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을밀대를 다르게 기억한다
  • 장일호 기자
  • 호수 569
  • 승인 2018.08.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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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슴한 맛의 깊이야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을밀대 하면 반사적으로 평양냉면이 떠오르곤 했다. 나를 처음 을밀대에 데려가준 선배의 의기양양한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 눈빛에 보답하지 못했다. “어때?”라는 질문에 대답 대신 몇 젓가락 뜨지 못한 사발을 들어 보였으니까. 을밀대는 내게 화해할 수 없는 음식 취향의 다른 이름이었다.


박서련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이제 나는 을밀대를 다르게 기억한다. 기왕 죽는 것, 평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죽고자 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자 측의 일방적인 임금 삭감에 반대하며 고공 농성에 나선 여성 노동자는 대동강 강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을밀대 지붕 위에 새처럼 앉아 있었다. “존경하는 인민 여러분. 내래 평원 고무공장의 고무 직공 강주룡입네다.”

1931년 한국 최초의 고공 농성을 기록한 흑백사진 한 장은 80년의 세월을 건너 박서련 작가를 만나 <체공녀 강주룡>이라는 단단한 이야기가 되었다. 박 작가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가 아닌,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지금 여기에 ‘필요하다’라는 마음으로 역사 속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강주룡을 소환한다.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분투했던 삶에 불어넣은 소설적 상상력의 온기가 뭉근하다. 역사의 바닥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던 ‘싸우는 여자’의 이름과 삶을 덕분에 비로소 온전히 알게 된다.

최근 쏟아지는 여성 이슈 관련 책들을 보면서 한 번에 많이 먹어 체할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 놓았었다. 천천히 읽겠다고 미뤄둔 책을 덥석 집어든 건 담당 편집자의 SNS 때문이었다. “<체공녀 강주룡> 같은 책을 몰라주시면, 저는 다신 이런 책 못 만듭니다”라는 글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책을 읽어나가며 독자인 나 역시 편집자의 간절함에 동참하게 됐다. 장담컨대 시작하면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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