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공무원들 자괴감에 빠져 지냈다”
  • 정희상 기자
  • 호수 540
  • 승인 2018.01.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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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일방적으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혁신위를 이끈 김종수 위원장은 남북 민간 교류의 문을 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즉흥적 지시로 이뤄졌고, 이명박 정부의 5·24 대북 조치는 법적·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정책이었다.”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혁신위)가 지난해 하반기 조사를 벌인 뒤 연말에 내놓은 보수 정권 9년 대북정책의 성적표다. 남북관계와 대북 통일정책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혁신위의 책임자는 성직자인 김종수 신부(가톨릭대 신학과 교수)다. 김 신부는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와 명동성당 보좌신부, 주교회의 사무총장 등을 지내면서 남북 민간 교류 활동에 앞장섰다. 2006년 말부터 2016년 초까지 10년 동안 로마교황청에 파견되기도 했다. 김종수 혁신위원장을 만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더욱 꼬이게 된 속사정을 들어보았다.


성직자로서 통일부의 혁신기구를 책임지게 된 배경은?

통일부가 위촉한 민간 대북 전문가 9명 가운데 내가 제일 연장자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만드는 등 남북 화해협력의 이론적·실천적 활동을 해온 경험도 있다. 더욱이 신부에게 다른 비판은 해도 좌파 빨갱이라고는 못하잖나. 남북 화해는 이념 논쟁으로 끌고 갈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위원장을 맡았다.

ⓒ시사IN 조남진김종수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위원장은 “기억하지 않으면 한반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통일부 정책혁신위를 운영한 기조가 있었다면?

통일부의 정책을 혁신하는 가운데 조직 쇄신도 기대하는 차원이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가장 갈등을 빚은 부분이 남북 문제였다. 통일 문제를 안보 문제와 뗄 수 없지만, 안보와 별개로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갈 (통일) 부분이 있다는 관점에서 그 시기를 들여다봤다. 통일부 공무원들은 대체적으로 그동안 자괴감에 빠져 지냈더라.

왜 그랬다고 하던가?

(그 자괴감은) ‘꼭 개성공단을 닫아야 했던 건 아니다’라는 항변이었다. 2016년 1월 북측의 제4차 핵실험 직후에도 통일부는 “유엔 대북 제재 대상에 개성공단은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갑자기 청와대가 대통령의 지시라며 개성공단을 닫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통일부 직원과 설문 및 대면 조사도 했다. “통일부 적폐는 통일부 사람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는 등 너무 수동적이었다. 통일 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처의 직원으로서 모두가 자괴감을 느낀 암울한 시절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박근혜 전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개성공단 중단을 결정했으므로 ‘정당한 조치’라고 주장해왔다.

청와대와 통일부 관계자를 조사한 결과 거짓말이었다. 전면 중단 발표 이틀 전인 2016년 2월8일 오전 당시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라며 철수 방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가 (NSC 회의 이전에 이미) 결정해서 지시한 것이다. 국정원이나 통일부, 외교안보수석실 등은 어떤 식으로든 개성공단 폐쇄 문제를 논의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 뒤에는 마치 공식 논의 결론인 것처럼 거꾸로 서류를 끼워 맞추는 작업이 이뤄졌다. (이런 어설픈 조치로)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재산권에 큰 피해를 봤다. 통일부는 그걸 우려해 전면 중단 지시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묵살당했다고 하더라.

ⓒ연합뉴스김종수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12월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 등 대북정책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묵살당한 구체적 내용은?

개성공단 문을 닫더라도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거였다. 입주 기업의 재산권 침해가 없도록, 철수 과정에서 다 챙겨 나올 수 있도록 잠정 폐쇄라든지 단계적 철수가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 청와대가 하나도 받아주지 않았다. 입주 기업들이 승용차로 황망하게 짐을 싣고 도망치듯 나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챙겨 나오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통일부는 개성공단 중단 발표 당시 주요 근거로 북측이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을 핵 개발 비용으로 전용한다고 했다.

조사 결과, 박근혜 청와대가 국정원을 통해 “개성공단에서 생기는 수익금이 핵 개발 등에 전용됐다”라는 한 탈북자의 증언을 만들어낸 것으로 확인했다. 그걸 통일부로 하여금 개성공단 중단 발표에 끼워넣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그 탈북자가 누구인지 이름까지 파악했다. 그는 개성공단 자금이 어떻게 쓰이고, 어디로 전용됐다든지 그런 걸 확인해줄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이다. 탈북 전에 했던 일도 개성공단과는 전혀 무관하고, 탈북 시기도 한참 동떨어진 인물이다.

개성공단 재가동의 필요성을 어떻게 보나?

혁신위는 재가동을 통해 남북관계가 다시 열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통일부 공무원들은 개성공단이 재가동되면 입주 기업의 90% 이상이 복귀할 것으로 자신하더라. 하지만 혁신위 측에서 따로 기업인들을 개별 접촉해 알아본 결과 50%도 안 되었다. 재산을 회수하기 위해선 들어가겠지만 계속 안정적으로 투자하면서 기업 활동을 할 자신이 없다는 거다. 개성공단을 재가동해도 법적 보상이나 기업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기업인들이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평화신문 제공2015년 3월12일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왼쪽에서 세 번째)이 당시 로마 한인신학원장 김종수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를 만났다.
통일부는 개성공단 재개에 난색을 표했다.

최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는 개성공단을 포함한 (북한에 대한) 일체의 경제적 도움을 차단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재가동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당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임금이 핵 개발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조작된 발표를 했다. 재가동한다고 하면 외부에서 ‘핵 개발 자금’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면 한국 정부가 자가당착에 빠지게 된다. ‘그건 조작한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대놓고 말하기도 난감하지 않은가. 당장 개성공단 문제를 다시 이해시켜서 신뢰를 얻고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엔 어려움이 크다. 다만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닌 남북 민간 교류는 다방면으로 가능하니까 그쪽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풀어가다 보면 차츰 개성공단도 재개 여지가 생기지 않겠나.

유엔은 민간 교류를 통한 대북 지원도 금지하지 않나?

지금 남한에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도 일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해외 인도주의 단체에서 북한을 걱정하고 의아해한다. 심지어 북한과 ‘핵전쟁 말 폭탄’을 주고받는 미국에서조차 민간단체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한다. 지금까지는 국내 민간단체들이 직접 인도적 지원을 못하니까 거꾸로 국제기구를 통해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에서는 이걸 한국의 국격 문제이지 무슨 북한 제재의 문제냐고 반문하더라. 이번에 우리 위원회에서는 통일부에 남북 민간 교류의 문을 활짝 열어줘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

남북관계 단절의 뿌리는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 아닌가?

남북한이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는 한 무 자르듯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다. 언제든지 손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5·24 조치 이후에는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북한 내륙에 진출한 남한 기업도 다 철수하고, 개성공단뿐 아니라 모든 민간 교류가 완전히 끊겼다. 이후 다시 만나는 게 불가능해졌다. 전쟁 상황에서도 물밑으로 만나는 게 동서고금의 관례다. 물론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분명히 문제가 있었지만, 북한에 책임을 묻더라도 우리는 우리대로 절차를 지켜야 했다.

혁신위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을 반면교사 삼아 새 정부에 건의한 것이 있다면.

통일을 목표로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해서 시행하자고 통일부에 권유했다. 우선 민간 교류는 유엔 제재와 상관없이 풀 수 있으니까 이거부터 당장 하자고.

남북관계가 정권에 따라 요동치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지만 각각은 유엔 가입국이다. (남북 간 합의는) 국제법 조약에 따라 서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전 정권의 남북 합의를) 휴지조각 취급하면 곤란하다. 현재 통일부가 주도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도 관여하고 있는 ‘국민통일협약’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그 협약 틀에서 지속적인 남북 교류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 통일 교육 수준은 어떤가?

혁신위 첫 회의에서 통일 교육을 의제로 냈다. 실제로 통일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도 했다. 보니까 거의 안보 교육이더라. 심지어 병영 집체 훈련도 통일 교육이라고 부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통일 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북한을 상대로 증오와 갈등을 부추긴 거다.

누가 그런 교육을 시켰을까?

통일부, 보훈처, 국방부 산하에 여러 통일 교육단체가 있다. 통일을 향한 교육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북한 실상 바로 알기’ 같은 이름으로 부정적 인식만 심어주는 내용이다. ‘통일교육지원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제2조에 ‘건전한 안보관’이 있는데, 그게 통일 교육이라기보다 안보 교육을 하는 거다. 자유민주주의 의식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건전한 안보관은 없고,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지침이었다. 그래서 혁신위는 ‘통일 지침을 제대로 만들어 통일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건의했다.

로마교황청에 지난 10년간 파견 나가 있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도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나?

관심이 많다. 교황청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직접적으로 나서달라는 주문도 있지만 쿠바 사태 중재 과정에서도 봤듯 물밑으로 하지 그걸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는다. 교황청 국무원 관리들이 평양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평양도 교황청에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전달한 적이 있다. 교황청은 한반도 평화에 관심 있고 교황도 갈등이 있을수록 남북한 간에 교류 협력은 지속돼야 한다는 점을 항상 강조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 가능성은?

많은 분들은 바티칸 시국이 외교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교황청이 한다. 교회가 맺는 거나 마찬가지다. 북한에 가톨릭 신자들이 없다면 외교관계는 무의미하다. 재외 국민을 보호하는 게 중요한 임무인데…. 김대중 대통령 때도, 북한에 교황을 초청하라고 권하니까 ‘오시라’고 그랬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글쎄 북한에 신앙의 자유가 생기면 가능성이 있으리라 본다. 다만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관심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표명하신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교황 방한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교황 방한 활동을 평가하며 박근혜 정부가 (교황 방한을) 부정적으로 해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정치와 무관하게) 국민에게 위로를 주고 가셨던 것 아닌가. 그 뒤에 답방 형식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바티칸에 들러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내가 통역을 맡아 배석했다. 박 전 대통령은 남북한 간에 갈등은 있지만 분명히 인도적 지원은 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황은 “그건 굉장히 중요하다. 설령 틀어졌더라도 가족끼리는, 형제라는 혈연 때문에 이어지다 보면 갈등이 풀리는 거 아닌가”라고 강조하고 그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같이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북핵 문제가 악화하자 개성공단 전면 중단 등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적폐 청산이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분들한테 묻고 싶다. 이 세상에서 화합하려면 기억도 공유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이치다. 그분들은 기억을 없애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기억을 해야 화합을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도 말하셨지만, 한반도 평화 문제 관련 심포지엄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주관해 서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열린 적이 있다. 이 심포지엄에 남미에서 온 여러 주교들이 참석해 군사정부와 민주화 세력이 겪은 갈등을 이야기하며 ‘기억의 정화(Purification of Memory)’라는 말을 많이 했다. 공유가 돼야 정화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화해로 가는 첫걸음이다. 기억하지 말라고 하면 용서도 불가능하다. (기억하지 말라는 사람들은) 사실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다. 정치 보복과 별개로 ‘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너와 내가 기억을 공유해야겠다’라는 이치는 정치권에서든 남북 문제에서든 똑같다고 생각한다.

새해 들어 남북 고위급회담으로 대화의 실마리가 풀렸다. 어떻게 전망하나?


지난해 여름 이전부터 평양을 다녀오고 싶었다.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해서 제안도 하고. 그런데 남북이 꽉 막힌 상황에서 평양도 닫혀버려 전혀 만날 수가 없더라. 북한은 핵무력을 위해서만 돌진하던 중이니까, 누구도 자기네한테 좋은 소리 안 할 거고 비판적 태도를 보일까 봐 지레 침묵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첫 삽을 잘 떴다. ‘첫술에 배부르랴’ 하지만 첫술에 좀 배불렀으면 좋겠다. 몇 숟가락 더 떠보면 좋겠다. 지속적 만남도 합의하고. 여러 숟가락 뜨고 갔으면 좋겠다. 시작이 좋으니까. 보수가 또 뭐라고 비판하는데, 북한의 의도가 어떻더라도 우리는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우리는 우리대로 충분히 내부 검토하고, 대비하고…. 설령 의도를 가지고 덤빌지라도 그걸 선의로 받아들이면 또 바뀌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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