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1990년 2월13일 27년 만에 석방된 넬슨 만델라. 1994년 대통령이 된 그는 백인 정권 시절 반인륜 범죄자의 사면·청산 문제에 직면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신년 화두로 던진 후, 민주당은 한동안 시끌시끌했다. 일요일인 1월3일 당 지도부가 모여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 문제는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 앞으로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최인호 수석대변인).” ‘국민 공감’과 ‘당사자 반성’이라는 전제가 충족될 때까지 당 차원의 논의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매듭이 깔끔하게 지어지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사면 이슈가 계속 살아났다. 1월5일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사면 반대가 48.0%, 찬성이 47.7%였다. 1월14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대법원 판결이 있다. 이날 유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고, 그러면 두 전직 대통령이 모두 기결수가 된다. 사면을 검토할 형식적 조건이 갖춰진다. 이낙연 대표는 ‘대통령 교감설’에는 선을 그었지만, “총리로 일할 때부터 대통령의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짐작해왔다”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이다. 여기서 대통령이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사면 문제는 신년을 집어삼킬 정치 이슈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측근 봐주기 사면’이나 ‘재벌총수 황제 사면’ 사례로 여론의 비판을 자주 받아왔다. 사면권 제한은 대선주자마다 단골로 공약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공약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사면은 ‘봐주기 사면’이나 ‘황제 사면’과는 정치적으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전직 대통령 사면이 일단 이슈가 된 이상, 하겠다는 결정과 하지 않겠다는 결정 모두 고도의 정치 행위다. 그래서 민주당 내에서는 사면 문제를 이슈로 만든 자체로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웠다는 시각이 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정치적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취지다. 반면 이낙연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확정판결을 계기로 사면 문제가 어차피 떠오를 것이라고 본다. 그때 문 대통령이 지게 될 짐을 이 대표가 미리 나눠 들었다는 취지다.

확정판결 이후 사면 정국은 필연이었을까. 야당 상황을 보면 확언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이슈를 대체로 피해가려 한다. 지난 12월15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저희 당은 당시 집권 여당으로서 통치 권력의 문제를 미리 발견하고 제어하지 못한 무거운 잘못이 있습니다”라고 두 전직 대통령 문제를 사과했다. 일부 강경파가 반발했지만 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사과에 당내 공감대가 있었다기보다는, 두 전직 대통령이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당에 좋을 게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확정판결 이후라도, 4월에 치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사면론을 전면에 내걸기는 어려웠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말에도 함정이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은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한 판단이어서

한데 묶여 논의되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은 성격이 꽤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은 통치가 헌법에 반했다는 판단을 받고 탄핵을 당했다. 이 경우엔 형사처벌이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다. 반면 이 전 대통령은 본질상 권력형 경제사범이다. 같은 사면이라도 정치적 의미가 꽤 달라진다.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고 하기에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범죄는 성격이 꽤 다르다.

‘헌법 수호’라는 같은 역사를 가지는 길

결국 선제적 사면론에서 남는 명분은 ‘국민통합’ 하나다. 그래서 핵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탄핵으로 상처를 받은 보수층이 있고, 이들의 마음을 달래 분열을 치유해야 한다는 취지다. 여기에 민주당 최고위는 ‘국민 공감’과 ‘당사자 반성’을 사실상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것은 보기보다, 어쩌면 민주당 최고위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의미심장한 키워드다. 사면이라는 정치 행위의 속성이 그렇다.

어떤 사면은 왜 고도의 정치 행위인가? 이걸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20세기 말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에서 나왔다. 오랜 인종차별 강압 통치의 역사가 있는 남아공은 1994년 4월 역사적인 총선을 치러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집권하고, ANC 지도자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다. 긴급하게 떠오른 문제는 과거 백인 정권 시절의 고문, 암살, 성폭행 등 반인륜 범죄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였다.

한쪽에서는 완전 사면을 주장했다. 백인 정권에서 인종범죄를 많이 저지른 보안군은 조건 없는 사면을 요구했다. 이들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고 평화적 권력 이양에 협조한 공이 있었다. 이런 협조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민주화 이행 과정에서 늘 문제가 된다. 반대편에서는 완전 청산을 주장했다. 역사의 선례도 있었다. ‘나치 청산’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과 국제사회는 나치 인사들을 전쟁범죄자로 처벌했다.

만델라와 ANC는 제3의 길을 갔다. 1년이 넘는 끈질긴 협상 끝에 집권 ANC와 야당인 국민당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설치에 합의한다. 진실화해위는 정치적 동기로 일어난 범죄를 조사할 권한을 받았다. 그리고 사면권을 가졌다. 단, 사면을 청원하는 사람은 진실화해위에 나와 자신의 범죄에 대한 진실을 고백해야 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 장면을 전국에 내보낸다. 진실화해위는 그를 심사하여 사면 여부를 판단한다. 진실 고백과 사면의 맞교환 원칙이 진실화해위의 핵심이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주로 넬슨 만델라라는 위대한 인간이 용서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취지로 인용된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진실화해위는 위대한 용서의 이야기인 동시에, 고도의 정치 행위 이야기다. 진실화해위는 어떤 조건을 갖출 때 사면이 고도의 정치 행위가 되는지 보여주었다.

알비 삭스는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초대 헌법재판관이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삭스는 변호사가 된 후 ANC에 가담해 활동하다가 백인 정권의 폭탄 공격에 한 팔을 잃었다. 그는 정권 이양기 보안군의 완전 사면 요구에 맞서 진실 고백과 사면의 맞교환 원칙을 내건 입안자기도 하다. 그의 책 〈블루 드레스〉에는 진실화해위의 정수가 잘 드러나 있다.

남아공은 수십 년에 걸친 인종차별이라는 ‘공동체에 거대한 사건’을 다뤄야 했다. 이 거대한 사건을 백인은 ‘자기방어’로 흑인은 ‘인종범죄’로 서로 달리 이해했다. 이런 공동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구성원들이 공통된 이해에 도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것은 처벌과 보상을 결정하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공동체에 거대한 사건에서 대화는 회복의 근본 수단이다. 대화는 공통의 인식을 구축하는 토대이다.” 진실화해위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하는 고백을 그토록 중요하게 본 이유가 이것이었다.

삭스는 그 결과를 극적으로 묘사한다. “진실화해위에서 당사자 간의 직접 화해는 거의 없었다. 고문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해준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사람들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러나 국민적 차원에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통일된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처음으로 백인과 흑인이 공통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국민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나라가 아니다.”

그것이 인종범죄였다는 공통의 인식을 구축하는 일은 공동체의 미래에 너무나 중요해서, 남아공은 과거에 대한 정의로운 응징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게 사면이었다. 진실을 고백하는 절차를 지켜본 백인들도 그것이 자기방어였다는 거짓 이야기를 더 고집하기 어려워졌다. 사면은 거대한 사건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때에야 비로소 공동체의 분열을 극복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가 된다.

이런 종류의 사면이란 특정 정치인의 개인적 결단 문제일 수 없다. 완전히 ‘다른 역사’를 기억하던 흑인과 백인이 ‘같은 역사’를 갖게 되는 과정이 하루아침에 될 리 없었다. ANC의 총선 승리는 1994년, 진실화해위 설치가 합의된 건 1995년, 진실화해위가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사면 대상자를 전달한 건 1998년이다. 5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논쟁과 긴 정치 협상을 거쳐 남아공은 ‘다른 역사’를 ‘같은 역사’로 천천히 통합해냈다. 사면은 그 기나긴 정치 협상을 이끌어간 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기도 했다.

진실화해위가 준 교훈을 바탕으로 이낙연 대표와 민주당 최고위가 내건 화두를 다시 살펴보자.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의 의미가 크게 확장된다. 2016년 가을의 촛불집회에서 2017년 봄의 탄핵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에 거대한 사건’이 있었다. 사면은 한국 시민공동체가 이 사건을 어떻게 ‘같은 역사’로 기억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헌법에 반하는 통치자를 주권자들이 끌어내린 헌법 수호 사건이었나? 아니면 진보파의 대중 동원에 보수파가 패퇴한 정치 보복 사건이었나? 5년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 질문에 한국 시민들은 대략 전자 7, 후자 3 정도로 갈라선다. 더 많은 지지를 받는 해석이 있다고는 볼 수 있지만, 아직 ‘같은 역사’를 기억한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당 지도부가 내건 조건은 두 개다. 첫째, ‘당사자 반성’은 진실화해위의 진실 고백에 해당하는 열쇠다. 말 한두 마디 사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2016~2017년의 사건이 ‘헌법에 반하는 통치자를 주권자들이 끌어내린 사건’이었다는 공통의 역사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 과정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두 번째 조건인 ‘국민 공감’은 따라서 달성된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보여주는 극적인 대조가 참고가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에 군대를 투입하여 자국민을 학살한 책임을 여전히 부인한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는 2019년부터 계속 광주를 찾아 사죄하고 있다. 지난해 사죄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재헌씨는 “아버님이 말씀과 거동을 못하신다. 아버님의 뜻을 제가 알기 때문에 정중하게 참배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치유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사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가해자 측에 있었던 분들의 진정한 사과가 우선이다.”

ⓒ연합뉴스2020년 5월29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참배하고 있다.

“반성하라는 것은 전례 없는 비도덕적 요구다”

노재헌씨가 쓴 “역사의 화해”라는 말은 알비 삭스가 쓴 “공통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가해자의 사과는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공동체가 공통의 역사를 갖도록 해주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서로 달리 믿던 역사가 사과 한 번으로 통합될 리 없으므로 “100번이고 1000번이고 사과”할 필요가 있다. 공통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우며, 용서를 구하는 가해자의 적극적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2021년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사면론은 이런 긴 과정을 감당해낼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양쪽 다 그런 준비가 된 흔적은 많지 않다. 친이명박계 좌장이었던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언론 인터뷰에서 ‘반성을 전제로 한 사면’에 대해 “그건 시중 잡범에게나 하는 얘기다. 정치 보복으로 잡혀갔는데 내주려면 곱게 내줘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는 게 당사자들 입장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친박근혜계 좌장이었던 서청원 전 의원도 “이제 와서 당사자들에게 반성문을 쓰라는 건 전례 없는 비도덕적 요구다”라고 말했다.

이 반응에서 2016~2017년의 사건을 보는 보수 버전 해석이 잘 드러난다. 본질은 진보파의 대중 동원에 보수파가 패퇴한 사건이다. 두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건 정치 보복이다. 사면은 정치 보복을 멈추겠다는 선언이므로, 포로가 된 적장을 풀어주는 것과 비슷하다. 사과는 ‘시중 잡범’들이 풀려나 보겠다고 하는 비굴한 선택이다. 그러니 반성 요구는 적장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사면에 조건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그래서 나온다.

민주당은 두 대통령의 감옥행이 정치 보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보수 버전과 겹치는 대목이 있다. 사면을 포로가 된 적장을 풀어주는 것과 비슷한 일로 생각한다. 당 최고위가 제동을 걸기 전의 이낙연 대표는 반성과 사과를 사면의 전제로 두지 않았다. 최고위 간담회 이후에 했던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도 이 대표는 사면과 국민통합을 곧바로 이어 붙였다. “지금은 국난 극복 과정이다. 국민이 둘로 갈라져 있다. 국민의 힘을 모아야만 국난을 극복하고 경제를 회복할 수 있다.”

남아공 진실화해위에서는 진실 고백이 주인공이고, 사면은 조연이었다. 사면이 진실 고백을 끌어내고, 진실 고백의 시간이 쌓여서 서서히 국민통합에 도달한다. 이낙연 대표의 말에서는 사면이 여전히 주인공이다. 사면이 직접 국민통합을 이끌어내는 열쇠로 묘사된다. ‘공동체에 거대한 사건’을 어떻게 공통의 역사로 만들 것인가라는, 길고 고통스러운 정치 과정에 대한 질문이 진실화해위에서는 핵심이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사면이 아니라 진실 고백이었다. 2021년 한국의 사면론에는 그 질문이 빠져 있다. 길고 고통스러운 정치 과정을 감당하겠다는 준비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면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이 차이는 보기보다 크고 근본적이다.

ⓒ시사IN 신선영2016년 11월26일 서울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