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
  • 임지영 기자
  • 호수 612
  • 승인 2019.06.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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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장르가 된’ 봉준호 감독에게 칸은 이미 과거이다. 그는 “앞으로가 걱정이다”라고 말한다.
<기생충>을 극장에서 볼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영화 시작 부분, 종소리가 나는데 그게 너무 작게 들리거나 끊기면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극장의 음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용도다.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 (종소리에 이상이 있으면) 다들 벌떡 일어나 환불하라고 항의하는 거다(웃음).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우리끼리라도 체크하려고 넣었다.” 봉준호 감독의 말이다. <기생충>의 언론 시사회가 열린 5월28일,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감독이 직접 상영관을 돌며 소리와 화질을 점검했다. 밤 신을 찍을 때 ‘충분히 어둡지만 교묘하게 보이도록’ 끝까지 붙들고 촬영을 했는데 극장마다 사정이 달라서 그런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 고통스럽다. 손을 떠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영화 만드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 칸에서 돌아온 지 3일째. 개봉을 하루 앞둔 봉준호 감독은 시차 적응 중이었다. 인천공항 입국 당시의 차림과 비슷했다. 검정색 티셔츠에 네이비(감색) 재킷, 손때 탄 검정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옥자> 개봉 당시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그가 태블릿 PC 첫 보도를 앞둔 손석희 앵커에게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2016년, 10월24일, 오후 7시59분에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봉 감독에게 물었다. “5월25일 12시40분에 어떤 심정이었나요?” 칸 영화제 수상자는 통상 폐막식 당일
낮 12시에서 1시 사이 시상식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12시41분 전화가 왔다. “영화 평점이 높게 나와서 웅성웅성했는데 그냥 가면 창피할 것 같았다. 잘못한 게 아닌데 비난받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화를 받고 안도감이 들었다. ‘빈손은 아니겠구나, 다행이다.’” 시상식 때 봉 감독은 좌석 가장 바깥쪽에 앉았다. 호명이 늦어질수록 옆자리 동료들이 흥분했다. 봉 감독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황금종려상이 발표된 뒤 격한 포옹을 하고 제스처를 취한 건 배우 송강호가 이끌어준 덕분이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가장 먼저 프랑스 영화계의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한 뒤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동반자’인 송강호에게도 마이크를 넘겼다.

ⓒAFP PHOTO5월25일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자 봉준호 감독(오른쪽)과 송강호 배우가 포옹하고 있다.

‘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미국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의 평이다. 특히 기분이 좋았다. 평소 외국에 나가면 장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외신에서 그의 영화를 두고 장르가 섞여 있다는 말을 많이 했다. 봉 감독 본인은 찍을 때 장르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어느 구간까지는 블랙코미디, 어느 부분은 호러 이렇게 나눠서 접근할 수가 없다. 우리의 일상도 일할 때는 ‘호러’였다가 퇴근한 뒤 연인을 만나면 ‘멜로’가 되듯 극 안에도 여러 장르가 있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질문에 답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제가 그냥 장르예요. 아시잖아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제 자체로 장르가 되었다고(웃음).”

그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은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이야기다. 영화는 반지하 집의 창밖 풍경을 비추며 시작된다. 트럭과 오토바이가 화면 위쪽을 지나고 취객은 집을 향해 오줌을 갈긴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네 가족은 집 안에서도 공짜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을 찾아 모여든다. 피자 박스를 접어 번 돈으로 저가 맥주를 사 마신다. 어느 날 아들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가 고액 과외 자리를 소개한다. 학력을 위조한 뒤 도착한 곳은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다. 유명 건축가가 지은 집의 계단을 오르니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는 정원이 나왔다. 글로벌 IT 기업의 CEO 박 사장네 집이다. 똑같은 4인 가정인데 모든 게 다르다.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를 찍던 2013년 <기생충>을 구상했다. <설국열차>는 칸 앞뒤로 계급을 나눴다. 다음엔 삶의 기본 단위인 가족을 소재로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펼쳐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야기가 만들어진 최초의 ‘스파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괴물> 때는 어린 시절, 서울 잠실대교 밑에서 무언가를 봤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옥자> 개봉 당시엔 이수교차로에서 운전을 하다 큰 돼지를 봤다고 했다. <기생충>은 딱 꼬집을 계기가 없다. 그래서 찾은 게 ‘바지에 묻은 얼룩’이다. 종일 어딜 다니다가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바지에 얼룩이 묻어 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존재하되 어디서, 언제,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봉 감독의 대학 시절 경험이 녹아 있기는 하다. 어느 고급 빌라에 사는 남자 중학생의 수학 과외를 맡은 적이 있었다. 철문이 ‘찌끄덕’ 소리를 내며 열리던 집이었다. 공용이긴 하지만 잔디밭이 깔려 있었고 영화에서 나오는 집처럼 2층에 사우나실이 있었다. ‘우와~ 집에 사우나가 있다니.’ 신기했다. 두 달 만에 잘렸다. 아는 선배의 조언을 따른 결과였다. 성적을 올려야 오래 일할 수 있는데 아이를 놀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과외가 끝나고 나서 불안한 마음에 공부를 한다는 거다. ‘기적의 논리’였다. 아이 어머니를 만났던 기억도 난다. 가난한 집은 소음이 많다. 부잣집은 동네가 원래 조용한 건지 이중창 덕분인지 적막했다. 철문이 열릴 때의 소리, 대리석의 감촉 같은 당시의 경험이 영화에 스며들었다.

<기생충>에서 기택네 가족(아래)은 피자 박스를 접어 번 돈으로 값싼 맥주를 사 마신다.

빈부 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 공간이다. 영화에는 유난히 계단이 많이 나온다. 봉 감독에게 영향을 미친 김기영 감독의 <하녀> 속 이층집이 연상된다. 계단은 계급사회의 수직적 질서를 보여준다. 구질구질한 기택네 집은 너무 현실적이라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화장실 변기를 이용하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변기가 정화조보다 아래 있으면 수압 차이 때문에 내용물이 역류할 수 있다. 반지하 집 중엔 실제로 그런 구조가 있다.

“영화가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

냄새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서로 냄새 맡을 기회가 없다. 동선이 달라서다. 비행기를 타도 이코노미 클래스와 퍼스트 클래스로 나뉜다. 이용하는 식당, 직장 모두 다르다. 가정교사, 운전기사, 가정부 등 영화에 나오는 직종의 사람들은 그 접점에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기택네 가족 네 명은 똑같은 냄새를 지니고 있다. 반지하 방이나 몰락한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대만 카스테라’같이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녹아 있지만 빈부 격차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룬다.

기택네 식구들은 ‘공생’을 원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기생’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극중엔 악당이 없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걷잡을 수 없는 흐름에 휘말린다. 봉준호 감독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얼마나 지키느냐에 따라 기생이 될지 공생이 될지 갈린다고 봤다. 그의 영화에는 약자와 계급의 문제가 자주 등장한다. “소설이건 연극이건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는 건 당연하다. 모두 자본주의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다 그렇지 않나. 형편이 안 좋은 친구도 있고 친척 안에서도 나뉘고. 실제 있는 풍경이고 그로 인해 우리 삶이 고통받기도 한다. 어찌 보면 그걸 다루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영화를 둘러싸고 벌써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정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극중 박 사장이 신입 운전기사의 주행 테스트를 할 때 ‘코너링’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연상된다는 식이다. 봉 감독은 풍부한 해석에 감사하지만 의도한 게 아니라고 했다. “블랙리스트에 내 이름이 올라 있었지만 영화를 찍을 때 지장을 받은 적은 없다. 독립영화 하는 분들이나 연극 쪽에서 체감된 피해가 많았던 걸로 안다. 물론 블랙리스트 자체가 나쁘다. 정치적 유머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이 있겠지만 실제 사건과의 연결고리는 생각해본 적 없다.” 현장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에 맞춰 일했던 게 화제가 되자 선구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14년께부터 영화노조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됐고 2017년 정도부터 정착되었다. <설국열차>와 <옥자>를 찍으며 거의 같은 형태의 규정에 훈련되었는데 한국에 오니 정착되어 있었다.”

그의 수상 소감이 회자되었다. “열두 살의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되게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습니다. 이 트로피를 손에 만지게 될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한국 나이로는 14세지만 프랑스 기준으로 12세라 그에 맞춰 답한 건 특유의 ‘디테일’이 감지되는 부분이다. 영화 잡지 <로드쇼> <스크린>을 스크랩하며 배우와 감독을 동경했다. 집착이 강한 성격이라 영화를 계속 붙들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군 제대 후 학내 영화 동아리 ‘노란문’에서 활동했다. 1994년, 첫 단편 <백색인>을 찍었다. 영화아카데미에 가면 공짜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입학했다.

장편 데뷔 전에는 결혼식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 가지 이유>의 연출부로 충무로에 진입했고,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했다. 약 10만명이 봤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미제 사건을 통해 시대를 풍자한 <살인의 추억>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괴물>로 ‘천만 영화’의 감독이 되었다. 배우 김혜자를 새로 조명한 <마더>에 이어 넷플릭스 동시 개봉으로 <옥자> 역시 화제가 되었다. <기생충>은 그에게 ‘영화적으로 모험’이었다. 독특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칸 현장에선 영화 전개의 리듬이 인상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았다. 칸에서 상을 받고는 싶었지만 황금종려상을 바란 적은 없다. 처음 받는데 ‘심하게’ 받아서 앞으로가 걱정이다. 빨리 잊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몸에 영화를 새기고 다니는 영화인

영화 일은 고되지만 짜릿한 경험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눈 오는 날 최우식 배우(기우 역)가 산에 올라가는 신을 꼽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찍었다. 5개월 전 나머지 촬영을 다 끝내놓고 기상청 홈페이지를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눈을 기다리다 지쳐 2월15일로 날짜를 못 박았다. 특수효과 팀에도 소금을 준비하라고 했다. 당일에 거짓말처럼 눈이 왔다. ‘될 놈은 뭐가 되도 되는구먼.’ 이런 얘길 들었다. “그 장면 볼 때마다 통쾌하다. ‘이런 게 영화지’ 싶다. 영화 일이 고된데 가끔 그런 짜릿함이 있다.”

시사회 당시 봉준호 감독은 스포일러를 자제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기생충이 반전에 매달리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의 크고 작은 고비들마다 관객이 때론 숨죽이고, 때론 놀라며, 매 순간의 생생한 감정들과 함께 영화 속으로 빠져들기를, 만든 이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같은 날 그는 “칸은 벌써 과거가 됐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식어를 내려놓고 관객이 영화를 만날 차례였다. 가벼운 변장을 하고 일반 관객들 틈에서 같이 영화를 볼 생각이다. 어떻게 봤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반응이 궁금하다. 극장에서 182㎝ 장신의 사내가 보인다면 유심히 볼 일이다.

봉준호 감독은 말할 때 움직임이 많은 편이었다. 인터뷰를 하며 수상 당시 제스처를 재연하기도 했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팔에 새겨진 문신이 보였다. 그에 대해 묻자 몸에도 있다며 웃통 벗는 시늉을 했다. 가슴팍에 초록색 나뭇잎이 잠깐 드러났다. 가지들도 뻗어 있었다. <마더>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나무다. 영화를 새기고 다니는 영화인의 몸이었다. 앞으로도 봉 감독 영화의 시작엔 종소리가 담길 예정이다.

ⓒ시사IN 신선영<기생충>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맨 왼쪽)과 출연 배우들이 5월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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