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에 극명히 새긴 ‘보이지 않는 동네’
  • 안해룡 (아시아프레스·다큐멘터리 감독)
  • 호수 597
  • 승인 2019.02.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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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현은 1960년대에 일본 최대의 조선인 밀집지역 ‘이카이노’를 5년 동안 촬영했다. 그의 사진집 <이카이노>에서는 자이니치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오사카를 떠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나는 이 사진집에서 ‘60년대’를 넘어서는 자이니치의 역사를 보았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형태를 갖추고 우리 앞에 역사로 떠오르게 한다.” <화산도>의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은 조지현이 1960년대에 촬영한 오사카 ‘이카이노’의 사진을 접하고 이렇게 평가했다.

이카이노는 지금은 사라진 지명이다. 현재 오사카 이쿠노구 일부 지역의 지명이었다. 이카이노는 일본 최대의 조선인 밀집지역을 가리키는 대명사였다. 일본인에게 이카이노는 조선인을 연상시키는 기피 지역이자 차별의 공간이었다. 옛날에는 이카이쓰(猪甘津)라고 불렸다. 5세기께부터 한반도에서 집단으로 도래한 백제인이 개척했다는 백제향(百濟鄕)이기도 하다. 1920년대 구다라가와(百濟川)를 개수하여 신히라노가와(新平野川·운하)를 만들 때 공사를 위해 모였던 조선인이 그대로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설도 있다.

자이니치 시인 김시종은 이카이노를 ‘보이지 않는 동네’라고 노래했다. “없어도 있는 동네/ 그대로 고스란히/ 사라져버린 동네/ 전차는 애써 먼발치서 달리고/ 화장터만은 잽싸게/ 눌러앉은 동네/ 누구나 다 알지만/ 지도엔 없고/ 지도에 없으니까/ 일본이 아니고/ 일본이 아니니까/ 사라져도 상관없고/ 아무래도 좋으니/ 마음이 편하다네.”


ⓒ조지현이카이노의 재일동포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시장을 가고 있다.


조지현이 촬영한 이카이노의 사진에는 자이니치의 ‘영주권’ 문제를 둘러싼 정치 상황이 담긴 현수막, 전봇대에 달린 찢어진 표어,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통학하는 여학생들, 다리에 한글로 쓰여 있는 낙서, 비 오는 날 밤의 조선시장, 폐품을 회수하는 노인, 치마저고리를 입고 조선시장과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 바람에 날리는 빨래, 콩나물 통, 두 이름이 쓰인 문패, 조선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장례식 모습 등 이미 기억 속에서는 사라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지현이 이카이노를 촬영한 건 1965년부터 1970년에 이르는 5년간이다. 한·일 회담과 남북 분단의 정치적 갈등은 이카이노에도 여과 없이 투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정치적 혼돈과 갈등, 대립 속에서도 차분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카이노라는 용광로는 역사적 격랑을 조용히 녹여내고 있었다. 조지현은 “감수성이 많은 소년기에 이카이노에서 맛보았던 비애와 사춘기에 경험했던 차별의 기억은 치유되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에 아픔과 굴욕으로 남아 있었다”라며 일본에서 출판된 사진집 <이카이노>에서 회고했다. 조지현은 27세 때부터 이카이노 사진을 찍었다. 계기는 특별히 없었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자이니치 청춘의 혼란과 방황이 자신도 모르는 동력을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저항정신 발현된 리얼리즘 사진

“찢어졌던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자이니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물으며 떠돌던 청춘의 순진했던 사색과 사진의 방황에는 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적막감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제주도와 이카이노에서의 기억은 내 사진 표현의 원점이자 모티브와 주제였다. 사진에 찍힌 소년들은 내 분신이며, 어머니들은 뇌리에 남아 있던 어머니의 환영이었다.”

조지현은 1938년 5월 3남2녀의 장남으로 제주도 조천읍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신촌리는 인구 5000명 정도의 마을. 전기도 안 들어오던 바닷가 한촌이었다. 조지현은 열 살 때 고모를 따라 아버지가 전쟁 전부터 돈벌이를 하던 일본 오사카의 이카이노로 왔다. 1948년의 일이다. 밀항이었다.


ⓒ조지현1960년대 이카이노 뒷골목에서 구슬치기를 하는 아이들.

조지현이 대학생이 된 1960년은 ‘미·일 안보조약’ 반대 투쟁에서 패배한 절망스러운 시절이었다. 당시 일본 최대 탄광 지역을 기록한 도몬 겐의 사진집 <지쿠호(筑豊)의 아이들>이 출판되었다. 이 사진집을 접한 조지현은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사진집에는 조지현의 소년 시절 이카이노 생활과 연결되는 절대적 빈곤의 세계가 있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사진 전문학교에 들어가 기초 기술을 배운 다음 사진 스튜디오 몇 곳을 옮겨 다니며 전문 기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던 이카이노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하루살이의 삶도 낯설지 않은 공간이었다. 일본이 고도 성장기에 접어들었지만 이카이노는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시기였다. 커피 한 잔이 100엔이던 시절, 당시 코닥의 흑백필름 트라이X는 500엔이었다.

조지현은 이카이노 사진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엄청난 사진을 찍자는 의식보다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이카이노의 모습을 인화지에 극명히 남기고 싶다는 의식과 언젠가 역사의 증언이 될 수 있는 미래를 의식했다. 이카이노의 현실에 부딪혀 찍어낸 리얼리즘 사진은 내 저항정신의 사진적 발현이었다.” 조지현이 기록한 1960년대는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데 삶의 명암이 뚜렷이 구별되던 시대였다. 1960년대의 이카이노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자이니치 삶의 연장선이다.

김시종은 이 사진들이 “이 마지막 ‘이카이노’를 현재에 멈추게 한 정지화(静止畫)”이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 아로새겨진 형상처럼 정착하고 있다”라고 정의했다. 김석범은 “조지현의 조각도로 배경 깊숙이 윤곽을 새긴 듯한 빛의 스케치가 가지는 힘은 화면 속 심오한 공간으로 보는 사람의 혼을 끌어당긴다. 예술성이다. 추억은 존재의 배경이다. 심연의 배경은 기억이자 역사다.”

자이니치 사진가 조지현이 기록한 <이카이노-일본 속 작은 제주> 사진전이 2월15일부터 서울 강남역 사진 전문 갤러리 스페이스22에서 열리고 있다. 3월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2016년 향년 78세로 타계한 자이니치 사진가 조지현의 추모 사진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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