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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적’이 된 자유주의자들


최인훈의 〈광장〉이 공산주의 미화?

 

해외 학자들 “한국 정부 국정화, 아베와 똑같아”


국정화 전선, ‘상식 대 비상식’으로

 

국정화가 몰고 온 역사 열풍

 

지난해 개봉한 영화 〈명량〉에 이어 올해 〈암살〉이 1000만 관객을 넘었다. 〈사도〉 역시 620만명을 기록했다. 선택과목이던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바뀌었다. 국정화 교과서 논란까지 가세했다. 출판계에서는 한국사 관련 책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30대 여성 독자가 늘어난 점도 변화로 꼽힌다. 안중근 의사의 직업을 의사로 알더라는 일화가 거듭 오르내리며 젊은 세대의 무지를 염려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다. 최근 반응이 좋은 방송, 팟캐스트, 만화 등 대중적인 역사 콘텐츠를 모았다. 대체로 쉽고, 역사에 대해 ‘한 가지 시각’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을 보여준다는 미덕을 갖추고 있다.

 

ⓒKBS 홍보실<역사저널 그날>(위)은 일요일 심야 시간대 편성임에도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 방송
〈역사저널 그날〉, ‘역사포털 KBS 히스토리’
KBS 〈역사저널 그날〉(〈그날〉)의 시청률은 한때 10%에 육박했다. 일요일 심야 시간대 편성인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기록이다. MC와 패널 대여섯 명이 토크쇼 형식을 빌려 역사 속 ‘결정적인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난 날, 세종이 집현전을 연 날, 류성룡이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날 등이 대표적이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생각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다. 패널 면면이 다양하다. 신병주 교수(건국대 사학과) 같은 역사학자도 있지만 이해영 영화감독과 류근 시인 등 ‘비전공자’도 있다. 각각 사건을 영화에 견주거나 시적인 비유를 들어 해석한다. 역사 속 인물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할 때도 있다. 정병권 PD는 “역사라는 게 애초에 하나의 시선으로만 볼 수 없다. 역사 교사, 교수, 시인 등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한다”라고 프로그램의 특징을 말했다. 콩트, 가상 인터뷰, 가장 많이 회자된 왕에 대한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11월, 100회 특집을 앞둔 〈그날〉은 현재 고대사에 집중하고 있다.


그간 역사 프로그램에 공을 들여온 KBS에는 유난히 역사 문제에 밝은 시청자, ‘역사 덕후’가 많다. 프로그램 게시판에도 깊이 있게 의견을 개진하거나 논리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글이 올라온다. 이들에게는 올해 초 문을 연 ‘역사포털 KBS 히스토리’가 유용할 것 같다. 지난 30여 년간 KBS가 제작해온 한국사 관련 동영상 5000여 개를 비롯해 프로그램 654편이 제공되는 사이트다. 시대별·인물별·지리별로 정보도 나뉘어 있다. 과거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그대로 유용하다. 정혜숙 중학교 역사 교사는 “짧게 잘라서 수업 때 쓰면 활용하기 좋아서 〈역사 스페셜〉이나 EBS 〈지식채널-e〉 등을 수업에 이용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역사를 알기 쉽게 가르쳐 화제가 되었던 설민석 강사의 〈설민석의 십장생 한국사〉같이 대중적인 프로그램부터 〈역사추적〉 같은 정통 역사 교양물, 〈징비록〉 〈정도전〉 등의 사극을 만나볼 수 있다.
본격적인 역사 프로그램은 KBS와 EBS 정도만 명맥을 잇고 있다. 2011년부터 방영 중인 EBS 〈역사채널-e〉는 5분 분량이 특징으로, 세련된 영상미를 통해 짧지만 강렬하게 역사의 뒷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애초 계획할 때 몇 분이 들을지 모르니까 책의 애프터서비스 개념으로 생각하자고 시작했어요.” 휴머니스트 출판사 위원석 교양만화 주간의 예상과 달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팟캐스트는 68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박시백 화백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임금이 다스린 472년의 왕조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기반으로 20권의 만화를 완간했다. 이에 즈음해 책과 함께 들으면 좋을 팟캐스트 진행을 시작했다.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신병주 교수와 지금은 고인이 된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가 함께했다. 최근에는 영화 〈사도〉를 만든 이준익 감독, 조철현·이송원 작가가 출연해 영화의 뒷이야기를 나누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박시백 화백의 작품은 역사물을 다루는 이들에게는 필독서다. 만화라 쉬워 보여도 막상 도전하면 만만치 않다. 〈사도〉의 작가들도 스토리 구상 단계에서 그의 작품을 참고하고 화백에게 직접 조언을 구했다. 박 화백은 “〈조선왕조실록〉 자체에 대한 연구가 별로 안 되어 있어서 처음 만화를 그릴 때부터 그렇게 쓰이길 바랐는데 다행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작가들은 사도세자의 일화에서 현재 우리 사회와의 접점을 발견했다. ‘피 끓는 청춘을 아버지가 뒤주에 가두어 죽인 이야기’가 지금 시대의 암울함을 은유하는 것 같았다. 과거의 사건이 왜 계속 재생산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진행자 네 명은 역사에 정통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렇다고 의견이 일치하는 건 아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해석을 들려주고 깊이 있는 뒷이야기를 다루는 게 장점이다. 박 화백은 만화 연재 당시 자주 들르는 역사 관련 사이트로 ‘조선왕조실록’과 ‘한국고전번역원’을 꼽았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차기작을 준비 중인 지금은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을 자주 찾고 있다.
이 밖에도 역사를 소재로 한 팟캐스트가 많다. 역사 자체가 오디오 형식의 이야기로 풀기 적당한 데다 이동할 때 한 에피소드씩 듣기 간편하다. 정영진 시사평론가 등 세 명이 진행하는 〈떡국열차〉는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국사 이야기’라는 의미다. 이름처럼 조선시대 사교육, 조선의 목욕 관습, 사약의 주원료 같은 재미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 남경태 작가의 〈타박타박 역사기행〉, 고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다룬 〈이야기로 듣는 한국사〉 역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현대사를 다룬 프로그램으로는 〈박한용의 생얼 현대사〉가 있다.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이 교학사 역사 교과서 발간 당시의 문제점, 박정희와 5·16 쿠데타, 친일파 논란 등에 대해 상세히 짚어준다.

 

● 만화
〈조선왕조실톡〉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사료에 충실하게 〈조선왕조실록〉을 재현한다면 최근 인기몰이 중인 웹툰 〈조선왕조실톡〉은 사실에 기반하되, 재치 있는 형식으로 당시의 정황을 보여준다. ‘카톡’ 메신저 대화창에서 착안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태조 이성계가 아들 정종에게 말을 건다. “얘 방과야 너 괜찮니.” “헙 아버님 예 잘 살지 말입니다.” “방원이가 구박 안 하니.”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이 형한테 왕위 준 것 보십쇼” “그러냐 그래 그 찬물 맛이 어떠냐.” “…으슬으슬합니다.” 단순한 대화지만 당시 정종의 위치를 잘 드러낸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조 팬클럽인 ‘뽀레버 탕평’을 만들 정도로 역사를 좋아했다는 변지민 작가는 〈조선왕조실록〉을 메신저로 재현했다. 감각적이고 짧은 말투가 인상적이다. 당시 정황을 이해하기 쉬운 한마디 언어로 함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실록뿐 아니라 관련 역사서와 자료를 섭렵했다. 각 회 작품에 쓰인 소재 중 실제 실록에 기록된 것, 기록되지 않은 것을 구분해서 일러준다. 작가는 최근 책을 내면서 ‘작가의 말’을 통해 ‘태정태세문단세’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로 살아간 조선 왕들의 일상을 엿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칼부림〉 같은 정통 사극 형태의 웹툰도 있다. 인조반정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연재 2년을 넘겼다. 반정 공신인 이괄을 중심으로 부관인 서아지, 이괄의 호위무사 함 등이 등장인물이다. 현대사를 다룬 웹툰으로는 올해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한 윤태호 작가의 〈인천상륙작전〉이 있다. 평범한 가족이 한국 현대사의 주요 순간을 통과하며 겪는 혼란스러움과 참혹함을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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