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대선주자들의 ‘총선나기’

절박한 ‘무대’의 일보후퇴

오세훈의 대선방정식, ‘정치 1번지’에서 풀릴까

광주 찾은 문재인의 배수진

4년 ‘벽치기’한 김부겸, 새로운 도전 나서나

일석이조 노리는 ‘안길동’의 도전

기자들은 의석수를 어떻게 예상할까

 

‘악수는 성의 있게,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도록 목을 조절하며, 적합한 말을 건넬 것.’ 오세훈 후보의 선거운동 모습은 정치인의 교본을 보는 것 같았다. 차분하고 신속하면서도 예의바르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누군가 다가오면 귀를 내밀어 경청하는 포즈를 취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서 그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청취하는 느낌을 자아냈다. 지나가던 사람이 먼저 아는 척하면 호흡을 두고 인사를 건넸다.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되, 여럿을 아우를 줄 알았다.

4월6일, 서울시 종로구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본 오세훈 후보의 친화력은 대단했다. 그는 청바지에 야구점퍼 차림으로 편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다른 총선 후보와 다른 점은 후보의 기호와 이름을 표기한 점퍼를 입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거운동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빨간색 점퍼와 셔츠로 통일하고 어깨띠로만 운동원임을 나타냈다. 선거운동도 되도록 조용히 했다. 복지관에서도, 책 읽는 어르신의 노여움이라도 살까 두려워 독서실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젊은 운동원들로 구성된 율동팀이 있었지만, 복지관 주변이 주택가인 점을 고려해서 그냥 돌려보냈다.

ⓒ시사IN 신선영4월6일 오세훈 후보가 서울 혜화동 주민센터 노래교실을 찾아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선거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달이 났다. 특유의 친화력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 4월5일 혜화역 유세 도중 선거운동 장소가 겹치자 용혜인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운동원들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면서 “우리가 양보해줄게, 열심히 해”라고 반말을 한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 비아냥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표현이었다. 오 후보 측은 논란이 되자 곧바로 사과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망령도 그를 다시 괴롭혔다. 4월6일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가 20대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이 직접 선정한 ‘워스트(최악의) 10’ 후보를 발표했다. 오세훈 후보도 김무성·나경원·윤상현 후보 등과 함께 포함되었다. ‘논란을 빚은 정치인’이란 부분이 다시 환기되는 것은 오 후보에게 불리한 요소다.

선거 1주일을 남기고 오세훈 후보는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당내 경선을 거쳐 종로구 새누리당 후보가 되었을 당시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오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보다 20%포인트 가까이 앞서 있었다. 그러던 지지율 차이가 어느새 10%포인트 이내로 줄더니, 선거 전주엔 ‘박빙’으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순위가 역전된 결과까지 나왔다. 오 후보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3대 때부터 종로구에 출마해온 정인봉 변호사가 지난 4년 동안 당협위원장으로 이 지역의 조직을 관리해왔는데,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승자인 오 후보를 적극 돕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예민해진 탓인지 오세훈 후보 캠프에서는 기자의 동행 취재 부탁을 처음엔 거절했다. 대선 후보로 비치는 것이 부담스럽고, 기자를 대동하고 다니면 유권자들이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듭된 요청으로 겨우 승낙을 받아 오 후보를 따라다닐 수 있었다.

대선 후보로 비치는 것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오세훈 후보는 잠시 유세를 멈추고 차량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와 꽤 오랫동안 통화하더니 다시 밖으로 나왔다. “전화 인터뷰였다. (내가) 서울시 선대위원장인데도 다른 지역으로 지원 유세를 가지 않는 이유를 묻길래 솔직히 얘기했다. 지금 이곳 상황도 녹록하지 않다고…. 당이 공천을 엉망으로 하면서 선거가 힘들어졌다.”

오세훈 후보가 총선에 뛰어든 것은 16년 만의 일이다. 2000년 16대 총선 강남을 선거구에서 당선된 이후 그는 불출마 선언을 하고 17대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이후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 당선되었고 2010년 재선에도 아슬아슬하게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었다. 선거 포스터나 선거사무실 간판, 유세 차량 등에 본인의 얼굴을 크게 게재했다. 경쟁 상대인 정세균 후보가 포스터 중앙에 구체적인 공약을 나열한 것과 대비되었다. 오 후보의 선거 메시지 역시 ‘종로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큰일을 할 인물을 종로에서 키워달라’는 것이었다. 선거 전 초반 선거 캠프를 방문한 한 기자는 참모들의 보고서에 ‘대선 후보 지지율’이 맨 위에 놓여 있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종로구 선거는 오세훈 후보에게 대선 전초전의 의미를 띤다. 2010년 서울시장 재선 때 강남 3구에서 몰표를 얻어 가까스로 당선된 그는 ‘강남 시장’이라는 오명을 감수해야 했다. 강북인 종로구에서 당선되는 것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사태에 대한 면죄부를 얻음과 동시에 전국구 정치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종로는 윤보선(4대), 노무현(16대), 이명박(17대) 등 대통령 3명을 배출한 선거구다.

ⓒ연합뉴스종로구 선거에 출사표를 낸 박진(당내 경선 탈락)·정세균·오세훈 후보(왼쪽 두 번째부터).

하지만 오세훈 후보가 유력한 대선주자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그가 김무성 대표를 제치고 여권의 대선주자 1위를 기록하면서, 오히려 다양한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당선되면 1년 뒤에 바로 대선 후보 경선에 나갈 사람이 지역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오 후보 처지에서는 총선에 당선된 뒤 대선주자로 입지를 굳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일찍 대선주자로 부각된 것이 총선의 당선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국면이 되어버린 것이다.

종로는 정세균 후보가 지난 4년 동안 꼼꼼히 관리해온 곳이다. 정 후보는 “의정보고회를 1년에 100회 이상 실시하고 1년에 1000통 이상 지역주민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할 만큼 지역구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정 후보는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이 많은 종로 지역의 여건에 맞춰 SUV를 개조한 유세 차량을 타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했다. 도보로 유세를 다닐 때는 ‘일용엄니’ 김수미씨가 함께 다녔다.

물론 오세훈 후보도 이번 선거를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언론 인터뷰를 집중적으로 해서 분위기를 달구었다. 친박계가 지원하는 차세대 주자라는 점이 부각된 덕분에 당 경선에서 박진 후보와 정인봉 후보를 제칠 수 있었다. 종로 선거구의 특징을 잘 살리기 위해 선거사무실은 서촌에 두었고, 집은 동쪽인 혜화동의 아남아파트에 얻었다.

오 후보가 특히 신경을 쓴 곳은 창신동과 숭인동 지역이다. 여기서 매일 아내와 함께 출근 인사를 한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선거 결과를 보면, 종로구는 평창동·구기동·부암동 등 서쪽의 부촌에서는 여당 표가 많고, 창신동·숭인동 등 동쪽 지역에서는 야당 표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정세균 후보가 4만1732표를 얻어 3만6641표를 기록한 홍사덕 후보에게 승리를 거뒀다. 두 사람의 득표 차이가 바로 종로구의 동쪽 지역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이 지역 민심에 대해 오 후보는 “종로로 지역구를 정했을 때 가장 걱정했던 곳이 바로 창신동과 숭인동이다. 각오를 하고 왔는데 실제로 다녀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으로 근무할 때 뉴타운으로 지정됐다가 해제된 곳이다. 해제되는 과정에서 후유증이 컸다. 물론 뉴타운으로 지정해주었던 것을 고맙게 여기는 지역 주민도 있다. 이런 과거의 사연이 오 후보의 발목을 잡을지, 혹은 그에게 면죄부를 발급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하늘 높이 띄울지, 4월13일의 선거 결과가 좌우한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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