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마]가 미래에 던지는 4가지 질문
  • 임지영 기자
  • 호수 590
  • 승인 2019.01.0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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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사진)의 <로마>는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 중간에 걸터앉아 시네마의 미래, 콘텐츠 산업의 미래에 대해 묻는 영화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극장에 모인 기자들을 향해 물었다.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셨나요? 아니면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봤나요?” 누군가 답했다. “극장에서요!” 감독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어진 반응이 그의 심정을 대변했다. “판타스틱!” 지난 12월21일,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영화 <로마> 감독 알폰소 쿠아론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쳤다. 이날 그는 스스로 표현하길 “어색하지만 현대적인 방법으로” 국내 기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화상 연결을 통해서였다.

그의 최근작 <로마> 역시 그로서는 ‘어색하지만 현대적인 방법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연출하고 <그래비티>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그의 필모그래피 역사상 최초로 넷플릭스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넷플릭스가 제작하고 배급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이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봤다는 말에 반색하는 쿠아론 감독의 반응은 어딘가 역설적이다.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어디서든 쉽게 접근이 가능한 영화이지만 애써 극장을 찾아달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한다.” <로마>를 본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의 노점상과 도로에서 나는 고유한 소리까지 따로 녹음하고, 6분 가까운 롱테이크를 통해 풍경의 전경, 중경, 후경까지 보여주는 이 영화를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이 영화관이라서다. <로마>는 2018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Netflix 제공

12월12일 국내에서 개봉되고 이틀 뒤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멀티플렉스 극장 3사는 <옥자> 때와 마찬가지로 상영을 거부했다. 극장 상영 기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송경원 영화평론가는 <로마>가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 중간에 걸터앉아 시네마의 미래를 묻는 영화’라고 정의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에 대해 묻는 한편, 콘텐츠 산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묻고 있다. 지금 시기, <로마>가 던지는 질문을 정리했다.

<로마>, 꼭 극장에서 봐야 할까?

<로마>는 쿠아론 감독 본인이 어릴 적 자랐던 집과 동네에 대한 추억을 바탕으로 만든 자전적 영화다. 전작 <그래비티>를 마무리할 당시, 다음 작품은 단순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리겠다고 결심했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멕시코시티로 돌아가 1970년대 초 멕시코를 재현했다. 백인 중산층 집안의 보모로 일하는 클레오를 통해 격동기 멕시코 사회의 불안을 묘사한다. 국내에선 멀티플렉스 대신 전국 40여 개 ‘작은 영화관’에서 개봉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 영화 수입배급사 엣나인필름의 박혜진 팀장은 “극장 아트나인의 경우 11월까지 예술영화 관객이 적은 편이었는데 12월 들어 <로마>의 반응이 뜨겁다. 넷플릭스에 풀린 이후 관객 수가 감소하지 않을까 했는데 계속 극장을 찾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를 접한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다.

<로마>는 관객의 시각 및 청각적 경험을 극대화한 영화다. 큰 스크린이 걸맞다. 그렇다고 무엇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박 팀장은 “넷플릭스로 볼 때도 최적의 시스템을 갖춰 볼 수 있는 매뉴얼이 있더라. 어떤 사운드 출력으로 보면 극장에서 보는 정도의 퀼리티를 구현할 수 있다는 식이다. 작은 화면으로 볼 때와 큰 데서 볼 때의 차이가 큰 영화긴 하지만 극장 수준의 시스템을 갖춘 넷플릭스 유저도 있는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쿠아론 감독 역시 극장을 가장 추천하지만 넷플릭스로 볼 때는 매뉴얼을 강조한다. ‘TV에서 <로마>를 시청하는 모범 사례’가 영화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 있다. ‘모션 스무딩(motion smoothing)’같이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 주로 사용하는 설정을 제거하고 색 온도를 보통으로 맞추라는 식이다. 텔레비전 브랜드별로 설정을 달리 권장하는 등 구체적이다.
ⓒ시사IN 신선영광화문 씨네큐브(위)에서 <로마>가 상영 중이다.

쿠아론은 왜 넷플릭스를 선택했을까?

그는 <로마>의 촬영, 편집, 시나리오, 기획, 연출 등 출연을 제외한 대부분의 역할을 혼자 했다. 누군가와 시나리오를 상의하지도 않았고 영화의 90%가 본인의 기억에서 나왔다. 감독 스스로도 “아무런 필터도 거치지 않고 각본에 있는 걸 내 뜻대로 촬영해서 좋았다”라고 밝혔다. 현대적으로 과거를 재현하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로 흑백 영상을 구현했다. 배우들도 모두 멕시코 출신이고 주연배우는 연기 경력이 전무하다. 그야말로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한 셈이다. 전작에 비해 상업성은 떨어진다. 감독은 스페인어 및 멕시코 토착어, 흑백영화, 65㎜ 영화 등을 그 배경으로 언급한다. 그는 “이런 스토리에 관심을 가졌던 플랫폼이 넷플릭스였다”라고 말했다. 기존 제작 시스템에선 그 정도의 자유를 누리기 어려웠으리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쿠아론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과거에 극장을 가면 유럽 영화, 아시아 영화, 예술 영화 등 다양했지만 지금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지배적이다. 지금 시대에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이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의미다. “한국에서의 상황은 잘 모르지만 극장에서 선택의 폭은 확실히 좁아졌다. 나도 관객이 전부 극장에서 <로마>를 봤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좀 더 많은 사람이 즐기기 위해선 신규 미디어 플랫폼이 적합하지 않나 싶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카우보이의 노래>를 공개한 코언 형제의 행보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자본의 힘으로 기존의 또 다른 거대 자본이 놓치고 있는 다양성을 구현하는 아이러니다.

칸 영화제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보게 되는 날이 올까?

2017년 칸 영화제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옥자>가 경쟁 부문에 출품되었을 당시 심사위원장이던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건 상상이 안 된다. 유일한 방법은 새 플랫폼이 기존 룰을 수용하고 준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후 칸 영화제의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다. 반대로 베니스 영화제와 토론토 국제영화제 등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을 수용했다. 비평과 흥행 모두 후자의 승리였다. 쿠아론 감독은 칸 영화제의 철학이 지속되기는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다. “플랫폼의 영화 제작이 단기적인 트렌드는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으로 인정하고 둘의 공존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플랫폼도 감독들에게 극장에서의 출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하고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을까 예측된다”라고 말했다.

영화제를 공략하는 <로마>의 전략은?

2012년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정계의 음모와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2013년 시작)가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다. 최근 들어 넷플릭스는 주요 영화의 경우 스트리밍 서비스와 동시에, 혹은 그에 앞서 극장 개봉을 추진하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2018년 선보인 <7월22일>과 <프라이빗 라이프>의 성공에서 기인했다고 설명하지만 각종 영화제를 의식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로마>는 2019년 1월에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과 달리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의 경우 극장 개봉 3주 뒤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넷플릭스의 홍보대행사인 딜라이트 측은 “나라별로 배급 상황 등을 고려해 극장 개봉 날짜가 상이하다”라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2018년에만 자체 제작 콘텐츠에 약 8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알려져 있다. 넷플릭스가 거장들과 손잡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에 주력하는 한, ‘극장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중간에 걸터앉는’ 횟수는 점차 늘어나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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