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권 오남용 시정해야” “대통령의 법과 원칙은 국민의 법과 원칙과는 다른 것인가” “법치 파괴 사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을 향한 정치권의 날선 말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순서대로 2004년 5월13일 노무현 정부 시절 한선교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 2013년 1월29일 이명박 정부 시절 이언주 민주당 당시 원내대변인, 2017년 12월29일 문재인 정부 시절 정태옥 당시 자유한국당 대변인의 논평이다. 그만큼 대통령 특별사면권에 대한 비판은 시기와 정부를 가리지 않다.
특별사면은 본질적으로 뜨거운 감자다. 삼권분립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사법부가 최대 세 차례에 걸쳐 판단한 결정을 일거에 뒤집는다. 헌법이 보장한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다. 그 범위와 한계는 오랫동안 논쟁의 소재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을 두고도 시끄럽다. 대표적으로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국민의힘)이 꼽힌다. 형이 확정된 지 3개월 만에 사면이 단행된 데다, 그의 공익신고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을 부인하는 대통령실·여당의 발언이 계속 나온다. 김 전 구청장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자신으로 인해 다시 치러지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의지를 드러냈다. 야당에서는 “법치주의 유린” “법치의 사유화”라고 지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부정’?
그럼 이번 사면도 진보·보수 정부 할 것 없이 사면 시즌 때마다 불거지는 익숙한 비판과 푸닥거리에 불과할까. 차이점이 있다. 지금까지 총 세 차례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사면에는 ‘자기부정’이라는 단어가 곧잘 따라붙는다.
'검사 윤석열이 유죄를 이끌어내고, 대통령 윤석열이 사면·복권해준' 이들이 다수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이 다른 대통령의 사면보다 더 문제적인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2016년 국정 농단 특별검사 수사팀장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당시 2017~2019년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 작업의 선봉에 섰다.
표(〈그림 1〉 〈그림 2〉 〈그림 3〉)는 각 시기별 윤석열 대통령이 실시한 특별사면·복권 주요 인사 명단이다. 운전면허 행정제재, 생계형 어업인 행정제재 특별감면 등과 같이 평범한 시민 대상의 한 특별사면이 아닌, 주요 정치인·공직자·경제인 명단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직접 수사했거나 수사 지휘한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많다.
특히 올해 신년 특별사면 대상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해 12월27일 법무부 보도자료의 특별사면·복권 공직자 부분 주요 대상자로 이름을 올린 35명 중 33명이 그렇다. 나머지 2명은 문재인 정부 인사인 김경수 전 지사와 이명박 정부 인사인 김해수 전 비서관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국정원 특수활동비 사건(최경환·남재준·이병기·이병호 등), 화이트리스트 사건(김기춘·조윤선 등), 국정원 댓글 사건(원세훈·이종명·민병주 등), 국정원 댓글 수사 방해 사건(장호중·이제영) 등으로 유죄를 받은 이들이 대거 포함됐다. 장호중·이제영·김진모·최윤수 전 검사와 같은 검찰 출신도 여럿 들어갔다.
게다가 2018년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이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해 유죄(벌금 300만원 선고유예)가 선고된 김태효 전 청와대 기획관은 현 윤석열 정부의 국가안보실 1차장이다. ‘셀프 사면’이라는 등 뒷말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사면이었던 지난해 광복절에도 국정 농단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포함됐다.
세 번째 사면인 올해 광복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중근 전 부영그룹 회장과 이장한 종근당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년 각각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서 기소됐다. 2018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정용선 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을 기소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댓글 여론 공작 활동'을 한 혐의였다.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이 중에서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례는 ‘윤석열표 사면’의 단면을 보여주는 고갱이다. 올해 신년 특별사면(감형)을 받고 연이어 광복절에 가석방됐다. 원세훈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2018년 징역 4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또한 국정원 예산으로 ‘민간인 댓글 부대’를 운영한 혐의 등으로 2021년 징역 9년이 추가 선고됐다. “제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라고 원 전 원장은 재판에서 호소했다고 한다. 두 사건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했거나 수사 지휘해 재판에 부쳐졌다.
이러한 ‘적폐 수사의 잔인함’에 대해서는 보수 진영에서 더 많이 얘기됐다. 검사 윤석열의 칼이 주로 그쪽을 향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권 데뷔 때부터 나온 지적이다. 2021년 9월 대선 경선 당시 홍준표 후보는 라이벌이던 윤석열 후보를 향해 “1000여 명을 수사하고, 200여 명을 구속하고, 5명이 자살했다”라고 공격했다. 그러면서 보수 진영 궤멸에 대해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윤석열 후보는 “법리와 증거를 기반해 일을 처리했다. 당시 검사로서 맡은 소임을 했다. 사과한다는 건 맞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공식 선출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해 “수사는 공직자로서 제 직분에 의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정서적으론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라며 톤을 바꾸긴 했다. 하지만 자신의 수사가 틀렸다거나 그것이 가져온 후과에 대해 성찰했다고 밝힌 적은 없다.
대통령이 된 이후 생각이 바뀐 걸까. 잇따른 사면은 이런 의문을 낳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첫 사면에 대해 지난해 8월12일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번 특별사면으로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경제인(이재용·신동빈 등) 사면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두 번째 사면에 대해서는 지난해 12월27일 국무회의에서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이번 사면을 통해 국력을 하나로 모아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김경수 전 지사가 연루된 드루킹 댓글 수가 국정원 댓글 수의 200배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관계자를 사면한다는 비판에 대한 반응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자원이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박근혜 정부의 외압에 맞섰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 덕분에 일거에 전국적 인지도와 지지를 쌓았다.
당시 법무부가 공개한 사면 대상 주요 공직자 66명 중 보도자료에서 실명이 나온 인사는 35명이었다. 김경수 전 지사를 뺀 34명은 모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요직을 지낸 인물인데도, 드루킹 댓글 사건을 가져와 비교했다(김경수 전 지사는 당시 사면만 되고 복권이 안 되었다).
그때도 옳고, 지금도 옳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7일 관련 브리핑을 하며 “국정수행 과정에서 당시 직책과 직무상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행위를 저질러 법의 심판을 받았던 공직자들이다. 이들을 특별사면에 포함시켜 다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 번째 사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없다. 대신 법무부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주요 경제인을 사면함으로써 당면 최우선 과제인 경제 살리기에 동참할 기회를 부여함. 나아가 정치인 전 고위공직자 등을 사면함으로써 정치·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자 함.”
경제 살리기와 국민통합은 특별사면을 하는 대통령들이 일반적으로 들고 나오는 명분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설명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특별사면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할 의무를 지닌다. 과거 자신의 수사와 지금의 사면 사이 간극이 없는지, 없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면이란 결단에 이르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설명할 책임이 있다. ‘자기부정’이라는 비판이 쉽게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별도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해석은 다르다. 그는 ‘수사하는 윤석열과 사면하는 윤석열 사이에는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갈등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검사는 기소권을 독점하면서 제한 없이 불기소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 없는 권한이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검사의 정점에 있다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내가 기소하면 죄가 되고, 불기소하면 죄가 아니다’라는 사고가 박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그냥 봐준 것도 아니고, 수사하고 기소해서 죄를 심판했다가 그 과거만 없애주겠다는데 무슨 모순이 있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헌정 사상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을 맞이한 우리가 겪는 풍경의 하나일 뿐이라는 뜻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윤석열 대통령의 사면에 관심을 보였다. 1월6일 ‘한국은 왜 부패한 지도자를 사면할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부제가 ‘사면이 국민 통합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이다.
"더 이상 검사는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여전히 자기를 정의의 십자군으로 그린다. 그러나 유죄가 선고된 이들을 풀어주기로 한 윤 대통령의 결정은 (한국의) 오래된 상처를 열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사면이 (현직 대통령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대통령도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면을 통해 관용을 베풀고 선례를 남긴다."
해당 기사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싱크탱크 랜드연구소의 에릭 모브랜드는 ‘전직 대통령들과 측근들의 유죄판결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판결을 뒤집는다면 대한민국이 통합되기는커녕 국가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 해당 유죄를 이끌어낸 당사자의 뒤집기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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