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기술에도 유행과 운명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제 길거리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스티커 사진기이다. 일본에서 발명되었다는 이 즉석 사진기는 20여 년 전에 등장했다. 스티커 사진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있었고 모임 도중 이동할 때 심심풀이로 사진을 찍어 나눠 가지며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스티커 사진은 사진이 완전한 놀이, 이미지 게임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유행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고,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의 득세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스티커 사진은 사진 찍기의 태도를 바꿨고 의미와 소통 방식도 변화시켰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일종의 의무감과 엄숙함 속에 사진을 찍었다. 백일, 돌, 생일잔치, 입학식, 졸업식, 소풍, 결혼식 등 인생의 작은 한 매듭을 지어야 할 때,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인화를 해서 앨범에 넣었다. 스티커 사진은 그 엄숙함, 심각함을 놀이로 바꾸었다. 사람들은 회식 후에, 데이트를 하다가, 그냥 길을 걷다가도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이미지를 만드는 게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물론 그 사진은 색깔과 재현 능력이 다소 조악했고 내구성도 약했지만 그걸 상관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모두가 어차피 스티커 사진은 기록되고 보존되는 게 아니라 소비되어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스티커 사진을, 보관하고 감상하고 읽기 위해 찍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혹은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찍지도 않는다. 스티커 사진은 이미지 게임의 일종이다. 그 이미지 게임은 대상을 닮았으면서도 대상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사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사진 찍는 사람에게 변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에선 소멸 위기, 일본에선 큰 인기
스티커 사진은 환상이 현실적인 이미지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초기의 스티커 사진이 즉각성, 접착 가능한 기능을 내세웠다면 다음 세대의 스티커 사진은 가상적인 이미지가 가능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가발이 제공되었고, 〈보그〉나 〈하퍼스 바자〉 같은 유명한 패션잡지의 모델이 되거나, 영화 포스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스타처럼 카드로 만들어지며 달력과 배지에 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진 매체가 가지는 정확한 재현성은 관심 밖이었다. 대신 전형적인 결혼식 사진처럼 부드러운 연초점과 파스텔톤 색채가 강했다. 꼼꼼히 수정된 화장품 광고 사진처럼 피부는 맑고 깨끗하고 포즈들도 가볍고 명랑했다.
이런 이미지에는 의미가 없다. 의미가 있다고 해도 거의 해독될 필요가 없는 즉각적인 것이다. 그래서 스티커 사진은 순수한 기표이며 스티커 사진기는 환상을 제조하는 연금술이다. 그 연금술의 도가니 속에서 이미지는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라 공기 중에 흩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제 스티커 사진을 찍는 곳은 유명 관광지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일본에서는 아직도 성업 중이다. 한국에서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고 업체들은 주장하지만 소멸의 길에 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이미지 생산기술의 운명이다.
-
인류 최초 사진집 ‘자연의 연필’
인류 최초 사진집 ‘자연의 연필’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윌리엄 폭스 탤벗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 초기의 발명가로서 다게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진을 발명하는 데 성공한 영국 사람이다. 다게르가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아라고를 통해 사진술...
-
들어는봤나, ‘사진적 무의식’이라고
들어는봤나, ‘사진적 무의식’이라고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광학적 무의식 혹은 시각적 무의식(das Optisch-Unbewuβte)이라고 번역되는 말이 있다. 원래는 발터 베냐민이 영화에 쓰이는 카메라의 기술적 기능을 가리킨 말이다. 영...
-
기록은 예술이 되고, 예술은 기록이 된다
기록은 예술이 되고, 예술은 기록이 된다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사진은 예술과 기록 사이를 오간다. 존 택이라는 작가이자 이론가의 말처럼, 사진은 정체성이 없어서 한때의 기록은 예술이 되고 예술 작품이라고 찍었던 사진은 기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
사실과 진실에서 멀어진 얼굴
사실과 진실에서 멀어진 얼굴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지하철을 타고 서울 강남 일대를 돌다 보면 성형외과 광고를 흔하게 본다. 광고를 이루는 주된 이미지는 성형 전후를 비교하거나 성형으로 만들어진 얼굴의 앞과 옆을 찍은 사진이다. 내...
-
지금 북한 말이 궁금하시다면
지금 북한 말이 궁금하시다면
임지영 기자
경복궁 인근엔 골목마다 한복 대여점이 들어서 있다. 그중 한 군데를 찾았다. 한복이 사이즈별로 수십 벌 걸려 있는 옷걸이와 탈의실, 외국인과 외국어를 지나자 작은 스튜디오가 나왔다...
-
필름에 극명히 새긴 ‘보이지 않는 동네’
필름에 극명히 새긴 ‘보이지 않는 동네’
안해룡 (아시아프레스·다큐멘터리 감독)
“오사카를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나는 이 사진집에서 ‘60년대’를 넘어서는 자이니치의 역사를 보았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형태를 갖추고 우리...
-
함석으로 만든 물건을 찍은 어떤 사진 이야기
함석으로 만든 물건을 찍은 어떤 사진 이야기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신즉물주의라는 말이 있다. 예술의 여러 분야에 쓰이지만 조금씩 그 의미가 다르다. 회화나 조각의 경우에는 사물의 물질성보다 세계의 현실을 드러내는 방법론으로 사용된다. 사진에서는 ...
-
버닝썬 사건, 정준영 출석 사진의 맥락
버닝썬 사건, 정준영 출석 사진의 맥락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얼마 전 거의 모든 일간지에 얼굴 사진 두 장이 나란히 실렸다. 장본인은 승리와 정준영. 이른바 ‘버닝썬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이들이 경찰에 출석할 때 찍힌 사진이었다. 버닝썬...
-
조각 작품보다 흥미로운 간판
조각 작품보다 흥미로운 간판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장)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가보았던 도시는 볼거리가 많아서 좋았다. 가게마다 가득 찬 상품과 더불어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간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함석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