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 파일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절대적인 핵심 쟁점일 듯
⚬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로 인정되는 사실관계는 너무나도 구체적임
⚬그러한 구체적인 사실관계(항소심에 적시된 사실관계)를 단순히 ‘전제법리’만으로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아 보임
-지속적으로 있어왔던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비판”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원세훈 재판 항소심 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2015년 2월10일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이다. 원 전 원장은 2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 모두 유죄가 나와 법정 구속됐다. 바로 다음 날 원세훈 3심의 쟁점이 ‘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이라고 법원행정처가 콕 집은 것이다.

실제로 원세훈 재판 내내 이 파일의 증거능력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이 날선 공방을 벌였다. 그만큼 두 파일은 국정원 직원들의 조직적 트위터 여론 조작 활동을 입증할 ‘X파일’이었다. 2013년 검찰 특별수사팀(당시 팀장 윤석열) 수사부터 2017년 원세훈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후 법정 구속까지, 425지논·시큐리티 파일이 그 중심에 있었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정리:전혜원 기자,
디자인:최예린 기자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 수사를 맡은 검찰 특별수사팀은 2013년 10월 국정원 심리전단에서 트위터를 전담한 안보5팀 직원 14명을 특정해 이메일 계정을 압수수색했다. 그 가운데 김 아무개 직원의 네이버 이메일 계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 이 계정의 ‘내게 쓴 메일함’에 2012년 12월12일 저장된 ‘신의일’이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메모장 파일 5건이 첨부돼 있었다. 그중 ‘425지논.txt(이하 425지논 파일)’은 4대강 사업 홍보·광우병 비판 반박 등 특정 이슈에 관한 ‘논지’와 이에 부합하는 트윗글, 기사 등을 2012년 4월25일부터 12월5일까지 거의 매일 날짜별로 정리해놓은 A4 용지 420여 장 분량의 메모장 파일이다. 파일 이름은 4월25일을 뜻하는 ‘425’에 ‘논지’의 앞뒤 글자를 거꾸로 해 붙인 것으로 보인다. 파일에 언급된 이슈들은 원세훈 전 원장이 전 부서장 회의에서 지시·강조한 내용과 대부분 겹쳤다. ‘금일논지 확산용’ ‘주말확산’ 등의 문구와 함께 트위터 계정들을 나열하고 트위터 정지를 푸는 절차, 팔로어 늘리는 방법도 있었다.

같은 메일에 첨부된 또 다른 파일인 ‘ssecurity.txt(이하 시큐리티 파일)’는 보안을 뜻하는 영어 단어 ‘security’에 ‘s’가 하나 더 붙은 이름의 A4 용지 19장 분량의 메모장 파일이다. 이 파일에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으로 보이는 이름의 앞 두 글자와 트위터 계정 등이 적혀 있었다. ‘1205금천구 카페베네’처럼 트위터 여론 조작을 한 날짜와 지역, 카페를 적은 대목이 있었고 이는 김 아무개 직원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일치했다. 검찰은 수사를 통해 시큐리티 파일에 적힌 이름이 실제로 국정원 안보5팀 직원 22명의 이름임을 확인했다. 또 시큐리티 파일에 적힌 트위터 계정 269개를 기초계정으로 해 이 계정들과 그와 연결된 계정들이 작성한 트윗글 중 일부에 대해 국가정보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원 전 원장을 추가 기소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측 변호인은 두 파일의 증거능력을 문제 삼는 전략을 폈다. 2014년 3월17일 이메일 계정의 주인 김 아무개 직원이 재판 증인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이메일 계정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계정에 저장된 메일과 첨부파일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425지논 파일에 대해 검찰 조사에서는 작성 사실을 인정했지만 법정에서 뒤집었다(〈시사IN〉 제341호 ‘원세훈 법정 중계-기억상실 코미디에 실소 터진 법정’ 기사 참조). 다음은 2014년 3월17일 그가 원세훈 27차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이다.

판사:‘신의일’ 제목으로 메일 보낸 적은 있나?
김○○ 직원:잘 기억이 안 난다.
검찰:‘신의일’ 메일 캡처 제시하겠다. 증인 메일함에 있고 증인이 보낸 것이라면, 지금은 기억 안 나지만 증인이 작성한 것으로 설명되죠?
김○○ 직원:작성했던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제 이메일에 있으면 제 거 아니겠나? 근데 기억 안 난다.
검찰:‘신의일’ 메일에 시큐리티, 425지논 등 총 다섯 개 텍스트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 증인이 이 파일들을 작성해 첨부한 게 맞나?
김○○ 직원:기억이 안 난다.
원세훈 변호인:기억력이 조금 떨어지나?
김○○ 직원:네.

김 아무개 직원은 2014년 6월2일 원세훈 31차 재판에 증인으로 다시 나왔다.

검찰:이메일 자체를 증인만 사용했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는데, 맞죠?
김○○ 직원:예. 그건 맞다.
검찰:시큐리티 텍스트 파일 제시하겠다. 첫 페이지 보면 30개 트윗 계정과 비밀번호가 기재되어 있다. 증인이 작성한 것 아닌가?
김○○ 직원:지난번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진짜 생소하다. 내용이 생소하다.

2014년 9월11일 1심 재판부(이범균 부장판사)는 김 아무개 직원이 자신이 작성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한 이상 두 파일이 진술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1심 재판부는 증거능력이 있는 서류로 인정되는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 문서’나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성된 문서’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작성·보관 경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등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시큐리티 파일에서 추출한 기초계정 269개와 그에 연결된 계정 등 총 1157개 트위터 계정 중 982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트윗 11만3621건 등에 대해서만 국정원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정치 관여라면서도 계획적이고 능동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트윗 11만여 건의 공직선거법 위반 여부도 따로 판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2월9일 2심 재판부(김상환 부장판사) 판단은 달랐다. 김상환 부장판사는 두 파일의 작성자를 김 아무개 직원이라고 봤다. 김 아무개 직원이 검찰에서는 425지논 파일 작성을 인정한 점이나 시큐리티 파일에 본인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적은 점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특히 2심 재판부는 김 아무개 직원이 업무인 트위터 활동에 수시로 참고하며 필요한 내용을 계속 추가·보충한 자료이므로 두 파일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 문서’로서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시했다. 또 보안을 중시하는 국정원 직원이 자신의 이메일에 보낸 파일에 굳이 허위를 기재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하여 작성된 문서’로서도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봤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시큐리티 파일에 적힌 기초계정 269개와 그와 연결된 계정들을 합친 716개 트위터 계정을 국정원 직원 사용 계정으로 인정했다. 이 계정이 작성한 트윗 15만3331건을 공직선거법 위반, 트윗 12만1469건을 국정원법 위반으로 인정했다. 원세훈 전 원장은 법정 구속되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에 치명타였는데, 바로 이 판결 전후로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법원행정처 기획제1심의관이 사용한 컴퓨터 저장매체에서 원세훈 2심 판결 다음 날인 2015년 2월10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이라는 문건이 나온 것이다. 문건은 BH(청와대)가 항소심 판결 선고 전 “‘항소기각’을 기대하며 법원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했으며, 판결 선고 후 청와대는 “크게 당황하며 앞으로 전개될 정국 상황에 관하여 불안해하는 상황”이라고 썼다. “우병우 민정수석→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중략)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 문건은 ‘향후 대응 방향’에서 상고심 쟁점을 전망하며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을 언급했다. 항소심 사실관계 인정의 바탕이 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원심 파기가 어렵다는 취지로 읽히는 내용이다. 문건에는 상고심을 고리로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추진 ‘거래’를 검토하는 내용도 담겼다.

대법원 숙원사업 상고법원 추진과 ‘거래’ 검토

사건은 실제로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다. 2015년 7월1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2심 재판부 판단과 달리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이 없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두 파일을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 문서’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두 파일의 일부 내용이 아무 설명이나 규칙 없이 나열되어 있어서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성된 문서’로도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두 파일의 증거능력이 부인되어 원심의 사실인정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며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여부 자체를 판단하지 않았다.

ⓒ연합뉴스2017년 8월30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파기환송심에서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렇게 2015년 9월 시작된 파기환송심 재판부(김시철 부장판사)는 같은 해 10월6일 보석 신청을 받아들여 원 전 원장의 석방을 결정했다. 항소심이 인정한 계정뿐 아니라 1심 재판부가 국정원 직원이 사용한 것으로 인정한 트위터 계정에 대해서도 제3자 사용 가능성이 있다고 의문시했다. 또 1·2심 판결이 인정한 공모공동정범 관계에 대해 트윗글 하나하나가 조건에 해당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하는 등 재판을 1년 넘게 끌었다. 2017년 2월 정기 인사를 계기로 재판부가 바뀌었다. 같은 해 7월 재판 막바지에 검찰은 문재인 정부 국정원이 복원한 원세훈 전 원장 추가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적폐 청산 작업을 하며 검찰에 낸 이 자료에는 좀 더 적나라한 국내 정치·선거 개입 발언이 담겼다.

2017년 8월30일 파기환송심 재판부(김대웅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며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원 전 원장은 다시 법정 구속되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새로 제출한 증거에 비춰보더라도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이 인정한 기초계정 116개에 그와 연결된 계정 등 총 391개를 국정원 직원 사용 계정으로 인정해 이 계정이 작성한 트윗 10만6513건을 포함해 국정원 직원들의 커뮤니티 찬반 클릭 1003회, 게시글·댓글 93회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인정했다. 원 전 원장의 지시로 이슈와 논지가 하달되어 이 같은 사이버 활동이 이뤄진 점도 인정했다. 원 전 원장과 검찰이 상고해 사건은 다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국정원 김○○ 직원의 좀 더 상세한 1심 재판 증언은 ‘응답하라 7452(nis7452.sisainlive.com)’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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