이라는 제도 해킹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해킹 시도를 좀 더 위험한 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해킹 시도까지 봉쇄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제도 자체가 결함이 있다는 결론일까? 집권 여당이, 해킹에 속수무책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1년 가까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해프닝일까? 본질이 이렇다면 민주당 책임론은 불가피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말할 때는 알바니아보다 훨씬 친숙한 나라가 있다. 독일이다. 애초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먼저 알려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결함 있는 제도라면, 왜 독일에서는 해킹 없이 작동하는가? 조석주 교수(경희대 경제학과)는 정치경제학 연구자로, 제도 설계 분야의 전문가다. 독일 제도에서도 해킹 가능성은 봉쇄되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다만, 위성정당 전략은 합리적이지 않다. 첫째, 독일의 양대 정당인 기독교민주당이나 사회민주당 지지자들이 해킹에 따라 위성정당을 찍어줘서 얻는 이득보다, 해킹에 분노한 유권자가 지지 기반에서 이탈하는 손해가 더 크다.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는 손해다. 둘째, 위성정당도 일단 의석을 갖게 되면 자체의 조직 이해가 생긴다. “장기적인 비용이 단기적 이익을 압도하기 때문에, 위성정당을 하지 않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독일에서 제도 해킹은 제도로 봉쇄되지 않고, 정당의 합리성 덕분에 사실상 봉쇄된다.”

조석주 교수는 자유한국당이 숨어 있는 장기적 비용과 위험요소를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B 정당의 상황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B 정당이 위성정당을 띄우고도 지지율 합계 30%를 유지한다고 가정했다. 또, B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90석을 유지한다고 가정했다. 또, 위성정당을 뗐다가 쉽게 다시 붙일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세 가정 모두가 자명하지 않다. 조석주 교수는 셋 모두 숨어 있는 비용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해킹에 실망한 유권자의 이탈로 박빙 지역구에서는 승패가 바뀔 수 있다. 위성정당의 당수가 합당 조건으로 자기 몫을 요구하는 식으로, ‘바지 사장’이 갑자기 지분을 챙길 수도 있다.

위성정당의 숨은 비용과 위험요소

다른 의견도 있다. 최태욱 교수(한림대 국제대학원)는 첫손에 꼽히는 비례대표제 전도사다. 그런데도 그는 4+1 합의안의 열렬한 지지자가 아니다. 내용보다 절차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자는 게 결국 다당제를 통해 합의제 민주주의 하자는 얘긴데, 그 출발을 지극히 다수제적으로 해버리면 모순이 생긴다. 선거법은 말이 법이지 사실상 헌법이나 다름없다. 고도의 합의가 없으면, 아무리 자유한국당이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해도, 다수의 힘으로 끌고 가다가는 결국 취약해진다. 그래서 패스트트랙 때부터 나는 좀 불안 불안했다. 공론의 합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제도를 흔들어도 된다는 생각을 자유한국당이 하는 것이다. 독일은 합의가 단단하니까 이런 식으로 제도를 훼손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은 제도 취지를 정면으로 거슬러서 제도 자체의 신뢰를 떨어뜨리려 한다. 전형적인 ‘우물에 독 타기’인데, 이건 보통은 비합리적 선택이지만 지금은 합리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어차피 이 우물물을 마실 생각이 없다.

독일에서 해킹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조석주 교수와 최태욱 교수의 의견이 같다. 둘의 의견이 갈라지는 지점은, 자유한국당의 선택이 합리적인가다. 조석주 교수는 숨어 있는 장기적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비합리적 선택이라고 본다. 만약 민주당까지 ‘비례민주당’으로 응수한다면 정당 체제 붕괴까지 걱정해야 할 신뢰 저하가 올 수도 있다고 본다. 이러면 ‘같이 죽는 우물에 독 타기’다. 최태욱 교수는 연동형 비례제의 합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제도 원리를 훼손하는 시도가 그렇게까지 강하게 처벌받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의 ‘우물에 독 타기’는 합리적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하버드 대학 정치학 교수다. 둘이 함께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민주주의의 생존에 중요한 규범은 우리가 ‘제도적 자제’라 부르는 개념이다.” 제도적 자제란, 제도가 명시적으로 금지하지 않는 행동이라 해도, 제도의 취지를 살펴 절제하는 태도다. 이게 왜 중요한가? 민주주의는 자기편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게임 자체가 흔들리지 않고 무한히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자제가 사라지면, 상대도 따라서 극단적인 전술을 쓸 것이다. 이 악순환은 민주주의라는 게임 자체를 훼손한다. 민주당 처지에서 보면, 위성정당 창당 선언은 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므로 ‘제도적 자제’ 원리를 자유한국당이 어겼다.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반대로 자유한국당 처지에서 보면,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이므로 합의 처리가 원칙이라는 ‘제도적 자제’ 원리를 민주당이 어겼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서로 상대를 지목하겠지만, 제도적 자제가 깨져나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비례한국당이 기정사실로 구체화되면서, 민주당은 중요한 결단을 앞두게 되었다. 과연 민주당은 ‘비례민주당’을 만들까? 이러면 30석 판돈 대부분을 양당의 위성정당이 휩쓸어갈 것이므로 연동형의 취지는 사라진다. 만들지 말자는 의견도 당내에 있다. 전략통으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의원은 “일단 여론을 좀 지켜보자. 단순 계산을 할 때는 자유한국당 지지층이 그대로 유지되고 지역구 의석도 그대로 얻는다고 가정하는데, 실제로 그럴지 여론을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조석주 교수의 ‘숨어 있는 비용’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이 의원은 이어서 “비례한국당이 자유한국당에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라고까지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득이 과장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우리 손해가 크지 않다면 정석대로 가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태욱 교수의 관점대로 자유한국당이 합리적으로 ‘우물에 독 타기’를 하고 있다면, 민주당도 우물을 버려야 하는 시기가 온다. 이때는 비례민주당이 불가피할 수 있다. 다만 자유한국당처럼 대놓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띄우는 형태가 될 가능성은 낮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창해온 터라 명분이 없다. 당내에서는 여러 가능성이 아이디어 차원으로 거론된다. 중량급 인사가 자생적인 친(親)민주당 비례대표 정당을 만들고, 민주당은 이를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개혁당 모델과 닮았다.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연대 정당을 만들어서, 사실상 다당제 효과를 민주당 틀 안에서 내는 방안도 있다. 예를 들면 ‘청년민주당’ ‘여성민주당’ 등을 띄워 청년이나 여성 공천을 집중시키는 방안도 가능하다. 모두 현 단계에서는 한참 이른 이야기다. 하지만 비례한국당 기획이 구체화될수록 민주당도 결단의 시기를 맞게 된다.

자유한국당이 내놓은 비례대표 위성정당 카드는 꽤 묵직한 이야기보따리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기본구조, 제도 해킹의 구동방식, 합의제 원리와 다수제 원리의 충돌, 민주주의를 지키는 제도적 자제의 원칙까지, 풍부한 질문이 이 카드 한 장에 담겨 있다. 비례대표 제도의 전도사 최태욱 교수는, 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결정적 공격인 이 카드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자유한국당이 한 정치행위 중에 가장 흥미롭다.” 이 전도사는 왜 이런 역설적 결론에 도달했을까? “연동형 비례대표제, 그를 통한 합의제 민주주의로 가는 길에서 어차피 한 번은 만날 제대로 된 반격이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법을 바꾼다 해도 취약하고 위태로울 것이다. 새로 구성될 21대 국회가 고도의 합의를 만들어낼 책무를 지게 될 것이다. 그게 없으면 새 선거제도는 이런 해킹에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흔들리다가 결국 붕괴한다. ‘비례한국당’은 결국, 합의제적 선거제도는 고도의 합의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원칙을 일깨운다. 중대한 도전 과제를 던지는 아주 흥미로운 정치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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