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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국정화 강행 이유는?


‘자유의 적’이 된 자유주의자들


최인훈의 〈광장〉이 공산주의 미화?

 

해외 학자들 “한국 정부 국정화, 아베와 똑같아”


국정화 전선, ‘상식 대 비상식’으로

 

국정화가 몰고 온 역사 열풍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던 이들이 ‘자유의 적들’로 등장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한국 보수의 맨얼굴을 폭로했다. 자유주의는 한국 보수가 내세우는 핵심 가치였다. 하지만 일단 전선이 그어지고 전쟁이 선포되자, 가장 먼저 내팽개친 가치 역시 자유주의다. 보수 버전의 역사 담론이 형성되고 세를 더해가다 국정화 국면에서 자기모순을 드러내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되짚어보면 한국 보수의 사고체계가 드러난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는 묘하게 낯선 풍경이 있다. 여론 지형이 명백히 불리한데도 이 이슈를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보수의 태도에서는 ‘전략적 판단’의 수위를 넘어서는 강한 신념이 묻어난다. 이 확신을 알지 않고서는 무리를 감수하고 밀어붙이는 교과서 전쟁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현대사 해석, 특히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대한 해석에서 학문적 우위를 확보했다는 믿음을 보수는 공유한다. 이들에게 ‘올바른 교과서’는 정치적인 수사가 아니다. 보수 버전의 역사관이 진정 ‘올바르다’고 믿는다.

상징적인 대목이 이승만 시대의 재해석이다. 정통 해석에서 이승만 시대는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4·19 혁명에 의한 정권 붕괴 등 민주주의를 파괴한 정부라는 점이 주로 강조되어왔다. 한국전쟁 지도부로서도 낙제점을 받았다. 한강 인도교 폭파와 거창 양민학살 등 정권발 전쟁범죄도 여럿 저질렀다. 휴전협정 반대와 북진통일을 고집한 대목은 그의 호전성을 증명하는 사례로 인용되곤 했다.

 

ⓒ연합뉴스뉴라이트는 ‘현대사 재해석’ 작업을 통해 이승만·박정희(왼쪽) 시대를 집중 조명했다. 이 작업에 역사학 전공자보다 사회과학 계열 연구자들이 더 많이 참여했다. 뉴라이트 계열 연구자들은 ‘이승만(오른쪽)이 뛰어난 국제 감각으로 미국과의 이해관계를 역이용해 국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뉴라이트 계열을 주축으로 하는 보수 성향 연구자들은 통설 뒤집기를 시도했다. 요지는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종전과 미·소 냉전의 시작이라는 당대의 새로운 질서에서, 미국은 흔히 ‘봉쇄정책’으로 불리는 냉전전략을 입안한다. 이 정책의 핵심은 ‘현상 유지’였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국지적 불안정성이 세계를 뒤흔들어버릴 위기를 제어해야 했다.

뉴라이트의 손꼽히는 이론가인 고 김일영 교수(정치학)는 이런 국면에서 이승만 정권이 일종의 ‘셀프 인질극’을 벌인 것으로 해석한다. 북진통일론을 주창하고 휴전을 거부하거나 훼방 놓는 태도를 보인 것은 “여차하면 역내 현상 유지를 깨트려버려 미국의 세계정책을 헝클어뜨릴 수 있다”라는 무력시위였다는 관점이다. 충남대 차상철 교수(한미관계사)도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실은 논문에서 유사한 주장을 한다. 미국 아이젠하워 정부와 이승만 정부는 끊임없이 ‘밀당’을 하며 서로 원하는 것(역내 현상 유지와 신생국가의 안전보장)을 교환할 최적 비율에 다가섰다.

뉴라이트의 이승만·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해석

뉴라이트 계열 연구자들은 당대에 이런 미국의 이해관계를 역이용해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국제 감각이 있는 지도자가 드물었고, 이승만이 예외적으로 그런 감각을 갖추었기 때문에 국내 정치에서도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고 해석한다.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대목은 ‘경로 설정’이다. 2차 대전 종전 직후는 냉전의 어느 진영이 결국 승리를 거둘지 알 수 없는 시절이었고, 공산주의는 신흥 국가에 매력 있는 대안이었다. 당대에 초기 경로를 잘 설정하는 것은 국가의 운명에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승만 정권이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으로 경로를 잡은 것은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고 이들은 본다.

이와 같은 ‘재해석’ 작업이 현대사 전반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이승만·박정희 시대가 특히 집중 조명을 받았고, 한·미 관계, 비교사, 계량분석 등 좁은 의미의 역사학 밖에서 관점과 방법론을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았다.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연구자들의 면면을 보면 역사학 전공자보다 사회과학 계열 연구자가 더 많이 눈에 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근현대사는 역사가만이 아니라 정치사·경제사·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분들을 초빙해서 구성할 것이다”라고 말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보수 성향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국제적 시야’ ‘선입견 없는 일차사료 연구’ ‘비교사적 관점’ 등에서 우위에 있다고 자평한다. 역사학계 주류의 해석이 민족주의와 일국사의 함정, 심지어는 스탈린주의 사관의 영향력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재해석’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경제학)는 자신들의 접근법을 자유주의 사관이라고 불렀다.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을 강조하고 집단주의적인 역사 해석을 배격한다는 의미다. “대안적 해석을 제시했다”라는 수준을 넘어, “우리 해석이 올바르다”라는 보수 연구자들의 강한 자신감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결정적인 전선 확장의 시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2003년 3·1절 기념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의는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했습니다”라고 한국 현대사를 규정한다. 탄핵 역풍으로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한 2004년에는 이른바 ‘과거사법’을 내세워 과거사 청산 작업에 들어간다. 노무현 정부의 이런 ‘역사 공세’가 보수에 준 충격은 현재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공세가 역사학계에 준 충격에 비견할 만했다. 보수는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조직화해 반격했다. 2004년 11월 자유주의연대가 출범했고, 2005년 1월에는 교과서포럼이 등장했다. 교과서포럼 출범 이후 현대사 해석 문제가 정치적인 화약고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교과서포럼은 그간의 연구 성과를 모아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낸다. 2013년 연말에는 교학사 교과서 파동이 있었다.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출시해 ‘자유시장’의 선택을 받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일선 현장의 외면을 받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전선은 역사의 해석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어쨌거나 보수는 이승만·박정희 시대를 해석하는 나름의 논리 체계를 구축한 상태였으니, 그런 관점의 교과서를 만들어 검정을 받아 내놓는 과정 자체는 학문의 자유로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교학사 교과서가 현장의 외면을 받자, 보수는 교육 현장을 일종의 ‘시장 실패’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민족주의에 포획된 역사학계’와 ‘좌편향 전교조’ 탓에 더 품질이 우수한 교학사 교과서가 외면받는다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더 품질이 우수하다’라는 대전제를 의심하지 않는 이상 이런 결론은 보수의 논리 구조에서는 필연이었다. 이제 국정화는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매력 있는 대안이 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보수는 치명적인 문제 하나를 해결해야 했다. 자유주의는 보수가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가치였다. 역사 논쟁을 둘러싸고는 특히 그랬다. 첫째, 이승만 정권을 긍정 평가할 때 ‘냉전기에 자유 진영으로 올바른 경로 설정을 한 공’이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 논거다. 자유의 가치를 강조할수록 이 논거가 힘을 받는다. 둘째, 역사학계 주류 해석을 ‘민족주의 과잉’과 ‘민중사관’으로 몰아친다는 것은, 논쟁 구도를 자유주의 대 전체주의로 짠다는 의미다. 이 구도에서 보수는 역사학계의 정통 해석에 개인보다 민족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색채를 덧씌우고, 개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해독제로 자유주의를 꺼내든다. 역사 전쟁의 구도에서 보수가 자유주의를 포기하는 순간 거대한 논리적 공백을 해결할 길이 없다.

이제 보수는 국정화와 자유주의를 조화시켜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를 떠안았다. 국가의 개입을 자유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는 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정화를 정당화할 것인가.

몇 갈래의 시도가 있었다. 우선 핵심 이데올로그인 이영훈 교수는 10월21일 자유경제원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정화 논쟁은 자유사관과 민중사관의 일대 투쟁이다. 이 나라가 선진화하기 위해 패배해서는 안 될 절체절명의 이념 전쟁이다.” ‘자유사관’이 ‘민중사관’보다 명백히 옳기 때문에 전쟁을 해서라도 승리해야 ‘자유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유주의의 대원칙 위반이다.

자유주의는 인간의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을 통해서만 인간은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그래서 진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자유다. 19세기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이렇게 쓴다. “인간이 아는 진리란 대부분 반쪽짜리다. 인간이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이 유익하다.” 같은 이유로 밀은 국가의 교육 통제도 단호히 반대한다. “국가가 나서서 교육을 일괄 통제하는 것은 사람들을 똑같은 틀에 맞추어 길러내려는 방편이다. 틀 속으로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최고 권력자의 기쁨도 커진다.”

그렇다면 역사라는 학문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전략은 어떨까? 10월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 방법을 시도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민족정신이 잠식당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주의의 대가 중에도 역사학이 특수하다고 쓴 학자가 있다. 다만 박 대통령과는 방향이 정반대다. 어떤 기준으로 보아도 좌파라고 하기는 힘든 20세기 경제사상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역사학의 특수성을 인식하고 국가가 개입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전체주의 국가의 특징이라고 썼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가장 직접적으로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주는 역사·법·경제학에서 진리에 대한 탐색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떤 교리를 가르치고 출판할지 당국이 결정한다.”

 

ⓒ시사IN 윤무영2008년 3월25일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모인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위).

‘올바름’을 독점했다는 보수의 믿음은 자유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 역사학이 특수하다는 대통령의 발상은 전체주의에 훨씬 더 가깝다. 이 막다른 골목에서 보수가 마지막으로 꺼내드는 카드가 ‘시장 실패’다.

10월7일자 〈조선일보〉 칼럼에서 자유경제원 현진권 원장은 “역사 교과서 시장은 시장 실패가 발생한 영역이다. 시장 실패에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라고 썼다. 시장에서 독점(보수의 용어로는 ‘민중사관 교과서’의 독점)이 일어나고 있으니 정부가 개입해 교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주장은 이후 여러 보수 오피니언 리더들이 ‘역사 교과서 시장에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기조로 반복했다. 자유주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비상 상황이므로 일시적인 정부 독점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는 자유주의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한 보수 자유주의자가 국정화를 반대하는 이유

아닌 모양이다.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목인 밀턴 프리드먼은 책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이렇게 썼다. “정부 독점의 가장 큰 해악은 되돌리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참을 수 있는 한에서는 사적 독점이 그나마 가장 낫다. 역동적 변화가 사적 독점을 붕괴시킬 기회는 남게 된다.” 자유주의의 적통 사상가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국가 개입이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적 독점을 국가 독점으로 대체하자는 주장은 자유주의 족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보수파 자유주의자 중에도 “현재 교과서는 문제가 있지만 국정화는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 시장경제 학회인 ‘한국 하이에크 소사이어티’ 초대 회장을 지낸 손꼽히는 하이에크 전문가 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경제학)다. 10월28일자 〈문화일보〉 칼럼에서 민 명예교수는 현재 검정제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인식을 보수와 공유하면서도 국정화에는 단호히 반대했다. 자유주의자가 국정화를 사유하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검정제는 바른 교과서를 만들어 좌파와 경쟁할 가능성이라도 있다. 그러나 국가 독점은 그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 국정화는 국가의 독점적 역사 해석이 옳다는 믿음을 전제한 것이다. 치명적 자만이다. 역사 해석에는 항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오류 개선의 길이 자동으로 밝혀지는 게 아니다. 자유 경쟁이 필요하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 독점을 포기하는 게 옳다.”

국정화 반대론자가 꼭 자유주의자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정화 지지자는 자유주의와 국정화 지지의 모순을 해결하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데, 현재까지는 하나같이 실패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유주의와 국정화 지지는 양자택일의 질문이 되어버렸다. 이 질문을 받아든 보수 인사들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고 국정화 지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런 걸 ‘우리식 자유주의’라고 불러야 할까.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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