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10일 개성공단의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같은 해 5월9일, 개성공단 기업과 협력업체 등 163개사는 헌법재판소(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피청구인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와 개성공단 관련 기업들 사이에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져왔는데, 최근 중요한 변수가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구성된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혁신위)는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 당시 이 결정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라고 밝혔다. 혁신위는 “2월8일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두 지시가 있었고, 2월10일 NSC 상임위원회는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다”라고 설명했다. 혁신위는 또 “헌법에 따르면 중요한 대외정책은 국무회의의 필요적 심의 사항인데 국무회의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는 구두로만 이뤄졌다”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관련 163개사를 대리해서 소송을 이끌어온 수륜아시아법률사무소 노주희 변호사를 만났다.


ⓒ시사IN 신선영노주희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가 헌법과 법률의 기반 없이 개성공단을 중단했다고 지적했다.
2016년 5월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의 취지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공권력 행사가 헌법 위반이라는 점을 확인해달라는 것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 첫째, 적법 절차 원칙을 위반했다. 박근혜 정부는 헌법과 법률의 기반 없이 개성공단 중단을 강행했다. 남북교류협력법, 헌법상 긴급명령 같은 법적 장치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데도 말이다. 둘째, 개성공단 기업주들의 헌법상 권리인 재산권을 침해했다. 셋째, 신뢰보호원칙(국민이 법을 믿고 신뢰하면 그 신뢰를 보호함으로써 국가의 법적 안정성을 보장)을 위반했다. 지난 2013년 잠정 중단 당시, 박근혜 정부는 북한 측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입주 기업들은 그 합의를 믿고 기업 활동을 하다가 배반당한 것이다.

2016년 7월 박근혜 정부를 대리한 정부법무공단이 청구인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답변서를 헌재에 제출했는데?

당초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이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치행위’라고만 주장했다. 헌법이나 법률과 상관없이 감행해도 되는 조치라는 의미다. 우리가 개성공단 중단의 위법성을 주장하자 비로소 ‘통치행위니까 괜찮아’에서 ‘사실은 이런저런 법률에 근거했으니 위법이 아니야’로 태도를 바꿨다. 정부법무공단 측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이라는 법률에 근거했다는 것이다. 2월10일 오전, 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정했으므로 위법이 아니라고 한다.

국가안전보장회의라는 명칭만으로도 왠지 엄청난 권위가 느껴지는데?

따져보면 사실은 지나치게 허술한 논리다. 국가안전보장회의법은 NSC의 조직 구성에 대한 법률이다. NSC의 의장 자격, 위원 수 등을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NSC는 개성공단 중단 같은 중대한 사안을 심의·결정하는 기구가 아니다. 대통령이 안보 관련 정책을 결정하기 이전에 자문을 하는 장치일 뿐이다. 법률대로 하려면, 대통령은 NSC 자문을 거쳐 정책의 윤곽을 잡은 뒤 국무회의(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최고 정책심의기관)의 심의에 부쳐 의결해야 한다. 중대한 사안인 경우 국회의 동의까지 얻어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비슷한 전례가 있었나?

정부법무공단은 노무현 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 결정을 개성공단 중단과 비슷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두 경우 모두 이른바 통치행위이고 NSC와 관련해서 결정됐다는 식이다.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이라크 파병의 경우,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NSC의 자문을 받은 다음 국무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쳤으며 심지어 국회 동의까지 받았다.

최근 통일부 혁신위 의견서에 따르면, NSC 회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그런 식으로 어떤 헌법적·법률적 근거도 없이 마음대로 불쑥 큰일을 저질러놓고 ‘위헌이 아닌 것을 입증하라’고 정부법무공단을 윽박지른 게 아니었나 싶다. 정부법무공단 변호사들이 매우 힘드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연합뉴스2016년 2월10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을 북한에 통보했다”라고 발표했다.
‘재산권 침해’ 부분에 대한 정부법무공단의 의견은 어땠나?

정부법무공단은 개성공단 기업인들이 주장하는 재산권은 ‘구체적 재산권’이 아니라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조성한 개성공단 덕분에 발생한 ‘수익 기회’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반사적 이익이란, 법에 근거한 행정 집행의 반사적 효과로서 시민들에게 발생하는 이익. 예컨대 정부의 도로개발 사업으로 주변 토지의 가격이 올라 그 소유주들이 엄청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경우다. 반사적 이익은 ‘헌법이 보호할 재산권’에 해당되지 않는다. 정부의 도로 개발 취소로 땅값이 내려간다고 해도 토지 소유주들이 ‘나의 재산권을 침해당했다’라며 소송을 낼 수 없다는 의미다). 즉, 재산권이란 것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재산권 침해’ 역시 없었다고 주장했다.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공단에 건물, 생산설비, 원·부자재, 완제품 등 구체적으로 실재하는 재산을 갖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회사 부지에 대한 ‘토지 이용권(38~42쪽 기사 참조)’도 그것을 활용해서 수익을 내고 다른 기업인들에게 판매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재산이다. 이런 것들이 재산이 아니고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면, 도대체 뭐가 재산이란 말인가.

박근혜 정부는 기업주들에게 충분히 보상했다고 주장하는데?

남북 경협 관련 기업들이 들어놓은 보험금이나 소액의 정책 자금 대출을 갖고 그렇게 말한다. 입주 업체들은 대다수가 다른 한국 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개성공단에서 임가공업을 영위해왔다. 개성공단에서 갑자기 쫓겨난 뒤 재산상 피해나 치명적인 매출 감소는 물론 납기 계약을 어긴 데 따른 줄소송을 당하고 있다. 폐업과 휴업에 들어간 기업도 많다. 헌법에 따르면, 국가가 공공이익 때문에 불가피하게 시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법률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하라고 규정되어 있다. 재산 가치를 완전히 보전해줘야 한다는 판례도 있다. 기업주들은 정부의 정책(‘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을 신뢰한 대가로 막대한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 통일부 혁신위 의견서에도 나오듯이, ‘대북 사업은 본래 위험성이 있는 것이므로 그 위험을 사업자들이 감수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남북 협력 사업을 촉진하고 권장했던 국가가 할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소송 상황은?

진행 중이다. 다만, 통일부 혁신위 의견서가 사실상 우리 청구인들(개성공단 기업인)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혁신위 의견서가 없더라도 개성공단 전면 중단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니 위헌 결정이 나올 것으로 믿고 있었다. 헌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할 뿐이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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