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대선주자들의 ‘총선나기’

절박한 ‘무대’의 일보후퇴

오세훈의 대선방정식, ‘정치 1번지’에서 풀릴까

광주 찾은 문재인의 배수진

4년 ‘벽치기’한 김부겸, 새로운 도전 나서나

일석이조 노리는 ‘안길동’의 도전

기자들은 의석수를 어떻게 예상할까

 

청주 시내 한복판에 〈픽미(Pick Me)〉가 울려퍼졌다. “빰빰 빠바밤” 붉은 옷을 입은 대학생들이 EDM 비트에 맞춰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러댔다. “픽미픽미 새누리, 픽미픽미 새누리. 헤이 픽미! 기호 1번 새누리!” 유세 트럭 좌우로 정우택(청주 상당)·오성균(청주 청원)·최현호(청주 서원) 후보의 팻말이 덩실대고 있었다. 새누리당 청주 합동 유세가 열린 4월5일 오후 청주 성안로는 선거운동원과 열성 지지자, 거리를 오가던 시민이 뒤엉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김무성 대표가 ‘새누리 희망 드림 버스’라는 이름이 붙은 빨간색 28인승 버스에서 손을 흔들며 내렸다. “김무성, 김무성!” 연호가 이어졌다. 이 지역에서 4선에 도전하는 정우택 후보가 상기된 표정으로 김 대표를 맞았다. 마이크를 전달받은 김 대표가 목소리를 높였다. “운동권 출신들은 거짓 선동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민생과 경제를 외면하는 정치 무리들입니다.” “개성공단 재가동한다고 하는데 그럼 김정은이 핵폭탄 더 많이 만들라는 것 아닙니까?” 지지자들은 “맞습니다”라는 고성과 함께 박수로 화답했다.

“그런데 청주 시민 여러분, 큰일났습니다.” 열변을 토하며 야당을 비판하던 김무성 대표가 갑자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공천 과정에 실망을 끼쳐드린 나머지 어르신들이 투표를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판세를 점검해보니 새누리당이 과반을 못 넘긴다고 합니다.” 격정적이던 말투는 어느새 절절한 호소로 바뀌었다. “여러분께 실망 끼쳐드린 점에 대해 사죄 말씀 드립니다. 눈물로 호소합니다.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힘주어 ‘잘못’을 외치자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무대에 오른 후보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김 대표는 다시 붉은 버스에 올라타 다음 목적지인 청주 사천동으로 향했다.

ⓒ시사IN 조남진4월6일 충남 당진으로 지원 유세를 간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가 ‘내가 업어주면 당선된다’며 새누리당 총선 후보를 업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4월5일부터 6일까지 이틀 동안 충청 및 전북 지역구 열여덟 곳을 방문했다. 대전·청주·세종을 거쳐 전주로 향했고, 이튿날에는 홍성·당진·아산에 들른 뒤 상대적 열세 지역인 천안까지 이동했다. 이동 거리만 따져도 700㎞에 육박했다. 지역마다 김 대표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하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전날까지 “기왕에 당선시켜주실 거, 확실하게 큰 표 차로 당선시켜달라(4월4일 이장권 양산을 후보 지원 유세)”던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당 차원의 전략적인 방향 수정이었다. 충청권 유세 전날인 4월4일 밤 안형환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열어 “당의 자체 판세 분석 결과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을 지지하시는 분들께서 반드시 투표장에 나와주실 것을 호소한다”라고 말했다.

이 브리핑 직후 전국에서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4월6일에는 대구 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이 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유권자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같은 날 대구 수성갑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후보와 대결 중인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도 “새누리당이 그동안 오만했다”라며 자신의 선거사무소 앞에 멍석을 깔고 ‘백배 사죄’ 퍼포먼스를 벌였다.

전략을 수정한 표면적인 이유는 4월4일 보고받은 ‘판세 분석’ 때문이었다. 지지층 이탈이 주된 위험요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와 함께 유세 일정을 수행하던 관계자들은 당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4월5일 밤 김 대표 일정을 보좌하던 한 새누리당 공보 관계자는 식사 자리에서 “180석은 무리지만, 이번 선거에서 170석 이상 획득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당대표는 과반이 어렵다고 호소하는데, 실무진은 큰 승리를 예견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김 대표의 일련의 ‘사과’에 대해 “‘의도된 엄살’이라는 지적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수도권과 충청 격전지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야당 표를 나눠 가지며 새누리당에게 판세가 유리해졌고, 자연스럽게 ‘집토끼 수성’이 ‘중도층 공략’보다 더 확실한 승리 공식이 된 셈이다.

이틀간의 유세에서 김무성 대표는 안보와 경제 이슈로 야당을 공격하고, 실망한 지지자들에게 잘못을 호소하는 일관된 패턴을 유연하게 구사했다. 야당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에서는 여당 의원이 예산 확보에 수월하다고 강조했고, 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지역구에서는 투표 독려에 방점을 두었다.

“여러분(전북도민)은 배알도 없습니까?”

전북 전주에서도 순천 지역 이정현 의원 사례를 들며 “이 의원은 2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 중에 순천에 예산 폭탄을 가져왔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김 대표는 “전북에서 몽땅 더민주 국회의원 만들어놓고 배신감 느끼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배알도 없습니까? 전북도민 여러분 정신차리십시오”라고 말했다. 정운천(전북 전주을)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호남과 야권 지지층의 표 분산까지 노린 발언이었다.

ⓒ연합뉴스4월6일 대구 지역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들이 한데 모여 ‘오만을 사죄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유세 기간 내내 김 대표는 ‘힘 있는 여당’을 강조하며 지역 현안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모순이다. 김 대표는 총선 이후 대표 자진사퇴 의사를 유세 내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면 김 대표는 ‘책임지는 위치’에서 물러나게 된다. 지역별 ‘약속’이 공허한 이유다.

김 대표에게 이번 총선은 ‘당의 얼굴’로 미디어에 비칠 마지막 기회다. 향후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이번 총선 과정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죄송하다”는 메시지 뒤에는 언제나 “당대표인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라는 말이 뒤따랐다. 자신의 몸을 던져 당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정치적 평가를 얻으려는 모습이다. ‘옥새 투쟁’에 이어 총선 승리까지 거머쥘 경우 공천 과정에서 망가진 자신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면서 ‘미래 권력’에게 힘이 쏠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지지율 하락 추세에 있는 김 대표로서는 이를 반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무성 대표가 총선을 승리로 이끌 경우 기회가 생긴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김무성계 인사들이 상당수 살아남은 만큼 20대 국회에서도 만만찮은 존재감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총선 결과가 시원치 않을 경우엔? 이미 ‘지는 해’였던 김 대표의 위상은 완전히 추락할 것이다. 김무성 대표에게 20대 총선 승리가 누구보다 절박한 이유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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