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톺아보기 ①] 보도 통제가 가능한 ‘최고의 언론사’란?
  • 천관율·김연희 기자
  • 호수 638
  • 승인 2019.12.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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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 중에, 특정 언론사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는 문건은 모두 아홉 개다. 아홉 개 모두 <조선일보>다.
2015년 4월25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이 함께 쓴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 전략’ 문건.

언론은 종종 ‘제4부’라고 불린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려면 헌법상 권력분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폭넓은 감시 없이는, 권력은 언제고 거래와 흥정의 원리로 미끄러져갈 수 있다. 이 폭넓은 감시 기능을 맡은 게 언론이다. 미국 독립혁명의 주역 중 하나인 토머스 제퍼슨은 “언론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언론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 없이 정부 없는 언론을 고르겠다”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그는 “언론이 정부보다 중요하다”라는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언론 없는 정부는 너무나 위험해서 차라리 없는 게 낫다”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입헌민주주의 국가라면 다들 언론 자유를 헌법적 권리로 명시하는 이유다. 그래서 언론은 민간 영역이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서 한 축을 맡는다고 간주된다. 이론상 그렇다.

이론은 이론이고, 현실에서는 언론 역시 내부자들의 세계에 산다. 거래와 흥정의 원리는 언론 역시 포섭한다. 언론은 왜 내부자 게임에 초대받나. 입법·행정·사법부의 내부자들은 서로에게 영향력을 끼치기를 원한다. 그래서 거래와 흥정을 자기 쪽에 더 유리하게 끌고 가려 한다. 이럴 때 언론은 좋은 도구다. 언론을 통한 영향력은 크게 두 갈래로 작동한다. 첫째, 언론을 통해 일반 대중의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두 번째가 더 중요한데, 다른 내부자들이 내 의제를 언론을 통해 보도록 만들 수 있다. 대중이 보는 매체보다, 다른 내부자들이 보는 매체에 기사를 올리는 게 중요해진다.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언론 관련 문건은 내부자 게임의 렌즈로 읽을 때 더 흥미진진해진다. 법원행정처가 공개될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작성한 문건들은 한국의 내부자들이 ‘제4부’ 중에서도 누구를 내부자 게임의 파트너로 생각하는지, 어떤 식으로 게임을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5년 8월20일.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면담하고 나서 작성된 ‘VIP(대통령)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 전략’ 문건이다. 문건은 대통령 면담 이후 법무부를 압박해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방법을 담고 있다. 그중에 언론 활용 전략이 있는데, 이렇게 쓴다. “법무부에 실질적 영향 미치고 BH(청와대) 인식 환기시킬 수 있는 메이저 언론사 활용. 조선일보 1면 기사 등.” 법무부와 청와대는 <조선일보>를 볼 것이라고 법원은 자연스럽게 가정한다.

우연이 아니다. 공개된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 중에, 특정 언론사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는 문건은 모두 아홉 개다. 아홉 개 모두 <조선일보>다. 법원행정처는 언론 중에서 내부자 게임을 할 파트너는 사실상 <조선일보> 하나만 생각했다.

ⓒ시사IN 자료법원행정처는 언론 중에서 내부자 게임을 할 파트너로 사실상 <조선일보> 하나만 생각했다.

“광고비에 설문조사 대금 포함 지급”

2015년 4월25일에는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문건 하나가 작성된다. 제목은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 전략.’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이 함께 썼다. 법률가 대상으로 상고법원 여론조사를 해서 상고법원 지지세가 높다는 결과를 받아내고, 그걸 <조선일보>에 싣자는 취지다.

문건은 여론조작 공작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이메일 조사를 20일쯤 진행하되, 조사 기간은 따로 밝히지 않도록 한다. 그래야 반대 응답이 쏟아질 기미가 보이면 조사를 종료하고 유리한 결과를 발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 편차를 보정할 것도 제안하면서, 보정 방법 역시 비공개로 하자고 쓴다. 이유는 비슷하다. “조사 결과에 따라 유리한 방안 택할 수 있도록 구체적 보정방법은 사전 공지하지 아니함.” 법관이 쓴 문장으로 믿기 어렵다. 조사 주체도 서울지방변호사회보다는 <조선일보> 조사를 선호했다. 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보도 여부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숫자 마사지를 하고도 찬성 수치가 기대보다 낮으면(“찬성 50% 미만:활용 불가”) 보도를 막아야 하는데, <조선일보>와 하면 그런 통제가 가능하다고 본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여론조사 설계의 원칙 중에 지킨 게 뭔지를 꼽기가 더 어렵다. 법원이 이런 이상한 여론조사를 언론사에 의뢰할 예산항목이 있기는 할까? 문건은 꼼꼼하게 그 대목도 대책을 마련해 뒀다.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관련 광고 등 게재하면서, 광고비에 설문조사 실시 대금을 포함하여 지급.” 이러면 사법부 공보홍보비 예산 9억9000만원에서 당겨 쓸 수 있다. 2주쯤 지난 5월6일에 법원행정처는 위 기획으로 <조선일보>에 들고 갈 제안서를 쓴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너무 심했는지 “조사 결과에 따라 유리한 방안 택할 수 있도록 구체적 보정방법은 사전 공지하지 아니함”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보도 여부 통제 가능” 등의 내용은 다 덜어냈다. 대신에 미사여구를 한 줄 추가한다. “국민들로부터 가장 신뢰를 받고 있는 최고의 언론사를 통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쟁점 부각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를 거의 한식구로 생각한 정황이 문건 곳곳에서 드러난다. 앞에서는 ‘최고의 언론사’라고 추켜세우면서, 여론 작업의 상대로는 직업윤리가 무너진 수준의 기획안을 거침없이 써냈다. 이렇게 내부자 게임에 입장권을 받은 언론사는 이른바 ‘고급 정보’에 접근할 길이 열린다. 업계에서 취재력을 인정받게 되면, 다시 또 다른 내부자들이 접근해 온다. 양승태 대법원의 황당한 발상과 성실한 기록 덕분에, 권력·언론 내부자 게임의 작동 원리를 생생히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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